어제 저녁 9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포항에 도착하여 포항그린넷마 조성오님의
안내로 청소년 수련원에 여장을 푼 뒤 내일의 대회에 대하여 룸 메이트 들과
환담을 나누었다. 남양주에서 함께 간 윤동준님, 런클회원이신 한도성님, 서울
마라톤클럽의 강종수님, 한국은행 이영수님과 같은 방을 사용하게 되었다.
방은 데워져서 무척 따뜻했지만 방안에 집기들이 하나도 없어 조금은 허전한
마음이 들었다. 여행사에서 건네준 캔 맥주를 마시면서 마라톤에 대한 이야기들을
나누면서 외지에서의 색다른 감정을 달래 보았다.
아침 6시 30분에 일어나서 짐을 정리한 후 식당으로 향하였다.
식당은 런클회원들이 숙박하고 있은 덕운 횟집 이였다. 그곳에서
여러 런클회원들과 인사를 나눈 뒤 식사를 하고 대회시간이 많이 남아서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면서 대회에서 입을 복장에 대하여 의논을 하였다.
바닷가라서 바람이 무척 많이 불고 기온이 낮아서 모두들 복장에 무척
신경을 쓰는 것 같았다. 오향님은 등산복을 입고 달리겠다고 하고...
10시쯤에 대회장에 도착하니 대회관계자들은 분주히 움직이는데
러너들은 추위를 의식해서인지 아직 많이 나오지 않은 것 같았다.
출발시간 30분 전 쯤, 참가선수들이 운집하고 드디어 11시 정각에
출발함성과 함께 호미곶 마라톤대회의 기나긴 여정이 시작되었다.
오늘은 대회코스가 언덕으로 이루어진... 그야말로 상황을 예견할 수 없는
난 코스로 소문나 있기에 그저 몸 가는 대로 달리면서 42키로 미터를
즐겁게 완주하겠다는 각오로 출발을 하였다.
처음 출발하자마자 런클 유니폼을 입은 채동준님이 내 앞에서 달리고 있었다.
1키로 미터까지는 같이 달리고 그 다음 3키로 미터까지 채동준님이 앞에
달리다가 그 뒤로 내가 앞으로 나가 달렸다.
바람은 앞에서 불었으나 방해가 되기보다는 시원하다는 느낌이 들었고
착지나 호흡에도 전혀 문제가 없었다. 금년에 달린 마라톤 대회 중에서
가장 편하고 경쾌하게 달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의심스러워
자주 몸의 반응을 의식하면서 속도를 낮추었지만, 이 정도의 속도면
42키로 미터는 무난하게 완주할 수 있다는 생각에 달리는 속도를
그대로 유지하기로 했다.
언덕을 올라가고 내려가고... 그러한 과정이 쉼 없이 반복되었다.
7키로 미터쯤 달리는데 올 춘천마라톤 여자 부 우승자 문기숙씨가
5-6명의 남성들과 함께 달리면서 내 곁을 가볍게 지나치고 있었다.
따라갈까 하다가 내 페이스대로 달리는 게 좋을 것 같아 적당한 거리를
두고 레이스를 계속했다.
그러나 금방 멀어질 것만 같았던 그 일행들은 나와 5미터 정도의 거리를
유지한 채 더 이상 거리가 벌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함께 합류하기로 하고
뒤 따라서 달렸다.
역시 문기숙씨는 예전의 마라톤 선수 출신답게 여느 아마추어 마라토너들과는
자세와 착지가 달랐다. 상체의 흔들림도 없었고 발도 거의 일자로 착지가
되었으며 언덕을 올라갈 때는 앞 킥을 사용하여 자연스럽게 언덕을 올라갔다.
그리고 언덕을 올라갈 때도 호흡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았으며, 비교적 편안한
자세로 달리기를 이어갔다.
9키로 미터에서 시작된 2키로 미터거리의 급경사인 기나긴 오르막길을 함께
넘고서 그 다음부터 그녀의 모습은 점점 멀어져 갔다. 언덕을 올라갈 때
느려진 시간들을 되돌려 놓으려는 듯 언덕을 내려가면서 손쌀 같이 달려가는데
도저히 거리를 좁힐 수 가 없었다.
그 뒤로 내 앞에서 줄곧 달렸던 3명의 러너와 합류를 하여 반환 점까지
등속도로 달렸다. 달리는 기분도 상쾌했고 몸놀림도 무척 좋았다.
기분 같아서는 이 상태로 50키로 미터도 달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반환 지점을 1시간 31분에 돌았다.
이 기록은 춘천에서의 반환 기록보다도 1분이 빠른 기록인데, 언덕코스에서
이러한 기록이 나왔다는 것은 나의 실력이 최근에 조금 향상되었다는
결과라는 생각이 들었다. 22키로 급수지점에서 물만 마시고 지나치려고
했는데 영양 갱을 주기에 받아서 달리면서 먹었는데 이게 문제를 일으켰다.
영양 갱은 물과 함께 먹었어야 했는데 물을 먹지 않아서 1키로 미터를 달릴
때까지 갱이 삼켜지지 않아 호흡을 하는데 무척 곤란을 겪었다.
당연히 페이스도 떨어지고 힘도 배나 들었다.
다행이 2키로 미터쯤 더 달리니 자원봉사 시민이 물을 주기에 받아먹었더니
체증이 해소가 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체력이 많이 소진 된 상태였다.
27키로 미터에서 급수를 하고 29키로 미터부터 시작된 기나긴
급경사의 언덕을 올라가기 시작했다. 올라가도... 올라가도 끝이 없는
언덕길... 거친 숨을 몰아쉬며 올라가는데 멀리서 음악소리가 들렸다.
저 음악소리의 발원지가 언덕의 끝이겠지 하는 생각에 힘을 내어
올라가니 트럭 위에 오디오를 장착하고 도우미들이 러너들을
응원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곳에서 언덕의 정상까지는 까마득해 보이고...
결국 언덕의 끝 부근에서 협상이 시작되었다.
'그래 걸어가는 게 더 빠를 거야' 그래서 걸어가게 되는데....
오늘 마라톤 레이스 중에서 최대의 실수는 언덕 끝 부분에서 100여 미터를
걸은 것이다. 그것은 걸은 것으로 끝나지 않고 종아리 근육을 경직되게
만들어 그 이후의 레이스에 커다란 문제를 일으키게 했다.
레이스가 끝날 때까지 종아리에 휴식을 주면 안 되는 데, 휴식을 줌으로서
종아리 근육이 경직되어 다시 달리는 데 계속 방해를 했다.
그런 현상은 언덕을 내려갈 때부터 시작되었고, 32키로 미터 급수지점을
가기도 전에 종아리에 쥐가 나기 시작했다. 겨우 급수 대에 도착하여
스프레이로 자극을 가해 보지만 그다지 호전되어 보이지는 않았다.
이후로의 레이스는 종아리 근육의 경직과의 한판 승부가 되었다.
걷다가 괜찮다고 생각되면 달리고 그러다가 종아리가 경직되면
다시 걷고.... 그렇게 2키로 미터 이상의 거리를 나의 의지와 관계없는
달리기가 계속되었다.
다행이 도착지점 5키로 미터를 남겨두고 달릴 수 있었으며
마지막 2키로 미터는 나의 초반 페이스로 달릴 수 있었다.
드디어 골인 3시간 18분 25초
물론 최악의 언덕으로 이루어진 코스에서 이 정도 기록이면 좋은 성과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로서는 아쉬움이 많은 대회였고 많은 것을
배운 대회였다고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