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소득제, 가능할까
<경북일보> 아침시론 2009-04-28
안영환(편집위원)
유럽이든, 한국, 일본이든 인구가 고령화되면서 출산율은 급감하고 있는데도 실업자 수는 늘어나기만 한다. 요즘처럼 글로벌 경제 불황에서는 사회가 온통 실업대란이라는 쓰나미에 휩쓸려 특별한 기술이 없거나 경력이 없는 사람들, 특히 청년층과 노년층은 사지에 내몰리고 있다. 생산기술 발전 탓으로 취업유발계수가 해마다 낮아져 지금까지의 생산-고용-소득분배라는 자본주의의 선순환구조가 무너지고 있는 형국이다.
독일과 프랑스에서는 일부 기업가와 사회운동가를 중심으로 상황이 이럴진대 국가가 사회구성원 개개인에게 일정 수준의 소득을 지급해 주자는 '국민기본소득제도' 도입을 제안하고 있다. 기업의 각종 사회비용에 대한 부담을 없애고 복잡한 복지체계를 단순화하여 관리비를 대폭 감축하면 재원이 충분히 마련될 수 있다는 것이다.
벨기에에 본부를 둔 각국 기본소득 관련단체 연대기구인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BIEN)'에 따르면, "삶의 물질적 조건을 충족하기 위해 생산의 공급을 늘리는 게 여태까지 자본주의의 절대과제였다면, 이젠 안정적인 수요를 만들어내는게 경제 활성화의 관건이 되므로 소비의 선순환구조를 시스템적으로 보장하기 위한 기본소득제가 훨씬 효과적"이라는 주장이다. 미국과 유럽에서 은행과 자동차 산업 등에 천문학적 돈을 쏟아 붓는 것은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격이라고 동 연대기구 운동가들은 말하면서, 차라리 생사의 기로에 선 소액 투자자와 해고자를 비롯한 일반인에게 그 돈을 골고루 나눠줘 소비토록 하는 것이 경제회복의 밑거름이 된다는 논리를 편다.
반드시 황당한 헛소리로만은 들리지 않는다. 좌우간 개미들이 소비를 해야 생산이 늘고 그에 따라 고용도 늘어나게 돼 있다. 실제로 독일과 프랑스는 물론 미국까지도 저소득층에 현금을 나눠주는 시늉을 했었고,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였다. 다른 한편으로 생각하면 거대은행과 GM 같은 공룡 사업체들이 수많은 개인 투자가들의 돈을 끌어 모아 사업이 잘 되면 최고위층 경영진 그들만의 돈 잔치를 벌이다가 사업이 안 되면 고용자를 내쫓고 애꿎은 투자가들만 몰락케 하는 도덕적 해이를 일삼아온 것 또한 사실이다.
물론 일하지 않는 자들에게까지 급료 같은 돈을 주는 것에 대해 태생적으로 거부감을 가진 사람도 많다. 프로테스탄트의 윤리관에서 보면 말이 안 된다. 그러나 사실은 땀 흘려 노동하지 않으면서 고소득을 누리는 사람도 적지 않다. 이를테면, 유산상속을 받았거나 운 좋게 지난 날 부를 축적했던 그들은 현재는 놀면서 토지와 건물에 대한 지대와 금융자산에 대한 이자와 이윤 등 막대한 소득을 챙긴다.
그런데 한편 기묘한 현상은 유럽에서 대체로 기업가와 우파적 시각을 가진 사람들이 이 제도에 호의적인 데 반하여 노동계는 기본소득만 지급한 다음엔 모든 책임을 개인에게 떠넘기며 현재의 복지체계를 대대적으로 수술코자 하는 술책이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실 유럽의 복지는 과중하여 정부가 지탱해 나가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현 복지비용보다 적은 금액을 기본소득으로 개개인에게 일률적으로 지급하고 개인의 능력에 따라 추가소득을 벌라고 한다면 기업들은 사회비용의 덫에서 벗어나 보다 가벼워진 몸집으로 경쟁력을 배가해 나갈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러면 유럽은 경제 재도약의 부흥기를 맞게 될지도 모른다.
우리나라와 브라질 같은 복지체계가 미흡한 신흥국에서는 주로 좌파 계열의 단체와 정치가들이 이 제도 도입에 대해 보다 적극적인 주장을 펴고 있다. 아예 사회안전망이라는 게 없다시피 한 상황에서 재원만 마련될 수 있다면 고령화와 실업문제 해결 방안으로서 검토해봄직하다는 것이다. 2백여 년의 자본주의사상 고질적 병폐는 실업과 인플레를 퇴치시키지 못해 왔다는 점이다.
미국의 알래스카 주 정부가 1980년대 초부터 자연자원의 이용 수익금 중 일부를 떼어 '주민영구기금'으로 설정해 매년 주민들에게 동일한 배당금을 지급함으로써 보다 사회를 평등하게 유지해 오고 있는 유사 사례도 있다. 물론 자원은 풍부한데 주민 수는 적어 특수한 여건 하에서 가능한 측면이 있기는 하나 연구대상으로 삼아 볼만은 하다. 당초 연간 주민 당 300달러였던 것이 2008년에는 2천600달러에 달했다고 한다.
첫댓글 인터넷신문(<프로메테우스>, <민중의소리>)을 제외하고 기본소득을 소개한 언론은 현재까지 <한겨레>, <르몽드 디플로마티끄>였는데, 세번째를 <경북일보>가 차지했군요. 사설 혹은 칼럼에 해당하는 시론으로서는 첫번째입니다. 아무튼 관심이 늘어나는 것은 좋은 일이겠지요.
경향신문에도 법학을 전공하는 박홍규 교수가 2번 정도 기본소득 칼럼을 쓴 적이 있습니다.
예, 저도 이 글 올리고 며칠 후에 그 글들을 찾았습니다. 아차 싶었지요. 제 블로그에만 올리고 아직 이곳에는 못올렸었는데, 방금 올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