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철을 타고 갈 때 누구나 경험하는 일이지만 거북한 것은, 마주 보고 앉은 승객과 눈이 마주칠 때 눈길을 어디에 두어야 좋을지 모를 때와 한 여름 전철 의자에 앉아 있는 내 앞에 선 여인이 들어내 보이는 배꼽에 시선이 머물 때이다. 더운 여름, 전철에 앉아 읽을거리를 보면서 가노라면 젊은 여성들 사이에 유행한다는 청바지에다 찰싹 붙은 짧은 윗옷 사이에 배꼽을 들어낸 여자들이 내 앞에 설 때가 간혹 있다. 내 눈높이와 그녀의 배꼽이 정면으로 부딪친다. 거북해서 고개를 숙이거나 눈을 감기도 하지만 정작 아무런 부끄럼없이 서 있다. 한 여름 해수욕장이나 풀장에서는 어느 정도 노출이 허용되지만 이 ‘배꼽 보이기’는 한 때의 것이었으면 좋겠다. 더욱 가관인 것은 젊은 주부들도 이런 문화를 즐기고 있으니 부끄러움은 어른 아이 구분 없는 것 같다. 그녀들은 배꼽에 숨은 깊은 뜻을 모른채 그냥 드러내 보이기에만 열중이다. 배꼽을 내보임으로써 뭇남성들의 '배꼽 훔쳐보기'를 유도하는 문화 그 이상을 생각하지 못하는 것 같디. 그래서 급기야는 배꼽에도 장신구까지 달고 활보하고 있다. 장신구는 몸에다 장식용으로 다는 용구다. 이목구비와 신체가 반듯한 사람은 이것들을 몸에 달거나 걸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오히려 거추장스럽게 생각한다. 그런 것없이도 당당함과 멋진 자신을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여성들에겐 지나치게 화려한 치장과 숨겨야 할 곳을 드러내 놓는 것은 추함을 더할 뿐이다.
내 어릴 적 농촌에서는 어머니들의 젖들을 많이 봤다. 당시 어머니들은 자식이 생기면 낳는 다산시대를 살았으니 자식들에게 젖 먹일 때 편하고 위생적이도록 아예 젖을 내 놓고 살았다. 젖을 치마끈으로 동여 매였지만 저고리를 치켜 올리면 바로 젖무덤이었다. 자식들에게 젖을 먹이는 어머니로서 무덤처럼 큰 젖가슴을 부끄럼없이 드러내 보이고 다녔다. 내 어머니도 그랬다. 그런 모습은 너무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이었다. 그들은 여자가 아닌 어머니이었고, 어머니이기 전에 생명의 근원이었기에 누구도 그렇게 보지 않았다. 그래도 어머니들은 배꼽만큼은 숨겼고 오히려 남정네들이 배꼽 노출이 심했다. 한 여름 남정네들이 모시 바지에다 짧은 적삼을 받쳐 입으면 배꼽은 저절로 드러나 보였다.
지금 내 배꼽을 내려다 보면서 배꼽이 무엇인지 생각해 본다. 나라는 존재는 본래 어머니의 존재와 연결되어 있었고, 어머니의 몸 속의 산실이 탯줄과 연결된 채 내가 태어났으니 배꼽은 바로 탯줄의 출구이자 나를 세상과 이어 준 연결고리인 셈이다. 어두운 어머니의 산실 안에서 탯줄을 따라 내가 생명의 숨을 쉬었을 것이니 내 배꼽은 곧 생명 줄이자 근원임이 확실하다. 그렇다면 그녀들의 '노출 배꼽'도 여기에서 예외가 아니니 배꼽은 탯줄의 매듭을 자른 유일한 증거물이자 출생의 비밀인 것이다.
이런 배경을 가진 배꼽을 어머니들은 중히 여기어 무더운 여름 잠자리에서도 배만큼은 덮고 자야 한다고 이부자리를 덮어주시지 않았던가? 배를 덮으면 배꼽도 자연이 같이 덮이기 때문에 그리 한 것이다. 그 만큼 배와 배꼽을 잘 다스리고 중히 여겨야 한다는 뜻이리라. 이런 배꼽의 귀중함을 지금의 여성들이 잘 안다면 노출을 삼가할 일이다. 최근 불임여성이 증가하는 사회문제의 중요한 한 원인도 배꼽 노출에 있을 것이라 추정해 본다. 옛날 어른들은 '여자는 밑이 따뜻해야 한다'고 했다. 여자들의 찬 배꼽이 자궁과 연결되고 배꼽의 찬 기운이 자궁으로 건너갈 것이니 어디 찬 기운이 도는 방에 자식이 들어설 수 있겠는가? 이래저래 보더라도 '배꼽 노출'은 여성들에게는 백해무익이다.
따지고 보면 보는 남자들은 하등 손해 볼 것이 없다. 남자들은 봐서 좋고 상상할 수 있어 좋지만 배꼽을 왜 내놓고 다니냐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또 남성들의 훔쳐보기도 은근한 것이 더 매력적이지 막무가내식의 노출에는 거부감이 있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 어디를 봐도 배꼽 노출은 우매한 짓이고 여성들에게는 아무런 이익이 없는, 손해보는 장사일 뿐이다. 그러니 ‘튀어나온 배꼽을 밀어 넣는 수술’, ‘옆으로 퍼진 배꼽을 동그랗게 하는 수술’ 과 같이 돈 들여 아름다운 배꼽 만들기를 위해 더 이상 성형외과를 찾을 필요가 없다. 가장 아름다운 모습은 그냥 어머니 탯줄을 타고 나와 탯줄을 끊고 배꼽이 야물 때의 것 그대로, 또 그 귀중한 숨길 것을 남겨두고 예쁜 웃음과 아름다운 마음을 봄비처럼 사람들에게 조용히 내려 주는 것일 것이다. 그러니 외국 여성들은 물라도 우리는 생명의 줄, 생명의 근원인 배꼽을 보라고 내놓고 다니는 사람들 이제 더 이상 없었으면 좋겠다. 사라져 가는 우리 만의 자랑스런 미풍양속을 지겨나기기 위해서라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