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숙 기자
'나는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다'
이는 문화방송이 발행하는"주간 MBC" 2003년 4월 9일자 제495호 파워인터뷰/바그다드에서 돌아온 이진숙 기자와 한 인터뷰의 제목이다.
'이젠 안 놓아줄 거야!!'
이는 같은 주간 Photo News를 설명하는 제목. 그 아래에는 '일 욕심 많고 강인한 성격의 엄마를 둔 덕에 한창 재롱을 부릴 나이에 '이별의 아픔'을 겪어야 했던 이진숙 기자의 딸 지은이는, 한 달 여만에 보는 엄마를 보자마자 또 놓칠세라 목을 힘껏 껴안고 놓을 줄을 몰랐다. 4월4일 인천공항.'- 상봉한 모녀의 사진 한 장을 설명하는 내용이다.
'이진숙 기자는 3월12일 바그다드로 입국해 미국의 공습 직전인 19일에 요르단 암만으로 나와 주변 취재를 하다가 24일 아침 바그다드로 다시 입국, 31일까지 한국 기자로는 유일하게 전쟁의 포화 속에서 생생한 소식을 전했다.'고 인터뷰는 적고 있다.
"회사의 명령으로 바그다드에서 철수했지만 정말로 나오기가 싫었습니다. 국경을 넘을 때 나도 모르게 눈물이 계속 흘렀습니다....10여 년 동안 중동문제를 연구하고 아랍어를 배운 게 이번 같은 큰 사건에 대비하기 위해서인데 결정적인 순간에 현장을 떠난다는 게 기자로서 용납이 되지 않았던 거죠."
'화재는 서울에서 났는데 인천에서 화재 현장을 보도하고 있는 경우처럼 , 현장 밖에 있으면서 마치 현장에 있는 양 보도를 하고 있다는 부끄러움 때문이었다.'
이기자는 그런 와중에 재입국 비자가 나와......바그다드로 다시 입성했다.
'다시 바그다드로 들어갈 때, 물론 가족 생각을 했지요. 하지만 42세까지 살았으면 많이 살았다는 생각, 남편이 딸아이를 잘 키워줄 거라는 믿음이 잠시의 망설임을 걷어내 주었습니다.'
이기자는 이렇게 재입국의 심정을 털어놓고 '국경을 넘었을 때의 느낌은 행복하다는 것이었습니다.'말하고 그 이유는 "'내가 비로소 있어야 할 곳에 있다는 그런 느낌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91년 걸프전 특종기자에 이어 '전쟁 속 바그다드 내 유일한 한국기자'라는 타이틀을 갖게 된 이진숙 기자.
이러한 화제에 대해 '나는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는데 다른 사람들이 코멘트를 달리 한 것이다' 라는 말을 인용해 겸손한 답을 하고 있다.
'저 사람은 괜찮은 기자였다. 아니 괜찮은 기자가 되려고 노력했다'는 '평가를 받을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 족합니다'-이것이 이기자가 답한 삶의 목표.
우리 나라 어느 곳에서나 이기자와 같은 직업인을 그리는 가뭄이 계속되는 계절이기에 이기자가 더 돋보이는지 모른다. (2003. 5. 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