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중계 음식을 알면 경영이 보인다④ 서양인에게 '쌈 먹기'권하면 좋아
외국인 호기심 불러일으키는 음식 연구해야… 비빔밥·갈비·신선로 등 좋아해
오래전에 들은 얘기다. 1970년대 어느 날 한국과 일본의 문인들이 대한해협에서 선상 교류회를 열었다. 딱딱한 주제토론이 끝나고 술을 한잔 곁들인 여흥이 무르익을 무렵 난데없는 고성이 분위기를 깨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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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평론 4차 학습은 김포공항 근처 메이필드 호텔 궁중음식당 봉래정에서 진행됐다. | “낭비만 일삼는 조센진들. 다 먹지도 못할 걸 이렇게 한 상 가득 차려 놓다니! 역시 조센진들은 후진적이야.”
일본 측 문인 한 명이 술에 취해 소리를 질렀다. 순간 좌중이 조용해졌다. 누구도 함부로 어쩌지 못하는 ‘뜨거운 감자’의 출현. 무거운 침묵이 흐르고 있을 때 우리 측 문인 하나가 담담하게 나섰다.
한식집 단골 외국인들
“허. 그 모르는 소리! 우리의 한 상 차림 미학도 모르면서 함부로 이야기하지 마시오. 우리 민족은 자존심이 세 함부로 남의 도움을 받지 않소. 이웃에 도움을 줘도 안 그런 척하고 주는 게 우리 정서란 말이오.”
그의 말의 요지는 대강 이랬다. 어느 집 잔치가 있는 날이면 온 동네 사람이 모여 일하고 한 상 가득 음식을 차리지만 잔칫집 주인은 손만 대고 상을 물린다. 바로 그 상에 마을 사람들이 둘러앉아 먹고, 남은 것은 집으로 가져간다. 재산이 좀 있는 잔칫집 주인이 잔치를 통해 자연스럽게 구휼하는 문화라는 얘기였다. 그의 이야기에 모두 고개를 끄덕였고, 하마터면 감정싸움으로 번질 뻔했던 상황은 절묘하게 수습됐다. 우리 식문화를 제대로 알고 있었던 덕분이었다.
실제로 같은 문화권으로 여겨지는 중국이나 일본은 우리와 달리 순차적으로 식사가 제공되는 코스요리지만 한국은 그렇지 않다. 우리만의 독특한 문화다. 궁중에서도 임금이 식사를 끝내면 그 상을 물려받아 상궁들이 새로 지은 밥으로 식사했고, 다음에는 나인들이 둘러앉았다. 나라에 경사가 있어 임금이 받았던 어상의 음식들은 의례가 끝나면 종친이나 신하의 집으로 보내지는 게 상례였다. 이런 까닭에 음식을 수북하게 가득 담았다.
한국음식을 대하는 외국인이 보이는 가장 흔한 반응도 “왜 한국음식은 한 상 가득 차리는가”다. 외국의 식탁이 순서대로 나오는 시간배열임에 반해 우리는 한 상에 ‘상다리가 휘어지도록 떡 벌이는’ 공간배열이기 때문이다. 동물성 기름보다 식물성 기름을 많이 사용해 조리하기 때문에 음식이 식어도 맛의 변화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또 같은 문화권으로 평가받고 있지만 중국인은 숟가락 또는 젓가락, 일본인은 젓가락만 쓰는 데 비해 우리는 둘 다 함께 쓴다. 하지만 숟가락의 사용은 중국과 다르다. 중국인은 탕을 먹을 때만 숟가락을 사용하고, 요리나 밥을 먹을 때는 젓가락을 쓴다. 또 밥이나 탕류는 손으로 든 후 입에 대고 먹어야 하며 다 먹은 후에는 반드시 숟가락을 엎어놔야 한다. 한국인은 그릇을 손에 들고 먹는 것을 실례로 친다.
한국음식에 관한 ‘음식평론 CEO 과정’ 4차 학습은 10월 20일 서울 김포공항 근처의 메이필드 호텔 궁중음식당 봉래정에서 열렸다. 2년에 걸쳐 지은 곳답게 궁중 분위기가 진하게 배어 있는 이곳의 이금희 조리장은 “외국인, 특히 일본인은 궁중음식을 좋아해 음식을 남기는 일이 거의 없다”면서 “80% 이상이 비즈니스 고객인데 한국인과 외국인의 비율이 50 대 50 정도가 될 정도로 최근 외국인이 크게 늘었다”고 설명했다. 이 조리장은 “(돌솥)비빔밥이나 닭요리·해물탕이 인기가 있다”고 덧붙였다.
진행을 맡고 있는 송희라 세계미식문화연구원장은 “전통 한식에 들어가는 양념향을 약간 죽이는 등 한식을 코스요리화하면서 (외국인의) 인식이 달라지고 있는 것 같다”며 “특히 서양인은 건강식단을 높이 산다”고 반응을 전했다. 야채나 나물 종류가 많은 데다 고기도 담백하게 만든 구이나 찜 등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외국인은 한식을 어떻게 평가하고 반응할까? 다국적기업인 다니스코코리아 조원장 사장은 “갈비를 제일 좋아하는 것 같다”며 “상추에 쌈장과 구운 마늘을 얹어 양념갈비를 먹으며 감탄사를 연발하는 외국인을 꽤 많이 봤다”고 말했다. 그는 “한정식은 맛도 있고 다양한 음식이 나오기는 하지만 깔끔한 분위기를 내는 곳이 없어 자주 가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가끔 일본인을 일식집에 안내하는 이들이 있는데 경험상 일본인은 한국에 와서까지 일식집에 가려고 하지는 않아요. 마찬가지로 서양인도 양식당에 가는 걸 탐탁지 않아 합니다. 사전 설명만 잘하면 처음 오는 외국인에게도 우리 음식을 접해 보게 하는 것도 좋은 것 같습니다.”
건축설계 회사인 야마사키어소시에이츠 홍태선 대표도 한식에 대한 외국인의 평가가 후하고 말했다. 홍 대표는 “언젠가 외국회사 파트너를 한식집으로 모시고 갔는데 ‘이렇게 미적인 음식은 처음 봤다’면서 놀라워하더라”며 “얼큰하고 다양한 김치문화와 젓갈문화를 ‘지적인 세련됨(Sophisti-cation)’이라며 감탄하는 모습도 봤다”고 말했다.
테이블 문화와 방석문화의 차이
맛뿐 아니라 먹는 방식에 대한 문화도 잘만 유도하면 외국인에게 신선한 호기심을 이끌어내는 것으로 보인다. 주얼리를 전문으로 하는 신정안 아틀리에 디안 대표는 “서양음식과 한국음식의 차이점은 테이블 문화와 방석 문화의 차이”라며 “어렵고 서먹한 관계일수록 세팅된 테이블에 앉아 스테이크를 써는 것보다 방석에 앉아 불판 고기를 굽다 보면 친밀감을 느낀다는 사업가들이 많다”고 말했다. 특히 식문화가 완전히 다르고 웬만해서는 신발을 벗지 않는 서양인에게는 방석과 양반다리가 불편하긴 하지만 그들과 함께 고기를 뒤집고 쌈을 싸먹는 과정에서 서툰 젓가락질을 하다 보면 어색한 분위기가 누그러지면서 얘기가 한결 부드러워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주의할 점도 있다. 송 원장은 “세계적으로 프랑스 요리는 격식과 세련됨이 있는 정찬으로, 일식은 고급음식으로 인식되고 있다”면서 “미국인이 선호하는 음식이 유럽인에게도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고 지적했다. 일례로 얼마 전 미국 대사 부인이 한국을 떠나면서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삼계탕”이라고 해 크게 보도됐는데 “유럽 상류층은 삼계탕을 보고 기겁한다”는 것이다. 말 그대로 “물에 닭 한 마리를 그대로 넣은 요리는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유럽 상류층은 생선에 가시 하나만 있어도 큰 실례로 여긴다. 송 원장은 “외국인에게 잘 받아들여지는 한국의 대표요리는 불고기·갈비와 파전 같은 전류”라고 말했다.
“궁중음식은 재료 하나하나를 체계적으로 요리해 깊고 담백한 맛을 내는 음식으로 웰빙과 더불어 주목받고 있는 대표적인 슬로푸드(Slow Food)입니다. 기다림을 배우면서 진정한 맛을 느끼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음식이죠.”
5000년의 지혜와 다채로운 멋과 맛을 가미해 서양인을 놀라게 하는 궁중음식은 드라마 ‘대장금’이 보여주듯 우리 문화의 정수라 할 만하다. ‘백문(百聞)이 불여일식(不如一食)’일 터.
조선시대엔… 계급에 따라 ‘밥’ 이름도 달랐다
계급사회였던 조선시대에는 신분에 따라 밥에 대한 명칭이 달랐다. 하층민의 밥은 ‘끼니’, 평민은 ‘밥’, 양반은 ‘진지’, 왕은 ‘수라’라 했다. 당연히 먹는 동작에 대한 표현도 달랐다. 끼니는 ‘때운다’, 밥은 ‘먹는다’, 진지는 ‘드신다’, 수라는 ‘젓수신다’고 했다.
계급에 따라 반찬도 달랐다. 반찬은 ‘첩’으로 표현했는데 ‘첩’이란 뚜껑 있는 반찬 그릇을 일컫는다. 밥·국·김치·장·찌개를 제외한 반찬의 가짓수를 말하는데 3첩은 반찬이 세 그릇 오른 상으로 평민의 상차림이었고, 5첩은 여유 있는 평민의 상에, 7, 9첩은 양반의 상에, 12찬은 수라상에 올랐다. 수라를 받은 왕은 서양의 냅킨과 같은 고운 무명으로 된 수건인 휘건을 가슴에 걸쳤다. 요즘엔 손님을 접대하려면 저녁 식사에 초대하는데 조선시대에는 조반(아침 식사)에 했다. 세 끼 중 아침 밥상에 가장 정성을 기울였고 반찬이 많았기 때문이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