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지훈문학상 수상자의 말
인연, 인드라망
일어섰다 눕다를 되풀이하는 두어 달 시름시름한 병중에서 지훈문학상 수상 통보를 받았습니다. 이 땅의 시인으로 존경하는 분의 이름으로 주는 문학상을 받는 것은 더할 수 없는 영광이었으나 그 영광이 저에게는 앞으로 지훈문학상의 이름값을 못하는 시인이 되면 어쩌나 싶은 정신적 부담이 컸던 것도 사실이었습니다. 최근 쉽게 회복되지 않는 병 하나와 친구하며 지내며 저는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많이 지쳐 있었습니다.
지난해 여름을 세계 최빈국가의 하나인 동티모르공화국에서 보냈습니다. 해발 1천5백 미터가 넘는 동티모르 고산지대에서 커피농사를 짓는 그곳 사람들과 여름을 보내며 그들의 커피수확도 돕고 한 NGO의 공정무역(fair trade)을 취재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히말라야를 비롯하여 세계의 오지를 많이 다녔지만 적도를 넘어가는 열대지역은 처음이었습니다. 동티모르를 떠나 귀국하기 전날 우리가 학질이라고 부르는 ‘말라리아’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38~40도를 오르내리는 고열에 시달리며 인도네시아를 거쳐 한국으로 돌아오는 오랜 비행시간 동안 저는 또 한 번의 죽음의 경계를 아주 가깝게 경험했습니다.
귀국하여 말라리아는 치료되었으나 그러나 고열이 남긴 길고 긴 후유증과 싸워야 했습니다. 그 사이 응급실에 여러 번 실려 가기도 하고 몇 번의 입원과 퇴원을 되풀이했지만 한번 고갈된 물통의 물이 다시 채워지지는 않았습니다.
제 치료를 맡은 의사는 말라리아 후유증과 싸우는 데 3년 정도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진단했습니다. 그러는 사이 저는 전 세계적으로 1년에 2백만 명이 말라리아로 죽어 간다는 사실도 알았으며 말라리아가 우리나라에서도 발병하고 있으며, 불운했다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던 위험한 병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돌아보면 마흔 이후 저는 여러 번 죽을 고비를 넘겼습니다. 2번의 뇌수술과 히말라야 고산등반으로 인한 고산병 등으로 쓰러질 때마다 시가 있어 다시 일어설 수 있었습니다. 시가 있었기에 제 삶에서 가장 혹독한 시기로 기록될 불혹에서 지천명까지의 힘든 10년을 이를 악물고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습니다. 등단 25년을 맞이해 나름대로 뜻깊은 10번째의 시집을 펴내고도 출판사에서 보내온 새 시집들을 펼쳐 보지도 못한 채 육신의 고통 속에서 불완전한 미래에서 오는 공포와 싸워야 했습니다. 시를 쓸 수도 읽을 수도 없는 속수무책의 시간들 속에서 삶이 난파선 같았습니다.
그 시간 속에서 수상통보를 받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더욱 두려웠던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이건 시가 다시 저에게 내미는 운명의 손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가 다시 한 번 저의 등짝을 짝― 소리 나게 치며 다시 일어서라는 뜨거운 경고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지훈 선생님을 뵌 적이 없습니다. 1968년 지훈 선생님이 이승을 떠나셨을 때 저는 장래 희망이 시인인 10살짜리 어린 초등학생이었습니다.
중학교 국어시간에 청록파를 배우며 지훈 선생님의 시를 읽게 되었고 제가 중학교 국어교사였을 때 역시 중학생들에게 청록파를 가르치며 지훈 선생님의 시를 읽게 하였습니다. 그것이 지훈 선생님과의 인연이라면 인연의 전부인데 그 이슬방울보다 작은 인연의 힘이 저에게 다시 용기와 힘을 가지게 하였습니다.
불가에 연기법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인드라망’이란 말이 있습니다. ‘인드라’(Indra)는 인도의 수많은 신 가운데 하나로 제석천(帝釋天)이라고도 합니다. 제석천의 궁전에는 무수한 구슬로 만들어진 그물, 즉 인드라망이 있는데 그 그물은 한없이 넓고, 그물의 이음새마다 있는 구슬은 서로를 비추고 또 비추어 주는 관계로 이루어져 있다고 합니다.
불가에서 그 구슬들은 서로를 비출 뿐만 아니라 그물로서 서로 연결되어 있고, 그것이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인간세상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스스로, 혼자 살아가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서로가 연결되어 있으며 서로 비추고 비치는 밀접한 관계 속에 있다는 것이 인드라망입니다.
이 세상 모든 법이 하나하나 별개의 구슬같이 아름다운 소질을 갖고 있으면서 그 개체성을 유지하고 있지만, 결코 그 하나는 다른 것들과 떨어져 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가르침인 것입니다. 오늘 저는 지훈 선생님의 맑고 향기로운 정신의 구슬에 제 얼굴을 비추며 지훈 선생님에서부터 저에게까지 이어지는 시의 인드라망에 한없이 감사하는 것입니다.
기다린다는 것에 대하여
저는 1992년부터 울산에서 살고 있습니다. 푸른 동해를 가진 울산은 예로부터 ‘고래바다’[鯨海]였습니다. 선사시대 바위그림인 국보 285호인 ‘반구대 암각화’에 58마리의 고래그림이 새겨져 있고, 고래가 회유하는 바다는 천연기념물 126호인 ‘울산귀신고래회유해면’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고래와 저와의 만남은 운명적이었습니다. 제가 울산의 시인으로 살면서부터 제 이름 뒤에는 ‘고래보호운동가’라는 이름이 하나 더 생겼습니다. 어느 시인은 저에게 ‘고래 파수꾼’이라고도 불러 주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러한 생명운동가가 아니라 고래를 기다리는 시인이었음을 고백합니다.
고래를 사랑하였기에 자주 바다로 나가 고래를 관찰하는 일이 많았습니다. 망망대해 바다에서 고래를 만나기도 했고 만나지 못하고 돌아오기도 했습니다. 10년이 넘게 고래를 관찰하면서 누군가를, 혹은 무엇인가를 기다리는 동안은 참으로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다리는 대상이 사랑하는 것일 때 더없이 행복하였습니다. 그것이 낡은 유행가 가사처럼 ‘커피 한 잔을 시켜 놓고’ 하염없이 기다리는 일일지라도 ‘기다리는 그 순간만은 꿈결처럼 감미로운’ 일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사람 사는 일이 기다리는 일의 연속일지 모릅니다. 어린 시절에는 설빔을 입는 설날을 기다렸고, 첫사랑을 하면서 그 사람만을 기다렸고, 군사독재시절 청춘의 어둠이 춥고 길수록 자유의 새벽을 기다렸습니다.
사무엘 베케트의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의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처럼 고도를 기다리며 살아가는 것이 현대인의 삶이지만 언제부터인가 우리들에겐 약속만이 있을 뿐 기다리는 것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약속과 기다리는 것은 분명 다릅니다. 약속은 지켜야 하는 차가운 금속성이지만 기다린다는 것은 언제나 사람의 심장을 뛰게 하는 뜨거운 동물성입니다.
소풍, 생일, 방학, 서울 가신 아버지, 친구의 답장, 첫사랑, 첫 키스, 등단, 첫 시집…, 제가 온몸으로 기다렸던 그 많은 것들은 도대체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요?
기다리는 것이 그리울 때 저는 울산바다로 고래를 만나러 갔습니다. 아닙니다. 고래는 만나러 가는 것이 아니기에 고래를 기다리기 위해 바다로 나갔습니다. 우리 모두가 돌아오기를 간절히 기다리는 귀신고래는 돌아오지 않은 지 40년이 넘었지만 그래도 밍크고래와 돌고래 무리와 상괭이 같은 것은 기다리고 기다리다 보면 ‘고도’처럼 불쑥, 불쑥불쑥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고래를 기다리는 일은 아프고 고된 기다림이었습니다. 고래가 지구상에 존재하는 가장 큰 동물이지만 망망대해 위에서는 하나의 점에 불과한 것이었습니다. 그 점을 기다리는 일은 어쩌면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오지 않는 것을 기다리는 일인지도 모릅니다.
수백 장의 종이 위에 연필로 선을 긋듯 바다 위를 오가며 고래를 기다리는 일, 그건 저를 떠나간 첫사랑의 여자를 기다리는 일과 같았습니다. 그 여자네 집으로 가는 막다른 골목길 외등 아래에 서서 혹시 저를 찾아오는 발자국 소리를 기다리는 일과 같았습니다.
다시는 돌아보지 않겠다고, 다시는 기다리지 않겠다고 약속을 하고 다짐을 하지만 또 다시 무엇인가를 기다리고 있는 저를 보는 일이 고래를 기다리는 일이었습니다. 어느새 고래를 기다리는 일이 저의 시가 되었지만 그 기다림이 저는 푸른 바다 위로 부는 맑은 해풍처럼 좋았습니다.
저는 시를 쓰는 일도 기다리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시가 기다림이 아니라면 수많은 시인들이 어떻게 평생을 시를 쓰는 시인으로 살다갔겠습니까? 또한 그보다 더 많은 시인들이 지금 이 시간에도 21세기로부터 용도폐기 중인 시를 쓰며 살아가겠습니까?
저는 다시 기다릴 것입니다. 앞으로 10년, 20년…, 기다리다 제 생이 모래 한 줌으로 사라진다 해도 기다리는 고통 속의 즐거움을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감히 약속드립니다.
부족한 저를 수상자로 선정해 주신 존경하는 심사위원 분들과 지훈상 운영위원회, 나남출판에 감사를 드립니다. 저는 이번 수상으로 서울이 아닌 지역에서 지훈문학상을 받는 첫 시인인 된 것에 자부심을 가집니다. 언제나 시에 대해서 최선을 다하며 살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지훈문학상 심사보고
이번에 지훈문학상 수상 후보로 최종 거론된 시인들은 모두 20년 시력(詩歷)을 채운 우리 시단의 중견들이었고, 작품적 완결성과 미적 좌표의 품격으로 보아도 그 어느 해보다 미더운 성취를 보여 주었다고 할 수 있다. 다양하고 깊이 있는 미적 성취와 가능성으로 이분들의 시집은 한결같이 지훈문학상의 제고된 위상을 보여 주기에 족한 것이었다. 후보들은 김경미의 《고통을 달래는 순서》, 이진명의 《세워진 사람》, 정끝별의 《와락》, 정일근의 《기다린다는 것에 대하여》였는데 이 가운데 심사위원들은 정일근 시편의 문학성과 한결같은 지속성을 높이 평가하여 제9회 지훈문학상 수상작으로 그의 시집 《기다린다는 것에 대하여》를 선정하였다. 김경미 시편이 보여 주는 부재와 사랑의 견고한 결속, 이진명 시편의 투명하고도 아름다운 ‘원음’(原音), 정끝별 시편의 자유롭고 탄력 있는 꿈과 사랑의 목소리가 오래도록 뇌리에 남았으나, 심사위원들은 오랜 토론 끝에 정일근 시편이 보여 주는 오랜 지속과 심화의 세계를 최종 선택하게 되었다. 더불어 심사위원들은 안도현 시인이 말한 “죽음 직전의, 아픔의 우물 밑바닥까지 내려갔다가 올라와서” 써낸 깊은 세계에 의미 있는 격려가 얹혀야 한다고 의견을 보탰다.
정일근 시인은 그의 열 번째 시집이 되는 《기다린다는 것에 대하여》까지 지속적이고 균질적인 시 창작을 해 왔다. 이는 등단 25년을 맞은 이 중견 시인의 지속적 심화 과정을 선명하게 보여 주기에 족하다고 할 수 있다.
시편 가득 넘쳐나는 ‘바다’와 ‘고래’ 이미지를 통해, 시인은 자신이 가 닿고자 하는 상상의 세계, 곧 깊은 ‘상처’를 넘어서는 ‘그리움’과 ‘사랑’의 풍경을 아름답게 그려내고 있다. 또한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단시(短詩) 미학에도 남다른 공을 들였고, 삶의 여러 존재론에 대해서도 깊고 다양한 투시의 흔적을 남기고 있다.
“한 발자국 물러난 캄캄한 어둠 속에 서서/너를 기다렸던 일/그때 나는 얼마나 너를 열망했던가/온몸이 귀가 되어 너의 구둣발 소리 기다렸듯/팽팽한 수평선 걸어 내게로 돌아올/그 소리 다시 기다리는 일인지 모른다”(〈기다린다는 것에 대하여〉)면서, ‘열망’과 ‘기다림’의 자세가 삶의 그것과 다르지 않음을 보여 준 그의 시세계가, 아름다운 마을 ‘은현리’(銀現里)에서 더욱 심원하게 완성되어 가길 기대해 본다.
이제 정일근 시편은 그동안 지훈문학상이 배출한 수상자들의 성취에 더해져, 이 상의 위상을 더욱 높여 줄 것이라 생각한다. 거듭 축하의 말씀을 드린다.
새삼 지훈 선생님의 높은 시세계와 정결하고도 오롯한 문학 정신을 되새기면서, 다시 한 번 지훈문학상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해 마지않는다.
제9회 지훈문학상 심사위원회
심사위원장 최동호
심사위원 유종호·유성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