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우공양
사람은 먹는 것을 통해 자연과 교감합니다. 무엇을 먹느냐에 따라 체질과 정서와 성격이 달라집니다.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사느냐 하는 문제도 먹는 것과 관련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먹는 것은 그만큼 중요합니다.
'발우공양'은 공동체 성원이 함께 모여 음식을 평등하게 나누어 먹고, 적당한 양만큼 덜어 먹어 남기지 않으며, 다 먹은 그릇은 스스로 닦아 먹음으로써 음식을 전혀 낭비하지 않고 청결함을 유지하는 절집안의 전통 식사법입니다.
'발우'는 절에서 스님들이 쓰는 밥그릇인데, '발'(鉢)은 '발다라(범어: 파트라Patra의 음역)'에서 따온 글자로 '적당한 양'이란 뜻이며, '우'(盂)는 밥그릇을 뜻하는 한자입니다. 따라서 '적당한 양을 담는 그릇'이라는 뜻으로 '응량기'(應量器) 또는 '응기'(應器)라고 번역하기도 합니다.
발우는 큰 것부터 차례로 밥을 담는 어시발우, 국을 담는 국발우, 청수를 담는 청수발우, 반찬을 담는 찬발우 이렇게 네 개의 그릇이 포개져서 한 벌을 이루는데 이것을 보자기에 싸고 여기에 수저집과 발우 수건을 덮어 선반 위에 올려 놓습니다.
'공양'이라는 말은 '식사' 또는 '밥 먹는 것'이며, 여기서의 '양'(養)은 영양분이라는 뜻입니다. 적당한 양의 영양분이란 건강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영양분으로, 사람에 따라 다르나 수행자에게 적당한 양은 수행하는 데 장애가 되지 않을 정도의 최소한의 음식을 뜻합니다. 참선을 할 때 밥을 많이 먹으면 숨이 가쁘고 졸려서 오히려 방해가 됩니다. 현대인들은 너무 많이 먹어서 몸이 병들고 잡념도 많아지며, 살생, 도둑질, 사음, 거짓말 등 하지 말아야 할 일도 하게 됩니다. 수행은 물론 건강을 위해서도 적게 먹는 것이 좋습니다. 또 밥을 적게 먹는다 해도 군것질을 한다면 별 의미가 없습니다. 그래서 수행하는 사람은 때 아닌 때 먹지 말아야 합니다. 먹는 것만 잘 먹고 숨만 잘 쉬게 되면 수행은 절반이나 한 것과 다름없습니다.
발우공양법은 부처님께서 걸식하실 때 했던 음식 얻는 법, 그 음식을 먹는 법과 자세, 정신 등을 정리해 놓은 것입니다. 왕의 지위도 버리고 가족도 버리고 모든 재물도 버린 부처님이 밥 한 숟가락을 얻어야 했던 이유는 수행을 하는데 이 몸을 유지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얻는 마음이 아무런 미련이 없었고, 음식을 얻을 때 서 있는 자세는 음식에 아무런 집착이 없었습니다.
수행자가 탁발할 때 무심히 서 있는 자세가 바로 부처님이 법을 생각하고 깨달음을 생각한 자세입니다. 이때 염불을 했는데 이게 형식화되어, 염불을 하면 뭐 달라는 소리로 알아듣습니다. 그러나 듣는 사람이야 어떻게 듣든 염불하는 사람은 오직 무심하게 부처님만 생각해야 되고 주는 것을 고맙게 받아야 됩니다. 음식을 받아서 돌아왔을 때 자기가 얻어 왔으니 자기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이 음식은 본래 내 것이 아니었지요. 그분들에게 내가 얻은 음식을 도반들과 둘러앉아 서로 나누어 먹습니다. 내가 많이 얻었으면 다른 사람에게 주고 내가 얻은 온 양이 적으면 다른 사람으로부터 얻기도 합니다. 그래서 발우공양은 평등공양입니다. 또한 2600여 년 전에 이미 자기 그릇을 따로 가지고 덜어 먹는 청결공양을 했기 때문에 전염병 환자와 같이 있어도 전염될 이유가 없었습니다.
밥을 먹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밥 먹는 것도 수행이기 때문에 정장을 하고 먹습니다. 부처님 당시에도 탁발 나갈 때와 밥 먹을 때 가사를 입었다고 나옵니다. 그래서 발우공양을 '법공양'(法供養)이라고도 합니다. 밥 먹는 시간 동안은 부처님께 예배할 때와 꼭 같은 마음가짐으로 부처님의 근본 가르침에 대해서 다시 되새기고 있기 때문에 절에서는 이 발우공양만 잘하고 아침저녁 예불만 잘 해도 수행이 저절로 된다고 말합니다.
인도에서는 걸식이 수행자에게는 자랑이고 자부심이었는데, 불교가 중국에 들어오면서 얻어 먹는 것을 아주 나쁘게 여겼던 중국 문화에 적응하는 문제와 걸식하기 힘든 기후의 영향으로 바로 절에서 밥을 해먹게 되었습니다. 절에서 밥을 해먹게 되면 걸식의 의미가 없어져 자칫 출가정신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그래서 절에서 밥을 해먹더라도 걸식하는 것과 똑같은 태도로 밥을 다시 나눔으로써 생긴 형식이 지금의 발우공양법입니다.
(소심경(小心經)은 발우공양을 할 때 외우는 경전으로, 경전에는 모든 중생의 노고와 은혜에 감사하고 하루의 삶과 수행에 대해 반성하고 발원하는 마음을 점검하며, 모든 중생과 함께 평등하게 나누어 먹겠다는 자비의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어떤 마음가짐으로 음식을 받고, 어떤 마음가짐으로 음식을 먹어며, 이 음식을 먹고 나서 어떤 일을 하겠다고 원(願)을 세워야 하는지를 다시 되새기고 다짐하는 내용입니다.
2011.9 정토 월간지 발취 법륜 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