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봄맞이 섬 산행 통영 욕지도
지난 2월 28일 ~ 3월 1일 봄빛 따사로운 남쪽바다 섬마을로 무박산행을 다녀왔다. ‘동양의 나폴리’로 불리는 국내의 대표적인 항구도시 통영에서도 카페리 뱃길로 1시간 20분을 가야하는 섬 욕지도(欲知島). 부처의 깨달음을 알고자 한다는 뜻의 섬 이름을 알고 보면 좋은 이름이다. 크고 작은 서른아홉 개의 보석 같은 섬들이 모여 있고 우리나라 3,510개의 섬 중에서 마흔 네 번째 크기라고 한다.
일반 여행객은 물론 산악인들 사이에 아직은 잘 알려지지 않은 그곳으로 2월의 마지막 날 밤 10시 20분 태릉역에서 서울을 출발했다. 얼마 만에 떠나보는 무박산행인지 감회가 새롭다. 비교적 예민한 탓에 버스 안에서 잠을 잘 못자는 터라 그동안 선뜻 내키지 않았었다. 이번에도 잠을 자려고 애쓸수록 잠은 오지 않는다.
밤길을 달려온 관광버스가 두 번째로 산청휴게소에서 쉬었다.(02:50) 이제는 잠자기를 포기하고 밖으로 나왔다. 찬 공기에 잠시 몸을 떨었지만 까만 하늘 아래 검은 빛의 산이 보이고 그 위로 밝은 달이 두둥실 떠 있는 모습이 너무 아름답다. 수없이 많은 작은 별들도 꿈꾸듯 반짝이고 있었다. 드디어 서울에서 멀리 떠나왔다는 사실이 실감되었다.
다시 버스에 올라 출발, 얼마를 달렸을까 잠깐 눈을 붙인 것 같기도 한데 통영IC를 통과하고 있었다.(03:50) 그리고 15분 후 통영여객터미널 주차장에 도착했다. 거기에서 1시간 동안 잠 잘 시간을 주었는데 실내가 너무 덥고 공기가 좋지 않아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그런데도 코를 골며 자는 사람이 부럽기만 하다.
밖으로 나오니 항구의 싸~한 새벽공기가 코끝에 스민다. 신선하다. 검푸른 바다위에 정박해 있는 배들이 불빛 속에서 졸고 있다. 아직은 고요하다. 터미널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승객 몇몇이 이른 시각부터 출항시간을 기다리고 있다. 욕지도행은 06: 50 이다. 화장실에서 세수하고 나오니 벌써 아침 식사를 하고 있었다.(05:30~06:00) 주차장 한편에서 끓인 김치찌개에 밥을 말아 먹었는데 무박산행 시 느낄 수 있는 맛이다.
일찌감치 뱃속을 든든히 채우고 여유롭게 기다리다 카페리에 승선했다. 새벽하늘이 신비롭다. 2층 객실로 올라가니 반은 좌석이고 나머지는 전기 온돌바닥이다. 나는 바닥 한쪽에 자리를 잡고 누웠다. 따뜻했다. 그러나 여기서도 잠은 오지 않는다. 날은 완전히 밝아 구름 한 점 없이 맑다. 서서히 배가 출발했다. 그런데 오늘은 어찌된 영문인지 일출 볼 생각을 못하고 그냥 누워만 있었다. 몸이 좀 피곤해서 잠을 자보려고 그랬던 것이다. 얼마쯤 있다 벌떡 일어나 보니 이런~ 어느새 해가 솟아 눈이 부실정도 아닌가. 선상일출을 눈앞에 두고도 못 보다니... 갑자기 안내방송이 나온다. 연화도 손님은 내릴 준비를 하라는 것. 창밖을 보니 낯선 섬이 길게 누워있다.
다시 출발한 배는 08:10 욕지도 선착장에 도착했다. 하선하여 난생처음 욕지도에 발을 디뎠다. 통영에서와는 또 다른 기분이다. 오염되지 않은 깨끗한 바닷물과 상큼한 공기, 봄 하늘 그 아래 아기자기한 섬마을이 기다리고 있었다. 대기 중인 마을버스에 올라 약 3km의 해안도로를 달리며 어촌마을 풍광에 빠져들었다. 내가 그토록 보고파 했던 동백꽃을 드디어 볼 수 있었다. 그리고 푸릇푸릇 물이 오른 물오리나무도.
포장도로가 끝나는 지점에서 하차(08:25)하니 오른 편에 ‘망대봉-천황산등산로 안내판’이 있었다. 등산기점인 야포에서 망대봉까지 1.5km, 노적까지 2.1km, 혼곡까지 4.5km로 표기 되어 있다. 그 앞에 모여 단체사진을 찍고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했다. 산을 오르기 전부터 봄 내음이 솔 솔 풍겨와 둘러보니 길목 여기저기에 돋아난 쑥과 새싹들이 움트고 있었다. 아직은 이르지만 두릅나무도 제법 눈에 띄었다. 처음부터 오르막이긴 해도 그리 가파르지 않아 힘들지는 않았다. 야포에서 0.7km지점인 일출봉(해발 190m)에 올라(08: 50) 뒤를 보니 우리가 내린 욕지항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여기서부터는 능선길로 수월하게 산행을 할 수 있는데 사방이 탁트인 바다위에 점점이 떠있는 섬들과 파도가 부서지는 해안 절경이 일품이다. 가볍게 산책하는 기분으로 걸어 망대봉(205m)에 도착(09:15)하니 정자가 있어 잠시 휴식을 취해본다. 주변에는 쑥이 지천이다. 서쪽 항구와 달리 동쪽 바다는 역광을 받아 환상적인 빛깔로 반짝이고 있었다.
다시 편안한 길을 따라 옥동정상(155m)으로 오는 길에 잎이 7개인 아주까리 비슷한 식물과 숫 동백 군락지를 보면서 오다 보니 임도와 연결되는 노적휴양마을입구에 당도했다. 해수욕장을 끼고 있는 마을인데 안내판에 민박집전화번호(055-642-6506, HP: 011-889-6506) 와 요금(1인1박에 10,000원)이 적혀 있다. 그런데 나를 흥분하게 만든 것은 해수욕장이 아니라 비스듬한 언덕위에 녹색 카펫을 깔은 듯한 청보리밭이었다. 정말 생각지도 못한 큰 선물이다. 제법 자란 보릿대를 꺾어 피리도 불어보고 내가 그토록 동경해오던 청산도의 분위기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역시 봄은 보리밭을 타고 왔다. 보리밭 아래 옹기종기 모여 있는 어촌마을, 그리고 그 앞 바다 한 가운데 떠 있는 섬 하나... 그림같이 아름답고 평화로운 풍경이다. 정말 며칠, 아니 단 하루 만이라도 이런 곳에서 살고 싶다.
일행들이 떠날 때 까지 나 혼자 남아 아쉬움을 떨쳐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기약할 수 없는 훗날을 위하여 발길을 돌려야 했다. 그런데 선두구릅이 보이질 않아 후미에 함께 있던 엄대장이 무전기로 연락, 노적입구에서 곧장 항구 쪽으로 내려왔는데 나중에 보니 그들은 옥동정상을 거쳐 해안도로를 따라 걷고 있었다. 그렇지만 우리는 마을 안길도로를 걸어 내려오면서 섬마을 깊은 곳을 두루 살펴볼 수 있었다. 넓은 밭 가득히 피어난 자주 꽃(처음에는 자운영으로 착각)을 보고 봄 기분 물씬 돋는 섬초(시금치), 장다리 등과 수줍게 피어난 동백꽃을 볼 수 있어 더 좋았다.
그리고 마을에서 윗길로 올라가 개미목에서 선두구릅과 합류한 다음 두 번째로 이어지는 산행코스인 천황산 등산로 입구에 다가섰다. 그런데 좌측으로 보이는 바다와 해안의 모습이 절경이다. 깎아지른 듯한 바위가 병풍을 두른 듯 절묘하고 바다 한 가운데 작은 섬과 등대 하나가 떠있다. 바닷물은 푸르다 못해 시리다. 욕지도의 진수를 보는 것 같다.
이러한 경치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자리에 정자가 세워져 있어 우리 일행은 함께 간식을 먹었다. 누군가 복분자술에 부침개를 가져와 두 잔을 거푸 마시니 기분 좋게 취기가 감돈다. 이 순간만큼은 세상 부러울 게 없다. 혼곡에서 얼마쯤 떨어진 곳 외딴집 앞에는 흑염소 십수마리가 떼 지어 놀고 있었다. 예전에는 이 섬에 사슴이 많아 녹도(廘島)라고 불리어 졌다고 하며 지금도 등산길에 사슴을 만날 수 있다고 하는데 오늘은 그런 행운을 얻지 못했다.
일주도로와 만나는 지점에 천황산 등산로 안내도가 세워져 있다.(10:25) 여기서부터는 좁은 산길이 이어진다. 좀 더 올라가니 김해김씨 묘가 2기 보이고 계속 오르니 혼곡 1.1Km, 대기봉 0.8km의 이정표가 나타난다.(11:00) 거기에서 17분을 더 가면 대기봉(355m)이다. 혼곡 1.9km, 새천년기념탑 1.5km, 태고암 0.9km의 이정표가 있다. 대기봉에서 새천년기념탑 방향으로 8분을 더 가니 마당바위(349m)가 나타나고 선두구릅 몇몇이서 또 술과 간식을 먹고 있어 합류, 소주 탄 복분자에 돼지껍데기를 먹고 주변 풍광에 잠시 취해본 다음 하산 길에 올랐다.
다시 대기봉을 거처 천황봉(사자바위 392m)위에 있는 레이다기지를 마주보면서 대기봉 0,4km, 태고암 0.5km 지점에서 11:40 태고암으로 하산. 암자 주변 돌탑 앞에서 소원을 빌고 욕지면소재지로 내려왔다. 오는 길에 중석기에서 신석기시대에 이르는 다양한 유물이 출토된 욕지도 패총 앞을 지나기도. 그리고 돌담 옆에 활짝 핀 매화를 볼 수 있었고 갖가지 색상의(붉은, 흰색, 분홍, 혼합)의 동백꽃을 보았다.
12:30 산행을 종료(총 4시간 소요)하고 욕지면 동항리에 위치한 ‘객선머리 활어횟집’에서 단체로 싱싱한 모듬회와 매운탕을 안주로 소주를 마시고 이 고장 별미인 도다리쑥국과 함께 점심을 맛있게 먹었다. 오후2시 배를 타고 다시 통영으로 오는 길에 갑판위에서 몇몇이서 어울려 또 술타령. 15:20 통영에서 서울로 향하여 만 하루 만에 집에 돌아왔다.
봄빛 따라 떠난 섬 여행 그리고 산행, 새롭게 맞은 것은 봄만이 아니라 봄에 깃드는 사람들의 넉넉하고 푸근한 마음이었다.
첫댓글 서울 보다 앞서서 핀 봄꽃들을 감상 하셔서 즐거웠겠습니다. 여행기를 보니 통영의 욕지도를 나도 한 번 가보고 즐겨보고 싶네요.여행기를 올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건축사님...좋은 곳 혼자 누리시지 마시고 저희에게도 귀띔을 살짝 해주고 그러세요....남녁의 여유로움도 즐기시고 봄의 손에 이끌리시는 마음이 얼마나 행복하셨을까요??먼나라 이야기를 함께 할수 있어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