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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十장 付囑流通(부촉유통 : 법을 부촉하고 유통케 하다) (1) 對法(상대 법) 2
外境無情(외경무정)이 對有五(대유오)하니
天與地對(천여지대)며 日與月對(일여월대)며 暗與明對(암여명대)며
陰與陽對(음여양대)며 水與火對(수여화대)니라
語與言對(어여언대)와 法與相對(법여상대)는
有十二對(유십이대)하니 有爲無爲有色無色對(유위무위유색무색대)며
有相無相對(유상무상대)며 有漏無漏對(유루무루대)며
色與空對(색여공대), 動與靜對(동여정대),
淸與濯對(청여탁대), 凡與聖對(범여성대),
僧與俗對(승여속대), 老與少對(노여소대),
大大與少少對(대대여소소대), 長與短對(장여단대),
高與下對(고여하대)니라
自性起用對(자성기용대)에 有十九對(유십구대)하니
邪與正對(사여정대), 癡與惠對(치여혜대),
愚與智對(우여지대), 亂與定對(난여정대),
戒與非對(계여비대), 直與曲對(직여곡대),
實與虛對(실여허대), 嶮與平對(험여평대),
煩惱與菩提對(번뇌여보리대), 慈與害對(자여해대),
喜與嗔對(희여진대), 捨與慳對(사여간대),
進與退對(진여퇴대), 生與滅對(생여멸대),
常與無常對(상여무상대), 法身與色身對(법신여색신대),
化身與報身對(화신여보신대), 體與用對(체여용대),
性與相對(성여상대)니라
有情無情對(유정무정대)인 言語(언어)와 與法相(여법상)에 有十二對(유십이대)와
外境有無情五對(외경유무정오대)와
自性起有十九對(자성기유십구대)가
都合成三十六對法也(도합성삼십육대법야)니
此三十六對法(차삼십육대법)을 解用(해용)하면 通一切經(통일체경)하여
出入(출입)에 卽離兩邊(즉리양변)하나니
如何自性起用(여하자성기용)고
三十六對共人言語(삼십육대공인언어)하나
出外(출외)에 於相離相(어상리상)하고
入內(입내)에 於空離空(어공리공)하니
著空卽惟長無明(저공즉유장무명)이요
著相惟長邪見(저상유장사견)이라
謗法(방법)하여 直言不用文字라(직언불용문자)라하나
旣云不用文字(기운불용문자)이댄
人不合言語(인불합언어)니 言語卽是文字(언어즉시문자)니라
自性上說空(자성상설공)하나 正語言(정어언)하면 本性(본성)이 不空(불공)하니
迷自惑(미자혹)은 語言邪故(어언사고)라
暗不自暗(암불자암)이요 以明故暗(이명고암)이며
暗不自暗(암불자암)이요 以明變暗(이명변암)이라
以暗現明(이암현명)하여 來去相因(래거상인)하니
三十六對(삼십육대)도 亦復如是(역부여시)니라
『바깥 경계인 무정(無情)에 다섯 대법이 있으니,
하늘과 땅이 상대요 해와 달이 상대이며 어둠과 밝음이 상대이며
음과 양이 상대이며 물과 불이 상대이니라.
논란하는 말(어,語)과 직언하는 말(언,言)의 대법과 법과 현상의 대법에
열두 가지가 있나니, 유위와 무위ㆍ유색과 무색이 상대이며,
유상과 무상이 상대이며, 유루와 무루가 상대이며,
현상(색,色)과 공(空)이 상대이며, 움직임과 고요함이 상대이며,
맑음과 흐림이 상대이며, 범(凡)과 성(聖)이 상대이며,
승(僧)과 속(俗)이 상대이며, 늙음과 젊음이 상대이며,
큼과 작음이 상대이며, 긺(장,長)과 짧음(단,短)이 상대이며,
높음과 낮음이 상대이니라.
자성이 일으켜 작용하는 대법에 열아홉 가지 있나니,
삿됨과 바름이 상대요, 어리석음과 지혜가 상대이며,
미련함과 슬기로움이 상대요, 어지러움과 선정(禪定)이 상대이며,
계율과 잘못됨이 상대이며, 곧음과 굽음이 상대이며,
실(實)과 허(虛)가 상대이며, 험함과 평탄함이 상대이며,
번뇌와 보리가 상대이며, 사랑과 해침이 상대이며,
기쁨과 성냄이 상대이며, 주는 것과 아낌이 상대이며,
나아감과 물러남이 상대이며, 남(생,生)과 없어짐(멸,滅)이 상대이며,
항상함과 덧없음이 상대이며, 법신(法身)과 색신(色身)이 상대이며,
화신(化身)과 보신(報身)이 상대이며, 본체와 작용이 상대이며,
성품과 모양(성상,性相)이 상대이니라.
유정ㆍ무정의 대법인 어(語)ㆍ언(言)과 법(法)ㆍ상(相)에 열두 가지 대법이 있고,
바깥 경계인 무정(無情)에 다섯 가지 대법이 있으며,
자성을 일으켜 작용하는데 열아홉 가지의 대법이 있어서
모두 서른여섯 가지 대법을 이루니라.
이 삼십육 대법(對法)을 알아서 쓰면 일체의 경전에 통달하고
출입에 *바로 양변을 떠나(즉리양변,卽離兩邊)니라.
어떻게 자성이 기용(起用)하는가?
삼십육 대법이 사람의 언어와 더불어 함께하나
밖으로 나와서는 모양에서 모양을 떠나고,
안으로 들어와서는 공(空)에서 공을 떠나나니,
공에 집착하면 다만 무명만 기르고
모양에 집착하면 오직 사견(邪見)만 기르느니라.
더러는 법(法)을 비방하면서 말하기를 「문자(文字)를 쓰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러나 정녕 문자를 쓰지 않는다(불립문자,不立文字 또는 불용문자,不用文字)고 말한다면
사람이 말하지도 않아야만 옳을 것이니, 언어가 바로 문자이기 때문이다.
자성에 대하여 공(空)을 말하나, 바로 말하면 본래의 성품은 공(空)하지 않으니,
미혹하여 스스로 현혹됨은 말들이 삿된 까닭이니라.
어둠이 스스로 어둡지 아니하나, 밝음 때문에 어두운 것이니라.
어둠이 스스로 어둡지 아니하나 밝음이 변화함으로써 어둡고,
어둠으로써 밝음이 나타나나니, 오고 감이 서로 인연한 것이며
삼십육 대법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大師言(대사언) 十弟子(십제자)하되
已後傳法(이후전법)하여 遞相敎授一卷壇經(체상교수일권단경)하여
不失本宗(불실본종)하라
不稟受壇經(불품수단경)하면 非我宗旨(비아종지)니라
如今得了(여금득료)하니 遞代流行(체대류행)하라
得遇壇經者(득우단경자)는 如見吾親授(여견오친수)니라
拾僧(십승)이 得敎授已(득교수이)하고 寫爲壇經(사위단경)하여
遞代流行(체대류행)하니 得者必當見性(득자필당견성)이로다
대사께서는 열 명의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이후에 법을 전하되 서로가 번갈아 이 한 권의 단경을 가르쳐 주어
본래의 종지를 잃어버리지 않게 할지니,
단경을 이어 받지 않는다면 나의 종지가 아니니라.
이제 얻었으니 대대로 유포하여 행하게 할지니라.
단경을 만나 얻은 이는 내가 친히 만나서 주는 것과 같으니라.』
열 분의 스님들이 가르침을 받아가지고 단경을 베껴 써서
대대로 널리 퍼지게 하니, 얻은 이는 반드시 자성(自性)을 깨달을 것이니라.
[주해註解]
* 즉리양변卽離兩邊 : 양변(兩邊)은 이법(二法)이 대립(對立)한 일대(一對)의 개념(槪念)으로서
유위(有爲)와 무위(無位), 유루(有漏)와 무루(無漏), 진제(眞諦)와 속제(俗諦) 등을 말하는데,
중도(中道)란 서로 대립(對立)하는 두 입장(立場)을 여읜 중정(中正)의 도(道)임.
【대지도론(大智度論)】 사십삼(四十三)에
『상(常)은 시일변(是一邊)이며 단멸(斷滅)은 시일변(是一邊)이다.
시이변((是二邊)을 리(離)하여 중도(中道)를 행(行)함을 바로 반야바라밀(般若波羅蜜)이라』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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