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 볕은 내 얼굴과 팔을 달구더니 어느새 시린 서리에 식어 버렸는지 더 이상은 그을리지 않을 것 같이
시원한 바람과 함께 호미자루를 쥐고 고랑을 파헤치는 내 손목과 목덜미를 스친다.
가을은 신이 주신 우리네 삶의 풍족한 거둠의 계절
가을을 위하여 준비한 것은 어찌 흘린 땀방울뿐이겠는가
사랑함과 그와 함께 돌봄도 , 희생도 모두 한몫인 것을
농부는 알고 있을 것이다.
첫날은 친정엄마와 친구 분들과 오셨다.
주일 오전예배를 드리고 밭으로 향했다. 되도록 주일은 피하고 싶었지만 멀리에서 오신 친정엄마와 친구 분들은
일요일 쉬는 날을 정해서 일부러 오셨다.
한 분은 낫으로 고구마 줄기를 쳐내며 걷어 내셨다.
" 고구마 줄기가 너무 좋아서 고구마는 기대하지 말아야겠는걸!"
시작부터 힘이 빠진다.
내가 보기에도 차라리 고구마 줄기를 따다 팔까 여러 번 망설일 정도로 최상급 이였다.
고구마가 보이기 시작했다.
"엥? 고구마가 왜 이래?"
아니 세상에 이리도 못생겼을까? 죄다 기형이다.
굼벵이 때문이란다. 두둑 만들 때 만났던 굼벵이들이 배신을 때릴 줄이야…….
밭 앞턱으로 중간 도랑으로 잘라낸 부분까지 6고랑을 캐내고 보니 상품 가치가 있는 것은 절반도 되지 않았다.
절반은 그 자리에서 엄마 친구 분들에게 눈짐작으로 무게를 계산해서 팔고 남은 절반은 친정엄마 차에 실었다.
손이 무섭다.
혼자서는 2일은 쉬지도 못하고 캐내어야 할양을 여럿이 함께 캐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무겁기만 했다.
다시 돌아오고 싶지 않은 곳이었다.
나머지도 이 정도라면 분명 적자다.
그 동안 내 승용차 기름 값뿐만 아니라 활동하고 있던 시립합창단 연습도 여러 번 빠져서 벌금형이 떨어졌기 때문이었다.
다음날 아침이 되니 오기가 생겼다.
그래 밭 전체가 모두 굼벵이의 공격을 받았는지 일단 다 캐내고 실망을 하던 속이 상하든 할 것이라 마음먹었다.
고구마를 담을 콤바인포대를 샀다.
뱀을 어찌나 무서워하던지 아이아빠가 군에 입대하고 연대본부가 있는 시골로 함께 가서 살았던 적이 있었다.
작은 시골길에 갑자기 연대본부가 이주를 하니 도로사정상 큰 군용 트럭이 나타나면 풀숲으로 비켜야만 했었다.
아이 아빠가 늘 당부한다.
"길 걷다가 군 발이 차 만나면 풀숲이라도 들어가야지 그 차에 치이면 갯값도 못 받는다."
"그러다 뱀에 물리느니 차라리 난 갯값을 택할 껴……."
그런 나를 잘 알기에 새벽에 차 두 대가 밭으로 향한다.
아이 아빠는 서둘러 고구마 줄기를 걷어 내주고 출근을 하면 종일 고구마를 캐내었다.
서리는 내렸지만 여전히 가을볕은 곡식들의 알곡을 꽉 꽉 채우기에 전혀 손색이 없다.
땅속을 벗어난 고구마들은 옹기종기 모여 볕을 쪼이며 몸을 말린다.
참 다행이다.
안쪽으로 갈수록 굼벵이에게 당한 부상고구마들이 줄고 있었다.
"대장님 다행입니다. 굼벵이의 습격은 이쯤에서 밀려난 것 같습니다."
영화의 한 장면을 흉내 내며 혼자 웅얼거린다.
혼자 놀기의 진수랄까? ㅎㅎ
밭이 어찌나 넓었던지 곳곳에 토질이 약간씩 달랐다.
고구마의 모양도 달랐다.
길 죽이 고구마라기보다 동글동글 감자 모양에 더 가까운 고구마들이 대부분이다.
저녁이면 아파트 주차장에 부어 다시 말린다.
이렇게 며칠을 더 캐야 할런지 설마 눈은 내리지 않겠지?
고구마를 심을 때 보다 힘이 더 들었다. 저녁이면 도로변까지 고구마를 가지고 나오기엔 밭이 너무 길다.
설마 눈 내리기 전엔 다 캐겠지 머…….
첫 날 오셨던 친정엄마는 마음이 불편했던지 가게를 닫고 이른 새벽에 평택에서 보령까지 오셨다.
저녁 새참까지 싸가지고 오셨다.
이렇게 많은 고구마를 팔 일도 문제였다.
농산물만 전문으로 수집해서 가락동 시작에 넘기는 곳에 찾아갔다. 일단 박스를 사란다. 박스 값도 만만치 않았다.
밭에서 곧장 선별 작업을 하면서 모양별로 크기별로 박스 처리를 했다.
아버지는 줄기를 걷어내시고 엄마는 호미질을 하시고 나는 선별작업을 했다.
어둠이 내려서 보이지 않을 때까지 캐내어도 남았다.
엄마는 하루 더 남아 캐주기로 하셨다.
호미질을 하시다 화가 나셨나 보다.
" 넌 어째서 걸프전 맞춰서 내 말 안 듣고 외국으로 비행기 타고 나가고 사스로 그 난리 통에 비행기값 싸다고 또 나가서 내 속을 썩이더니 조류 독감 맞춰서 또 해외로 나가고 이제는 고구마까지 이래 많이 심어서 내 속을 썩히냐?
내가 뭘 먹고 너를 낳았는지 알 수가 없다 이젠 조용히 살자
이제부터 또 일 펼쳐 놓으면 우리 인연 끊고 다시는 만나지 말자
비싼 가게 문 닫아 놓고 이게 머냐! 모른 척 하자니 고구마 밭에서 딸 죽일 것 같고 이래 와서 보자니 속이 터지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자동 반복이다.
저녁이 되자 아이들 아빠까지 와서 거든다.
"남자가 부산떨면 머가 떨어진다는데 여자가 저러면 머라 해야 한데요? 도대체 가만히 있질 못해요"
팔이 안으로 굽는다고 엄마가 버럭 말을 받아 친다.
"맘에 안 들면 지금이라도 데려 가리?"
도리도리 본전도 못 건진다.
농산물 집하장에 도착해서야 역전을 하게 되었다.
사장님 부부가 잘 포장해 놓은 고구마 박스를 인정사정없이 죄다 찢어 부어 놓는다.
두 세 박스를 풀어 보더니 사장 부부가 흥분을 한다.
고구마는 몇 박스 정도 더 남았냐. 묻는다.
친정엄마는 설래 말도 말라는 듯이 말씀 하신다. 집 주차장에도 이 보다 많고 밭에도 이 보단 많다는 말에
사장님 돈 잘 받아 줄 테니 모두 가져오라 하신다.
최상품이라는 도장이 찍힌다.
고구마는 요래 동글동글 해야 최상품이라 한다.
여기서 잠깐.
고구마를 전문으로 심는 곳에서는 아스팔트 깔 때 아스팔트를 다지는 롤러로 밭을 최대한 누른 후에 고랑만 살짝 파서 고구마를 심는다. 그래야 고구마가 땅이 단단하여 깊이 들어가지 못하고 둥글게 자라게 되어 상품으로 만들어 진다고
언젠가 들은 기억이 생각이 문득 떠오른다.
그 날!
첫 날 ~!!
트랙터발이 상한다며 밭을 갈아 주지 못하겠다. 하여 생로터리를 치고 호미로 긁어 두둑을 만든 게 최상급의 고구마를 수확하게 된 결과를 만들어 주었다.
가족들 모두 흥분을 하였다.
최상급이래~,
굼벵이만 아니었다면 대단한 결과였다.
경험도 없이 이론만을 가지고 도전한 일 치곤 대성공 이였다.
다음날도 이른 새벽부터 밭으로 향했다.
잡초 뽑는 일에 소홀했던 탓에 안쪽으로는 고구마 수확이 적다.
고구마가 있건 없건 호미의 손은 가야했다.
일주일간의 고구마 캐기는 그 날로 마무리가 되었다.
그 날 까지 선별된 고구마는 농산물 집하장으로 넘기고 돌아오는 길은 여느 농부와도 같은 마음 이였을 것이다.
이젠 된서리가 내려도 눈이 내린다 해도 겁날 것이 없었다.
들에서는 무를 뽑아 땅 속 깊이 저장하는 농부님들이 삽질을 서두르고 있었다.
종일 콤바인 돌아가는 소리에 세상은 온통 전쟁터와 같았다.
그래도 소음으로 들리지 않는 것은 여유로움에서 오는 너그러움 이였을 것이다.
겨우네 아이들과 먹을 고구마를 남기고 지인들에게 보낼 고구마 선별도 하고 인터넷 직거래도 했다.
그 해 겨울은 굼벵이 습격으로 인해 못난이가 된 고구마를 질리도록 먹을 수 있었다.
처음이자 마지막 고구마 농사는 나에게 오랜 추억과 이야기 거리와 글감이 되어 이렇게 새로운 모습으로
회상이 되어 잊히지 못할 그리움이 되어 있었다.
그 해 흘렸던 땀방울이 내게 아직도 절반은 남았을 생애를 살아갈 동안
인생의 밑거름이 되어 주어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
나의 삶을 가치 있고 빛이 나도록 도울 것이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나의 미래를 기대하며 살고 있다.
지금까지 그다지 매끄럽지 못했던 글을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지막 탄은 이상하게도 글을 써 나가며 탄력을 받지 못해서 쉽게 마무리를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첫댓글 수고가 많았어요 어쩐지 조금 찜찜 하더니 그늠의 굼뱅이가 결국은 농사를 버리게 했네 근데 굼뱅이도 약인데 모아서 약으로 팔면 수입좀 잡았을건데 그걸 몰랐는감
정성을 다한 고구마 농사처럼, 맛깔스런 글 너무 맛있게 읽었슴니다.
그래도 해피앤딩이네요재미있게 잘 읽었어요.. 고생은 많이 하셨겠지만.. 다음소재는 뭘로 할꺼에요
^^ 노천사언니 감사합니다 그런데 굼벵이도 볏짚속에서 자란 굼벵이라 약이라고 알고 있어요 그래서 초가지붕에서 나온 굼벵이를 약에 쓰지요 박영규선생님 감사합니다. 함상호선생님 끝까지 응원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는 이렇게 긴 글은 피하려고요 ^^
너무 재미있게 읽었어요 다음에도 재미있는글 부탁해용~~~~~~
혜미씨 재미있었다니 감사하고요 응원 감사합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