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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석 노자 2014/02/08
신이 있다고 믿는 것처럼 살아라
신이 있다고 하면 얻는 것은 무한하다.
1강 #1 ㅡ 공자 도, 인간 내면 ㅡ 노자 天道無親
주 건립 이래 天命 克服의 歷史觀
孔子. 老子
家政 ㅡ孝. 價値論, 客觀的 基準 設定
社會倫理 確保. 自然秩序 ㅡ人間秩序
#2 天命克服 ㅡ人間의 길, 天下를 掌握하는 길
君子. 小人
支配. 被支配, 땅에서 일
원이름과 實모습이 逆轉된 混亂構造, 名可名非常名
# 5ㅡ3강
1) 사랑이 무어냐.? 눈물의 씨앗! 나훈아 /사랑 정의, 울타리 친다. 사랑= 눈물의 씨앗
2) 심수봉 ㅡ 사랑보다 더 슬픈 건 정이라고
어느 것이 사랑 정의?
나훈아 : 정의, 심수봉: 형태
이름 정의 내리면 그 이름에 다하지 못한다
道可道非常道
老子 帛書本 1973 長沙馬王堆, 甲本 乙本 2질
秦 말엽 著作物 發掘,
# 5ㅡ4강 1993 호국성 郭店 楚墓, 백서보다 200년 앞선 죽간본 발굴, 도덕경 일부, 유가 경전
是以君子 人道之取先 [尊德義]
唯人道爲可道也 [性自命出]
人道는 可道의 形式으로 되어 있다.
ㅡ儒家는 人道 우선, 可道 형식 ㅡ道家는 可道 형식이면 天道의 方式 아니다
可道 ㅡ 말할 수 있는 도, 孔子, 本質 肯定 ㅡ仁, 區分
ㅡ이름, 정의 울타리, 개념화는 구분,
ㅡ언어 친화적, 본질 긍정에서 출발, 에센서, 본질
老子ㅡ이름 지으면, 本質을 다 말할 수 없잖습니까?
5ㅡ5강 # 觀點 : 노자 how , 공자 what
無名天地之時 有名萬物之母
시 비롯되다, 여자의 처음이다/무가 시작이 아니다
시작, 準備와 出發의 交差 地點,
구체적 모습은 없지만 이 세계를 움직이게 하는 '시작 출발 공간'이 있다
道可道非常道 名可名非常名 無名天地之始 有名萬物之母
故常無欲 以觀其妙 常有欲 以觀其徼 此兩者 同出而異名 同謂之玄 玄之又玄 衆妙之門
■ 천을 가위로 가르는 행위, [시]
부 자식 낳고, 모 자식 키우고
ㅡ 어미 모 , 젖 물리는 모습
시작은? 자르기 교차지점(전, 시작, 잘린) / 시
노자 도덕경 뿌리, 무, 시작의 공간
故常無欲以觀其妙 常有欲以觀其徼
무로써 오묘한 영역을 나타내려하고, 유로써 구체적 으로 보이는 영역을 나타내려한다.
ㅡ알수 없는 영역 : 여자 마음, 알려하면 안되고, 수용해야한다.
젊은 여자 마음은 자기도 모른다.
# 6강ㅡ6 묘 구체적으로 존재하는 실루엣,
유무ㅡ 此兩者 同出而異名
衆妙之門 ㅡ 들고나는 문, 들락거리는 문
노자는 본성, 본질 부정, 유무 관계론 ㅡ노자의 뿌리
#7강 ㅡ1 有와 無의 對立 關係로 構成, 老子
자연의 질서 ㅡ 도,
유로 표시할 수 있는 영역, 서양 철헉이 정신 물질로 설명했듯이, 음양으로 주역이 설명했듯이, 노자는 무와 유로 설명했다. 유무 공존
東洋哲學은 1847 니시 아마네(nisi amane 1829 ~1897), phylosophy를 철학으로 번역
中國의 祝福
1. 韓나라 佛敎 收容
ㅡ서진 사상가 곽상(252~312) 모든 현실 존재는 완결된 존재들이다 [독화론]
사상의 한계, 나라 분열, 어정쩡한 사상계 중
佛敎 思想이 新儒學으로 발전, 朱子學
2. 靑末葉, 영국 産業革命(1760~1840) 革新方向으로 발전, 부와 힘, 英國의 帝國主義, 中國 1840년 아편전쟁으로 西洋에 굴복
ㅡ 政治 軍事 思想 모두 劣等感,
ㅡ 西洋을 어떻게 빨리 배우는가? / 東洋의 近代史
1) 軍事技術, 2) 制度, 3) 思想
원래 우리한테도 있어! ㅡ西洋의 哲學 모델 移植
ㅡ 막스 레닌주의로 위장해 中國 統一
인도 사상, 맑스 레닌주의 수용 ㅡ 이것이 중국의 힘
過去 斷絶하려는 힘ㅡ哲學的 決斷, 이것이 中國의 미래 推進力, 中國 和解 歷史 推進
1840 후 中國의 活路, 救國 摸索,
印度佛敎 본무자성, 곽상의 본시자성 ㅡ해석 차
隔意 佛敎, 中國式으로 佛敎 解釋
西洋 哲學
화이트헤드, 수학자 철학자, 서양철학은 플라톤 철학의 각주에 불과하다
플라톤 철학은 퍼르메니데스(Parmenides, bc 515~ bc445, 고대 그리스 철학자, 존재론의 효시) 사상에서 출발,
'이 세계에는 있는 것만 있고 없는 것은 없다'
'있는 것은 쪼개지지 않은 하나로 있다.'
완벽한 세계 이데아, 진실 진리의 세계, 사유 속에 있다
현상은 변하고 유한하기에 부족한 세계다
완벽 본체, 불완전 현상, 이곳은 부족한사람, 진리를 구현 못하기에 진리는 항상 저곳에 있다.
西洋哲學은 思惟의 構造物, 思惟의 完決性 具現하는 것이 哲學이다.
현상, 경험은 부족한 느낌, 서양철학은 사유의 구조물이다
東洋, 도의 具現 ,天命克復
공자 인간, 노자 자연에서 구한다
경험 기본적 정서 부모 자식관계
맹자, 인간이기에 4가지 심리현상 4단이 있다
#7ㅡ5강
4단 惻隱之心, 羞惡之心, 辭讓之心, 是非之心
사슴? 없다. 이 4 심리현상이 있어 인간일 수 밖에 없다 ㅡ 經驗
老子, 有無의 相生, 自然 觀察, 經驗에서 出發
東洋에는 論理學이 없다.ㅡ經驗에서 出發하기에
西洋 論理學 ㅡ 경험없는 思惟로 緻密性 必要, 觀念이 現像 위에 있다.
經驗이 現代性이다. -- 서영철학사 本質主義, 實存哲學
ㅡ프로이드, 칼 막스, 니체
단일성 기초, 실체, 본체, 기원
ㅡ실체관적 세계관 구현 : 이성
#7~6
西洋 思惟 理性은 感性의 優位에 있다.
精神과 理性의 最高 發達段階 ㅡ 헤겔(1770~1831)
ㅡ獨逸 觀念論 哲學 完成한 形而上學者, [精神現象學], [論理學]
포이에르바하 , 물질보다 정신이 우위에 있다.
다윈 進化論, (旣存理論 理性은 人間에게만 있다, 人間의 動物性 )
現代哲學
프로이드 ㅡ 性的의식 욕망 기저
맑스 ㅡ 이성은 물질 조건에서 출발한다.
어느 동네 출신이 중요하더라
니체 ㅡ우주적 본성은 이성이 아니라 동물적 의지다. 의지 육체성
인간의 물질 욕망 동물성 여기로 넘어왔다. 왜?
실제로 있지 않은 것은 믿지 않는 인간으로 진화 했기 때문!
#8~1강 東洋 哲學은 新興學問이다, 西洋에서 始作
라이프니츠 시작, 서양의 한계를 동양에서 찾자는 지혜
資本主義 合理性 最高尺度, 基督敎 倫理 없는 社會에서 어떻게, 新興强國 4마리 龍?
西洋이 歷史의 主導權 잡은 시기 그렇게 길지 않다
儒敎, 西洋의 모더니즘과 닮아 있다.
[모더니즘], 이성적 사유와 실체관을 근본으로 생각하는 사상경향, 20C 서구 문학 예술상의 한 경향
1. 풍우란(1894~1990) 최초로 중국 철학사 완성
ㅡ신실재론 모방: 20C 초 영국 미국에서 19C 관념론에 대한 비판으로 등장한 이론
2. 모종삼 (1909~1995)
칸트 철학을 기반으로 중국 철학 해석, 신유가 사상의 대표적 중국 철학자
유교ㅡ인간에게 도덕적 자각 능력을 근본으로 하는 중국의 사상
서양철학을 바탕으로, 동양사상의 사유 바탕한 철학이 없다.
경험 현상 감각 낮은 세계로 보는 이유가 변하기 때문
思惟, 理性, 槪念, 觀念의 世界 憧憬
변하는 세계를 지배하는 변하지 않는 어떤 세계가 있을 것이다ㅡ 西洋 現代哲學의 基底
있는 것이 진실이다, 다른 종교는 현실 부정, 이 세상 떠나 저 세상으로, 超越
道敎ㅡ현실 세계를 天上世界로 옮겨 延長하는 思想, 道敎 ㅡ 中國 土着 宗敎
中國 土俗 思惟
진실은 초월이 아니라 연장해야 할 것으로 남는다.
이 세계가 진실이다, 사유가 아니라 현상이 진실이다, 경험을 철학의 인사이트
니체 : 不完全性 現實 肯定
포스트 모드니즘, 텍스타일, 텍스트, 이 세계는 짜여져 있다.
포스트모더니즘 중세 암흑시기를 거치면서 15세기 르네쌍스를 맞는다. 르네쌍스는 옛 그리스 문화와 예술과 철학의 재탄생이며 재인식이며 재음미이다. 이는 군림하던 神을 부정하는 데부터 출발한다. 신 중심의 사고를 지양하고 옛 것을 재현하는 정신운동을 말하는데 18C 계몽주의, 합리주의 사고를 갖는데 영향을 준다.
19세기에 들어오면 이성을 중심으로 실존주의가 등장한다. 이성의 존재는 경제발전에도 영향을 주어서 내가 존재하므로 우리는 미래에 무한한 가능성을 보았다. 그러나 20세기 말에 오면 현대와 실존에 대하여 반성과 비판, 회의의 목소리가 있게 된다. 그것이 포스트모던(post modern)이다. 우리는 진정 행복한가?라는 질문이다.
인간이 누리는 물질적 풍요 뒤에는 자연이 훼손되고 피폐되며 환경이 파괴되어 우리에게 되돌아오고 있다. 그리고 인간은 핵을 만들어 서로 간에 위협을 주고 있으며 인간 내면의 종교적 이념적 갈등으로 세계도처에 분쟁이 일어나고 있다. 포스트모던은 만들어진 현대를 부정하고 반성하며 비판하는 것이다. 그리고 새로운 대안을 모색하는 것이다.
지금은 불확실성, 불확정성이다. 중심이 사라지고 표준이 없다. 지난 세기의 사고와 사유를 탈피해야한다. 우리는 고정관념을 버리고 모든 것을 버려야 하는 완전한 해체주의에 서 있다. 완전한 포기, 그것이 공이다. 불교에서 공을 체득한 보살은 모든 사람과 함께 저 언덕(유토피아)으로 함께 가고자 하는 것이다.
포스트모더니즘 진리와 인간이성에 대한 전통 철학적 관념을 거부하고 전통철학의 종말을 고하는 현대철학의 통칭, 1950년대 초 토인비가 처음 사용, 20C 후반 탈이데올로기사회 등 문화적 패러다임을 설명하는 사상체계, 계몽 시대 이래 발달한 이성이나 합리성에 대한 믿음을 거부하고, 보편적 이론이나 사상의 거대한 체계의 해체를 주장하는 운동
이 世界는 關係性으로 본다. 非本質主義, 關係
양자물리학, 아인슈타인, 미래 세계 잘 적용할 종교는 불교다, 가장 완벽한 관계론적 철학, 뿌리가 없다, 가건물, 모, 여, 달, 물,
老子와 現代의 連結点이 보인다
토대 허물어짐, 무를 긍정, 모, 무, 긍정
어떤 윤리적 태도를 닮는가? 認識論的 段階
노자, 비움, 낮은 것, 모, 무, 달 ㅡ 關係論
有無相生ㅡ相互依存 關係, ㅡ 道
노자 25장, 唯物混成
대립 잡종, 그것을 무엇이라 이름짓지 못하겠다
나는 그 아름을 모른다. 억지로 도라 이름하고, 억지로 도라 말할 뿐이다.
4장, 道沖而用之惑不盈 도는 텅 비어있다, 그 작용은 끝이 없다
맹자 ㅡ4단 擴充,
노자 ㅡ有無相生
본질주의에는 끝이 있으나, 비본질이면 끝이 없다.
4장, 淵兮 似萬物之宗
道沖而用之惑不盈 淵兮 似萬物之宗 挫基銳 解基紛 和基光 同基塵
揕兮 似惑存 吾不知誰之子 象帝之先
깊기도하구나, 마치 만물의 근원과 같구나
似사 象상
진짜는 아닌것. 듯하다
도 천명론 극복, 상,ㅡ 천명을 극복했다
노자의 실체로 볼 수없 는 이유는 4장에 잘 나타남
이 세계는 두 대립면의 꼬임, 이름, 알수 없음
언어와 감수 능력에도 불구하고, 정의 내릴 수 없다.
항상 운동하고 이름으로 정지시킬 수 없다, 노자의 도는 운동성으로 인해 관계성을 정의 내릴 수 없다.
14장, 繩繩兮不可名 此兩者, 同出而異名, 同謂之玄, 玄之又玄, 衆妙之門 繩(줄 승)
끊임없이 이어져서 그 이름을 무어라 말할 수 없다
노자의 도, 새끼줄 같이 꾀인 도
자연이 생긴대로 삶 영역에 응용하자,
경계에서 오는 두려움을 두려워 하지 말라
두려움을 견디는 용기를 어떻게 키워야 하는가?
#8~6
유 무 대립면의 관계성을
삶(정치, 사회, 윤리적 삶)의 영역에 응용하자
21장 孔德之容, 惟道是從 - 큰 덕의 모습이란 오직 도를 따르는 것이다
道之爲物, 惟恍惟惚 - 도라는 것은 정말로 황(눈부셔 안보임)하고
홀(어둑해서 안보임)하다
德(정치 윤리적 삶, 인식적 행위, 삶)노자 제21장: 孔德之容, 惟道是從
큰 덕의 모습은, 오로지 도를 따르는 데서 나온다
해설: 이장은 만물의 근원으로서 '도' 자체에 대한 구체적인 묘사를 하고 있는데 만물을 있게 하는 '없음'의 형태로서의 '도;에 대한 표현으로서,
서양식 표현으로는 카오스(Khaos 무(無), 텅 빈 공간, 대공허)에 대한 묘사를 하고 있습니다.
이장에 대해 축약해서 표현하자면,
[도道는, 황홀惚恍하고, 깊은 어둠冥으로그 가운데 정精이있고 또한 그 가운데 믿음信이 있는 것으로, 도는,만물의 존재이전 부터 지금까지 그 이름(존재가) 없었던 적이 없다.
그 이름으로 큰무리(만물)의 존재를 탐색할 수 있는데
내가 무엇으로 만물의 형상을 알 수 있겠는가?
바로, 도에 의해서 이다.]
이장의 내용으로, 돈과 관련하여 묘사한다면,
"사업의 훌륭한 행위는 오로지 '돈의 도'를 따르는 데서 나온다.
돈은 만사를 이루는 수단으로,
할 수 없는것이 없으며 그 가운데 중심이 있고 그 가운데 힘이있다.
예로 부터 지금까지 돈이 없었던적이 없다.
나의 능력으로 세상을 움직일 수 있는데, 내가 어떻게 세상을 움직일 수 있겠는가?
바로 돈의 도에 의해서이다" 라는 정도로 할 수 있겠습니다.
孔德之容, 惟道是從: 공덕지용, 유도시종:
큰 덕의 모습은 오로지 도를 따르는 데서 나온다
道之爲物, 惟恍惟惚 : 도지위물, 유황유홀:
도는 만물을 위한 것으로 황홀할 뿐이지만,
惚兮恍兮, 其中有象: 홀혜황혜, 기중유상:
항홀하고 황홀한 가운데 형상이 있다.
窈兮冥兮, 其中有精: 요혜명혜, 기중유정:
그윽하고 깊은 어둠가운데 정精이 있다
其精甚眞, 其中有信: 기정심진, 기중유신:
그 참된 정精 가운데 믿음이 있다
自古及今, 其名不去: 자고급금, 기명불거:
예 부터 이제까지 그 이름이 없은 적이 없다
以閱衆甫: 이열중보:(그이름)으로 큰 무리를 볼수있는데
吾何以知衆甫之狀哉:,오하이지중보지상재:내가 무엇으로 큰무리의형상을 알수 있었겠는가
以此(이차) : 바로 이(도) 때문이다
1장 同謂之玄,동위지현 같이 있다는 것을 현묘하다고 한다,
가물하다, 흐릿하다,
人文的 通察 方法 ㅡ境界에 서는 것, 두려움 불안 모호 , 경계에 설 때 세계를 투명하게 본다. 유무가 함께하는 경계가 불분명한, 대립면, 긴장, 텐션으로 구성된 작동시키는 방식으로 설 때, (명료함으로 바꾸려 하지마라) 한쪽을 선택하면, 거기에 갇히게 된다.
거기 까지다. 경계에 서서 그 상황을 품을 때(모호함 두려움을 바로 읽을 때) 노자는 그것을 명(밝을 명) 이라 하였다. 해와 달을 바르게 보는 것 명
#9강~1
아시아의 경제 발전이 기독교 윤리가 어디서 저렇게 왔는가? 노자는 유무의 상호의존 관계에 놓여 있다. 서양에서 동양철학 시작!
이 관계론을 삶, 정치 영역에 활용하자. 노자 사상의 기본 대립되는 것들의 조합,
유무상생, 유와 무의 조합, 관계론, 도로 표기, 일
39장, 천득일이청, 지득일이녕
昔之得一者 (석지득일자);
1. 옛날 하나를 얻은 것(이 있으니)
2. 예부터 일등자리를 얻은 것들(이 있으니)
天得一以淸 (천득일이청);
1. 하늘은 하나를 얻어 맑다.
2. 하늘이 일등인 것은 맑음으로써다.(맑기로는 하늘이 짱이다)
地得一以寧 (지득일이녕);
1. 땅은 하나를 얻어 편안하다.
2. 땅이 일등인 것은 편안함으로써다.(편안키로는 땅이 최고다)
神得一以靈 (신득일이령);
1. 신은 하나를 얻어 영험하다.
2. 신이 일등인 것은 영험함으로써다(영험하기로는 신이 왕이다)
谷得一以盈 (곡득일이영);
1. 골짜기는 하나를 얻어 가득하다.
2. 골짜기가 일등인 것은 담음으로써이다.(담기로는 골짜기만한 게 없다)
만물은 하나를 얻어서 살아있다
대립면의 긴장을 얻어서 내가 살아 있다.~
하늘이 맑아지려고만하면, 장차 무너져내릴 것이다
땅이 안정만 유지하려고만 하면 장차 쪼개질것이다
신이 산령스럽기만 하려하면 장차 믿음이 약해질것이다
통치자가 굴림하려고만하면 실각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고귀함은 천함을 뿌리로 하고, 높음은 낮음을 기초로 한다.
그래서 統治者는 자신을 孤, 寡 그리고 不穀人 등으로 낮춰 부르는 것이다.
不穀, 곡식을 못 익히는 것
朕(나 짐)[짐ː] 임금이 자기를 가리키는 일인칭 대명사.
반대되는 것들의 조합으로 이루어진다, 돌처럼 소박하라.
光而不耀, 화광동진 도덕경 21장의 말이다.
“반듯해도 남을 해치지 않고(方面不割)
청렴하되 남에게 상처 입히지 않으면(廉而不劌)
교만하지 아니하고(直而不肆) 肆(방자할 사)
빛나되 번쩍거리지 않는다.(光而不耀)”
반듯하고 청렴한 것은 좋지만
그로 인해 남을 해치거나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어서는 안 된다.
곧음은 자칫 교만을 부른다.
빛나는 존재가 되어야 하지만 너무 번쩍거리면 꼭 뒤탈이 따른다.
빛나기는 쉬워도 번쩍거리지 않기는 어렵다.
순자(荀子)에서는
“군자는 너그럽되 느슨하지 않고 (寬而不慢)
청렴하되 상처주지 않는다. (廉不而劌)”고 했다.
남구만(南九萬 1629~1711)이 병조판서 홍처량(洪處亮)의 신도비명에서
그 인품을 두고 화합하되 한통속이 되지 않았고(和而不流)
부드러우나 물러서지 않았다.(柔而不絿)고 한 것이나
삼국사기에 백제의 궁궐을 두고 검소하되 누추하지 않고(儉而不陋)
화려하나 사치스럽지 않았다(革而不侈) 고 말한 것도 다 한 가지 뜻이다
39장 내용, 대립면의 간장, 조합, 노자 ㅡ 이세계가 대립면의 긴장, 도, 일, 새끼줄
3장 使夫智者不敢爲也
불상 현(不尙 賢), 사민부쟁(使民不爭)
불귀난득지화(不貴難得之貨), 사민불위도(使民不爲盜)
불견가욕(不見可欲), 사민심불란(使民心不亂)
시이성인지치(是以聖人之治), 허기심(虛其心), 실기복(實其腹),
약기지(弱其志), 강기골(强其骨)
상사민무지무욕(常使民無知無欲),
사부지자불감위야(使夫智者不敢爲也)
위무위즉무불치(爲無爲則無不治)
대부분의 사랑은 너무 사랑해서 깨진다
무식하면 용감하다, 경계를 품은사람은 과감하지 않다, 사랑과 이별은 한세트다
자기의견이 분명한 사람일수록 지적 토대가 좁다
경계를 품은 사람은 과감하지 않다.
진리라는 확신을 함부로 갖지 않는다. 무삭하면 용감하다는 말은 동서고금을 통하는 말, 이별과 사랑은 한세트다.개 예쁘하면 손타서 죽는다. 대랍면 긴장 필요,
이아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자서, 13경 중 하나
지. ? 단혈지인지
1) 구멍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잘 안다고 하는 사람이다,
구멍으로 세상을 보는 사람 ㅡ전문가
2) 질서정연하고 조리가 갖춰진 사람
노자의 지자란, 제한적 앎이고 구분만 아는 사람
33장 知人者智 自知者明
타인을 아는 것은 대충아늑 것이요, 자기를 아는 것은 명철하다
명 해를 해로 달을 달로 아는것이지요 일월을 합쳐 아는 것이 명이다.
번지문인 자왈 애인 ㅡ논어 안연
부지언 무이지인야 ㅡ논어 요왈
말을 알지 못하면 사람을 알 수 없다
공자의 행위 원칙 ㅡ 예, 반복훈련 필요
구분의 내용 표시 ㅡ말, 반복, 구분 좌표에 맞는 행동
노자, 구분 된 앎은 대립면의 된 긴장으로 된 마음상태
공부 행복한 삶을 살고자하는 긴장, 한계에 부딛침
경계가 모호한 긴장상태를 분명하게 하려 하지말라.
경계가 모호한 긴장상태를 그대로 품어라
현 경계가 가물가물하다 단정하기는 초대받은 손님처럼하라,
ㅡ유무상생의 원리
내키 커? 작어? 비교 대상, 손톱, 마이클 조던
키가 크다 작다는 말이 손님이다. 광신하지 않는다
狂信者는 狹小한 知識에서 出發, 鎭重해져라
정호승 ㅡ 거미줄
거미줄 / 정호승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라 > 중에서
산 잎에 거미줄을 쳐도
거미줄이 가장 아름다울 때는
거미줄에 걸린 아침 이슬이
햇살에 맑게 빛날 때다
송이송이 소나기가 매달려 있을 때다
산 입에 거미줄을 쳐도
거미줄이 가장 아름다울 때는
진실은 알지만 기다리고 있을 때다
진실에도 기다림이 필요하다고
진실은 기다림을 필요로 한다고
조용히 조용히 말하고 있을 때다
진실은 기다림을 필요로 한다고~ 이 진실이라 믿던 바가 왕왕 거짓일 때가 있다.
대립면의 간장을 자기 안에 품고 있는 것, 쉽게 확신하지 앉는 것, 내공
5장 多言數窮 말이 많으면 쉽게 窮塞해진다
배우는 것이 나의 표현의 조그만 수단이다. / 인생은 자기 표현에 목적이 있다
자기표현, 내적 충동이 배움으로 채워질수록 자기표현이 준다. 어느 순간 배움을 끊어야 한다. 공부는 나를 표현하기 위한 수단이다, 자율적 주체
날때 짐승으로 났듯이 죽을 때 야수의 눈빛으로 죽으리라
최진석 노자 10#1 2014/02/26
多言數窮 不如時中
배움의 목적 ㅡ 표현, 배움이 습관화되면 표현이 줄어든다.
공부 열심히 헐수록 표현하려는 내적 베짱이 줄어든다.
배움은 어느 순간양 줄이고, 끊어야한다.
공부는 나를 표현하기 위한 수단이다
행복하게 살기위한 수단이다.
자율적 주체는 배움을 자기 표현의 수단으로 받아들여라.ㅡ 야수의 느낌
좋은것, 좋아하는것,
해야하는 것, 하고싶은 것, 이상, 욕망 엇벅자
인생은 고달프다. 해야 하는 일이 아니라 하고 싶은 일을 하는 나라가 부강하다
손지우손 이자우무위 무위이무불위 ㅡ 노자
왕필은 ‘名敎出於自然’을 주장했다는 일반론도 조심스럽게 다시 고찰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연구자가 보기에 왕필의 자연명교관은 그리 단순하지가 않기 때문이다.
본 논문에서는 그의 ‘無爲而無不爲’에 대한 관점을 통해 그의 ‘대한 관점을 통해 그의 ‘自然名敎觀’을 살펴보고자 한다.
왕필에 있어서 無爲란 ‘道의 無爲’의 ‘聖人의 無爲’가 있는데, 이 두 가지의 無爲는 모두 順自然을 그 내용으로 한다. 그 중 ‘道의 無爲’는 道의 상태로서의 無爲로서 그 결과로 만물이 이것을 말미암아 始成한다. 그리고 ‘聖人의 無爲’는 인간의 當爲, 성인의 능력으로서의 無爲로서, 이 無爲를 통하여 聖智, 仁義, 巧利와 같은 현상들이 완성된다.
왕필의 名敎觀음 단순한 ‘名敎出於自然’이 아닌 두 가지 명교관이 있으며, ‘名敎出於自然’은 긍정적인 명교를 설명하는 일종의 당위적인 명교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한 ‘崇本息末’과 ‘崇本擧末’은 그의 ‘無爲而無不爲’ 이론에 다름 아님도 살펴볼 수 있었다 즉 왕필은 그의 ‘崇本息末’을 방법론으로 하고 ‘崇本擧末’을 지향점으로 삼고 있다. 그는 단순한 명교긍정론자도 아니며 그렇다고 단순한 명교부정론자도 아니다.
무불위라는 효과를 준다, 성공과 실패의 요인, 보여 지는 대로 보는 사람이 이긴다
#14강 ㅡ1
세계를 봐야 하는대로 보는 사람은 세계를 보이는 대로 보는 사람을 이길 수 없다
신뢰가 깨진 성태에서는 어떤 성취도 없다
自發的 通察力으로 보는 世界
無爲 ㅡ보편적 이념에서 벗어난 자발적 활동성
양주 爲我主義
맹자가 양주를 비판하는 말 ㅡ맹자 진심,
털 한올 세계 평화
함석헌 왜 혁명이 이루어지지 못하는가?
革命歌 自身이 革命되지 않은 革命은 成功할 수 없다
조국 민주화 할 수 있으나 가정 민주화는 어렵다
영웅은 일상에서 실패한다. 인간 동력은 일상에서 출발한다
자유 평화 큰 이념은 자기를 위해 존재
진정한 힘 가치 는 몸 안에 있다
귀이신위천하 애이신위천하 약가탁천하 도덕경 13장제13장
寵辱若驚 (총욕약경)
貴大患若身 (귀대환약신)
何謂寵辱若驚 (하위총욕약경)
寵爲下 (총위하)
得之若驚 (약지득경)
失之若驚 (실지약경)
是謂寵辱若驚 (시위총욕약경)
何謂貴大患若身 (하위귀대환약신)
五所以有大患者 爲五有身(오소이유대환자 위오유신)
及五無身 五有何患(급오무신 오유하환)
故 貴以身爲天下 若可寄天下(고 귀이신위천하 약가기천하)
愛以身爲天下 若可託天下(애이신천하 약기탁천하)
寵: 사랑할 총 辱: 욕될 욕 驚: 놀랄 경 患: 근심 환 寄: 부칠 기, 맡길 기
託: 맡길 탁
총욕약경: 총이나 욕이나 놀랄 일이긴 마찬가지니라(사랑받나 구박받나 한끗 차이)
귀대환약신 : (그러므로) 큰 근심조차 내 몸처럼 귀히 여기라.
하위총욕약경 : 뭐땀시 총욕약경이라 하겠느뇨?
총위하 : 총도 추락하나니(언젠간 사랑도 식는 벱이라)
득지약경 : 얻어도 놀랄 일이고
실지약경 : 잃어도 놀랄 일이니라.
시위총욕약경 : 그래서 총욕약경이라 하니라.
하위귀대환약신 : 어찌하여 대환조차 내 몸처럼 귀히 여기라 하겠느뇨?
오소이유대환자 위오유신 : 내게 대환이 닥치는 까닭은 내가 몸을 가지게 되어서니라.
급오무신 오유하환 : 내가 몸이 없는 지경에 이르면 내게 무슨 근심이 있으리(1.못견디겠으면 걍 죽어부러, 그라믄 근심도 없응께! 2.욕망덩어리 몸을 정화시키면 근심도 없지롱! 3.오늘 하루도 그저 살아있음에 감사하라는 뜻이다. 정답은?)
고 귀이신위천하 약가기천하: 고로, 천하를 내 몸으로서 귀히 하면 천하를 맡을 수 있을 만도 하고
애이신위천하 약가탁천하 : 천하를 내 몸으로서 사랑하면
(역시) 천하를 맡을 수 있을 만도 하다.
일반인으로서 노자를 읽고 시간이 흐르면 머릿속에 남는 말은 거의 딱 하나다.
새·옹·지·마·
이 장만 해도 벌써 '寵爲下(총위하)'가 무슨 뜻인지를 가지고 고민에 고민을 하다가 있지도 않은 '辱爲上(욕위상)을 끼워넣어 '총은 아래가 되고 욕은 위가 된다'거나, 총애는 아랫사람에게만 내려지는 것이니 그 자체로 좋지 않다거나 등으로 해석이 분분하고, 及五無身(급오무신)에 이르러서도 '나'를 뜻하는 말로 五(나 오)와 身(몸 신, 흔히 '나'를 뜻하는 말로 쓰임) 두 글자를 붙들고 대가리 터지게 고민에 빠지기 일쑤다.(총욕약경을 검색해보면 확인됨) '吾 = 我' , '身 = 탐욕덩어리로서의 我'로 보아서 身을 버리면 대환이 없는 진정한 자유를 얻게 된다고 결론을 냈다가 천하를 내 몸 같이 사랑하라는 대목에서 논리 모순을 느껴 또 헤매는 글도 보이더라. 그러다보면 배우기도 싫어지고 다 읽었더라도 맴맴맴일 뿐이다.
도올도 及吾無身 五有何患(급오무신 오유하환; 몸없으면 무슨 근심이 있겠는가?)에서의 身을 '부귀공명을 추구하는 욕망의 주체로서의 身'이라고 설명하면서 無身은 불가에서는 無我(아나트만)으로 이해되고 도가에서는 연단류의 신체단련과 관련된 함의를 지닌다고 설명한다.
노자 역시 끊임없이 마음을 비우라 하고 욕심을 버리라 한다. 그렇다면 도올의 말이 맞구만 뭘 자꾸 따지고 그랴? 떾~ 그런데 말이지..
그런데 욕망이 없으면 삶도 없다. 삶은 욕망 자체다. 욕망을 부정하면 우리는 삶을 논할 수가 없다. 더 큰 욕망을 위해 작은 욕망을 제어해가는 것이지 욕망 자체를 부정하면 삶 자체를 부정하는 것과 다름 없다. 노자가 삶을 부정하는가? 노자가 요로코롬 쎼빠지게 썰을 푸는 이유는 잘살아보라고 그런 거 아님? 잘살아보겠다는 것, 잘산다는 것, 잘살기를 바라는 것 자체가 욕망 아님ㅁ메? 노자는 삶을 아주 강하게 긍정하고 있는 것이다. 삶은 욕망 자체랑께!
문제는 욕망의 색깔이고 질이다. 노자는 그걸 말하고 있는 거라고. 가능한 모두가 멋진 인생그림을 그리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가 노자의 고민일 뿐이다.
진리는 언제나 곁에 있는 법이다. 어렵고 먼 얘기가 진리인@건 아니다.
보편적 이념으로 무장하지 말고 세계를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자기의 생명력에 집중해서 자발성을 만들 수 있어야 한다.
自己가 自己主體가 되었을 때 自發的 個人들이 만든 集團이 강한 集團이다
小國寡民, 일상으로 부터의 혁명, 도덕경 80장
이상 꿈 기준이 독립된 자기 기준으로 보지 못한다.
삶의 樣式이 自己로부터 나오지 않으면 정상이 아니다,
使人復結繩而用之, 甘其食, 美其服, 安其居, 樂其俗 –도덕경 80장
外國旅行, 理想的 基準 왜 밖에 있는가?
普遍的 理念, 내 꿈의 修行者인가? 都市의 匿名性으로 염치 없는 行動 出發한다.
멀쩡한 사람도 豫備軍服만 입혀 놓으면, 都市에 오면, 匿名性으로 廉恥 없는 짓 茶飯事
匿名性 속에 존재하는 인간은 存在意識 갖기 어렵다
집도 없는 놈이 차를 사나?
自律的 幸福을 누리는 존재
普遍的 理念 ㅡ 내 꿈 修行者
바람직한 ㅡ 바라는 것
普遍的 存在 ㅡ 唯一한 存在, 價値있는
내 삶의 原動力은 내가 作動시킨다
나라는 固有名詞로 살다 가겠다는 의지 發現, 社會가 健康하다
#13강 春秋戰國時代 마무리 法家思想
司馬遷, 烈傳ㅡ 학자 정치가,
노자한비열전, 노장신한열전 신불해 한비자 열전
사마천의 철학적 식견의 발로
천명 ㅡ 도
主觀性 ㅡ 透明性
제나라 전상, 간공 시해, 쿠데타, 統治權 正當性
연구소 稷下學宮 設立ㅡ黃老學 雜學, 사상운동, 주류 노자사상 ㅡ총장 좨주 순자, 한비자, 이사 법가 사상 무장
시황, 군현제, 중앙집권제, 분서갱유, 제후국 약화
[ 黃老學派 ]
중국 전국시대와 한(漢) 나라 때에 성행했던 도가 사상의 한 유파로 노자의 사상을 기반으로 묵가, 명가, 법가 등의 사상을 흡수하여 청정무위(淸淨無爲)의 정치사상을 내세웠으며, 노자의 도(道) 개념을 발전시켜 기일원론(氣一元論)의 철학적 전통의 기초를 형성하였다. 황로학파라는 명칭은 중국의 전설에 나오는 황제(黄帝)와 도가 사상의 시조로 전해지는 노자(老子)를 숭앙한 데서 비롯되었다. 전국시대(戰國時代)에는 중국의 시조이자 최초의 제왕으로 여겨지는 황제를 숭앙하는 황학(黃學)이 성행하였다. 황학은 노자의 학설을 기반으로 하고 있었는데 한(漢) 초기에는 황학과 노자의 학설을 하나로 합해서 황로학(黃老學)이라고 불렀고 황로학파라는 명칭은 여기에서 비롯되었다.
黃老學派의 사상은 제(齊) 나라의 교육기관이었던 직하(稷下)에서 학문을 강론했던 환연(環淵)ㆍ전변(田騈)ㆍ신도(愼到)ㆍ접자(接子) 등에 의해 발전되었다. 이들은 황제와 노자의 말을 빌어서 청정무위(淸淨無爲)로 백성을 편안케 하고 어지럽히지 않아야 천하가 안정되고 잘 다스려진다고 주장했다. 한편 ≪사기(史記)≫의 한비자열전(韓非子列傳)에는 법가(法家) 사상을 대표하는 한비자(韓非子)의 형명사상(刑名思想)도 황로학에서 비롯되었다고 기록되어 있어, 황로학파의 사상이 법가 사상의 발전에도 일정한 영향을 끼쳤음을 알려주고 있다.
황로학파의 사상은 한(漢) 나라의 건국 이후에 더욱 성행하였다. 진시황은 법가 사상을 기반으로 강력한 관료체제와 군사조직을 발전시켜 중국을 최초로 통일했지만, 가혹한 형벌과 전제적인 지배 때문에 백성의 반감을 사서 진(秦) 왕조는 오래 존속하지 못하고 멸망하였다. 따라서 한(漢) 나라 건국 초기에 역대 제왕들은 청정무위를 강조한 황로학파의 사상을 기반으로 국가를 다스렸다. 소하(蕭何)ㆍ조참(曹參)ㆍ급암(汲黯)ㆍ전숙(田叔) 등이 이 시기에 대표적인 인물로 활동했다. 그러나 무제(武帝)가 유학(儒學)을 통치이념으로 확립한 뒤에 황로학파의 정치적 영향력은 점차 위축되었고, 후한(後漢) 시대에는 민간을 중심으로 신앙 숭배의 요소가 강조되면서 신비화하여 종교의 색채를 띠게 되었다.
황로학파는 ≪노자(老子)≫와 황제의 저술로 알려진 ≪황제사경(黄帝四經)≫을 주요한 사상적 근거로 삼았다. ≪황제사경≫은 후대에 전해지지 않아 그 자세한 내용을 확인할 수 없었으나, 1973년 후난 성[湖南省] 창사[長沙]의 마왕두이 한묘[馬王堆漢墓]의 고분에서 발견된 <경법(經法)>, <십대경(十大經)>, <칭(稱)>, <도원(道原)> 등의 저술이 ≪황제사경≫의 실전(實傳)으로 여겨지며, 이 기록들이 오늘날 황로학파 사상의 연구에 매우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황로학파는 음양(陰陽) 사상뿐 아니라, 묵가(墨家)ㆍ명가(名家)ㆍ유가(儒家)ㆍ법가(法家) 사상의 장점을 폭넓게 흡수하여 노장사상과는 다른 도가 사상의 새로운 흐름을 형성하였다. 그들은 노자의 도(道) 개념을 발전시켜 자연을 일정한 법칙과 규칙들로 이해하려 했으며, 도(道)를 물질적인 기(氣)의 개념으로 파악하여 기일원론(氣一元論)의 철학적 전통의 기초를 형성하였다. 나아가 우주 만물과 인간ㆍ국가가 동일한 이치에 의해 지배된다고 보고, 청정무위의 도(道)로 수신(修身)과 치국(治國)ㆍ평천하(平天下)를 모두 이룰 수 있다고 하였다. 그래서 유가의 예치(禮治)와 법가의 법치(法治), 명가의 형명설(刑名說)을 종합한 정치사상을 제시하였다. 이러한 황로학파의 무위정치의 이론은 법가와 유가 사상에도 일정한 영향을 끼쳤다.
賤民 劉邦이 英雄이 될 수 있었던 理由
天命克服, 도의 客觀的 秩序 確保, 法으로 歸結
법이 가장 객관적인 것이다, 시황 15년 개혁 무산, 개혁은 혁명보다 어렵다
變化過程, 參與者들 이탈 발생, 농민 진승 王侯將相 씨, 農民反亂, 舊旣得權 勢力, 打擊시 엎드리나, 약하면 동력이 크다
貴族 項羽 와 劉邦 無所信 ,
張良: 舊 貴族 包攝 ㅡ公天下, 君國制 施行 ㅡ封國制와 郡縣制 組合, 봉국제 치고 군현제 시행, 역사 속에 있을 때는 바로 보지 못한다 ,
장량이 장가게 張家界 로 은퇴, 한신 韓信 주발 周勃 兎死狗烹
曹操 三國 統一, 淸淨無爲政策, 約法三章
민간에 自律權 주고 稅收 增大, 65년간 道家思想 政策, 漢武帝 稅收增大로 民間 制御 위해 中央集權制, 철과 소금의 專賣權, 儒家 統治理念, 董仲舒
한말엽, BC 220, 黃巾賊 登場
후한말 184년 道敎的 新興宗敎인 太平道, 장각 張角 이 지도한 農民反亂
ㅡ 漢復興 目的 登場한 劉備 曹操 孫權
道敎 除去 劉備, 孫權
曹操는 道敎 自然主義 勢力, 道家들과 聯合해 儒家들과 함께 魏 建國, 道家와 儒家 짬뽕
위진玄學 思想, 王弼,
[ 魏晉南北朝 ]
중국 역사상 후한(後漢)이 멸망한 다음 해부터 수(隋)의 문제(文帝)가 진(陳)을 멸망시키기까지(221∼589)의 시대. 진(秦)·한(漢)과 수(隋)·당(唐)의 두 통일기를 잇는 정치적 분열시기이고, 문화적으로는 다양하면서도 통일성이 있는 특유한 성격을 지닌 시대이다. 위(魏)는 촉(蜀)·오(吳)와 더불어 삼국이라 하며, 진(晉)은 뤄양[洛陽]에 도읍을 한 서진(西晉)과, 5호16국(五胡十六國)의 난으로 중원(中原)을 잃고 건강(建康:吳의 建業, 지금의 남경(南京)에 도읍을 한 동진(東晉)으로 나뉜다. 그 뒤 송(宋)·남제(南齊)·양(梁)·진(陳) 등 4국의 남조(南朝)가 건강에 도읍했으며, 이들 남조와 오(吳)·동진(東晉)을 합하여 육조(六朝)라 하는데, 이 시대 전체를 지칭하기도 한다.
自性: 위진 현학의 완성
곽상은 위진 현학의 완결자이다. 그런데 以討論名敎與自然的關係問題, 爲魏晋玄學的根本目的. 그렇다면, 위진 현학에서 최종적으로 처리해야 하는 자연과 명교의 문제를 곽상이 어떻게 처리하는가를 살펴보는 것이 위진 현학에서의 그의 역할을 살펴보는데 매우 중요한 일이 된다.
왕필은 우주의 본원과 근거를 밝히는데 중점을 두었다. 숭본식말(崇本息末)의 이론이 그것인데, 현상적 세계인 “유” 즉 명교가 합리적인 것은 그것이 합리성의 원천인 무 즉 자연에 근원을 두고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면서 이 두 세계를 원만하게 연결시키려 하였으나, 여전히 존재성과 가치를 본체의 세계에다 둠으로써 자연에 더 근본적 가치를 둘 수밖에 없는 논리적 특징을 가지고 있다. 혜강이나 완적 등은 노골적으로 명교를 벗어나서 자연에 따를 것을 제시한다. 여기서 명교와 자연의 단절은 매우 분명하다. 반대로 有의 세계 만을 인정하는 숭유론에서도 자연과 명교는 단절된다. 곽상은 이 단절을 통합하여 두 세계를 조화시키려고 하는데, 여전히 “자성” 개념에 근거하여 이 과업을 완수한다.
장자가 “유외”를 “유내”보다 더 높게 보는 것과 달리 그의 해석자 곽상은 “常游外以弘內”를 말한다. 그것을 비유적으로 “몸은 비록 묘당에 있지만, 마음은 산림 속에 있는 것과 다름없다”라는 것으로 표현한다. 곽상은 내와 외를 통일하려고 하는 모습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명교의 현실적인 삶 속에서 정신적인 세계를 수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을 전적으로 정신적인 면으로 해소한다면 그것은 곽상 철학의 전체적인 면모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명교의 현실적인 삶이라는 것은 바로 다름 아닌 자연적인 “자성”을 외적으로 확장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앞에서 말한 대로 곽상은 이 세계에 존재하는 것이라고는 구체적으로 존재하는 개별자들 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이 개별자들은 각자의 “성”을 근거로 독립 자족한다. 이 각각이 가지고 있는 이 “자성”에는 한계와 범위가 정해져 있고,(“物各有性,性各有極”) 이 한계와 범위 속에서 “자성”을 충분히 발휘하는 것이 각 개물들의 자기실현이다.
이 자기 실현이 본성의 한계 내에서 충분히 성취되는 것이 바로 逍遙이고, 그 본성에 따라 제대로 발휘되는 과정은 바로 無爲이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명교”란 현실을 지배하는 가치 체계나 제도 혹은 현실적 활동을 가리킨다. 곽상에게 있어서 이 구체적 삶은 모두 자연적으로 부여 받은 “자성”의 실현 과정일 뿐이다. 장자는 인위성과 천연성을 구분한 후, 천연성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장자ㆍ추수』에서 “소나 말에 다리가 넷인 것은 천연적인 것이고, 말머리에 고삐를 달고, 소의 코를 뚫는 것은 바로 인위적인 것이다.
그러므로 인위적인 것으로 천연적인 것을 파괴하지 말라”고 한다. 곽상은 여기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해석을 한다: “인간이 삶을 영위하는데 소를 부리거나 말을 타지 않고도 가능한가? 소를 부리고 말을 타는데 고삐를 달지 않고 또 코를 뚫지 않고도 가능한가?
소나 말이 고삐를 달거나 코를 뚫는 일을 감당하는 것은 천명에 비추어보아 그것이 진실로 마땅하기 때문이다. 정말로 천명에 딱 들어맞는 일이라면 비록 인간의 작위가 들어간 것이라고 해도 본래는 자연적인 것이다.” 여기서 천명은 바로 “천성”과 같은 말이다. 왜냐하면, “천이라는 것은 자연이라는 말인데” “자연적인 것은 바로 성”으로 연결되고, “명” 또한 인위적이지 않고 모두 자연적인 것일 따름이기 때문이다. 이 뿐만 아니라 곽상에게 있어서는 “각자의 성명을 편안히 받아들인다”와 같은 용법에서 알 수 있듯이 “성”과 “명”이 연용(連用)되어 하나의 의미를 형성한다. 두 개념이 매우 밀접한 의미로 연관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명”이나 “성”은 모두 자연적으로 부여받은 것으로서 그러한 원인을 알 수 없을 뿐 만 아니라 인위적인 조작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다만 “명”이 외적으로 사물이 발전하는 필연적인 방향을 가리키는 것이라면 “성”은 사물이 존재하는 내적인 근거와 규정성을 말하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이처럼 인간에게서도 “명교”와 “자연”은 통일된다. 고삐로 묶이고 코를 뚫리는 일[명교]이 소나 말에게서도 “자연”적 본성의 발현이고, 주동적으로 고삐를 달고 코를 뚫는 일[명교]이 인간에게서도 “자연”적 본성이 발현된 것이다.
그래서 말에 고삐를 달고 소의 코를 뚫는 일이 말이나 소의 천성을 위배하는 인위적 조작이 아니라 바로 천성에 합당한 것이 된다. 소나 말에 고삐를 달고 코를 뚫는 일은 어디까지나 말이나 소에 인위적 조작을 가하는 일로서 “명교”의 범위에 들어가는 일이다. 그런데 이 인위적 “명교”가 바로 고삐를 달고 코를 뚫도록 되어 있는 천성을 발현하는 일이 되어서 “명교”와 “자연”이 하나의 작업 안에서 통일되어버리는 것이다. 소나 말에 대한 인간의 행위 또한 이러하다. 즉 인간은 소나 말에 고삐를 달거나 코를 뚫어서 부릴 수 있는 천성을 자연적으로 부여받았다. 그러므로 인간이 소나 말에 대해서 하는 행위는 인위적 조작이 아니라 인간 천성의 발현인 것이다. 따라서 소나 말에 대한 인간의 행위 즉 “명교”도 인간의 “천성” 즉 “자연”을 발현한다는 의미가 된다.
이처럼 곽상에게서는 “명교”로 표현되는 현실적인 모든 삶의 행위가 “자연”의 “본성”을 구체적으로 체현하는 것이기 때문에 “자연”과 “명교”는 하나로 통일된다. 위진 현학의 주제였던 자연과 명교를 통일하였다는 의미에서 곽상을 위진 현학의 완결자라 하는데, 역시 이런 통일 내지는 완결도 “자성”을 매개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최진석(서강대철학과교수)
劉邦, 曹操 보여지는대로 보는 世界觀,
民間 주도적 自發性으로 국가 발전, 세수 증대
老子 法家와 한 식구, 老子思想이 支配 이데올로기
현실 속 적용, 主導權 民間의 自發性에 依存,
項羽 봐야하는 대로 본 사람, 유비 儒學 이데올로기,
曹操 보이는대로 본 사람, 統治觀 定立
集團속에서 自發的 生命力이 사라지도록 放置하면 안된다.
보이는대로 볼 수 있는 힘, 나의 獨立的 自發性 確保,
集團 속에서 內的 衝動, 自發的 生命力이 보여지는대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동안의 勞苦에 拍手를 보내면서 마칩니다. 즐기시기 바랍니다.
<생명의 서> 유치환 (柳致環,1908~1967)
나의 지식이 독한 회의(懷疑)를 구(救)하지 못하고
내 또한 삶의 애증(愛憎)을 다 짐지지 못하여
병든 나무처럼 생명이 부대낄 때
저 머나먼 아라비아의 사막으로 나는 가자.
거기는 한 번 뜬 백일(白日)이 불사신같이 작열하고
일체가 모래 속에 사멸한 영겁(永劫)의 허적(虛寂)에
오직 알라의 신만이
밤마다 고민하고 방황하는 열사(熱沙)의 끝.
그 열렬한 고독(孤獨) 가운데
옷자락을 나부끼고 호올로 서면
운명처럼 반드시 ‘나’와 대면(對面)케 될지니.
하여 ‘나’란 나의 생명이란
그 원시의 본연한 자태를 다시 배우지 못하거든
차라리 나는 어느 사구에 회한 없는 백골을 쪼이리라. - <동아일보>(1939.9) -
유치환 호는 靑馬. 경남 충무 출생. 1931년 ‘靜寂’으로 등단. [생리]의 동인. 감각 위주의 모더니즘을 거부하고 생명의 본질에 대한 탐구와 열정을 노래한 세칭 ‘생명파’ 시인. 초기에는 허무 의식이 두드러진 낭만적 경향을 보이다가 후기에 생명 탐구의 열정으로 허무 세계의 극복 의지를 보였음. 시집에 <청마시초>,<청령일기>,<보병과 더불어>, <청마시집>등이 있다.
유의의 價値 공부 후에 無爲의 삶이 可能하다
有意的 노력 없는 無爲는 나태해진다
책 읽지마라, 성철스님, 勇猛精進 후에 到達 可能하다,
現代에 道家 接木 ?
이 시대 老子에게 받을 靈感 많다
世上의 흐름, 多樣性 分散 地方移讓 방향으로 가고 있다면 노자에게 인사이트를 구할 수 있을 것이다
世界를 보여지는대로 보자, 理念을 만들어라.
道敎가 縮小되어가는 過程, 天祭 反對, 神權이 王權 對立關係, 테마
好意의 눈빛과 좋은 風磬을 만들어 주셔서 感謝,
境界에선 判斷으로 歷史의 正面에 서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