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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스님 화엄경 입법계품 제46강 (枝末法會, 善住比丘)]
3. 稱讚授法
(1) 智慧의 光明과 一切無碍
時에 善住比丘가 告善財言하사대 善哉善哉라 善男子여 汝已能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하고 今復發心하야 求問佛法과 一切智法과 自然者法이로다 善男子야 我已成就菩薩無碍解脫門하야 若來若去와 若行若止에 隨順思惟하며 修習觀察하야 卽時獲得智慧光明하니 名究竟無碍라 得此智慧光明故로 知一切衆生心行하야 無所障碍하며 知一切衆生歿生하야 無所障碍하며 知一切衆生宿命하야 無所障碍碍하며 知一切衆生未來劫事하야 無所障碍하며 知一切衆生現在世事하야 無所障碍하며 知一切衆生言語音聲種種差別하야 無所障碍하며 決一切衆生所有疑問하야 無所障碍하며 知一切衆生諸根하야 無所碍障하며 隨一切衆生應受化時하야 悉能往赴에 無所障碍하며 知一切刹那羅婆牟呼栗多日夜時分하야 無所障碍하며 知三世海流轉次第하야 無所障碍하며 能以其身으로 往十方一切佛刹하야 無所障碍호니 何以故오 得無住無作神通力故니라
칭찬수법(稱讚授法)이라, 선재동자를 칭찬하고 법을 주는 이야기이지요. 거기에도 몇 개의 단락이 있는데 먼저 지혜(智慧)의 광명(光明)과 일체무애(一切無碍)이지요.
시(時)에 선주비구(善住比丘)가, 그때에 선주비구가
고선재언(告善財言)하사대, 선재에게 고하여 말하되
선재선재(善哉善哉)라, 훌륭하고 훌륭하다.
여기에서 선재선재(善哉善哉)라 할 때와 선재(善財)동자의 선재(善財)는 달라요. 선재동자의 재 자는 재물 재(財)자야, 좋은 재물 아주 훌륭한 재물을 말하고, 그 다음 선재선재(善哉善哉)라 할 때는 좋다 좋다, 너 참 좋은 일을 했다, 좋은 질문을 했다, 훌륭하다 훌륭하다, 그런 뜻이지요.
선남자(善男子)여 여이능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汝已能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하고, 선남자야, 너는 이미 능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발했고
금부발심(今復發心)하야, 지금에 다시 발심을 해서, 또 발심을 해가지고서
구문불법(求問佛法)과, 구하고 물음이로다.
일체지법(一切智法)과, 불법과 일체의 지혜의 법과
자연자법(自然者法), 이것은 제대로 된 이치이지요. 불법이 깨달음의 법이라면, 그 깨달음에 의해서 모든 것을 아는 지혜의 법이고 불법도 어떻게 보면 본래 있는 도리이고, 그것이 자연법이지요.
그래서 불교의 깨달음에 의해서 오는 지혜를 무사지(無師智), 자연지(自然智)라고도 해요. 무사지(無師智), 스승 없이 내 속에서 우러나는 지혜, 자연지(自然智), 누구나 저절로 개발되는, 누구나 저절로 자기 속에서 우러나는 그런 지혜를 무사지(無師智), 자연지(自然智)라고 해요.
여기서 자연자법(自然者法)이라고 하는 건 이미 존재하고 있는 그런 이치를 말합니다.
그런 것을 구문(求問), 구하고 물음이로다.
선남자(善男子)야 아이성취보살무애해탈문(我已成就菩薩無碍解脫門)하야, 나는 이미 보살의 무애해탈문을 성취해서, 걸림이 없는 해탈문을 성취해서
약래약거(若來若去)와, 오거나 가거나
약행약지(若行若止)에, 행하거나 그침에, 행하거나 머물러 있음에,
우리가 오거나 가거나, 가만있거나 걸어가던지 간에
수순사유(隨順思惟)하며, 어떤 상황에 따라서 거기에 맞춰서 사유하며,
수순사유(隨順思惟)가 우리에겐 참 어려운 일이지요. 모두가 역행하는 경우가 많지요. 자꾸 거꾸로 생각을 하고, 어거지로 끼어 맞추려하고, 뭘 만들려고 하고, 자기 분에 맞지 않게 행동하고, 자기가 들인 공보다는 더 앞서서 더 많은 것을 추구하지요.
그런 것에 비해 본다면 여기의 수순사유(隨順思惟)라는 말은 어떤 인연에 맞추고, 도리에 맞추고, 자기 능력에 맞추는 것이지요. 자기의 분에 맞추는, 거기에 따라서 생각할 줄 아는 그게 수순사유(隨順思惟)에요.
수습관찰(修習觀察)하야, 닦고 또 잘 살피고
즉시획득지혜광명(卽時獲得智慧光明)하니, 즉시에 지혜광명을 획득했으니
명구경무애(名究竟無碍)라, 이름이 구경무애라.
이것은 선재비구 자신의 이야기에요.
선남자야, 나는 이미 무애해탈문을 성취했는데 그것을 다른 말로 하면 이름이 구경무애(究竟無碍)이다.
철저히 끝까지 걸림이 없다는 그런 뜻입니다.
득차지혜광명고(得此智慧光明故)로, 이 지혜광명을 얻은 까닭으로
지일체중생심행(知一切衆生心行)하야, 일체중생의 심행을 아는 데 있어서
무소장애(無所障碍)하며, 장애되는 바가 없다.
일체중생의 심행을 알아서 장애되는 바가 없다, 이것은 살다보면 어떤 때는 꼭 필요하지요. ‘아~ 저 중생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나’ 심행(心行)이라는 것은 마음의 움직임이거든요.
저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나, 저 중생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나, 이것을 환히 알아가지고 장애가 없다는 말입니다.
지일체중생몰생(知一切衆生歿生)하야, 일체중생이 죽고 태어나는 것을 알아 가지고서
무소장애(無所障碍)하며, 장애하는 바가 없으며
지일체중생숙명(知一切衆生宿命)하야, 일체중생의 과거를 알아 저 중생은 어떻게 살았고, 또 전생에, 더 전생에 어떻게 살았는지, 몇 생을 살아오면서 어떻게 살아왔는가 하는 것을 전부 알아가지고서
무소장애애(無所障碍碍)하며, 하나도 거기에 의문이 있거나 모르는 바가 없다는 거지요. 그게 무소장애입니다. 장애되는 바가 없다.
지일체중생미래겁사(知一切衆生未來劫事)하야, 일체 중생의 미래를 다 알아,
‘아, 저 중생은 앞으로 어떻겠다, 또 저 중생은 앞으로 어떻겠다’는 것을 알아요. 사주보고 자시고 할 것 없이 그대로 척 관찰만 하며는 그냥 아는 거예요.
그런 것을 알아 무소장애(無所障碍)하며.
선주비구가 어디 계시는지 찾아가서 한 번 물어봤으면 좋겠네요.
미래겁세를 알아 가지고서 장애가 없다, 그것도 한 두 사람 것만 아는 것이 아니라 일체중생의 것을 안다고 했으니
지일체중생현재세사(知一切衆生現在世事)하야, 지금 우리가 어떻게 살고있는 지도 환히 알아가지고 무소장애(無所障碍)하며,
현재 사는 것은 물을 필요도 없고,
지일체중생언어음성종종차별(知一切衆生言語音聲種種差別)하야, 또 모든 중생의 말과 음성의 가지 가지 차별을 알아 가지고 무소장애(無所障碍)하며,
미국 가면 미국 말 하고, 영국 가면 영국 말 하고, 소련 가면 소련 말을 하고, 중국 가면 중국 말을 하되, 이 모든 것을 하나도 배우고 자시고 할 필요 없이 말과 음성의 가지 가지 차별을 환히 알아 가지고 장애됨이 없다는 거지요.
선주비구가 대단한 비구인가 봐요.
결일체중생소유의문(決一切衆生所有疑問)하야, 이것 참 중요한 이야기이지요. 중생들의 의문을 모두 해제해, 결제한 것을 해제한다는 말이에요. 사람 사람들마다 자기 문제가 있지요. 내가 지금 복잡한 문제가 있는데 이걸 도대체 어떻게 해야 될까? 또 어떻게 결말이 날까 하고 참 답답할 때가 많지요.
무슨 문제가 터졌다면 이 문제가 어떻게 결말이 날 것인가를 미리 알고 결정을 하면 좋겠는데 그것을 잘 모르니까 엉터리 결정을 하는 거지요.
또 내가 결정한데로 되지도 않아요. 그대로 안 되니까 결말을 미리 좀 알고서 결정을 했으면 좋겠다 이거지요.
언제쯤 되면 일이 어떻게 돌아갈 것이다, 라는 것을 알고서 결정을 하면 아주 백발백중이겠지요.
또 이런 말 들으면 ‘그럼 증권이나 한 번 해 볼까?’ 싶지요.
미리 다 알면 그런 거 하면 참 좋지. 날씨가 더우니 별소리가 다 나와.
중생들의 소유의문(所有疑問)을 해결해서 무소장애(無所障碍)한다.
지일체중생제근(知一切衆生諸根)하야 무소장애(無所碍障)하며, 일체 중생의 모든 근(根)을 알아서 무소장애하며,
일체중생제근은 중생들의 모든 근기이지요.
‘아, 이 사람은 이런 능력이 있고, 저 사람은 저만치 할 수 있고...’ 이런 식으로 다 알아서 장애가 없으면 일을 맡길 때도 좋고 서로가 좋겠지요.
수일체중생응수화시(隨一切衆生應受化時)하야, 실능왕부(悉能往赴)에 무소장애(無所障碍)하며, 이건 뭔 말인고 하니
일체 중생들이 교화를 맞추어서 받을 그러한 때를 따라서,
그러니까 이 중생은 지금 절에 가자고 하면 되겠다, 저 중생은 오늘 공부하러 가자고 하면 되겠다, 안 되겠다, 이번에 기도하러 가자고 하면 되겠다, 안 되겠다 하는 이거예요.
중생들이 교화를 맞추어서 받을 그 때, 교화를 거기에 응해서 받아들이는 그러한 때를 따라서 실능왕부(悉能往赴)라, 다 능히 그 사람에게 나아간다는 말이지요. 그 사람에게 나아가서 그 사람을 인도하고 교화하는 데 무소장애라.
그 때가 아직도 아닌데 말이지요, 가서는 “아, 기도하면 좋단다 어쨌단다” 하지요. 예를 들어서 “이번 백중에 부모 천도해라” 했더니 천도가 좋다며 그게 뭔지도 모르는 사람을 억지로 끌고 가면 되나요, 그게? 안 된다 이거요.
그 때를 잘 봐가지고 거기에 맞춰서 일체중생응수화(一切衆生應受化), 교화를 받아들일 그런 때에 따라서, 그때 딱 가서는 절에 가자고 하면, ‘아 좋다, 기다렸다’고 기다렸다는 듯이 따라나서는 거예요. 그때는 무슨 이야기를 해도 시키는 대로 다 하지요. 시주 백 만원 해라해도 오케이야. 딱 딱 맞을 때는 문제가 없다고요. 그런데 그렇지 아니 할 때 강요하면 괜히 반감만 생기고 오히려 더 늦어진다고요.
그러니까 뭐든지 무턱대고 하지 마세요. 시간을 기다려야 해요. 시절인연이 도래하면 모든 게 자연스럽게 풀려요. 이 시간이라는 것은 중요한 인연입니다. 시간이 흘러가면 제대로 풀려요, 조금만 노력해도 되지요. 그런데 시간이 안 되면 노력은 노력대로 들고 성과는 성과대로 안 나고 도로 일을 그르쳐놓기도 하고 그래요.
그러니까 불법을 공부하는 사람은 침착하고 차분하게 때를 기다릴 줄도 알고, 좀 느긋하고 그래야 돼요. 그러면서 그 동안에 생각하는 거예요. 가만히 문제를 통해서 지혜롭게 생각할 줄 알아야지요. 정말 결정 그것은 급하지 않다고요. 절대 급하지 않습니다. 빨리 결정해라 그러는 데 급할 거 하나도 없어요.
결정은 시간이 가면 되게 되어 있어요, 자연스럽게 오게 되어 있어요. 결정은 어떤 의미에서 보면 결실과 같아요.
미리 결정해 놓는 것은 사실 별 의미가 없어요. 중생이 섣불리 결정해 놓은 일은 많이 바뀌잖아요, 계속 바뀌고 번복되지요. 아니다, 맞다 하고 자꾸 그렇게 번복이 되잖아요. 그건 왜 그러냐? 아직도 때를 몰라서 그래요.
그럼 결정하지 말고 그냥 미뤄요. 미루면 저절로 물이 흘러가는 대로 제 갈 길대로 가게 된다고요. 가게 되면 그게 내가 결정할 바라.
얼른 생각하면 사람이 우유부단(優柔不斷)하고 아무 자기 주관도 없는 것처럼 생각될지 모르지만, 아니에요. 그렇게 시간을 두고 생각을 할 줄 아는 그 사람이야말로 지혜로운 사람이에요.
여기에서는 중생을 교화할 때 그 교화를 받아들일 수 있는 때를 따라서 그때 말하라, 그때 다 능히 나아가는 데 아무 장애가 없다고 했어요.
선주비구는 그런 것을 아주 잘 알고 있어요.
그리고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을 이 선주비구는 다 가지고 있어요.
그 다음, 지일체찰나라파모호률다일야시분(知一切刹那羅婆牟呼栗多日夜時分)하야 무소장애(無所障碍)하며, 찰나는 짧은 시간의 단위이지요. 라파(羅婆)는 그 다음의 시간의 단위이지요. 찰나보다는 조금 더 긴 시간이지요. 찰나가 초라면 라파는 분이 되고 그 다음은 시가 되고 그렇지요. 여기서는 그 보다 훨씬 짧은 거예요. 분이나 초보다 훨씬 짧은 거예요. 찰나(刹那), 라파(羅婆), 모호(牟呼), 율다(栗多), 그리고 일야(日夜), 시분(時分), 이런 것을 알아가지고서 무소장애라.
어떤 시간의 최소단위를 알아가지고서 장애가 없다.
지삼세해유전차제(知三世海流轉次第)하야, 과거 현재 미래의 삼세가 바다처럼 계속 유전하는 그런 순서와 차례를 잘 알아가지고서 무소장애(無所障碍)하며, 장애가 없다.
능이기신(能以其身)으로, 능히 그 몸으로, 자기의 그 몸으로
왕시방일체불찰(往十方一切佛刹)하야, 시방 일체 불찰의 변환에 두루두루 가서 무소장애(無所障碍)호니, 장애하는 바가 없으니.
선주비구는 그렇게 능력이 뛰어난 비구이다.
하이고(何以故)오, 왜 그러냐? 이것을 얻었기 때문이다.
득무주무작신통력고(得無住無作神通力故)니라, 무주(無住)의 도리를 얻었고, 무작(無作)의 도리를 얻었고, 신통력을 얻었기 때문이다.
무주(無住), 무작(無作), 신통력 이 세 가지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어디에 머무름이 없어 그래서 선주(善住)이지요. 착할 선(善)자, 머무를 주(住)자, 잘 머문다는 거지요. 잘 머문다는 말은 어디에도 머물지 않는다는 거예요. 어디에 머물러 있어도 그건 그냥 있는거에요. 그냥 있을 뿐이야.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고, 언제든지 떠날 수 있어요. 떠나면서도 언제든지 머물 수 있는 그게 선주(善住)지요.
그게 잘 머무는 사람의 머묾입니다.
금강경에 보면 묘행무주(妙行無住)라는 말이 있지요. 아름다운 행위는 어디에 머물지 않는다. 그러니까 둥둥 떠다닌다는 뜻이 아니라 집착하지 않는다는 뜻이지요. 십년 이십 년을 머물러 있어도 언제든지 떠날 수 있는 그런 자세, 그게 무주(無住)의 도리입니다.
무주(無住)와 무작(無作), 조작이 없는 거지요. 수연무작(隨緣無作)이라고 해서 인연 따라서 조작 없이 사는, 물 흐르듯이 사는 어떤 원리이지요.
그리고 밑에는 신통력 이야기가 나오는데 신통력을 알아가지고 그런 것을 얻었기 때문이다, 그렇습니다.
(2) 神通力의 衆生敎化
善男子야 我以得此神通力故로 於虛空中에 或行或住하며 或坐或臥하며 或隱或顯하며 或現一身하며 或現多身하며 穿度牆壁을 猶如虛空하며 於虛空中에 結跏趺坐하야 往來自在를 猶如飛鳥하며 入地如水하며 履水如地하며 身上下에 普出煙焰을 如大火聚하며 或時에 震動一切大地하며 或時에 以手摩觸日月하며 或現其身이 高至梵宮하며 或現燒香雲하며 或現寶焰雲하며 或現變化雲하며 或現光網雲호대 皆悉廣大하야 彌覆十方하며 或一念中에 過於東方一世界二世界와 百世界千世界百千世界와 乃至無量世界와 乃至不可說不可說世界하며 或過閻浮提微塵數世界하며 或過不可說不可說佛刹微塵數世界하야 於彼一切諸佛國土의 佛世尊前에 聽聞說法호대 一一佛所에 現無量佛刹微塵數差別身하며 一一身에 雨無量佛刹微塵數供養雲하노니 所謂一切華雲과 一切香雲과 一切鬘雲과 一切末香雲과 一切塗香雲과 一切蓋雲과 一切衣雲과 一切幢雲과 一切幡雲과 一切帳雲이라 以一切身雲으로 而爲供養하야 一一如來의 所有宣說을 我皆受持하고 一一國土의 所有莊嚴을 我皆憶念하며 如東方하야 南西北方과 四維上下도 亦復如是호니 如是一切諸世界中에 所有衆生이 若見我形하면 皆決定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하며 彼諸世界一切衆生을 我皆明見하고 隨其大小勝劣苦樂하야 示同其形하야 敎化成就하며 若有衆生이 親近我者면 悉令安住如是法門이로다
두 번째는 신통력(神通力)의 중생교화(衆生敎化)라, 신통력을 가지고 중생을 교화한다고 했는데 신통력이란 불교에서 흔히 쓰는 말이긴 한데 어떻게 보면 초능력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여기에 그런 이야기가 있어요. 초능력이라고 해서 특수한 능력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사실은 우리 마음의 작용을 신통이라 합니다.
더우니까 그냥 더운 걸 알지요. 조금 시원하면 시원한 걸 안다고요. 그보다 더 훌륭한 신통은 없다고 봐요.
경전에도 그러한 말들이 많이 있습니다. 방거사 게송에도 보면
신통겸묘용(神通兼妙用)이요, 신통묘용이란 것이 뭐냐?
운수급반시(運水及搬柴)라, 물을 길러 오고 땔나무를 운반할 줄 아는 바로 그것이 신통력이다, 라고 했는데 사실이 그래요.
우리가 지금 이렇게 분별하고, 인식하고, 거기에 따라서 행동을 할 줄 아는 그 능력이 그대로 제일 좋은 신통력입니다. 더 이상 달리 다른 신통을 찾을 게 없어요. 그게 정말 훌륭한 신통이에요. 가만히 생각해봐요, 우리가 얼마나 신묘하고 신통하게 하루 하루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요. 정말 신통하게 살아가고 있거든요.
볼 줄 알고, 들을 줄 알지요. 보는 것도 어디 한 가지만 볼 줄 아나요? 산만 보는 것이 아니고 물도 볼 줄 알고 구름도 볼 줄 알아요, 비가 오면 비 오는 것도 볼 줄 알고 온갖 수많은 사람들의 차별된 얼굴을 낱낱이 그 생긴 모습대로 차별되게 볼 줄 알아요, 어떻게 그렇게 볼 줄을 알아요. 그런 신통력이 없으면 그냥 형태만 분별할 줄 알거에요. ‘아, 저건 사람이다’ 이렇게만 분별할 텐데 정말 여러분의 신통이 장하기 때문에 그 천만 사람의 얼굴이 전부 다르다고 하는 것까지 낱낱이 분별을 합니다. 낱낱이 분별을 하고는 ‘아, 저 사람은 얼굴이 저러니까 성격이 어떨 것이다, 생활수준은 어떨 것이다’ 하고, 그 나름대로 감지를 하고 짐작을 하고 평가를 하고 있다고요. 보통 신통입니까, 그게? 보통 신통이 아니에요.
진정한 신통은 말하자면 우리의 삶에서 볼 수 있는 그런 것이라고 이해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이고,
여기에서는 보통 말하는 어떤 초능력보다도 특수한 어떤 방편으로서의 신통력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선주비구는 또 이러한 특별한 초능력 신통력을 가졌다는 겁니다. 자기가 자기의 신통을 자랑하는 거예요
앞에서 신통력을 얻었다고 그랬지요.
선남자(善男子)야 아이득차신통력고(我以得此神通力故)로, 이 신통력을 얻은 까닭에
어허공중(於虛空中)에 혹행혹주(或行或住)하며, 저 허공 가운데서 걸어 다니기도 하고 혹은 머물러 있기도 하고
혹좌혹와(或坐或臥)하며, 혹은 허공에 앉아있기도 하고, 혹은 허공에 누워있기도 하고,
혹은혹현(或隱或顯)하며, 혹은 어디에 갔는지 숨어서 도대체 안 나타나며, 그러다 또 눈앞에 턱 나타나 있기도 하고,
혹현일신(或現一身)하며 혹현다신(或現多身)하며, 혹은 몸 하나를 나타내 보이기도 하고, 혹은 같은 사람이 여러 백 명 천명이 쫘악 나타나 보이는 것 같이 그렇게 신통을 보이기도 하고
천도장벽(穿度牆壁)을, 살아있을 때도 그냥 뚫고 지나가요. 문을 꼭꼭 닫아 놔도 벽을 뚫고 이쪽 방 저쪽 방을 왔다 갔다 한다는 말입니다. 천도장벽이란 말은 그런 말입니다.
유여허공(猶如虛空)하며, 허공을 다니듯이 아무 변이 걸림이 없다.
어허공중(於虛空中)에 결가부좌(結跏趺坐)하야, 허공 가운데 올라가서 가부좌를 떡 맺고 앉아서
왕래자재(往來自在)를 유여비조(猶如飛鳥)하며, 오고감이 자유자재해서 날아다니는 새처럼 한다 이거예요. 새가 날아다니듯이 그렇게 한다는 거지요.
입지여수(入地如水)하며, 땅 속에 들어가기를 물 속에 들어가듯이 하며
이수여지(履水如地)하며, 물 위를 걸어 다니기를 땅위를 걸어 다니듯이 하며,
다른 신통은 놔두고 요거 하나만 가지면 중생들 교화 많이 하겠는데요. 다른 신통 다 제쳐놓고 요거 하나만 딱 보여주면 기겁을 않을 사람 누가 있겠어요.
물위를 보란 듯이 이렇게 걸어가는 거예요. 서 있으면서 다 나와보라 하고 하루 종일 그냥 걸어 다니는 거에요. 장삼 턱 입고 삿갓 쓰고 지팡이 짚고 그냥 걸어 다니는 겁니다.
그럼 그것만 보고도 다 교화가 되리라는, 내가 이걸 보면서 이런 좀 만화 같은 생각이 나더라고요. 이게 정법은 아니라 하더라도 교화의 방편으로는 괜찮은 거고 재미있는 거다 이거예요.
신상하(身上下)에 보출연염(普出煙焰)을, 온 몸 상하에서 불 타듯이 연기와 불꽃이 사정없이 그렇게 내뿜는 것을
여대화취(如大火聚)하며, 큰 불무더기 같이 그렇게 하며,
혹시(或時)에 진동일체대지(震動一切大地)하며, 혹은 천둥치고 벼락 치듯이 그렇게 대지를 진동시키기도 하고
혹시(或時)에 이수마촉일월(以手摩觸日月)하며, 혹은 손을 뻗어서 해와 달을 만지기도 하고, 신통이 대단하지요.
선주비구는 그런 분입니다.
혹현기신(或現其身)이 고지범궁(高至梵宮)하며, 혹은 그 몸을 얼마나 크게 나타내는지 저 범천의 궁전, 저 멀리 토성 금성까지 뻗친다 이거에요.
혹현소향운(或現燒香雲)하며, 혹은 향을 사를 때의 커다란 구름덩이 같은 모습을 나타내며
혹현보염운(或現寶焰雲)하며, 혹은 보배구름이 활활 타오르는 듯한 그런 구름을 나타내기도 하며
혹현변화운(或現變化雲)하며, 바람 따라서 여러 가지 모습을 나타내는 그런 구름을 나타내기도 하고
혹현광망운(或現光網雲)호대, 큰 그물이 쳐져있듯이 그런 광명의 구름을 나타내기도 하며
개실광대(皆悉廣大)하야, 모두가 크고 커서
미부시방(彌覆十方)하며, 온 세상을 그 구름이 가득 덮어버리며
혹일념중(或一念中)에, 혹 한 생각 가운데서
과거동방일세계(過於東方一世界二世界)와 백세계천세계(百世界千世界百千世界)와, 과거 동방으로 일 세계, 이 세계, 백 세계, 천 세계, 백천 세계와 내지무량세계(乃至無量世界)와, 내지 무량세계와
내지불가설불가설세계(乃至不可說不可說世界)하며, 내지 불가설 세계를 지나가,
한 순간에 그 많은 세계를 휙 가버리니 손오공의 신통은 저리 가라이지요.
예를 들어서 여기서부터 화성, 금성, 토성 그런 곳까지 지나가기를 일념중이라 했으니 순식간, 일초사이에 그렇게 지나가는 거에요. 그랬다가 퍼뜩 돌아오기도 하고 그러지요.
그러니까 여기서 미국 가는 건 말할 것도 없지요.
우리나라에서 미국 갔다가, 미국에서 여기 왔다가 하는 것은 어쩌면 동시에 이렇게 몸을 나툴 수도 있겠지요.
혹과염부제미진수세계(或過閻浮提微塵數世界)하며, 혹은 염부제 미진수 세계를 지나가며
혹과불가설불가설불찰미진수세계(或過不可說不可說佛刹微塵數世界)하야, 불가설 불가설 불찰 미진수 세계를 또 지나가서
어피일체제불국토(於彼一切諸佛國土)의 불세존전(佛世尊前)에, 모든 부처님 세존 앞에서
청문설법(聽聞說法)호대, 부처님 세계에 가서 떡 앉아서 법문을 듣는데
일일불소(一一佛所)에, 낱낱 부처님 처소에, 한 부처님 처소에만 몸을 나투어서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고, 낱낱 부처님 처소에서
현무량불찰미진수차별신(現無量佛刹微塵數差別身)하며, 무진장하게 많은 그런 여러 몸을 나퉈 가지고 낱낱 부처님 앞에 앉았다는 거지요. 이 부처님 앞에도 선주비구가 앉아있고 저 부처님 앞에도 선주비구가 앉아있고 별별 부처님 처소에 그 사람이 다 앉아 있으며
일일신(一一身)에, 낱낱 몸에서
우무량불찰미진수공양운(雨無量佛刹微塵數供養雲)하노니, 부처님께 올리는 어떤 공양의 구름을 비 내리듯이 그냥 몸에서 쏟아 붓는 거지요. 그 구름은
소위일체화운(所謂一切華雲)과 일체향운(一切香雲)과, 일체 꽃구름과 일체 향구름,
일체만운(一切鬘雲)과 일체말향운(一切末香雲)과, 일체 꽃타래구름, 일체 가루향구름,
일체도향운(一切塗香雲)과, 도향은 몸에 바르는 향이지요, 바르는 향의 구름과
일체개운(一切蓋雲)과, 해가 났을 때 해를 가리는 덮개 구름과 일체의운(一切衣雲)과, 일체 옷으로 된 그런 구름과
일체당운(一切幢雲)과, 일체 깃발구름과
일체번운(一切幡雲)과, 당(幢), 번(幡)이라고 그러지요. 나눠서 쓰지요, 번의 구름과
일체장운(一切帳雲)이라, 일체 장막구름과, 예를 들어 커텐 같은 것을 장(帳)이라고 하는데 그런 장의 구름과
이일체신운(以一切身雲)으로, 일체 몸의 구름으로서
이위공양(而爲供養)하야, 부처님께 공양을 삼아서
일일여래(一一如來)의, 낱낱 여래의
소유선설(所有宣說)을, 부처님마다 설하신 모든 것들을
아개수지(我皆受持)하고, 내가 다 그것을 받아 가지고
일일국토(一一國土)의 소유장엄(所有莊嚴)을, 낱낱 국토의 장엄되어 있는 것을
아개억념(我皆憶念)하며, 그 많은 국토를 지나고 겪고 한 것을 전부 기억하며
여동방(如東方)하야 남서북방(南西北方)과 사유상하(四維上下)도 역부여시(亦復如是)호니, 동방을 그렇게 하듯이 남서북방과 사유상하도 또한 이와 같이 한다.
여시일체제세계중(如是一切諸世界中)에, 낱낱 모든 세계 가운데
소유중생(所有衆生)이, 있는 바 모든 중생들이
약견아형(若見我形)하면, 만약에 나의 형체를 볼 것 같으면
개결정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皆決定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하며, 모두가 결정코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어, 틀림없이 얻어, 결정득(決定得)이란 말은 틀림없이 얻는다는 말이지요.
행선축원(行禪祝願)에 그런 말이 있지요.
문아명자 면삼도(聞我名者 免三道) 견아형자 득해탈(見我形者 得解脫).
행선축원문은 아침에 하는 발원문인데 그분은 발원하기를 자기 인격이 얼마나 훌륭해지기를 소원했는고 하면, 모든 사람이 나의 이름만 들어도 지옥, 아귀, 축생 삼도의 고통을 면하고, 모든 사람이 나의 모습만 보더라도 해탈을 얻어지이다, 이렇게까지 발원을 했어요.
절에서 예불할 때 아침에 축원하는 축원문이 그렇게 되어 있지요. 말하자면 이런 것이 마음 이야기이지요.
나의 형상을 본다면 틀림없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으며,
피제세계일체중생(彼諸世界一切衆生)을 아개명견(我皆明見)하고, 내가 다 밝게 보고
수기대소승열고락(隨其大小勝劣苦樂)하야, 그들의 대소 수승하고 하열한 여러 가지 고(苦)와 낙(樂)을 따라서
시동기형(示同其形)하야, 그 형상을 같게 해 보여서
교화성취(敎化成就)하며, 교화하고 성취하며
약유중생(若有衆生)이 친근아자(親近我者)면, 또 어떤 중생이 나를 친근하는 사람이면
실영안주여시법문(悉令安住如是法門)이로다, 다 모두 이러한 법문에 안주하게 한다.
4. 謙己推勝
善男子야 我唯知此普速疾供養諸佛成就衆生無碍解脫門이어니와 如諸菩薩은 持大悲戒와 波羅蜜戒와 大乘戒와 菩薩道相應戒와 無障碍戒와 不退墮戒와 不捨菩提心戒와 常以佛法으로 爲所緣戒와 於一切智에 常作意戒와 如虛空戒와 一切世間無所依戒와 無失戒와 無損戒와 無缺戒와 無雜戒와 無濁戒와 無悔戒와 淸淨戒와 離塵戒와 離垢戒하나니 如是功德을 而我云何能知能說이리오
여기까지 선주비구가 법문하기를 자기의 신통과 자기가 가지고 있는 법력과 거기에 따른 선재동자에게 일러줄 법문과 이런 것들을 주욱 소개를 했어요. 그렇게까지 훌륭한 이야기를 해 놓고는, 이런 뛰어난 신통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겸기추승(謙己推勝)이라, 자기 자신을 아주 못났다고 하며 나보다 더 나은 사람을 소개하는 거지요.
겸기(謙己), 자기 자신을 겸손해 하고 추승(推勝)이라, 나보다 더 나은 사람 승(勝)자이지요. 아, 나는 이 정도 밖에 모르지만 내가 소개하는 이 사람은 대단한 사람이야. 내가 어찌 이러이러한 것들을 알 수 있겠나. 라고 이야기를 한 거지요.
그러한 과정에서 나오신 말씀이 계(戒)에 대한 이야기예요. 겸기추승의 내용이 다른 분을 소개를 하는데 말인즉슨, 계율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계(戒)라고 하면 신도님들은 오계(五戒)가 있지요. 오계를 받고 신도가 되기도 하고 또 보살계를 받아서 더 보충하기도 하고, 또 처음부터 바로 보살계를 받기도 합니다.
그리고 팔관계(八關戒)라는 계도 있는데 그것은 흔히 받는 계는 아니지요. 제일 기본적인 계로 오계를 많이 이야기하고 그 다음 보살계를 이야기 합니다. 사실 순서상은 오계, 보살계 이렇게 받는 것이 좋아요.
오계를 설하는 것은 대개 어떤 계기가 있을 때이지요. 수련회를 3일 동안 했다든지, 아니면 철야정진이라도 했다든지, 아니면 불자로서 입회해서 한 일 년간 법회를 들었다든지, 칠일기도, 백일기도를 마쳤다든지 이런 계기에 한해서 오계를 설해서 불자로서 약속을 받는 그런 의식이 우리나라에는 많지요.
그 다음에 보게 되면 으레 큰절에서 설해지는 보살계라는 것이 있는데 이 보살계가 소개는 많이 되어있습니다. 특히 범어사 같은 경우에는 무려 백회를 했을 정도이니까요.
이 보살계가 사실은 대승계, 화엄경의 계입니다. 대승계(大乘戒)라고도 하고 보살계(菩薩戒)라고도 하고 심지계(心之戒), 마음의 계라고도 이야기를 해요.
여기서 우리가 꼭 알아야 할 것은 육조스님께서도 그런 말씀을 하셨지만, 심지무비(心地無非)자성계(自性戒)라, 마음에는 본래 아무런 허물도 없다는 거예요. 아무런 허물도 없어. 마음자리에 무슨 허물이 있겠어요.
우리가 살다보니까 이런 저런 사정에 의해서 말하자면 잘못도 저지르고 거짓말도 하고, 계와 위배되는, 윤리 도덕에 위배되는 그런 일을 본의 아니게 저질렀지 본래 우리의 마음자리에는 전혀 그런 게 없다는 거예요.
그걸 아는 게 대승계이고 심지계(心之戒)이고 마음 닦는 계, 마음의 계라는 거지요. 그걸 알아야 돼요. 그걸 알아야 제대로 정말 값진 것을 아는 것이 되는 거지요.
해라, 말아라, 무슨 살생을 하면 안 된다 하는 그것도 물론 중요한 계이지만 그러한 계에 머무르는 것은 어찌 보면 소승적인 계인 거지요.
살생이라 하더라도 본래 우리의 마음자리에는 살생이 없는 거지요. 살생이 없는 청정한 마음의 세계, 아주 훌륭하고 뛰어난 마음의 세계, 온갖 신통묘용과 영원한 생명력을 가지고 있는 그러한 마음의 세계를 아는 것이 진짜 좋은 계(戒)라는 거지요.
우리가 흔히 말하는 보살계의 정신이 바로 그거에요. 그것을 대승계, 보살계, 심지계라 하지요.
결국은 우리의 무한한 능력과 영원한 생명인 그 마음자리를 어떻게 하면 일깨워 줄 것인가, 그 일깨워 주기 위한 하나의 방법으로서 보살계도 말하고 오계도 말하고 사미십계도 말하고, 스님들이 받는 250계도 말하고 348계도 말하고 여러 가지 계를 말하기도 해요.
그것도 이제 마음을 일깨워주는 하나의 방편이지요.
이처럼 화엄경에서 보살계, 대승계라고 하는 것은 바로 그 마음을 찔러서 그것을 이해시키는 그러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어요, 아울러 계에 대한 간단한 상식도 그렇게 말씀을 드리게 됩니다.
여기에 선주비구가 말하기를
선남자(善男子)야 아유지차보속질공양제불성취중생무애해탈문(我唯知此普速疾供養諸佛成就衆生無碍解脫門)이어니와, 선남자야, 나는 오직 보속질공양제불하고 성취중생 무애해탈문만 오직 안다.
아유지(我唯知)라 그랬지요. 나는 오직 이러한 것만 안다,
그러니까 부처님 앞에 나아가서 공양을 올리고 중생들을 성취시키고, 중생들을 제도하는 이러한 대해탈문만 알지만, 다른 저 보살들은 어마어마한 것을 안다. 그것을 내가 어떻게 알겠느냐.
여제보살(如諸菩薩)은, 저 여러 보살 같은 이들은
지대비계(持大悲戒)와 바라밀계(波羅蜜戒)와 대승계(大乘戒)와 보살도상응계(菩薩道相應戒)와, 보살도를 닦음과 맞아 떨어지는 그런 계와
무장애계(無障碍戒)와 불퇴타계(不退墮戒)와, 다시는 떨어지지 않고 물러서지 않는 그런 계와
불사보리심계(不捨菩提心戒)와, 보리심을 버리지 않는 계와
상이불법(常以佛法)으로, 항상 불법으로써
위소연계(爲所緣戒)와, 인연 하는 바가 항상 불법과만 인연되어 있는 그런 계이지요.
그것은 놀러갔다 하면 절이고, 일을 했다 하면 부처님 일, 불사인거지요. 상이불법(常以佛法)으로 위소연계(爲所緣戒), 그런 사람들이 더러 있지요.
집에 일은 십분의 일도 할까 말까하고 그냥 노다지 절순이가 되어 있는, 보면 그런 사람이 있어요. 참 고맙긴 한데 좀 지나친 데가 있지요. 날씨가 더우니까 오늘 실수도 많이 합니다.
여기에 그 말입니다. 상이불법(常以佛法)으로 위소연계(爲所緣戒)라, 전부 불법하고만 인연이 됐다는 겁니다. 참 좋은 말은 좋은 말이지요.
그리고
어일체지(於一切智)에 상작의계(常作意戒)와, 모든 지혜에 있어서 항상 생각을 짓는, 지혜로써 생각을 짓는 그런 계와
여허공계(如虛空戒)와, 허공과 같은 계와
일체세간무소의계(一切世間無所依戒)와, 일체 세간에 의지할 바가 없는 그런 계와,
일체 세간은 무소의야 사실은. 의지할 바가 있어서 딱 대어 주면 다 의지하지요. 그런데 세간은 그렇게 의지하도록 되어있지 않아요. 일체세간이 무소의(無所依)라고요. 이것도 하나의 계입니다. 그것을 깨닫는 것도 계입니다.
불교라는 것이 세상을 늘 허망하고 부정적인 것으로 보고, 상징적인 것으로 보는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어쩌면 잘못됐을 수도 있지만 평소에 부처님으로부터 이런 교육을 좀 받아놔야 돼요.
그 전에 있었던 일이지만 부산의 불교 신도들 중에서는 대표격인 그런 사람이 사업이 망했다고 해서 남 생각은 조금도 없이 그냥 푹, 자살을 해 버렸다는 겁니다. 그게 왜 그래요. 내가 생각하기에 부끄럽기도 하고, 불교가 뭐하는 건가 싶기도 해요.
아, 불교단체의 대표라는 사람의 마음 속에 불법이 하나도 제대로 자리 잡고 있지 못했다면 그게 도대체 어떻게 된 거냐고요.
그러니까 평소에 이런 경전을 들어놔야 돼요. 좀 섭섭하더라도 일체세간무소의계(一切世間無所依戒)라고, 세간의 것은 하나도 믿을 게 없다는 것을 알아야지요. 세상사? 하나도 믿을 게 없어요. 의지할 바가 없어요. 전혀 의지할 바가 없는, 이게 계라고요. 이런 계를 우리가 받아놔야 돼요.
이런 계를 받아 놓으면 언젠가는 쓸 데가 있어요. 이것 때문에 쓸 데가 있어요. 그래서 자기 자신을 잃지 않는 거예요. 결국은 그런 경황 중에서 자기 자신을 살릴 수 있는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는 그런 기회가 열린다고요.
사업이야 망하면 또 일으키면 되지, 본래 사업이 있었나요? 없던 사업 일으켰으면 망했다 해도 또 일어날 수도 있는 거지요. 그런 생각이 도대체 안 돌아가는 거야. 이런 계를 받아야 된다고요, 이 계를 아마 안 받았나 봐요, 다른 계만 받은 모양이라.
이 아주 중요한 계에요. 일체세간무소의계(一切世間無所依戒).
무소의 뿐만 아니라 무실계(無失戒)와 무손계(無損戒)라, 또 어떻게 보면 하나도 잃어버릴 것도 없고 손해 볼 것도 없는 그런 계
무결계(無缺戒)와, 결함도 하나도 없는 계와
무잡계(無雜戒)와, 섞임이 없는 그런 계
무탁계(無濁戒)와, 탁함이 없는 그런 계와,
이것이 전부 청정한 마음의 세계에요.
무회계(無悔戒)와, 본래 이런 자리는 참회할 것도 뉘우칠 것도 하나 없는 그런 계에요.
청결계(淸淨戒)와, 그리고 청결계와,
이진계(離塵戒)와 이구계(離垢戒), 모든 먼지와 때를 떠난 계입니다.
이게 뭡니까? 심지계예요. 보살계라는 것은 심지계(心之戒)입니다.
마음의 계입니다. 우리 마음에는 본래 그런 게 없어요. 어떤 허물도 없다고요. 어떤 허물도 없는데 사업이 뭐가 있겠어요. 사업은 구름처럼 떠도는 거예요. 일어났을 때는 있고, 사라졌을 때는 없는 게 사업이지요. 그렇지만 태양은 저 푸른 하늘을 이고 항상 그대로 있는 거예요. 그게 우리의 자신이라고요.
그래서 부처님은 제자들이 어떤 슬픔을 당했을 때 항상 하시는 법문이, 자등명 법등명(自燈明 法燈明), 네 자신을 등불로 삼고 진리의 가르침을 등불로 삼아라, 그 외는 등불로 삼지 말라, 부처인 나도 아무 것도 아니라 이거지요. 왜 그것을 등불로 삼느냐는 거지요.
자귀의 법귀의(自歸依 法歸依), 네 자신을 의지하고 진리의 가르침을 의지하라, 그 외는 아무도 의지하지 말라.
귀의 불, 귀의 법, 귀의 승 다 있지만은 종국에 가서는 너 자신이야말로 진정한 최후의 의지처다, 최후의 보루이다. 그리고 진리의 가르침, 그러한 것을 이해시켜 주는 진리의 가르침이야말로 최후의 보루이고 마지막으로 의지할 곳이지 그 외의 다른 것은 아무 것도 의지할 것이 없다는 말씀을 부처님께서는 자주 하셨습니다.
왜냐? 많은 신도들과 많은 제자들을 거느리고 인연을 맺고 살다보면 조금만 슬프거나 조금만 섭섭해도 부처님께 쫓아오잖아요. 쫓아와서는 “내가 이러이러한 일이 있었습니다”, 하고는 울고 불고 짜고 야단이거든요.
그러니까 부처님은 결국은 그 말밖에는 할 수가 없는 거예요. 네 자신을 의지하고 진리를 의지하라, 그 외의 다른 아무 것도 의지할 것이 없다.
들어 두면은 지금은 이게 재미없는 말일지 모르지만 나중에는 득이 되지요.
양약(良藥)은 고구(苦口)이나 이어병(利於病)이라, 입에는 쓰지만 나중에 병이 들었을 때는 좋은 치료가 된다고요. 지금 병이 안 들었으니까 무슨 소리인가 싶지, 나중에 병이 들었을 때는 이런 양약이야말로 제일 필요한 그런 가르침이 됩니다.
‘아이고 우리집도 중요하고 우리집 재산도 중요하고 우리 자식도 중요하고 우리 남편, 아내, 부모도 전부 귀중해서 영원히 같이 더불어 살 건데 무슨 그런 소리를 하느냐, 무슨 찬물 끼얹는 소리를 하느냐’고 그럴지도 모르지만 아니예요. 우리가 한 번씩 이런 계를 받아 놔야 돼요. 오늘 좋은 계를 다 받은 셈이예요.
이진계(離塵戒)와 이구계(離垢戒), 먼지를 떠난 계, 티끌을 떠난 계, 이런 것을 받아 가지나니
여시공덕(如是功德)을 이아운하능지능설(而我云何能知能說)이리오, 이와 같은 좋은 공덕을 내가 어떻게 능히 알고 능히 말할 수 있겠는가. 이러한 것은 다른 사람이 더 잘 안다 하고는 다른 분을 추천하게 된 것입니다.
5. 指示後友
善男子야 從此南方에 有一國하니 名達里鼻茶요 城名은 自在며 其中에 有人하니 名曰彌伽니 汝詣彼問호대 菩薩이 云何學菩薩行이며 修菩薩道리잇고하라 時에 善財童子가 頂禮其足하며 右遶瞻仰하고 辭退而行하니라
그 다음, 지시후우(指示後友)라.
선남자(善男子)야 종차남방(從此南方)에, 선남자야, 여기서부터 남쪽으로 가면
유일국(有一國)하니, 나라가 하나 있다.
명달리비차(名達里鼻茶)요, 달리비차라고 하는 그런 나라예요.
성명(城名)은 자재(自在)며, 그곳에 성이 하나 있는데 자재이며
기중(其中)에 유인(有人)하니, 그 가운데 한 사람이 있으니
명왈미가(名曰彌伽)니, 이름이 미가장자이지요.
여예피문(汝詣彼問)호대, 그대는 그 사람에게 나아가서 묻되 보살
(菩薩)이 운하거보살행(云何學菩薩行)이며, 보살이 어떻게 하면 보살행을 배울 수 있습니까.
수보리도(修菩薩道)리잇고 하라, 또 어떻게 하면 보살도를 닦을 수 있습니까 하고 물어라.
시(時)에 선재동자(善財童子)가 정례기족(頂禮其足)하며, 그때 선재동자가 정례기족하며, 그 선주비구 앞에 머리를 조아려 예배 올리고
우요첨앙(右遶瞻仰)하고, 오른쪽으로 돌며 우러러보고
사퇴이행(辭退而行)하니라, 물러나서 떠나니라.
이제 남방으로 가서 달리비차라고 하는 자재성에서 미가장자를 만나야 하니까 할 수 없이 또 떠나야 하는 그런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오늘은 지난 시간과 연결해서 선주비구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아주 좋은 이야기가 많이 나왔어요. 불교의 계율에 대한 이야기가 상당부분을 차지하고 있는데 거기 대한 이야기와 신통에 대한 이야기를 함께 공부하며 생각해 봤습니다.
첫댓글 살생이 없는 청정한 마음의 세계, 아주 훌륭하고 뛰어난 마음의 세계, 온갖 신통묘용과 영원한 생명력을 가지고 있는 그러한 마음의 세계를 아는 것이 진짜 좋은 계(戒)...감사히 읽습니다.()
一切世間無所依戒....고맙습니다._()()()_
본래부터 갖추고 있는 신통력.. 참으로 신통방통합니다. _()()()_
常以佛法으로 爲所緣戒라....._()()()_
그러한 것을 이해시켜 주는 진리의 가르침이야말로 최후의 보루이고 마지막으로 의지할 곳, 말씀 잘 새깁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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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약(良藥)은 고구(苦口)이나 이어병(利於病)이라...... 고맙습니다._()()()_
중생을 교화할 때 그 교화를 받아들일 수 있는 때를 따라서 그때 말하라, 그때 다 능히 나아가는 데 아무 장애가 없다....은우 님! 수고하셨습니다..법공양 고맙습니다.._()()()_
감사합니다_()()()_
運水及搬柴 神通兼妙用 自燈明法燈明 受一切世間無依所戒 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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隨一切衆生應受化時 時節因緣 얼른 생각하면 사람이 우유부단(優柔不斷)하고 아무 자기 주관도 없는 것처럼 생각될지 모르지만, 아니에요. 그렇게 시간을 두고 생각을 할 줄 아는 그 사람이야말로 지혜로운 사람이에요. 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
일체 세간은 무소의야 사실은. 의지할 바가 있어서 딱 대어 주면 다 의지하지요. 그런데 세간은 그렇게 의지하도록 되어있지 않아요. 일체세간이 무소의(無所依)라고요. 이것도 하나의 계입니다. 그것을 깨닫는 것도 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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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유중생(若有衆生)이 친근아자(親近我者)면, 또 어떤 중생이 나를 친근하는 사람이면, 실영안주여시법문(悉令安住如是法門)이로다, 다 모두 이러한 법문에 안주하게 한다..._()()()_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善住비구의 능력-無住,無作의 도리를 얻었기 때문이다
즉 善住=無住,無作,집착 없고 조작 없는 도리를 얻었기 때문
대승계,심지계-우리의 본래 마음자리는 허물이 없는 훌륳한 것이라는 것을 아는 것
육조스님-心地無非 自性戒
일체 세간은 하나도 믿을 것이 없다는 계
다양한 계
-대비계,바라밀계,보살도상응계,무장애계,불퇴타계,불사보리심계,항상 불법으로 인연 맺는 계,지혜로써 생각을 짓는 계,허공계,일체세간무소의계,무실계,무손계,무잡계,무결계,무탁계,무회계,이진계,이구계,
自然者法
善住비구;無住 無作 神通力
善住=無住
大悲戒 一切世間無所依戒 無缺戒 無雜戒 無悔戒 離垢戒--心地戒,菩薩戒
나무 입법계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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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_()()()_
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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