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2월 1일 청림회(2)
저는 그 얘기를 누가 했는지는 모르고 한 12살 때, 제 기억으로는 한 12살 때, 그걸 본 것 같은데. <채근담> 얘기하고 막 섞어 놓은 책이, 쪼깬한 거 있었어요. 그래. 지금까지도 누가 했는지는 모릅니다. 아마 했다고 하며는 나옹 스님, 아니며는 함허 스님. 제가 “장엄 염불”을 연구 해 보니까 아주 좋은 말들은 나옹 스님, 아니며는 함허 스님. 그리고 야보 스님은 너무 비약적이라서 실어주지를 안하고. 그 두 분 게, 거의 한 7·80% 됩디다. 그러니까 나옹 스님, 참 글을 잘 하셨던 거 같애요. 나옹 스님 고향이 영덕입니다. ‘영~ 덕이 되는’ 사람들이 사는 데가? 영덕이거든. 큰 스님도 어디예요? (영덕) 저는요? (영덕) 목은 이색이는? 목은 이색이가 누구, 비문을 썼어요? 나옹 스님 비문을 목은 이색이가 썼어요. <통도사> 저 쪽에, 적멸보궁에 세존비각도? 목은 이색이가 썼어요. 세계 최초 금속활자, “직지심체요절”도 서문, 누가 썼어요? ‘영덕’ 사람이 썼어요. (웃음)
그래. 생야일편부운기(生也一片浮雲起) 사야일편부운멸(死也一片浮雲滅) 부운자체본무실(浮雲自體本無實). 구름. 생멸(生滅)자체가 본래 진실이 아니더라. 그 다음에 뭐죠? 생사거래역여연(生死去來亦如然). 우리 나고 죽는, 생멸법(生滅法)도? 저 구름과 같더라.
그, 아마 나옹 스님 정도 돼야 그렇게 안 썼을까 싶고. 아니면 제가 전생에 썼을 수도 있고. 왜냐하면 저는 태어나 가지고 앉은뱅이 된다고. 항상 가부좌 틀고 잤데요, 가부좌. 우리 식으로 하면. 안쪽으로 다리 당겨 가지고. 다리를 펴 놓으면 오그리고 펴 놓으면 오그리고···, 이래 가지고 앉은뱅이 될까 싶어서 그렇게 걱정을 했데요. 그래, 서너살 될 때까지 아이가 말도 제대로 못 해 가지고 바보 같았대요. 다운 증후군··· 어찌 저리 모자라노··· 홍역도 앓고 그래서 더 이제, 바보가 되는 거라. 그래, “아버지 어디 가신다.” 이러며는 한 4살 때까지 말도 잘 못했데. 작대기 가지고. 그, 구두를 높이 올려놓잖아요? 쳐 가지고. “아버지, 가신다.” 이러며는 구두를 타악, 이렇게 바깥에 내 놓더래. 그거 보면 말은 못 하는데 어른들 말귀는 알아듣는 거 같고. 그게 아마 전생에 제가 어디, 시자 노릇 하다가 그 집에 가서. 또 형편없는 집에 가야 또 이렇게 출가하기가 수월해요. 출가할 인연이··· 잘 먹고 잘 사는 집에 가 놓으면 출가하기 힘들잖아요, 예? 어릴 때 거기서 살았던 기억이 거~의 없어요. 그러니까 희한하죠.
그래서 어려서 우리 스님, 밑에서 뭐 좀 다른 거 배우고 살다 보니까 중[僧] 되는 게 그렇게 좋았어요. 그러니까 좀 모자란 사람들이 중[僧]된다, 그렇게 생각하시면 됩니다. 생야일편하다가 별 거 다 나온다··· 중[僧] 되는 사람이 중[僧] 돼 가지고 개천에서 용 나는 수가 있지마는. 처음부터 환경이 다~ ‘아 어마이’ 잘 되고 그렇게 부처님처럼 다 잘 갖춰져 있는 사람이 하는 경우는 정말 용이 용 된 거지마는. 그 외에는 대부분 보면 우리처럼 이렇게 좀 찌찌부리~하게, 좀 환경적으로 출가 안 할 수 없도록 그렇게 만들어 놔야 돼요. 서산 스님 같은 경우도 뭐, 조실부모하고··· 그렇죠? 경허 스님 같은 경우도 절에서 마, 얻어 키우듯이 그래서 대도인(大道人)이 탄생되는 거고. 사명 스님, 역부여시(亦復如是)고. 또 뭐··· 그런 사람 많잖아요, 그죠? 많아요. 근데 방금 그 대목은 제가 한, 12살 때 쯤 돼서, 좋아했어요. 남들이 믿겨지지 않는 사실, 있죠? 근데 그게 절에 와 보니까 “염불”이더라고. 하하. 그, 참 우습죠 참 우습죠··· 남들이 들으면 다 거짓말이라, 그래요.
방금 했는 생야일편부운기(生也一片浮雲起), 그거 모르시는 분요? 없으시지요? 반야심 보살님, 다리 아프시면 다리를 주욱~ 펴이소. 제가 공부할 때,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은 거는. 다리가 아프든지 몸이 아프든지. 의식이 그 쪽으로 가면 차라리 그 쪽을, 의식을 타고 들어가서 안 아프다는 것까지 알아버리든지. 아니면 왔다갔다 왔다갔다 왔다갔다 왔다갔다 왔다갔다, 이러다보면 상음마(想陰魔)에 찌달려 가지고.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 그 상음마(想陰魔)에 찌달려 가지고. 여기 공부하는 거는 집중이 하나도 안 돼요. 영화를 보더라도. 굳은 자세에서 보면 영화가 쑤욱, 솜이 빨아 당기는 게, 스펀지처럼 안 들어오잖아요? 그 때 어때요? 최대한 릴레~엑스[relax]하게··· 혀가 미끄러질 뻔 했다··· (웃음) 최대한, 편안~하게··· 예? 너무너무 편안하게 그렇게 하셔야 돼. 그게 허리가 뭐, 이렇게 꼿꼿~하게 펴야 된다더라. 허리, 당연히 펴야죠. 수기척량휴방도(竪起脊梁休放倒)니라. 수직으로. 척량(脊梁). 대들보되는 척추를 세워 가지고. 휴방도(休放倒)니라. 이렇게 ‘패~액’ 찌그러지지 말아라, 이거라. 이리 ‘패~액’ 찌그러지면, 누구, 뭐 되느냐, 이러면. 조폭 되는 거라. ‘요렇게’ 된 사람은 조폭 돼 가지고 히로뽕 파는 거라. 그 사람들, 요렇게 팍 되니까? 허리가 꼬부라져 버리고. 어깨가 올라 가니까 그 사람들을? ‘가다’라. ‘어깨’라, 그런··· 그런데 그 사람들이 이 척추를 쭈~욱, 펴게 되며는 정신적으로···
수행(修行)은 유유하초난(惟有下梢難)이라. 하초(下梢)에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데 어려움이 있기 때문에 이 중추 신경은 어디예요? 말초신경을 관장하는 통관할 수 있는 원천적인 힘이잖아요? 그래서 이 명문 쪽으로, 요 쪽으로 이제 숨을 들이쉬고 내쉬고 하다 보며는 정신과 육체가 절~대 둘이 아니고 교감을 하게 돼 있어요. 하유··· 하다하다 안 되니까 이제 거짓말만 늘어 가지고 죽을 지경이다···
고 다음에 운자재왕(雲自在王)이다.
저기 “장엄염불”··· 하는 김에 또 하나 더 하지요, 뭐, 까~짓 거. 우리가 흔히 너무나 귀에 익숙한 “장엄염불” 중에 하나, 이런 게 있습니다. 법신청정광무변(法身淸淨廣無邊) 보화비진요망연(報化非眞了妄緣). 법신청정광무변(法身淸淨廣無邊)은. 법신(法身)은. 우리 본래 원신은 청정해서. 텅 비어서 아무 것도 없어서. 본래무일물이라. 법신청정광무변(法身淸淨廣無邊). 예? 거기 아미타나 뭐라나. 무변허공처럼 끝도 없이 넓은데.
보화비진요망연(報化非眞了妄緣). 보신(報身)이나. 수행을 해서 얻게 된, 모양을 갖추게 된 보신(報身)이나. 화신(化身). 화신(化身)은 아프리카가면 부처님은 새까맣게 되고. 유럽 가면 하얗게도 되고. 우리나라 오면 부처님이? 노~랗게 되는 거라. 그러니까 부처님의 보신(報身)이라고 하는 것은 옛날의 부처님이나, 지금 부처님이나 미래의 부처님이나 그 상호가? 원만자재한 게 똑같은 게? 보신(報身)이고. 법신(法身)은? 흔적도 없는 것이고. 화신(化身)은 어때요? 응화신(應化身). 때로는 말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돼지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전라도 사람 되고 때로는 경상도 사람··· 거기에 맞춰서 화도중생(化度衆生)하는 거를 화신불이라 하죠. 석가모니는? 법신(法身)·보신(報身)·화신(化身) 중에 어디에 배대합니까? 화신(化身)이다. 화신(化身)으로 왔으면 인간처럼 살면서 똑같이 탁발하고 똑같이 뭐 어디··· 밥 잡숫고 그렇게 그렇···습니다.
근데. 그 다음 구절이 재밌어요. 법신청정광무변(法身淸淨廣無邊) 보화(報化)는 비진(非眞)이다. 진짜가 아니다. 요(了). 알아야 된다. 망연(妄緣). 망령된 인연법인줄 알아야 된다. 뭐가요? 보신(報身)·화신(化身)은. 남을 제도하기 위해서 환과 같은 약으로 환과 같은 병을 치료하기 위해서 보신(報身)·화신(化身)이 된다는 거죠.
그 다음 구절이 뭔가 이러면. 만리무운만리천(萬里無雲萬里天). 만리(萬里), 나 되는. 만리(萬里)···
이 우주, 허공이 만리길이나 되겠습니까
억만리길이나 되겠습니까?
시방삼세(十方三世)가. 이런 말이예요. 과거 현재 미래. 시간적으로 공간적으로 광대무변한 그런 것을 뭐, 은유법으로. 직유법 바로 써서 만리(萬里)라고 하자, 이거야. 만리무운(萬里無雲). 아까 제가 말씀을 무운(無雲)은 뭐라 했어요? ‘구름’이라고. 우리, 생멸번뇌의 구름이라고 하죠? 절깐에서는 구름을 번뇌에 흔히 잘 비유합니다. 번뇌에 비유해 가지고 운산(雲散)에 월자명(月自明)이라. 번뇌 구름[雲散]이 산(散). 흩어지며는 월(月). 지혜의 달이 스스로 밝을 것이다, 이런 얘기가 나오잖아요?
만리무운(萬里無雲). 저 만리(萬里), 먼 허공에. 시방삼세(十方三世) 시방상주(十方常住). 옛날이나 지금이나 여기나 저기나, 그 어디 가더라도 생멸(生滅) 자체가 없더라. 만리무운(萬里無雲). 만리천(萬里天). 만리(萬里) 허공이다, 이거죠. 조금 전에 허공주(虛空住)가 나왔잖아요?, 그런 뜻이라. 그래, 바로 어떤 운자재(雲自在), 이런 것도 나왔잖아요? 이런 것도 바로 그런 뜻이예요. 생멸(生滅)로부터 자유자재한. 텅~ 빈, 그런 광대무변한 세계. 만리무운만리천(萬里無雲萬里天).
그게 우리가 법신청정(法身淸淨).
자성청정(自性淸淨)
우리 본심청정(本心淸淨)
무념무상 절일체(無念無想 絶一切). 무슨 말인지 아시겠지요? 고렇게 되는 것이 만리무운만리천(萬里無雲萬里天)이라. 일체의 현상과 경계가··· 내 마음마저 사~악 제멸되고 없는 거. 그러한 상태가 만리무운만리천(萬里無雲萬里天)인데.
그런데 인연이 있어요.
천강유수천강월(千江有水千江月). 저번에 말씀드렸죠? <월인천강지곡>이 세계 최초의 한글 금속활자라고. 예? <석보상절>, <월인천강지곡>이 전부 우리 불교 겁니다이. 월인(月印). 수월(水月)이다, 이거야, 수월(水月). 월(月). 달 그림자가 물에 비친 걸, 월인(月印)이라 하죠. “그게 뭐냐?” 이러면. 제가 바로, 이렇게 앉아서 얘기하는 제가 바로 월인(月印)입니다. 그렇게 듣는 여러분이 월인(月印)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듣는 본체의 불생불멸(不生不滅)의 그 마음을 찾아보면 그것은? 찾을 길이 없는 기라.
그래서 이 놈이 마로 그 놈이다.
그럼 이 놈을 어떻게 해야 되느냐? 탐진치(貪嗔癡)를 따라 가지 않아야 된다. 도(道)를 배우는 거는 달리 참선이라든지 지식이라든지 경험이라든지 요거, 얄팍한 방편은 있지마는 그 기교는 필요치 않아요. 기교는 필요치 않아요. 불 붙이는 데 무슨 기교가 필요하고 물 마시는 데 무슨 기교가··· 느끼는데 무슨 기교가··· 기교, 하나도 필요 없어요. 기교는 필요없다고요.
(탁! 내리치시는 소리)이거, 듣는 데에 여러분들 힘 써 가지고, 요런 방법으로 저런 방법으로 들을 필요 없어요. 자동으로 들리게 돼 있어요. 이게 저는 이제 현전일념(現前一念)이라 그러는데 아유, 따시다 (차 한 모금 드시고) 모르니까 답땁~하지요? 그러니까 저 놈이 거짓말 하는지 참말 하는지도, 모르시는 거라. 하하.
그러니까 천강유수천강월(千江有水千江月)이라는 거는 ‘제 3월(月)’이라. 아까 날목(捏?目), 하는 것은 ‘몇 월(月)’이라 했어요? ‘2 월(月)’. 하늘에 있는 것은? 눈을 눌러서 내, 억지로 생심하고 기억하고 머리 쓰고 꾀부리고 해 가지고 내는 마음은 뭐예요? ‘2 월(月)’. 예? 그건 본래 것이 아니예요. 본래 것은 천진자연스럽다고. 너무 편해요. 그래, 본래 천진 자연쪽으로 가는 걸 갖다가 응무소주 이생기심(應無所住 而生其心)이라 그래요.
그걸 무착이라 그러고 무집이라 그러고 별 걸 다 붙여도 괜찮아··· 무아라 그러고··· 무상이라 그러고. 다 똑같은 얘기라. 그래 부정적으로 얘기하면 무상이다 무아다 무착이다 무주다, 이렇게 얘기하고. 불생이다 불멸이다 얘기하고. 긍정적으로 얘기하면 그것을? 적정이다 열반이다 고요다 광명이다 지혜다 반야다 ‘용학’이다··· 요런 식으로 탁, 이제··· (웃음) 결국 결론은 ‘용학’이야.
그러니까 천강유수천강월(千江有水千江月). 천 개의 강, 억만 개의 강 옛날의 강 지금의 강 동쪽의 강 서쪽의 강 미국의 강··· 어느 강에도? 달은? 뜬다. 누구에게나 다? 불성(佛性)은 있다. 그럼 오늘 우리가 보고 듣고 하는 거, 이것이 전부다 무엇입니까? 밥 먹는 거, 그거도 불성(佛性)이고. 혓바닥에도 붙었고 콧구멍에도 붙었고 손가락에도 붙었고··· 지지일자(知之一字). 안다는 이 현실 하나. 이것이 중묘지문(衆妙之門)이다. 모든 묘한 거. 묘~~하다, 하잖아요. 그걸 갖다가 우리 불교에서 진공(眞空)의 묘유(妙有), 그러잖아요. 지지일자(知之一字)가 중묘지문(衆妙之門)이라. 모든 묘한 걸, 다 발생하는 거··· (박수 소리 짝!) 이게 묘하고 듣는 것도 묘하고 보는 것도 ··· 가만히 꿈꾸는 거 까지도 묘해. 그러다 마, 새벽에 너무 좋아서 혼자 마, 팔짝팔짝 뛴다, 빤쭈 입고. 옆에 남들이 보면 모르는 사람, 살콤, 내보고 갔다, 할 거야. 그래, 모르는 사람, 돼지처럼 잔다, 이래가··· “크흐~” 그래가 시간되면 “아이고··· 또 출근해야 되나···” 아는 분들은 출근해도 즐겁고 퇴근해도 즐겁고 이래도 즐겁고···
요번에 번뇌의 불구덩이 속으로 이렇게 투욱, 짚어 넣어 봤는데. 그리 2번을 당해 봤어요. 차를 이렇게, 사형 절에 가서 포교당 앞에 이렇게 세워 놨더니. 뭐, 스님들 일할까 이래 놨더니 차 안에 카메라 같은 거는 들고 나가 버리고, 이래 놨는데. 뒤에다가 옷, 누비하고 옷을 좀 실어 놓으니까. 뭐가 있으니까 뒷 유리를 이렇게 뜯어 버렸는 거라. 안에 썬팅같은 거 돼 있으니까 유리가 그대로 뜯기데요. 뜯기는데··· 좀, 분위기를 좀 반전시켜야 되겠어··· ‘아 어마이’가 어디 갈 때 쓰라고 준 거, ‘딸라’가 좀 있었는데. 그거 어디, 통장에 넣어놓지도 못하고 이렇게 조금. 제가 저번에 큰 스님 모시고 중국 갔다오면서 남아 있는 게 있었어요. ‘아 어마이’가 아니고 사실은 고백할께요··· 잠 깬다,고 그랬고. 요만큼, 안에 넣어놓고 잠궈 놓고 있었는데 그걸 또 다 뜯어서 고장 냈어. 창문도 다 뜯었어, ··· 예전 같으면 어때요? 분하고 고소하고··· 막, 이래야 되잖아요?
아! 이것은 내가 으슥한 데, 원인을 제공했다. 만장(??)에 해도(??)라. 내가 잠그는 걸 느슨하게 했기 때문에 밝고 양명한 곳에 대 놓으면 도둑놈이 설치지 않거든요. 탐심은. 물길처럼 해 가지고 캄캄~한 쪽으로 흐르기 때문에 그런 데에 갖다 놓으면 잠그고, 폐쇄를 많이 해 놓으면 도둑이 들끓어요. 근데 확, 개방할수록 오질 않거든요. 아, 이것은 인연법에 그리 된 거··· 그러면 그 놈이 다 훔쳐 갔는데 제가 간탐심이 있다, 그러면 어때요? 아깝고 막, 속이 쓰리고 그래야 되겠죠? 그래도 마음이 종잇장처럼, 더 가벼워져요 참···. ‘아유, 참 깃털처럼 가볍다··· 이거 내가 좀 모자라나··· 내 거 아니라서, 시주 받아서, 내 힘 안 들여서 그렇게 모아 놓으니까 그렇겠지···’ 내, 좀 위로를 했지.
그런데 어디, 치열하게 싸우는 구석에 들어갔어요. 도~저히 인간 말종하고 싸워야 되는 거야, 인간 말종하고. 불꽃 튀는 전쟁을 해야 되는 이런 판에. 그 뭐, 체면 세울라니 아상이 다 무너져 버리고. 도리 세울라니까 망상이 다 무너져 버리고. 그럼 어때요? 현실의 문제만 해결하고 문제 해결이 안 되며는? 마, 니 하는대로 해라. 인연의 순응··· 이제, 그렇게 돼 버렸어 자성청정이 현전일념(現前一念)이고
여러분들이 실제. 그런 얘기를 들으며는 분노해서 마, 피가 거꾸로 솟아 버릴 거라. 그래, 큰 스님한테 그 얘기를 했더니 “허··· 참 그렇다···” 기분이 좋죠. 우리는 해결할 문제가··· 그래, 성질나는 속에 들어 가서 자기를 던져 보고. 그 불길 속에 던져보고 물길 속에. 탐욕 속에 던져 봐 가지고 이것이 가라앉지 않으며는 또 타버리지 않는다면. ‘아!, 이게 절~대 그것들로서 내가 이렇게 이 이···’ 그런 게 있어요. 그렇게 되면 기분이 상당히 좋아요. 그렇다고 공부 된 거는? 하나도 없어요.
여전히 뭐예요? 구구단 제 1단이라, 1단. 근데 거기에. 첫 발자국도 못 떼던 사람들. 갑갑하죠. 그러면 저의···
“스님! 지금 어떻습니까?” 이러면.
“이제 저는 제 신발이 있습니다.” 요렇게 자신 있게 얘기할 수 있죠. “제 신발이 있으니까 발 시리지 않습니다.”
그렇게 어떤 환경에 신발 한 켤레씩 잘 챙겨 신으십시오. 남의 신발 신지 마시고. 신오착타혜(愼誤着他鞋)에. 자기 신발을 꼭 챙겨 가지고 자기 갈 길을 자기가 가는 거야. 자기 거··· 근데 하물며 자기 옷을 자기가 챙겨 입고 자기 자량을, 양식을 자기가 챙겨서 그릇에 먹을 수 있는. 그런 정말로 법희선열식(法喜禪悅食) 이식(二食)이라 하죠. 선(禪)에 대해서 희열[悅]을 느끼고 법(法)에 대해서 기쁨[喜]을 느끼고 그렇게. 보살들은 그걸 먹고 살아요. 그게 진정한 자기의 정신적인 양식이라 하잖아요? 독서가. 독서가 아니라 진짜 선(禪)이야말로, 그게 우리의 정신을 다시 그 본래의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하는 양식이라. 소고기가 아니고··· 예? (웃음)
그러니까 고걸. 자기 신발이 없는 사람은 옆에 쳐다보면 발 시렵죠, 이 추운 날에. ··· 부러우면 공부하세요. 그게 안 부러운 분들은 이제, 축생이라 그래요.
123.
東北方佛名(동북방불명)은 壞一切世間怖畏(괴일체세간포외)며
동북방의 부처님의 이름은 일체 세간의 두렵고 공포스러운 것을 무너뜨린다. 공포와 두려움은 어디에서 생겨지나, 이러면. 바로 집착에, 욕심에 집착했을 때가 두려움이 납니다. 이 두려운 것은. 무유공포(無有恐怖)는. 전~부다 탐욕으로 비롯된 거예요. 성질 날 때는 조금, 겁이? 덜 나는 거라. 겁나는 게 없는 거라. 눈에 뵈는 게 없어요 성질 날 때는.
중생이 성질 날 때는. 탐진치(貪嗔癡)를 쓸 때도. 탐심이 돋으며는 겁나는 거야, 이게. 돈 떼일까 겁나고. 어때요? 뺏길까, 겁나고 못 얻을까, 겁나고··· 그게 전부 뭐예요? 욕심에 대한 집착이 과도할 때 공포심이 많은 거라. 공포심이 없다는 거는, 겁나는 게 없다는 것은 얻을 게? 없다는 걸 아는 사람이라. 이무소득고(而無所得故). 이무소득고(而無所得故)로 심무가애(心無罣碍) 무가애(無罣碍)··· 마음에 장애되는 게 없어. 무가애(無罣碍) 무가애(無罣碍) 장애되는 게, 걸리는 게 없으니까 무유공포(無有恐怖). 무유공포(無有恐怖)가 되니까 뭐가 돼요? 원리전도몽상(遠離顚倒夢想). 이렇게 나왔잖아요? 원리전도몽상(遠離顚倒夢想)은 일체세간. 일체 유위법에 대해서 다 무너뜨리고 다 등져 가지고 돌아설 수 있다, 이거야. 그래서 완벽하다. 구경열반(究竟涅槃). 진여당체를 얻는다. <반야심경>이 만만하지 않지요? 이게 다··· 세상에 이렇게 강의해 주는 사람, 없어요. 세상에 누가 해 주겠노? 괴일체세간포외(壞一切世間怖畏). 예? 어디 가서 소문 좀 내 주세요. 소문이 안 되면 대문이라도 내 주세요. (웃음) 대문이라도 내고··· 세상에··· 얼마나 남들한테 못났으면 세상에 지 자랑하는 놈이. 지 약점 있는 놈이 지 자랑 많이 하는 거거든. 요번에 그놈을, 어느 놈을 잡으러 갔는데 지가 “내 센 놈이다! 내, AA급이다!” “음··· 니 A급이가? 나는 완전히 C급이다···” 그래 가지고 잡는 거라.
“나는 힘이 쎄다!”
“나는 힘이 없다.”
누구한테 배웠냐면 6조 혜능(六祖 慧能)스님한테 배운 겁니다. 와륜(??) 선사하고 6조 혜능 스님하고 서로 대화할 때 그런 대목이 나와요. “혜능은 몰기량이다.” “나는 기량이 없다. 나는 솜씨도 없다 솜씨 없는 놈이 진짜? 솜씨 있는 놈이라. 마음은. 진짜 마음은. 진짜 원석은 컷팅(cutting)이 되지 않았어요. 컷팅(cutting), 아무리 잘해도 그것은. 저 찌찌~부리한 저 6식의 망상분별의 한계예요.
자. 124페이지. 각설하고 넘어 갑니다.
124.
第十六(제십육)은 我釋迦牟尼佛(아석가모니불)이 於娑婆國土(어사바국토)에 成阿耨多羅三藐三菩提(성 아뇩다라삼먁삼보리)니라
제 열 여섯 번째는 우리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이 사바국토에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阿耨多羅三藐三菩提)를 이룬 것이니라.
가슴이 찌릿~한게 안 느껴지시며는 참 심각합니데이. 눈물이 막 날라 하지요?
(석가모니 부처님이 ···)
마, 책들고 나가이소 답답해 죽겄네
이게 원론적으로 얘기하면. 자꾸 그렇게 복잡게 하는 게 아니고. 불교라는 게. 제가 얘기하는 게. 그렇게 지식적으로 오면 누가누가 이렇게 현실적으로 이렇게 연대적으로 이렇게 유통과 역사와··· 이런 것이 아니거든요. 제가 이렇게 가르칠 ··· 막 와닿게··· 어떤 데는 석가를 얘기하면. 그 석가가 아니고. 지금의 석가의. 현실에 와서 우리 자신을 얘기하는 거라.
요거 전부 거짓말입니다.
책이란 건 전부 거짓말입니다. 왜 이렇게 해 놨을까요? 이렇게 석가라고 이름을 팔아야 대통지승(大通智勝)이라고 크~게 팔아야, 어때요? 혹해서 믿어 가지고 자성청정(自性淸淨)쪽으로 우리를 땡겨 갈 수 있다. 요거 뭔 말인가 하며는.
오늘 <선요>할 때 했던 얘긴데. 그걸 잠시 언급을 하겠습니다. 옛날 얘기를 해야 돼. 옛날 백장 회해(百丈 懷海:749~814)스님이라고 아주 큰 스님이 계셨습니다. 황벽 희운 선사의 스승이 되지요. 임제 의현 스님한테는 윗대 윗대 되는데. 이 백장 스님이 그 유명한. “일일부작(一日不作)이며는 일일불식(一日不食)이라” 하루 일하지 않으며는 하루 밥을 안 먹겠다고, 평생 수행실천하셨고. 또 백장 스님이 또. “뜰 앞에 잣나무니라.” “뜰 앞에 뭐, 측백나무니라.” “뜰 앞에 잣나무”라 했는 것도. 정전백수자(庭前柏樹子)하. 그 유명한 백장 스님인데. 이 백장 야호(百丈野狐)라고. 백장‘들여우[野狐]’라고 하는 화두가 있습니다. 잘 들어보십시오. 다 아는 얘깁니다. 익숙하게.
백장 스님이 법문을 하는데. 어느 날 대중들이 있는데 낯선 노인네 한 분이 저~ 뒷자리에 와서 늘 법문을 듣고 갑니다. 요거는 옛날 얘기처럼 해서 여러분들 익숙하게 들어오시던 거죠? 한 번 씩 들어 보셨죠? 그러면. 법문을 듣고 나중에 찾아 보면 어디 가 버리고 없고. 또 법문을 했는데 또 왔는데 또 찾아보면 없고 찾아보면 없고··· 그러다가. 그렇게 여러~번 반복이 되다가. 어느 날. 법문을 하는데 대중이 다 돌아갔는데 백장 스님이 늦게 내려가서 찾고 있으니까 그 노인네가 가지 않고 백장 스님 앞으로 나왔습니다. 와서 “누구냐?”고 백장 스님이 물었어요. 물으니까. “제가 5백생 전에 이 절의 주지였는데···” 어떤 학인이 물을 때. ‘용학’이처럼 잘난 척 하고 막, 지가 최고라고··· 저는 진짜 최고 아니거든요. 최고는 최고라 소리 안 합니다. 최고는? 무곱니다. 말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언자(言者)는 부지(不知)요. 말하는 놈은 알지 못하고 지자(知者)는 불어(不語)니라. 아는 사람은? 말이 없다. 언자는 부지요. 말하는 사람은 알지 못하고 그러니까 개구즉착(開口卽錯)이라. 입만 떼며는 어긋난다, 그러고. 동즉(動卽)에 유고(有苦)라. 움직였다, 하면 괴로움이 따라오는 거예요. 마음이 그렇게 그리 되는데···
그래서 “누구냐?”고 물었더니. “내가 주지로. 스님처럼 법문하고 그렇게 살 때. 젊은 스님이 내한테 물었는데. ‘선지식도 인과(因果)에 떨어집니까?’ ‘용학’이도 인과(因果)에 떨어집니까?, 이러게 물었던가 봐요. 또 잘난 척 갔다. 윤 선생님! 어쩌겠습니까? 즐거움으로 삼으십시오 제가··· 원맨숍니다. 그러니까 선지식도 인과(因果)에 떨어집니까? 이렇게 하니까. ‘인과(因果)에 안 떨어진다.’고 대답해 가지고 여우몸을 받아 가지고 5백생을 살았다. 스님! 좀 해결해 주십시오.”
큰 스님이, 그럼 다시 한 번 더 물어 보라고.
선지식도 인과(因果)에 떨어집니까?
잠 깨기 위해서, 해 봅시다. 해 보세요. <선지식도 인과(因果)에 떨어집니까?···>
인과(因果)에? 매(昧)하지 않다. 어둡지 않다. ‘어두울 매[昧]’자(字). 떨어지는 게 아니고 어둡지 않다, 이랬어요.
방금 이제, 석가모니가 뭐, 대통지승여래(大通智勝如來)··· 이렇게 나왔잖아요? 제같은 경우는 대통지승여래(大通智勝如來)도 인정 안 합니다. 석가도 인정 안 합니다. 인정한다는 거는 다 인정해야 되는 거라.
뭐냐 이러며는. 이만~큼, 풍선이 야물게 돼 있으면 아까도 얘기했지마는. 사~알짝, 이렇게 바늘끝 만큼도 아니고 미세하게, 새지도 안하고 꽉 묶어놨다, 하자, 풍선에. 빈틈 있겠지요? 바람 빠집니다. 공기가 일정하게 ??하고.
그런 것처럼 한 군데가 틀어지면 다 깨지는 것이거든. 한 군데만 물들면 즉시에 물들거든. 이쪽에 파도가 찔렁, 거리며는 미국까지 LA까지 같이 움직이거든. 동해가 여기서 출렁거리며는 저기 같이··· 동시에 그렇게 움직입니다. 동시에. 모든 것은 동시구족상응(同時具足相應)입니다. 그럼 제가 이런 말은. 뭔 말씀을 드렸냐면. 저는 이 책을 이 <법화경>을 보면서 이 16왕자도 인정하지 않습니다. 법리적으로 해석해 버리고 말아 버리고 , 예?. 이 아촉불도 인정하지 않습니다 아미타도 인정하지 않습니다 어떤 세계에서? 불생불멸(不生不滅)에서. 아미타가 어딨어요? 본래 없는데.
그래, 있다고 하는 것은 다른 악업쪽으로 탐진치(貪嗔癡)쪽으로 우리가 치달릴까봐, 어때요? 방편으로 있다고? 이런 얘기하면 이거, 천기누설인데··· 그렇게 자~꾸 잡아 놓는 거라.
그러면 우리 자신은 어떠해야 되느냐?
있다고 가상적으로 생각하고 기도하고 열심히 하다보며는 점차점차 없는 쪽으로 간다는 거죠. 예? 이게 누가 누구의 아들이고 딸이고··· 요런 게··· 정반왕의 아들이지 석가모니가 그러면 그게 맞는 소린가요? 이게. 부처라는 것은 누구의 아들이나 누구의 저거나 귀속되지 않는다는 거죠. 무슨 말인지 아시겠어요? 그러니까 이제 그러며는. 이··· 화두는 이제 푸는 것은 아니지마는 여러분들 교리상 해석할 때 어떠해야 그런 걸 정확하게 읽어낼 수 있으시냐, 이러며는.
인과(因果)에 떨어지지 않는다. 인과(因果)를 인정 했습니까 안 했습니까? 했죠? 인과(因果)에 어둡지 않다. 인과(因果)를 인정 했습니까 안 했습니까? (^^$%^) 했지! 인과(因果)에 어둡지 않다는 거는 했잖아요, 인과(因果)를 인정하잖아요, 지금?
그럼 인과(因果)라고 하는 것은 진짜 있습니까? 생멸(生滅)에서나 있지 불생불멸(不生不滅)에 인과(因果)는 존재하지 않잖아요? 무슨 말인지 아시겠어요? 그래 가지고 그런 말에 걸리지 않고 이렇게 사알, 빠져나올 수 있는 힘이 있어야 된다는 거죠. 그럼 “선어록”을 떠억, 보고 그 얘기만 딱 해 가지고. ‘아! 떨어진다, 하면 틀리고 어둡다, 하면 맞다.’ 이런 논리가 거기 들어가면 그건 캄캄!한 사람이라. 어둡다고도 말할 수도 없고 떨어진다고도 말할 수 없는데 굳이 말한다면 어둡다고 생멸법(生滅法) 쪽으로 말하면 조금 더 가깝다, 이런 해석도 틀린 거라. 어디 말로 붙일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다, 하는 게 정답입니다. 무슨 말인지 아시겠어요?
해석을 그렇게 해야 한 계단을 올라갈 수 있지 맨~날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그렇게 돌아가지고는. 이, 안 된다, 이 말이라. 이··· 참 죄송합니다 괜히 그, 성질을 내고 그러네··· (웃음) 이, 우리가 불 보듯이 뻔~하잖습니까? 석가모니가 누구 아들인줄 뻔~하잖습니까? 역사상으로 이렇게 볼 때. 그러니까 누구의 아들이 될 수 없는 것이라 그렇게 가르치면 안 되고. 우리가 정작 배우자고 한 것은. 석가모니가 정반왕의 아들이 됐든 내가 뭐, 정반왕의 아들이 됐든지, 그건 뭐, 상관할 거 없다, 이거야. 그 사람이 밝힌 거는 뭡니까? 머무름 없이 마음을 쓸 수 있고 정말 어디에도 흔적을 잡을 수 없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 무유정법 명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無有定法 名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 하물며 그 깨달음의 그 거룩한 세계도? 정해진 법이 없다고 할진대. 그걸 어떻게 하겠냐, 이거야.
다시 한 번 예를 들어 봅시다. 우리는 흔히 만법귀일 일귀하처(萬法歸一 一歸何處)라고 그렇게 얘기를 합니다. 만법(萬法)은 어디로 돌아갑니까? 일체제법은? 하나로 돌아가죠[歸一]. 그런 얘기 있잖아요. 일귀하처(一歸何處). 하나는 또 어디로 돌아갑니까? 돌아가는 곳을 모르죠? 그렇게 하면 안 된다는 거야.
······ 그러니까 하나[一]를 인정하고. 또 어때요? 만법(萬法)을 또 인정하지요? 인정하잖아요~, 우리가. 만법(萬法)을 있다고 생각했잖아요, 지금, 그죠?
그걸, 저는 안 한다, 이거죠.
만법(萬法)이 하나로 돌아간다[歸一], 하나로 돌아갈 자리가. 이러면 만법(萬法)이 있으니까 하나[一]가 또, 인정되는 형상 이 잖 습 니 까? 이 하나[一]마저도 인정안 하는 걸 갖다가 현전일념(現前一念)이라 하고 그걸 무념이라 하고 그걸 응무소주(應無所住)라고 하고··· 고렇게 하는 거죠. 이무소득고(而無所得故)라고 하고. 근데 어리석은 사람은 만법(萬法)은 하나로 귀속되고··· 방정식 풀듯이 그 하나는 또 어디로 갈까···? 찾아 헤매고···
그러면 그거는 왜? 의심과 의중을 키우기 위한 좋은 말일뿐이지 만법(萬法)도 인정하지 않고 하나도, 일심도 인정하지 않는다는 거지 제 같은 경우는. 그러면. 하나[一]도 만법(萬法)도 정~말 거기에 속하지 않는. 그것가지고 짝하지 않는 이 한 물건, 이거는 뭐냐?, 이거야. 그래. 방 거사가 게송을 그리 써 놨어요.
일용사무별(日用事無別)이라. 하루 종~일 일을 해도 무별(無別)이다. 별다른 것이 없다.
유오(唯吾). 오직 내가. 자(自). 스스로. 우해(偶諧). 나를 짝할 뿐이다. 내라고 하는 것은 자성청정(自性淸淨)이거든요? 불생불멸(不生不滅)이거든요? 짝해도? 짝하는 것이 아니다, 이거여 짝하는 것이···
두두(頭頭)에 비취사(非取捨)라 세상 만물이 이거에도 이거에도 이거에도 좋은 사람 나쁜 사람 좋은 마음 나쁜 마음··· 그 어디에도 취사심(取捨心)을. 취하고 버리고 하는 걸 두지 않는다, 이거야. 자~. 미운 마음이 있다고 하고. “미운 것도 생각하지 마라 착한 것도 생각하지 마라”, 이런 6조 스님, 얘기가 있어요. 그럼 미운 것을 인정하게 되지요? 착한 것도 일단, 인정하게 되지요. 공부할 때는 그렇습니다. 그 불사선 불사악도 그리 해석하면 안 돼. 이 2개가 본래 없는 것이거든. 미운 것을 생각하는. 밉다고 생가하는 그 원뿌리를 찾아 보니까 진연데 이것이 있어요 없어요? 본래 없어요. 착한 걸 마음을 냈는데 지금 착한 마음안에 착한 마음 뿌리가 진심인데 진심 마음 뿌리가 있어요 없어요? 없잖아요? 그러니까 미움과 착함이, 둘이 동등해요 안 동등해요? 이렇게 해석하는 기야 이렇게···
그러니까 색즉시공 공즉시색이 되는 거라. 여러분들 저를 만난 게 가문의 영광이고··· (웃음) 아, 인정을 안 하시네 참 희한하시네··· 그렇다니까요 사실이라니까요··· 아, 석가모니가···· 원효가··· 원효는 저보다 조금 더했어요. ‘백고좌 법회’하면 원효는 안 뽑아 주는 거라, 장가갔다고. 그러다 <금강삼매경론> 강의할 때는 원효를 떠억, 뽑아, 원효가 해야 된다고 해 주니까 원효가 그러잖아요. “서까래 100개 뽑을 때는 안 뽑더니 대들보 하나 뽑을 때 나를 뽑는구나···” 다른 사람 ‘백고좌 법회’할 때 전부 서까래 만들어 버리고 자기 혼자 마, 대들보야, 대들보. 그, 만법귀일(萬法歸一)이나 일귀하처(一歸何處)나.
그래 처처(處處)에 물장괴(勿張乖)라. 가는 곳마다 장괴(張乖). 펼치고 어그러지지 말아라. 그러니까 전처(轉處)에 실능유(實能幽)라. 마노라 존자는 그렇게 얘기했죠. 방 거사는 처처(處處)에 물장괴(勿張乖)라. 가는 곳마다···
그리 되면 주자(朱紫). 누가 보라색이다 누가 붉은 색이다, 수위호(誰爲號). 그걸 누가 말했더냐.
구산(丘山)이 절점애(絶點埃)로다. ‘언덕 구[丘]’자(字) ‘뫼 산[山]’자(字). 언덕이나 산이 전부 흙으로 이루어졌는데 흙 한 톨도 없더라. 절(絶). 다 끊어졌다. 점·애(點埃). 한 티끌도 산도 없고 언덕도 없더라. 다~ 평침해 가지고. 본래? 없는 허공과 같더라.
그런데 신통병묘용(神通幷妙用)이. 이 신통 부리고 묘한 작용하는 것이 뭐냐?
운수(運水). 물 기르고. 찻잔 한 잔 마시고··· 이것이 다반사(茶飯事)여. 차 마시고 곤하면 잠자고 목마르면 물 마시는 거. (차 한 모금 마시고) 신통이 뭐냐? 제가 지금 물 한 잔 마시고 놓고 여러분이 듣는 게 신통이라. 물 긷고 급반시(及搬柴)라. 나무 하는 것이 내 신통묘용이다. 예? 밥 먹고 똥 싸는 게, 우리가, 신통묘용이라는 거. 이것이 바로 자성청정(自性淸淨)이라. 몇 페이지, 아는 거, 요거 있잖아요? 이런 데서 즐거움을 알면 이대로도 넉넉~한 걸 느낍니다.
그러다 방 거사가 그래도 미심쩍어 가지고 마조 도일(馬祖 道一:709~788)을 찾아 가지고 “이 세상에 나와 짝하지 않는 만법 중에 짝하지 않는 그 무엇이, 그것이 뭡니까, 누가 있습니까?” “일구에 서강흡진수[一口 吸盡西江水]라.” 저기 서강(西江)의 물을 갖다가 한 입에 다 마셔라. 너무나 유명한 화두아닙니까? 그러니까 거기서 확연~히 깨닫고는 입을 막아버립니다, 입을 막아버려. 말하지 마라고 입을 아예 막아버리는 거라. 그래, 방 거사가 이제 “니하고 짝하지 않는 게 누구냐고?···” 이렇게 나오니까 비밀이 탄로나까 싶으니까 막아 버린다, 이거야. 더 이상 얘기할 거 없는, 누구한테 있다, 이거야? “니 꺼다 니꺼다 조용히 해라 가만 있으면 본전이다···” 이런 얘기 아닙니까, 이게···. 가만 있으면 본전이다···
그 도리를 알겠느냐? 이러면 스승이 가까이 와 보라, 이러면 니 그거 알겠나? 예 스님 압니다. 그, 스님 뭣 좀 가르쳐 주실랍니까? 이래서 사알, 다가왔어. 그래, 가까이 온나 이러니까? 저예? 뭐, 가르쳐 줄라고예? 그래. 가서 마, 스승 뺨을 때려 버리잖아··· 안 가르쳐도 그래도 뺨을 맞은 스승은 어땠어요? 백장 스님은 황벽이한테 맞고 난 후에 “니가 진짜 아는 구나.” 그거다!, 이거지. 안 속는다, 이거지. 스승이 오라는 것도 가섭이 오라는데 스승 뺨 때려버리면 우리 겉으면 어때요? “이자식이, 못 배워 가지고 어떻게 스승 뺨을 때리고···” 근데 그런다고 해서 저쪽에 아무나 그, 흉내 내면 안 되지요. 아무나 흉내 내면 안 되는기라. 그러니까 아는 사람이 때렸을 때는 허물은? 하나도 없는 기라. 공부하는 사람은, 절 집안에서 벤츠를 타고 댕기든지 하루 서 말, 밥을 먹든지 허물이 하나도 안 남아요. 근데 공부안 한 사람이 <문수원>에서 공부하고 절에 가서 시주밥 축내고, 이러며는 적수(滴水)도 야난소(也難消)라. 한 방울 물도 소화할 수 없는 것이거든.
그래 방 거사가. 입을 틀어막아 버리니까 거기서 게송을 하지요. 뭡니까? 시방동공취(十方同共聚)라. 시방삼세(十方三世)가 모두 함께 모여서. 동공취(同共聚). 한 무더기라. 개개학무위(箇箇學無爲)로다. 사람마다 모두다 학무위(學無爲). 무위(無爲).
무념이 바깥으로 작용을 일으키면 뭐라 그래요? 무위(無爲)라고 해요. 똑같은 거예요. 안에 무념이고 중간에 있는 게 무주고. 바깥에 나가며는? 무위(無爲)고. 똑같은 말이라. 한 통속이야 한 통속. 그런데 무착이고. 다 똑같은 말이라. 그러니까 개개학무위(箇箇學無爲)로다. 무위(無爲)가 뭡니까? 무위(無爲)를 배운다, 할 때는 이 때는. 해도 한 바가 없다. 무주이주. 머물러도? 머무는 바가 없는 거. 해도. 한 바가 없고. 봐도. 본 바가 없는··· 고게 바로, 무위(無爲)거든요. 사람마다 개개학무위(箇箇學無爲)라 한 게 아까 뭐라 나왔습니까? 금개득(今皆得). 지금, 그죠? 지금! 개득(皆得). 지금 동시에! 세상에 아무리 그렇다 하지마는 동시에 그 열 여섯명이 성불(成佛)해 버리고 동시에 다 얻어버릴 수 있나요? 없지요? 생멸법(生滅法)이 전부 순차적인데 여기선 불생불멸(不生不滅)이니까 동시에 되는 거라. 제가 이, 말한 게 동시에 미국에 똑같이 들려요. 우주 끝까지 들린다고. 근데 저기, 통신기기가 전달하는 장비가 좀 둔하면 그리 되지··· 그러니까 개개학무위(箇箇學無爲)라 차시선불장(此是選佛場)이라. 여기가 바로 부처를 뽑는 과거장이다. 심공급제귀(心空及第歸)라. 마음이 텅 비어서 심공(心空). 급제해 가지고 돌아간다. 열반에 간다··· 이기야. 열반··· 더 이상 미련없다 이거야. 마음에 채워서 가는 게 아니고 어때요? 마음을 비워서 갔다. 비운 거는 뭡니까? 여래자는 무소종래며. 온 바도 없고 간 바도 없고. 본래부터 돈은. 꾼 거도 없고 줄 거도 없다, 이렇다 이 말입니다 심공급제귀(心空及第歸)라. 에이고 방 거사 까지 나오고 복잡다 복잡해··· 제발 저를 긁지 말아 주십시오. 괜히 석가모니 한 번 긁혀 가지고 어디 한 바퀴, 배앵 돌아와, 또··· 방 거사 한 바퀴···
오늘 제 16, 열 여섯 번째는 이제 결정타를 날렸어요. 우리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어디에? 이 사바 국토(娑婆 國土)에. 사바 국토(娑婆 國土)가 뭡니까? ‘견딜 감[堪]’자(字) ‘참을 인[忍]’자(字). 감인세계(堪忍世界)라 그러죠 사바 국토(娑婆 國土). 참 다른 분들은 잘나고도 잘난데서 살지마는 석가모니 부처님은 참고 견뎌야 되는 사바 국토(娑婆 國土). 여기에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阿耨多羅三藐三菩提)를 이루고··· 고건 이제 고 위에다가 하나 더 써 놓으세요. 불인(不忍)이면. ‘아니 불[不]’자(字) ‘참을 인[忍]’자(字). 비인(非人)이고. 사람이 아니고. 비인(非人)은 불인(不忍)이라. 사람이 아닌 사람은 참지 못한다. 불인(不忍)은 비인(非人)이요 비인(非人)은 불인(不忍)이라. 그 어디, 좀 전달해주세요. 예? 사람일 것 같으면 참아야 돼. ‘참을 인[忍]’자(字)가 ‘칼날 인[刃]’자(字)밑에 ‘마음 심[心]’ 있는 거는 심장에 칼날이 꽂혀도 참는데 우리는 손끝에 가시만 꽂혀도 못 참는다. 그러니까 참을 수 없는 걸 참는 걸 ‘참’이라 그래요. 난인(難忍)을 능인(能忍)이라. 참기 어려운 걸 참고. 난행(難行)을 능행(能行)이라. 행하기 어려운 걸 행하는 것을 시명(是名) 부처라고 합니다, 부처. 행하기 어려운 걸 행하고. 난행(難行)을 능행(能行)하고 난인(難忍)을 능인(能忍)하고. 왜 그게 가능하냐, 이러며는.
마음에 집착이 없고
무념무상절일체고
그것이 삼매이기 때문에
충분히 가능하다는 거죠.
그 외에는 거의 하루 종일 살면서 여러분들은 변계(遍計)로 소집(所執)해서 사는 거라. 변계소집성(遍計所執性). 여~러 가지 잔꾀를 부려 가지고 거기에 집착하는 바대로 살게 돼 있어요.
이 이제 7분 정도 남았는데··· 강의가 너무 비약적이지요? 그럼 우짜겠어요? 본문만 쭈욱, 해석할까요? 그것도 괜찮애요 진도 나가기 위해서. 그러니까 이제는. 여러분들은 저를 쏙일 수 없는 게 하나 있어요. 저는 이제 여러분들, 환하게 아는 게 있어요. 저는 이제 거짓말 쪼매 더 보태면 더 보태서 애기하면. 딱 보면 지금 무슨 생각하시는지 거의 다 찍혀요. 어제 뭐했다는 거 까지 다 찍혀요. 그리고 어디 사는지 어떻게 되는지 이것도 거의 6식을 통하지 않기 때문에 ‘돗자리만 깔면’ 되는 거라 파파파파···. 그거 이제 1년 반 정도만 연습하면 그리 돼요. 좀 빠른 사람은 100일정도만 하면 돼요. 확 찍어··· 이 눈빛만 이제 교선이 되면 다 알아져요. 거짓말 같지요? 참말이라. 제가 실험 해 봤기 때문에 알아요. 증인들도 많아요. 그럼 어떻게 되느냐? 오늘 나 다칠 것 까지 다 알아요. (···) 진짜로. 그 누구 죽는 거 까지 다 알아요. 희한하죠? 그것이 업식이 조금씩 벗겨지면서 가능한 일들이고. 그런 데에 매달려 버리며는 여전히 생멸(生滅)속에 끄달려 버리고 그런 것은 제가 아니라도 누구한테든지 증명을 들을 수 있어요. 얘기는 똑같애요.
그러니까
이 길은 똑같은 길이기 때문에 서로 쏙일 수가 없는 것이
필불상잠(必不相賺)이라. 서로 반드시 쏙일 수 없어요. 상잠(相賺)이라. ‘속일 잠[賺]’자(字). 서로 쏙여지지 않는 거라. 막, 드러나 있는 거야, 그게. 50원에다가 50원 더 보태면 100원밖에 안 돼요. 그러니까 다~ 돼 있는 거라.
이. 최종적으로 오늘 강의를 접고 말씀드리자면 그렇습니다.
그림은 그림일 뿐입니다.
잘 그렸든지 못 그렸든지 그림입니다.
뭐, 잘 그린. 사과나무를 그렸는데 잘 그린 그림에는 사과, 열리나요? 예? 제가 <문수선원>에 보면 사진 찍어 놓은 거 있습니다, 사진. 그죠, 보셨죠? 그거 어떻대요? 어느 게 제일 좋습디까? 오늘 우리끼리 얘기 했잖아요? (다 좋아요) 다 좋아요?
좋아도 지는 사진이야. 예? 저기 뭐, 눈[雪]이 차울 수도 없어요. 더울 수도 없어요 뭐, 어쩔 수도 없어요.
그런 것을 가지고 우리는 과거에 매달려 있는 법진연영(法塵緣影)의 찌끄래기로 사는 사람들. 그림자에 잡혀 가지고··· 그걸 갖다가 법진(法塵). 법의 찌끄래기. 법이라고 하는 것은 마음이 만들어 내 가지고 여러 가지 형태를 만들어 내 가지고서. 연영(緣影). 반연한다. ‘그림자 영[影]’자(字). 저런 사진보고 “아이구 추워라···” 하는 거하고 똑같애요. 난로, 진짜 난로 아니고 ‘난로 그림’만 보고 “아이구 따시라···” 하는 거하고 똑같은 거라. 이 그러니까. 세상 사는 데 거기에만 안 쏙으며는 금방··· 이 상음마가 이게 상음마구나 상음마구나··· 그게 상음마라고 알아차리면 되는 거라. 요게 식초라고 생각하면 제가 먹는 것만 보더라도 여러분들, 어때요? “아이고 저걸···” 뭣이 동해서 그래요? 과거에 법진연영(法塵緣影)에 기억해 가지고 상음마가 동해 가지고 제가 먹는데 옆에서 바라 볼 때 “아이구···” 하잖아요, 그게. 예? 그렇게 속는 게 하루 종~일 속는 거라. 옆에서 펴다 보며는 거기 쏙으면 마, 축생이야.
아. 그러면서 그런 걸 무심히 바라보고 무심히 느끼고 하는 거를 자~꾸 이리 체득해야 됩니다. 이··· 참, 녹음 다 남았네. 거짓말 해 놓은 거 우짜꼬? 돌릴 수도 없고. 그러니까, 차곡~차곡 해 가지고 이제는 귀한 인생에 실속들 있게, 그렇게 사십시오. 이런 교리가, 원치가 않고 저~기, 그냥 뭐, ‘사성제가···’ 이름 좌악, 나열하고 아름다운 지식을 풍부한 거, 이런 거 있잖아요? 그런 걸 원하시며는. 그런 건 또 가르치는 데 많아요. 근데 이게 잘못 가르치며는 교양 강좌든지 불교든지 이렇게 불교 교리, 잘못 가르치다 보면. 사람을 불교 쪽으로 들어올 수 없도록 막아. 그 불교 지식이. 다른 사람이 막는 게 아니라. 이 책이 나를 막아. 그러니까 이게 날 따라 다녀야지. 틀리면 뭐가 틀려요? 책이 틀리고 사람이 틀릴 수는 없어요. 사람이 틀리는 거는 수행이 덜 돼서 틀리고 수행이 되며는. 부처님이 틀릴 수는 없어요. 부처님, 받아쓰다 보면 그 책이 틀릴 수는 있지. 안 그래요? 제일 진실된 건 사람이라. 사람이 틀릴 수는 없어.
근데 사람이 “틀렸다” 이러며는 “아이구 스님, 책에 그리 안 돼 있던데예?” 책 틀렸다, 이러며는. 책을 믿을라고 하는 사람들 있어요. 책이 틀리고. 뭐가 맞아요? 사람이 맞아요, 사람. 그러니까 마음을 통달한 사람은 책을 뭐, 이런 거, 하루에도 수백 권씩 쓸 수 있어요. 우리는 아니고. 저기 고우 스님 겉은 분들 또 우리 어른 스님 겉은 분들··· 성불(成佛)하십시오, 마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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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그림은 그림일 뿐입니다 ..._()()()_
고맙습니다...()()()
生滅에서 因果가 있지 不生不滅의 그 本體界에서 무슨 因果가 있을 수 있겠는가,,,不忍이면 非人이고 非人은 不忍,,,難忍能忍, 難行能行,,,法塵緣影,,,言者不知 知者不語 ! 고맙습니다, 하오나 저 위에 글을 龍學스님의 法門으로 정정 해 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나옹 스님 교향(고향)이 영덕입니다.... 가을햇살님, 용학스님과의 시간이 되살아나는 즐거움을 주셨습니다. 고맙습니다. _()()()_
마니주님~! 덕분에 고쳤습니다. 저도 고맙습니다. ^^
가을햇살님! 고맙습니다... _()()()_
가을햇살 님! 수고하셨습니다.._()()()_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