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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적인 소주는 곡주 발효 후 증류해 다시 발효시키는데 비해, 오늘날 우리가
주로 마시는 소주는 화학적 방법을 이용한 '희석식 소주'이다. 희석식 소주의
제조 방법의 핵심은 알콜 농도가 95%인 '주정'이다. 주정의 원료는 전통적 소주
의 원료인 쌀이나 수수가 아니라 '당밀'이다. 당밀은 사탕수수나 사탕무에서 사
탕을 뽑고 남은 즙액으로 시럽 형상을 한 검은 빛을 띠는 것이다. 당밀은 비료/
사료/연료로 사용될 뿐 아니라 고체는 구두약, 연탄 등의 연료로 사용된다. 고
체 형태의 당밀을 발효시켜 에틸 알코올만 추출하는 연속식 증류기에서 뽑아낸
알콜이 희석식 소주의 원료인 주정이다.
한국에서도 고려시대 이후 증류식 소주가 전해지면서 식량과 술의 끊을 수 없
는 상관관계가 지속되었다. 전통적 소주는 많은 양의 쌀을 써서 만들지만 생산
량은 극히 적으므로 소주 제조는 곧 식량을 축내는 일로 연결되었다. 그래서 흉
년이 들면 금주령을 내렸다.
일본 제국주의자들은 세금을 걷으려 술을 관리하였다. 1916년 총독부 당국에 의
해 본격적 주세법이 발효되었다. 집 안에서 개인적으로 행하던 술 제조(그때는
제사 때 쓰는 제주와, 농사철에 마시는 농주는 모두 집에서 담궜다)까지 제조
면허를 얻게 했다. 주세에 의한 착취는 점점 엄격해져서 1934년에는 면허 신청
자가 없었다. 일제가 군홧발로 집집을 뒤져 제사에 올릴려고 담근 술을 마구 짓
밟았다는 이야기가 이때부터다.
국가적 차원의 주세법은 상업적 술의 생산과 판매를 활성화하여 총독부의 수입
을 증가시켰다. 그러나 술의 질은 떨어져 제조 원가가 많이 들고 판매가도 비
싼 재래식 소주는 사라지고 재래식 소주에 에탄올을 섞은 개량식 소주가 등장했
다. 주정 형태로 일본에서 수입한 알콜 소주를 섞어 소주 값은 내리고 더욱 대
중화되었다.
그러나 본격적인 현대의 희석식 소주는 1965년 박정희 정권부터이다. 보릿고개
를 해결하기 위해 혼식 장려와 벼 품종 개량을 하면서, 모든 술을 쌀로 빚지 못
하게 하는 '양곡관리법'이 시행되었다. 막걸리는 밀로, 소주는 고구마로 만들게
되었다.
사실, 일제 때인 1935년 제주도에서 알콜 원료용 고구마를 재배하는데 성공했으
며, 에틸 알콜은 전시에 연료로 쓰일 수 있으므로 일제는 대량 생산화에 매진했
다. 1938년 동양척식 주식회사는 제주도에 고구마를 원료로 하는 무수 알콜 공
장을 설립했다. 그러나 이 무수 알콜을 주정으로 하는 희석식 소주는 1965년 양
곡관리법이 발효되고 나서야 일반 소비자의 대대적 환영을 받아 이때부터 순곡
주 발효 증류주인 재래식 소주는 일단 사라지고 희석식 소주가 소주의 대명사
가 되었다.
고구마나 감자에서 주정을 추출한다고 하여 희석식 소주가 '화학 소주'라 단언
할 순 없다. 그러나 술은 대부분 발효 과정을 거쳐 생산되는데 희석식 소주는
발효 과정이 빠진 채로 만들어진다. 주정은 식용 알콜이지만, 그것에 물을 섞
고 각종 감미료를 첨가시켜 부드럽게 마시도록 한 희석식 소주는 마신 후 심한
두통을 일으킨다. 물론, 순수 발효 과정을 거친 밑술을 증류한 요즘의 전통 소
주나 중국의 바이쥐우(백주), 브랜디, 위스키 모두 많이 마시면 머리가 아프
다. 그러나 희석식 소주처럼 지독하진 않다.
주식으로 먹는 쌀을 원활히 공급하는 것은 국가의 책임인 중요한 사안이다. 그
러나 금주령을 내리는게 아니라 술을 화학적 방법으로만 제조하도록 법으로 정
했던 나라는 아마도 대한민국 밖에 없을 것이다.
첫댓글 무서버요~ 주위사람들에게 알려 줘야겠네요...좋은 정보 감사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