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신현수 민정수석의 사의 표명과 관련하여 청와대의 기류가 한동안 미묘하게 흘렀다. 그러는 동안 참모들은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은 국가기밀이라고 연막을 쳤다. 그런 대통령이 취임 초기 기세가 등등할 때는 대통령을 공공재에 비유하기도 했다
그러더니 그런 공공재가 최근에 들어서는 슬그머니 공공비밀로 바뀐 것이다. 대통령이 앞과 뒤가 다른 말을 하는 것이 최근 들어서는 더욱 잦아지는 듯하다. 말을 바꾼다는 것은 이미 한 말이 틀렸다는 것을 전제로 이를 정정할 때 의미를 갖는다.
이 경우는 이전에 한 말이 잘못이었음을 분명히 밝히고 말을 바꾸게 된다. 그런데 대통령은 말을 바꾸고서도 왜 말을 바꾸었는지에 대해 해명을 한 바가 없다. 이는 말을 바꾼 것이 자의에 의한 것이 아니라 외부의 어떤 힘에 강제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대통령의 말을 바꾸게 하는 힘의 근원은 어딜까. 최근 신 수석과 관련해서 청와대와는 달리 여권에서는 신 수석에 대한 손절을 강하게 주장했었다. 결국 대통령도 그쪽으로 방향을 잡아가는 분위기였다. 여기서 새로운 힘의 원천을 짐작케 한다.
그런데 어떻든 신 수석이 돌아온 것이다. 반겨야 할까 내쳐야 할까. 일단 대통령은 그의 복귀를 환영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자신이 직접 발탁한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대통령은 그의 임명으로 검찰을 품에 안고 정국 전환의 발판으로 삼으려고 했었다.
그런 그의 생각은 검찰 인사로 한 순간에 틀어지고 말았다. 갓 입각한 법무부 장관은 검찰 인사에서 전권을 행사했다는 전대미문의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일부에서는 대통령 결재를 받기도 전에 인사 내용을 발표했다는 말도 나온다.
대통령의 구상은 그저 구상일 뿐이라는 말이다. 대통령의 구상이 자칫 검찰에 힘을 불어넣는 것으로 나타난다면 그것은 이 정권이 관련된 각종 수사에 기름을 붓는 꼴이 될 수도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니 여권에서는 그들이 만족할만한 인사안을 만들어 이를 밀고 나가려했을 것이다. 이는 필연적으로 윤 총장은 물론이고 신 수석에게는 숨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대통령은 장관이 내민 그런 인사안에 결재를 한 것이다.
이게 정말이라면 대통령은 그저 결재란에 별 의미 없이 사인을 했다는 말이 된다. 이것이야 말로 국정논단일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신 수석과 법무부 장관 사이에 갈등이 불거진 것이다.
대통령의 기대에도 불구하고 여권에서 신 수석은 이미 손질해야할 사람으로 분류가 되었다. 말하자면 대통령의 체면을 세워주는 선에서만 그를 받아들일 것이다. 결국 어느 시점에서 그와의 관계를 정리해야 할 것이다. 이미 힘의 균형추는 기울었다.
여권의 신 수석에 대한 이런 곱지 않은 시각은 그가 검찰, 특히 윤 총장과 동류라는 것이다. 지금 여권에서는 윤 총장에 대해 퇴임 후까지도 다시 일어나지 못하도록 밝아댈 궁리 중인 것은 세상이 다 아는 바다.
결국 대통령은 신 수석을 품을지 버릴지 양자택일에 몰리더라도 답은 이미 나와 있다고 하겠다. 이로 인해 대통령은 한동안 야당의 파상공세에 시달려야 할 것이고, 여권에서의 목소리는 힘을 잃게 될 것이다.
결국 대통령은 이번 일로 리더십의 한계를 드러내고 말았다. 집권 초기라면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대통령의 권위가 조금씩 당의 위세에 눌리더니 결국 회복 불가능한 상황을 맞고 말았다. 말하자면 살아 있으나 죽은 셈인 상황으로 가고 있는 것이다.
이미 당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하는 것은 여러 곳에서 감지되었다. 재난지원금은 당의 주장을 전격 수용하여 5차까지 예고했다. 월성 원전 관련 수사 역시 당의 주장에 이끌려 그것을 공약이며 통치행위이므로 사법적 대상이 될 수 없다고 발뺌했다.
과거에는 청와대 참모가 써준 원고를 대독하더니 최근에 이르러서는 당에서 불러준 내용을 되풀이 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대통령의 위상 추락은 퇴임 후의 안전과 관련이 있다. 퇴임 후의 안전을 담보하는 것은 선거승리밖에 없기 때문이다.
결국 선거라는 블랙홀은 대통령을 제일 먼저 빨아들인 셈이 되었다. 보궐선거와 연이은 대선에서 패한다면 대통령의 오늘과 같은 영화는 그곳에서 끝나기 때문이다. 선거 블랙홀은 대통령의 레임덕과 서로 연결되어 있는 셈이다.
이로 인해 대통령은 결국 앞으로 여당의 브로마이드 역할밖에 할 수가 없게 되었다. 대통령의 레임덕은 여권 내부에서 출발해서 조금씩 퍼져나가고 있는 중이다. 권력이란 그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