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노선 교장선생님 퇴임에 송별사 1990년2월23일
삼성국민학교에서
양도초등학교 제15회동창 일동
존경하는 윤노선 교장선생님 , 교단에서 수고하시는 교직원여러분,
그리고 이 자리에 만장하신 여러 학부모님들, 양도초등학교 제 15회 졸업생 일동은 윤노선 교장선생님의 영광스러운 퇴임에 즈음하여 심심한 축하의 말씀을 드립니다.
장근, 50년 세월을 교단에서 일생을 바치시고 오늘 정년퇴임을 맞이하신 교장선생님 내외분, 그동안 세월이 많이 흘러갔습니다.
회고하면 1943년 저희들이 나이 열한 살 때 선생님께서는 처음으로 양도국민학교에 부임하셔서 우리들 삼학년을 담임하셨습니다. 그때는 왜정치하의 노예시대인지라 우리들은 정상적인 초등교육을 받지 못했던 것입니다.
마치 길가에 잡초모양, 자랐던 것입니다 선생님이나 우리들이나 왜놈들의 이른바 대동아전쟁이란 전쟁준비에 제물이 되었던 슬픈 역사가 우리에게 있었읍니다. 지금도 우리들의 기억에 똑똑히 생각나는 것은 1945년 8월15일, 오전에 있었던 일입니다. 그때는 여름방학도 즐기지 못하고 학교 개간지에 가서 퇴비 풀을 깎고 있었습니다. 멸망직전의 일본이 이른바 식량증산이라 하여 아린 아이들까지 강제 노역에 내몰았던 슬픈 기억입니다.
다른 날은 오후에도 작업을 하더니 이날은 열 시쯤 되니까 작업을 중지하고 학교로 돌아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때에 학교 앞에는 공습경보를 알리는 싸이렌 대가 높이 서 있었는데 그 꼭대기에 이상한 기가 꽂혀 있었습니다.
그 기는 검은 것 같기도 하고 누렇게 뜬것 같기도 하였습니다. 저것이 무슨 기녀? 고 일본말로 말하니까. “무까시 조센노하다.” 즉 옛날 조선의 기 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우리들이 태극기를 처음 보고 알게 되었습니다.
일본천황은 항복을 하고 조국은 억압에서 풀려나는 해방이 되고 온 겨fp가 감격에 넘치는 광복을 맞이했던 것도 선생님과 함께였습니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달토록 애국가를 배우고 “백두산 뻗어나려 반도 삼천리” 처음 우리말로 우리 노래를 선생님께 배웠습니다.
오늘 퇴임하시는 선생님, 그때에 문맹퇴치라는 구호가 생각나실 것입니다.
분수와 대수를 배우는 것보다, 가갸거겨 한글배우기가 우선이었던 것입니다.
짧은 기간이었으나 우리말로 우리 공부를 하는 동안 선생님과 함께 소풍가고 운동회 하던 즐거운 시절도 있었습니다. 어언간 우리들은 졸업을 하였고 선생님은 교육에 전렴시어 오늘까지, 전 생애를 교단에 불태우셨으니 선생님의 그 모든 발자취는 교단에 귀감이 되셨고 이 훗날에도 지표가 될 것입니다
존경하는 윤노선 교장선생님, 우리들이 선생님에게 공부할 때 국어시간에, “도회지가 좋으냐? 농촌이 좋으냐?” 라는 제목이 있었습니다. 그 제목에서 우리들에게 가르쳐 주시기를 국가에 기초는 지방에 있다 조상으로부터 전하여오는 농토를 지키어 생산에 힘쓸 것이며 나아거서는 추위에 사람을 이끌어 지방개발에 이바지해야 할 것이다 이것이 국가의 기초를 튼튼하게 하는것이요 참으로 나라를 위하는 것이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네, 우리들은 그렇게 했다고 크게 대답할 수 있습니다. 우리들은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 왔습니다.
평생을 교단에 몸 바치시고 오늘, 영광스럽게 퇴임하시는 선생님에게 저희들이 무슨 말씀으로 대하여야 하겠습니까. “노병은 가나 죽지 않고 살아있다” 맥아더 장군의 말을 인용하여 선생님의 생애에 찬사를 드리는 바입니다
존경하는 윤노선 선생님 내외분의 만수무강하심을 비옵고 두서없는 말씀으로 양도 국민 학교 15회 동창들이 동문 전원과 함께 송별사로 가름하는 바입니다
1990년 2월23일. 양도 국민 학교 제 15회동창회장 한흥수 황원준 대독
이원고는 당일의 삼성초등하교 진행자 측에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낭독은 못하고 동창들이 그 자리에서 예물 (금지환)만 전해드렸다 빛바랜 원고가 20년 만에 빛을 보니 추억이 새로운 마음으로 동문 여러분에게 공개한다.
◆다음 기회에 윤용헌교장선생님의 퇴임하실때의 송별사를 본 란에 올릴 기회가 있을 것이니 기대하시기 바란다 註 황원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