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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나무로 지은 대형 레스토랑 '로그인' 신혼부부들이 사진촬영 장소로 많이 이용하고 있다.
그건 그렇다 치고-. 농경업을 위시한 1차산업만이 국가산업의 전부 같았던 전라감사 시절의 재복이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곡간을 차곡차곡 채운 곡물이었겠다. 곡간에서 인심이 나고 배가 불러야만 풍월을 읊을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전라감사가 좋았던가 보다.
전라감사가 집무했던 전라감영은 전주에 있었고, 전주는 전라도 전체를 관할하는 호남의 수부(首府)였다. 호남의 수부 전주는 이름있는 산들을 등에 업고 또 다른 쪽으로는 우리 나라 제일의 곡창인 ‘징개 맹경 외야미들’(김제만경평야)이 아스므레하게 펼쳐져 있다.
그 뿐만이 아니다. 멀지 않는 곳에 바다가 있다. 평야지대라 교통 수송로 또한 편리했다. 그래서 풍성하고 다양했던 곡류와 임산물, 해산물이 수부로 집결했다. 거기다가 서해안 염전에서 생산된 양질의 소금은 맛깔스러운 젓갈을 담게 했고, 갖가지 양념들로 사치스러운 조리법을 개발할 수 있게 했다. 이것이 이 지역 여인들이 음식문화의 화려한 꽃을 피울 수 있게 했을 것이고, 오늘의 ‘전주의 맛’을 창출해 내었을 것이다.
◈ 대원사코스의 명소 ‘K2산장·산악’
전북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는 해발 793.5m의 모악산(母岳山)은 만경강(萬頃江)과 동진강(東津江) 사이에 펼쳐진 금만평야(金萬平野)의 동쪽에 우뚝 솟아 있다. 평야와 산지를 가르는 분수령으로 호남평야의 전망대라고도 불린다. 전주시 완산구 중인동과 완주군 구이면, 김제시 금산면에 걸쳐 경계를 이루고 있다.
모악산에 오르는 길은 크게 셋으로 나눈다. 이 중에서 산꾼들이 가장 많이 선택하는 코스는 대원사코스다. 지금은 최근에 들어선 우뚝 솟은 모악산모텔로 ‘모악산모텔코스’로도 불린다. 무한정 넓은 무료 주차공간이 있고 입산료도 받지 않는 코스라 연간 70만 명이 넘는 인원이 산행들머리로 삼고 있다고 한다. 행정구역은 완주군 구이면 원기리다.
이 곳에는 지난 봄 전북의 골수 산악인 김창석씨(金彰錫·47·전북산악연맹 감사) 내외가 산악인들이 이용하기에 딱 좋은 장비점과 식당 문을 열어 놓았다. 아름다운 한 송이 꽃같이 피어난 식당이고 별같이 반짝이는 장비점이다.
‘K2산장’(063-221-8177)은 부인 김신구(金信九·47)씨가 맡아 운영한다. 누구나 부담없이 먹을 수 있는 대중적인 음식들을 내고 있다. 새로 지은 집이라 깨끗하고 분위기도 밝다. ‘산장’이라는 옥호 그대로 식당 2층은 산장 분위기가 나는데, 식탁에 앉아 창밖으로 멀리 내려다보는 구이저수지 풍경이 참 아름답다. 순두부, 보리밥, 양념돼지고기구이 각 4,000원. 안주인은 고추장 잘 담근다고 자신했고, 양념돼지고기구이는 이 집의 히트상품임을 강조했다.
산꾼들은 이제 장비구입을 위해 별도의 시간을 낼 필요가 없게 되었다. 구입할 장비 목록을 작성해 두었다가 등산 가는 날 산자락에 있는 장비점에서 구입 하면 된다. 명산 자락에 장비점들이 속속 들어서고 있는 것이 하나의 유행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K2산악’(063-221-4546)에는 웬만한 등산장비는 다 구비해 놓았다. 전문산악인의 자문을 받으면서 장비를 구입할 수 있다는 것도 바람직한 일이다. 전북산악연맹 산악구조대 간판을 걸어두고 30여 명 대원들과 구조활동도 펴고 있는 김창석씨는 인근 예술고등학교 뒤편에 높이 80m, 폭 60m의 암장을 개척, 암벽훈련과 119구조대 훈련장으로 쓰고 있다. 한편으로는 전주시의 지원을 받아 6곳에다가 등산안내 표지판을 세워 놓기도 했다.
◈ 보리밥집 동네 원조 ‘등산로휴게실회관’
원기리 일대의 식당들은 어느 집이나 보리밥을 대표음식으로 내고 있는데, ‘등산로휴게실회관’(063-221-1365)의 정윤자(49)씨가 그 원조라고 한다.
‘쌀밥은 / 왕족이나 양반인 / 이씨(李氏)들만 먹었다 / 가난한 조선 시절 / 그래서 쌀밥은 이밥이 되었다 // 이팝나무에 흰 꽃이 만발하면 / 풍년이 오고 / 꽃이 많이 피지 않으면 / 흉년이 온다고 / 사람들은 믿었다 // 아아, 쌀밥이 먹고 싶었던 선조들이여 / 이팝나무여 / 하얀 꽃을 눈덩이처럼 듬뿍 피워 달라’(박지극 시인의 ‘이팝나무’)
보리밥은 가난한 사람들이 먹어야만 했던 주식이었다. 그러던 것이 지금은 ‘귀한 음식’ ‘별미’ 정도로 대접을 받는 음식이 되었으니 세상은 역시 재미가 있다.
지금 시원스럽게 개통이 된 새 길이 나기 전에 다니던 길쪽에는 통나무로 지은 대형 레스토랑 ‘로그인’(063-221-6558)이 있다. 집주인 류인숙씨는 신혼부부들이 사진촬영을 위해 단골로 찾아오는 곳이라고 자랑한다. 이 이상 자신의 업소 분위기를 좋게 설명할 길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하산길에 차 한 잔 마실 만한 집이다.
또 한 집 ‘로그인’과 나란히 있는 대형카페 ‘산여울’(063-222-7747)에서는 원두커피를 직접 갈고 즉석에서 내려서 먹을 수 있다. 하산길 땀을 씻을 수 있는 대중사우나 ‘모악탕’(063-222-2940)이 있다는 것도 알아두면 좋겠다.
◈ 전주비빔밥은 하늘을 나르고
평양냉면과 전주비빔밥은 대한민국의 남북을 대표할 만한 음식이다. 조선조 3대 음식으로 꼽히기도 했던 전주비빔밥은 맛만이 아니라 그 역사성도 남북을 대표할 만하다. 이러한 전주비빔밥이 이제는 하늘을 나르며 지구촌 곳곳 사람들의 미각을 즐겁게 해주기도 한다. 국내 항공사의 국제선 항공편에는 기내식으로도 내놓고 있는데 외국인에게도 대단한 인기란다.
맛과 멋의 고장 전주에서는 전주음식의 대명사처럼 되어 있는 전주비빔밥과 또 한 가지 콩나물국밥을 쉽게 먹을 수 있다. 음식값이 비싼 것도 아니다. 특히 모주 한 잔을 곁들이는 전주콩나물국밥은 해장국으로 널리 알려져 있고 전국 대도시 어느 곳에서나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되었다.
콩나물은 전주팔미(八味) 전주십미(十味)에 들어 있고, 전주시내 중심가 풍남문에서 멀지 않는 남부시장 안에는 콩나물해장국 골목도 형성되어 있다. 이 골목에 있는 ‘남문별미집’(063-288-1621)은 24시간 철야로 영업을 한다.
현직 대통령을 면전에 두고 “워매! 이놈 봐라! 네 놈은 어쩌면 박정희를 그리도 닮았냐. 이 놈아! 누가 보면 영락없이 박정희인 줄 알것다. 그런 의미에서 달걀이나 하나 더 쳐먹어라”고 했다던 그 음식점 할머니는 지금 이 세상 사람은 아니지만 ‘삼백집’이라는 옥호는 그대로 남아 같은 장소에서 다른 사람이 영업하고 있다.
서울에서는 ‘전주식당’이라는 옥호가 전화번호부에 90여 곳 등재되어 있고, 서울의 명동에 있는 ‘전주중앙회관’에는 월드컵 이후 부쩍 늘어난 일본인 관광객들로 앉을 자리가 없다고 한다. 1954년에 창업한 전주콩나물국밥 원조집 중의 한 곳인 한일관(063-226-1569)의 창업주 박강임 할머니는 지금 서울 강남구 특허청 뒤쪽에 ‘전주한일관’(02-569-0571)을 열어 놓고 50년 전통의 그 맛 그대로를 서울 손님들에게도 제공하고 있다.
◈ 비단길 코스 옛 과수원 길이 그리워
‘동구 밖 과수원길 아카시아 꽃이 활짝 폈네’ 박화목 작사 과수원길 노랫말의 한 구절이다. 꿈길 같은 이러한 길이 전주 가까운 외각에 아직도 남아있다는 것은 참으로 반가운 일이다. 전주 시내버스 88번, 88-1번, 88-2번을 타고 종점인 중인리에 내린다. 이 종점이 꿈길같은 과수원길의 시작 지점이다. 모악산 ‘비단길 코스’의 들머리이자 하산길이다.
길 양쪽으로는 음식점들이 계속 늘어나고 있다. 자연을 파괴하고 오염시킬 것이라는 시각에서 보면 안타깝다. 버스가 마지막 닿는 곳에 ‘산천순두부’(063-221-8982)라는 우리 콩음식 전문점이 있다. 날아갈 듯한 한 채의 기와집과 부속건물을 식당으로 쓰고 있는데, 옥호 그대로 두부(3,000원)와 순두부백반(4,000원)을 먹을 수 있다.
이 코스에서는 ‘시골가마솥집’(063-221-9199)이 하산길 산꾼들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집으로 소문이 나 있다. 보리밥, 김치찌개, 된장찌개, 청국장(각 4,000원)을 먹을 수 있고, 돼지고기 생고기 구이로 동동주 한 잔 마시는 것이 이 집의 풍속도다.
찻길이 끝나고 등산로가 시작되는 곳에 사시던 정이순(78) 할머니는 최근 전주시내 딸네집으로 내려가셨다고 한다. 할머니의 솔잎동동주 한 잔 맛에 푹 빠졌던 산꾼들은 몹시 아쉽겠다. 이곳 버스 종점 바로 맞은편에도 등산장비점 한 곳이 문을 열어놓고 있다(중인산악 063-221-9755).
◈ 금산사코스 단골집 ‘호박정’
모악산의 김제쪽 산자락에는 대가람 금산사가 있다. 그래서 이곳에는 일년 내내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입구에는 작지 않는 식당가가 형성되어 있다. 스무 집이나 되는 식당들 중에서 ‘호박정’(063-548-0861)은 월간山과 인연이 닿아 있고, 그만큼 산꾼들이 많이 찾는 집이다. 식당 간판에도 작게나마 겸손(?)하게 월간山에 소개된 집으로 적어 놓았다.
친절하고 곱상한 여주인 김남숙(金南淑·52)씨는 월간山 독자임을 밝히는 손님들에게는 무척이나 약해진다며 수줍게 웃었다. 극진히 잘 모셔야겠다는 생각 때문에 손님이 머무는 동안에는 정신이 하나도 없다고 했다. 공짜로 내놓는 칡차 인심이 좋다고 소개되었는데, 칡차가 떨어진 날에는 안절부절이라고 한다. 커피 자판기가 식당에 설치되어 있어 원하는 손님은 언제라도 마음대로 뽑아 마시도록 해 놓았다.
넓고 환한 분위기의 집에서 주인이 직접 부친 파전에다가 동동주 한 잔 걸치는 기분은 괜찮다. 산채정식(8,000원), 더덕정식(10,000원), 오리주물럭(30,000원).
▲ 전통찻집 토지와 한우 전문 음식점 고향산천
금산사에서 전주로 가자면 김제시가지를 거치지 않아도 된다. 금산사 주차장에서 김제쪽으로 나오다가 용화 삼거리에서 오른쪽으로 차를 돌리면 된다. 귀신사 방향 표지를 따라 자동차로 5분 정도 달리다 보면 오른쪽으로 참으로 멋지게 조경해 놓은 전통찻집 ‘토지’(063-548-3340)와 한우전문음식점 ‘고향산천’(063-548-3347)이 나타난다.
주인 최봉호(50)씨는 한국 최고의 분재농원을 고향땅에다가 조성하겠다는 원대한 꿈을 이곳에다가 쌓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어느 날엔가는 이곳에서 한국 최고의 명목(名木)들도 볼 수 있을 것이라는 포부도 들려 주었다. 흙으로 지은 돔 모양의 찻집에 들려 오미자차 한 잔 마시는 것도 좋겠다.
눈요기감으로도 훌륭한 분위기의 고향산천에서 소양념갈비나 등심을 구워 놓고 술 한 잔 마셔보는 여유로움도 산행 후의 큰 즐거움이 될 수 있겠다.
◈ 증산성지 동곡 마을의 ‘무릉도원’
금산사 아래 금평저수지 가에는 증산교 본부가 있다. 그리고 저수지 상류쪽으로 올라 가면 동곡 마을이 나오고, 이 마을에는 증산성지 동곡약방이 있다. 신도가 아니더라도 한 차례 들러볼 만한 곳이 아닐까.
동곡약방과 인접한 곳, 작은 계천을 따라 얼마 올라가면 김제 지방에서는 그 명성이 자자한 음식점 ‘무릉도원’(063-548-5557)이 있다. 전형적인 시골 정취를 느낄 수 있는 집이다. 집 앞으로 넓게 펼쳐져 있는 논에 메뚜기가 뛰고 있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
김상문(金相文·43)-이영애(李英愛·43) 부부가 지난 초봄에 이곳에서 문을 열었지만 가까운 곳에서 오랫동안 전통을 쌓아온 집이다. 그만큼 단골손님이 많다는 것이다. 붕어찜(1인분 9,000원·2인분 이상), 민물매운탕(20,000~30,000원), 오리주물럭(30,000원)이 주메뉴다.
◈ 전주팔미에 ‘아! 옛날’ 옻닭 나도 있다
맛의 본고장 전주, 그 맛의 원천이 되는 많은 맛감 중에서 가장 뛰어난 여덟 가지, 열 가지를 골라 이곳 사람들은 전주팔미(全州八味), 전주십미(全州十味)라고 한다. 그리고 전주를 벗어난 이웃, 다른 지역에서는 전주의 그늘에 가려 웬만한 음식솜씨로는 명함을 내놓지 못한다.
그런데 이것은 하나의 반란일까. 지금 모악산 자락, 금산사에서 4km 떨어진 김제땅 금산면 구월리 ‘아! 옛날’(063-542-0199)이라는 옻닭 전문점에서는 작은 반란이 일어나고 있다. 이 집에서는 지금 시도 때도 없이 손님들로 문전성시를 이룬다. 음식의 주재료가 닭이고 보니 이 집의 닭들은 전주팔미 전주십미에다가 반항이라도 하듯 ‘옷닭 나도 있다’고 외치고 있는 것만 같다. ‘전주비빔밥 전주콩나물국밥 한 번 나와 보라’고 소리치는 것만 같다.
옥호도 별난 ‘아! 옛날’에서는 요리재료도 별나고 음식차림도 별나다. 닭은 자가 농장에서 기른 놈을 쓴다. 자가농장에서는 재래종 닭만을 기르고 부화한 지 5~6개월 이상 되어야만 요리재료가 된다.
옻닭은 전라도 지방의 부유층들이 옛부터 즐겨 먹던 전통 민간음식이다. 옻나무 가지를 잘라 닭과 함께 끓여 내는 옻닭 백숙은 그 맛이 담백하고 기름기가 적다. 쫄깃하고 느끼하지도 않으며 항암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남성에게는 정력 증강에 효험이 있고, 여성에게는 손과 발이 더워지고 뱃속이 따뜻해지며 생리통과 퇴행성 신경통 치료에도 도움이 되고 있다고 한다. 단 한 가지 옻에 대하여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는 사람은 먹기 전에 처방해야 한다는 것이다.
복숭아 과수원을 하며 닭들을 방목하고 있는 장선용(張善龍·48)-장옥신(張玉信·45) 주인 부부의 철저한 프로근성이 오늘의 명성을 얻게 되었다고 한다. 이 집을 한 번 다녀간 사람들은 모두 홍보요원이 되어 주변 사람들에게 먼 길이라도 한 번 다녀오기를 권유한다고 했다. 마당에 세워둔 손님들의 자동차 번호판을 보면 매일 전국 각지에서 이 집을 찾아오고 있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집주인은 좌석이 많지 않는 집이라 예약 없이 찾아온 손님들이 자리가 날 때까지 밖에서 기다리는 모습을 보는 것이 몹시 송구스럽다고도 했다.
옻닭백숙 30,000~40,000원, 한방백숙 27,000원~30,000원, 오골계백숙 25,000원. 약밥과 죽, 그리고 후식이 따라 나온다.
술은 ‘사랑의 묘약’이라는 복분자 술을 가장 많이 찾는다고 했다. 정력증강은 변함없는 인간들의 영원한 염원인가.
(박재곤 산촌미락회 고문·woochon69@hite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