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 / 김춘수]

[만죽]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 / 김춘수]

샤갈의 마을에는 3월에 눈이 온다.
봄을 바라고 섰는 사나이의 관자놀이에
새로 돋은 정맥이
바르르 떤다.
바르르 떠는 사나이의 관자놀이에
새로 돋은 정맥을 어루만지며
눈은 수천 수만의 날개를 달고
하늘에서 내려와 샤갈의 마을의
지붕과 굴뚝을 덮는다.
3월에 눈이 오면

샤갈의 마을의 쥐똥만한 겨울 열매들은
다시 올리브빛으로 물이 들고
밤에 아낙들은
그 해의 제일 아름다운 불을
아궁이에 지핀다.

-《타령조 기타》(1969)

김춘수의 초기 시가 존재론적이고 인식론적인 경향을 보인 데 비해, 시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은 이미지에 대한 인식이 드러나면서 낭만적인 정서가 표출되어 있다. 이 시는 러시아의 화가 샤갈M.Chagall(1887~1985)의 그림을 시의 공간으로 설정하여 초현실적이고 몽환적인 화풍에서 얻은 이미지로 순수하고 아름다운 신비한 삶의 모습과 봄을 맞이하는 생명 감각을 나타내고 있다. 이 시와 가장 가까운 이미지로 된 샤갈의 그림으로는 <나의 마을>(1911년)이 있다. 고국을 떠나 이국땅 프랑스에서 샤갈은 러시아의 고향 시골의 풍광을 그리워하며 마치 꿈속에서처럼 그리고 있는 것이다. 그림의 내용은 일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농부와 기다리는 아내, 공간 위치를 초월하여 거꾸로 된 집들, 양젖 짜는 여자, 암소 한 마리와 대화하는 샤갈, 그의 손에 들려 있는 봄이 오는 과일나무, 그의 그림은 천사의 이미지로 신비롭게 덮여 있는 환상의 세계이다. 이 시는 일상적인 언어를 해체하고 이미지만으로 화자의 정서를 드러냈다. 이 시의 특성은 감각적이고 회화적이고 환상적이다.

「다시 읽는 한국의 명시」 김원호 지음
맹태영 옮겨 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