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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당마을은 강진에서도 가장 풍수가 좋은 곳으로 소문이 나 있다. 또한 금당리 백련은 그 크기가 다른 지역에서 피는 꽃보다 커서 이름이 높다. 정약용 남도 유배길과 삼남길은 여기서부터 산길을 타고 작은 묏등을 하나 넘고 다시 솔치고개를 넘어서 고성사 방면으로 내려선다. 고성사에서는 강진 읍내와 들이 내려다 보인다. 그 강진 들을 가로질러 만덕산으로 길은 이어진다.
금당리 백련당에 도착하니 오전 11시를 막 넘어선다. 달마지마을에서 여기까지 2시간 이상 걸린 셈이다.
부지런히 백련지를 오가면서 사진을 찍는 어른들을 보고 아이들은 "왜 어른들은 쉴 때 쉬지 않고 저렇게 힘들게 다니는지 모르겠다"고 하였다. 어른들인들 왜 쉬고 싶지 않겠는가? 어른들은 다시 이곳에 올 기회가 많지 않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이 순간을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 아니겠는가.
출발하기 전 백련지에서 본 백련당. 커다란 소나무와 배롱나무와 백련 등이 어울려 아름다운 광경을 연출해 내고 있다. 30분 정도 휴식을 취하고 11시 30분에 출발.
뒷산으로 들어선다.
아차하는 순간 길을 잘못 들어 다시 나온다. 여기서부터는 풀이 자라 길이 잘 보이지 않고 표지도 제대로 남아 있지 않아 길을 따라 걷는 것이 쉽지 않다.
이름모를 무덤으로 내려가는 길은 사람의 흔적이 거의 없다. 길을 만들다시피하여 걸어간다.
여기서부터는 그야말로 고행길이었다. 풀이 자라서 발 밑이 보이질 않는다. 혹시라도 뱀이 있을지 몰라 두 발로 땅을 꽝꽝 구르고 2개의 등산용 스틱을 서로 땅땅 울리며 걸었다. 다행이 뱀은 없었지만 대신 말벌을 만나는 살벌한 순간이 있었다. 경찰관인 윤호아버지의 시의적절한 대처로 다행이 아이들에게 피해는 없었다. 대신 윤호아버지는 벌에 쏘여 그 다음날까지 손등이 퉁퉁 부어 있었다.
12시 30분 드디어 길로 내려선다. 금당리에서 출발한 지 한 시간. 그러나 아이들은 묏등을 넘느라고 기운이 다했다.
바로 길에서 휴식. 그리고 점심식사
오늘 점심은 유부초밥이다. 아이들이 아침을 먹고 스스로 만든 점심이다.
동규 입이 터질 듯.
유뷰초밥을 먹고 열량 덩어리 '자유시간' 하나씩을 이어 먹는다.
오후 1시 솔치고개를 향하여 출발한다.
40여 분을 걸어서 드디어 솔치고개에 올라섰다. 길이 가파르지는 않았으나 풀이 우거져 짧은 바지나 짧은 소매를 입은 아이들이 고생을 많이 했다. 경빈이가 고개마루에서 포즈를 취한다.
솔치고개에서 고성사를 내려가는 길은 기분이 좋은 길이다. 편백나무와 삼나무 숲이 이어져 있어서 걷기에도 아주 편안하였다.
내리막길을 내려서서 고성사에 이르는 막바지 길
오후 2시에 고성사에 도착. 물을 보고 아이들이 미친 듯이 달려든다. 기어코 야단을 맞고 다시 질서를 갖추어 물을 마신다.
준우와 백구
고성사범종. 강진 뒷산인 보은산은 황소가 누운 모습이다. 보은산 우두봉(牛頭峰)이 소 머리라면 고성사(高聲寺)는 소의 목에 매단 워낭에 해당한다고 했다. 그래서 이 자리에 범종각을 세우고 종을 타종하니 강진의 읍세가 커졌다고 한다. 금릉팔경 중에 고암모종(高庵暮鐘)이 있는데 이는 고성사의 저녁 종소리란 뜻이다. 금릉은 강진의 옛이름이다.
이제 고성사를 내려서서 강진읍내로 들어간다.
강진읍 체육공원
영랑생가의 뒷담을 걸어가는 석문. 흡사 깊은 시상(?)에 잠긴 발걸음 같다.
시문학파 기념관 앞 잔디 밭에서 더위에 지친 아이들은 아이스크림으로 피로를 씻는다.
준우와 석문이가 가장 아이스크림이 반갑다.
영랑생가로 들어선다.
영랑생가 입구에 새겨진 시비 '모란이 피기까지는'. 아이들은 피곤한데 다시 영랑생가를 둘러보라니 심통이 났다. 게다가 어린 초등학생들은 시간이 없다하고 미리 시외버스 터미널로 픽업을 하여 갔으니. 이 녀석들이 좀 더 커야 이 시비가 지닌 가치를 알리라. 그리고 영랑 김윤식이 어떤 사람이라는 것도. 그 때가 되면 매정하게 끌고 가는 어른들에게 고마운 생각이 들랑가?
이제 버스를 타고 백련사로. 이렇게 생생하던 녀석들이 잠시 후
이렇게 되었다!!!
주차장에서 백련사로 올라가는 길은 온통 동백으로 뒤덮혀 있다. 대낮인데도 동백나무 숲은 어두컴컴하다.
백련사의 또 하나의 명물 배롱나무. 주위 녹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꽃을 쉼없이 피우고 있다. 배롱나무는 부처나무과이다. 그래서 사찰에서는 으레 한 두 그루는 찾아 볼 수 있다.
배롱나무꽃 그늘 아래. 목월이 여기에 왔었다면 '배롱나무 그늘 아래'라는 시가 탄생을 하였을 듯.
백련사 대웅전 안에서 잠시 사찰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대웅보전(大雄寶殿)이라는 글씨는 조선의 명필 이광사의 글씨이다. 획이 구불거리면서도 알 수 없는 힘이 스며있는 듯하다. 흡사 이광사의 고집스러움과 시대에 대한 반항 같은 것을 느낀다.
다시 배롱나무 꽃그늘을 지나 다산초당으로 출발한다.
다산초당 가는 길 고개 능선에 있는 해월루. 올라서면 강진만이 한 눈에 시원하게 들어온다. 아이들은 하도 힘이 든다고 하여 그냥 지나치고 어른들만 잠시 머물렀다. 나중에 이곳에 들리지 못한 것을 한스러워 하여 다시 찾는 아이가 있으려나.
다산초당의 동암. 여기서 다산의 제자들이 기거를 하면서 같이 학문을 연마하고 책을 저술하였다. 보정산방은 추사 김정희의 글씨다. '보배로운 정약용 선생의 산 속에 있는 방'이라는 뜻이다. 천재가 천재를 알아본다고. 당대를 떨어울린 천재들이 이렇듯 글씨를 통하여 만났다.
다산초당. 지금은 초당이 아니고 와당이 되었다. 물론 기와집이 관리하기가 편하겠지만 기와집을 초당이라고 하니 좀 어울리지 않는다.
다산명가. 우리들의 숙소.
그날 아이들은 밥을 엄청 먹었다.
여학생들은 굳이 씻고 먹는다고 고집하여 나중에 밥을 먹었다.
어른들도 마찬가지. 밥을 먹고 모자라서 술도 간단히(?) 한 잔.
하루 반성회. 오늘 길을 걸으면서 툴툴대면서 불평한 것에 대하여 야단을 많이 맞았다. 그래서 그런지 다음날은 확실히 불평이 줄었다.
야단을 맞아도 아이들은 즐겁다.
내일 일정을 설명하는데 동규는 뒤에서 엉뚱한 장난을 하고 있다.
혁우와 경빈이가 장난을 치고 있어서 사진에 흐리게 잡혔다.
엄청난 양의 빨래. 어머니들이 새벽까지 세탁기를 돌렸다. |
첫댓글 ㅋㅋㅋㅋㅋㅋㅋ 두번째 사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 댓글을본 누군가는 찔리겠짘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굴사임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나 완전 웃곀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및에서 두번째 사진은 내가 누구 폭행하는지 말겠다 ㅋㅋㅋㅋ
빈아 조용히하자^^ㅋㅋㅋㅋㅋ
아이들의 모습이 너무나 맑고 좋아보여요 ^^ 보는 제가 기분도좋고 여행다녀온느낌??? 대리만족하는데요?ㅎㅎ 얘들아 수고했어 그리고 혁우야 인상좀펴라 ㅋㅋ 신함세는 좀 이상한표정짓지말고 ㅎㅎ 너네들은 지금 많은경험을 하면서 훗날에는 남들보다 뛰어나고 의로운 사람이 되어있을꺼야 새움 화이팅 ^^
↑캬힛 오글오글 거려ㅋㅋㅋㅋㅋㅋ
저폰샀어요.
밑에서2번째꺼 나랑경빈이 형이아니고 지우랑 경빈이형이에요 아놔.
동규 손수건괴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