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의 감나무엔 가을빛이 선연(鮮姸)하다. 잎이 진 가지사이로 주홍빛 감이 탐스럽게 익었다. 쪽빛하늘과 어울려 젊은이의 모습처럼 싱그럽다. 잎이 다 지고 알몸만 들어낸 빠알간 홍시는 정겨웠던 아버지의 모습 같다.
감나무는 이 집으로 이사 오던 해, 친정아버지가 심어준 작은 나무였다. 오랜 동안 가족들과 함께 긴 세월을 보냈다. 이제는 나무둥지도 굵어지고 안방의 창을 모두 덮어버릴 정도로 컸다. 이승에 계셨던 아버지의 사랑이 열매마다 주렁주렁 익어가고 있다.
우리가 이곳으로 이사 온 것이 어느덧 20년이 넘었다. 아버지께서는 늘 유실수를 즐겨 심었다. 새 집을 마련했을 때 감나무 한그루를 이곳에 심어주었다. 아마 본인의 정을 심은 것 같다.
어렸을 때부터 내가 살던 고향엔 감나무가 여러 그루 있었다. 집안, 텃밭, 멀리 떨어진 밭둑에도 가을이면 감을 따던 기억이 난다. ‘이 다음에 네가 시집가서 손자생기면 외가에서 감을 먹을 수 있게 할 거여’ 하시며 열심히 심었었다. 처음에는 서너 개 달리더니 나중엔 아주 많이 열렸다.
몇 해 전부터 감나무는 도시의 공해로 인해 깍지벌레가 생기기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줄기에 붙어살더니 익어가는 감에도 침투하여 해마다 그 범위가 넓어졌다. 집안의 터가 넓지 못해 병이든 감나무를 더 이상 키울 수가 없어서 베기로 했다.
5년 전만 해도 깨끗했던 나무였었다. 그래서 벌레도 안생기고, 소독도 안하는 것으로 알았다. 그러나 몇 년 전부터 소독을 하고 죽은 가지를 잘라내고 사람의 손이 가기 시작했다. 겨울이면 꼭대기 매달린 까치밥을 먹으러 까치가 와서 울고, 새도 깃들였다. 그 모습을 안방 창을 통하여 다 볼 수 있었는데…….막상 베려니 서운함이 앞섰다.
남편과 함께 감나무를 베려고 작업복을 입고 앞뜰로 나갔다. 집이 감나무보다 높아 햇빛을 고루 받지 못해, 감나무는 해를 향해 웃자라서 키만 곧게 컸다. 감나무 모습으로는 볼품없이 자라서 아쉬웠다.
감 따는 장대를 가지고 내 손이 닿을 수 있는 곳의 감을 따기 시작했다. 나머지는 남편도 내 손도 닿을 수 없는 높은 곳에 있었다. 남편은 작은 톱을 가지고 와서 감나무에 올라가 자르기 시작하였다. 언제나 일하는 것이 서툴러 내 마음은 불안으로 가득 찼다. 감나무는 다른 나무와 달리 가지가 매우 약해서 자르다 떨어질까 봐 무척 마음이 쓰였다.
꺾여진 감나무에서 잘 익은 감을 땄다. 감의 표피에 흐르는 빛을 본다. 가을날 저물녘의 노을보다 더 짙고 수채화 물감을 확 엎질러 놓은 색보다 투명해서 나를 유혹한다. 손가락으로 붉은색의 한 부분을 건드려본다 피처럼 진한 농도는 아니지만 놀랄 만큼 밝은 선홍빛이다.
남편이 잘라준 가지를 가지고 감을 따기 시작하였다. 벌레 먹은, 것 까치가 먹던 것, 어떤 것은 나무에서 이미 홍시가 되어 시멘트 바닥에 그림을 그렸다. 파란 하늘만큼이나 강렬한 주황빛으로 감은 잘 익었다. 감을 따면서 아버지 생각이 간절하였다. 늘 베풀며 사셨던 아버지의 사랑이 감처럼 …
어머니는 하루에도 몇 번씩 감나무를 바라보시며 홍시를 찾으신다. 감이 참 맛이 있는데……. 우리가 자르는 것이 못마땅하신지 여러 번 말씀을 하신다. 내년부터 감을 수확할 수 없으니 무척 서운하신 것 같다. 변비가 걸리는데도 계속 잡수신다.
행주를 가져와 감을 하나하나 깨끗이 닦았다. 반짝반짝 유리알처럼 빛이 난다. 광주리의 감을 몇 개로 분류를 하였다. 깨끗한 것은 침시를 담그고, 나머지는 자연시를 만들기로 하였다. 상처가 난 것은 깎아서 꼬지에 매달아 연시를 만들고 껍데기는 말려 두었다가 마구설기를 할 때 사용하기로 했다.
아버지는 오래전에 이승을 떠나셨다. 그렇지만, 감나무는 묵묵히 자라 내게 아버지의 크신 사랑을 전해준다. 산비탈 밭에 복숭아가 처음 익어 수확했을 때에도 마을 사람들에게 집집마다 나누어 주었다. 그리고 마을의 가로등이 고장 났을 때도 위험을 무릅쓰고 전봇대에 올라 가로등을 고치셨다. 본인 보다는 남을 위해 사신 분이다. 사람이 사는 것이 무엇인지 가끔 생각해보지만, 아버지 인생의 1/10도 베풀지 못하고 사는 것 같다.
감을 수확하면서 아버지의 마음을 가득히 광주리에 담았다. 이 주신 사랑을 이웃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어야겠다. 아버지의 맑고 자애로우셨던 영혼은 지금쯤 천국에서 땅에 사는 내게 늘 기도하고 있을 것이다.
광주리 가득한 감속에 아버지의 얼굴이 어린다. 둥지만 남은 감나무가 서글퍼 보인다. 가을이 깊어지겠지. 자른 감나무에 서리가 내리면……. 홍시가 되면 골목안의 사람들에게 아버지처럼 그 사랑을 나누어 주어야지.
첫댓글 공해로 그 오랜 세월을 버틴 감나무를 잘라야 하는 세상이 왔네요,,,,,우리 행복님들의 기치가 지구살리기운동인데......돌아가신 분의 마음까지 베어져 넘어지는듯 하네요
저희집 마당에도 고목이 된 감나무를 얄미운 깍지벌레 땜에 하는수없이 베어버렸답니다저희 시할머니가 홍시를 무척이나 좋아하셔서할머니 돌아가신후에 베었지요지금도 감나무 밑둥은 그대로 있어요볼때마다 마음이 무거워 지죠
저는 감을 무척 좋아합니다. 여기로 이사오기전에 마당에 감나무를 심었는데 정말 감이 크고 맛이 좋았습니다. 근디 울랑이 감나무 잎이 담에 닿으면 집 버린다고 그 좋은 감나무를 싹뚝... 으흐흐흑 울매나 울었다구요. 울랑 미오미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