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5년 학습지 회사로 출발, 교육·출판문화 전문기업을 자부하던 교원그룹(대표 장평순)은 최근 사내외 공지를 통해 회사의 얼굴을 ‘휴먼 네트워크, 교원’으로 바꿨다. 구체적으로는 ‘인간의 보다 나은 생활과 문화, 그리고 미래를 위한 준비까지 삶의 가치를 높이는 데 교원이 함께 한다’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었다.
처음엔 교원의 내부 직원조차도 이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잘 몰랐다고 한다. 단지 “이미지성 광고 정도로만 생각했다”라고 말하는 이들이 많았다. 그러나 지금까지 그런 생각을 갖고 있는 직원은 없다.
외부에 적극 공개하지는 않았지만, 교원은 올 1월부터 이미 ‘와우’ 비데와 ‘페르메’라는 기능성 속옷을 방문 판매하기 시작했다. 1대에 99만원하는 비데는 현재까지 6,000대 넘게 팔려 나갔고, 88만원의 여성용 기능성 속옷도 5,000세트가 판매됐다.
낱개로는 1만벌이 넘는 판매기록이다. 매출액으로 따지면 비데가 60억원, 기능성 속옷이 44억원이다. 두가지 아이템을 합쳐 100억원의 매출액을 돌파한 것이다. 교원의 ‘사업 다각화’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그룹 계열사인 교원L&C(Living & Care)가 최근 5개 필터를 이용하는 일반 표준형 데스크톱형 정수기 ‘웰스’를 출시했기 때문이다. 정수기 제품은 OEM으로 납품받는 한편, 필터 관리와 애프터서비스는 동양매직에 일임하고 있다.
생산 라인을 갖고 있지는 않지만 자체 연구개발팀을 구성해 향후 제품개발은 교원이 주도해나간다는 계획이다. 단순히 유통 마진만을 노리고 정수기 시장에 뛰어든 건 아니라는 얘기다.
정수기 출시 직후 교원은 인기 탤런트 송혜교씨와 이병헌씨를 앞세워 TV와 일간지를 통해 일제히 대형 광고를 쏟아냈다. 교원은 한대에 125만원 하는 이 정수기만으로 연간 500억원의 매출을 달성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아직 판매량은 목표치에 못미치지만, 지난 6월 교원은 출시 전 예약판매를 통해 불과 1주일 만에 6,000여대의 정수기 주문을 받아냈다. 그리고 두달이 채 안된 현재 1만대 판매고를 넘기는 ‘괴력’을 보이고 있다.
월 4,000대에서 5,000대를 판매하겠다는 게 교원측의 1차 목표다. 아직은 기존 정수기업체와 달리 렌탈 판매방식을 도입하지 않았지만, 조만간 렌탈보다 더 효율적인(?) 비즈니스 방식을 선보이겠다는 입장이다.
화장품·공기청정기도 출시 예정
대교에 이어 국내 학습지 시장 점유율 2위, 연간 매출 1조원을 자랑하고 있는 교원그룹이 갈수록 뜨거워지는 정수기 시장에 뛰어든 이유는 무엇일까.
교원그룹 관계자는 “오래 전부터 준비해 온 일이다. 사업다각화의 일환으로 봐 달라”고 말했다. 그는 또 “IMF 이전부터 비데, 정수기, 공기청정기 등 생활가전시장 진입을 준비해 왔다”며 “학습지 웅진씽크빅을 운용하고 있는 웅진그룹과 비교하면 이해가 쉬울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대교그룹의 사업다각화는 가히 전방위적이다.
교원은 빠르면 8월쯤에 서울대 의대 피부과 전문의와 공동으로 연구개발해 온 기능성 화장품도 출시할 예정이다. 거기다 내년에는 공기청정기까지 선보인다는 계획이다. ‘학습지 왕국’ 교원이 생활가정용품 전문 기업으로 변신하고 있는 것이다.
교원의 정수기 시장진출에 대해 업계 1,2위를 다투고 있는 웅진코웨이와 청호나이스는 직접적인 대응은 유보하고 있는 상태다. 이미 두기업이 각각 정수기 시장의 60%와 25%의 시장점유율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웅진코웨이개발의 김형관 팀장은 “더 지켜봐야 하겠지만 신규회사가 시장을 얼마나 잠식할 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웅진코웨이측은 학습지 시장에서 전통적인 라이벌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교원측의 움직임에 대해 내심 신경이 쓰이는 눈치다.
청호나이스측도 시장 2위를 수성하기 위한 내부 대책 마련에 들어갔다는 후문이다. 일부에서는 교원측이 서서히 영업력을 확대할 경우 기존 정수기 업체들이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정수기공업협회의 한 관계자는 “교원은 학습지 시장에서 탄탄히 다져놓은 막강한 유통망과 영업력이 대단하다”며 “특히 학습지와 정수기의 코어 타깃이 30~40대 주부로 동일하다는 사실을 경쟁업체들도 잘 알고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9,000여명의 교원소속 교사가 직접 가정을 매일 방문해 학습지도를 하는 구몬학습지 회원이 130만명, 월간 학습지인 ‘빨간펜’ 회원은 50만명에 달한다. 이들의 부모들은 결국 교원의 잠재적인 고객들인 셈이다.
교원이 이들을 대상으로 적극적인 마케팅을 전개할 경우 영업측면에서 상당한 파괴력을 가져올 수 있다는 분석이다. 특히 교원그룹의 핵심 전투력이라 할 수 있는 교원아카데미소속 4만여명의 영업 세일즈맨들도 본격적으로 정수기 판매영업에 뛰어들 채비를 끝낸 상태다.
교원은 이를 바탕으로 후발주자로서의 약점을 보완하면서 조만간 업계 3위에 일단 등극한 후 시장 선도기업으로 자리매김하겠다는 전략이다.
교원그룹 오현택 홍보팀장은 “올해 안에 12종의 정수기 신제품을 추가로 출시하고, 방문판매와 기존 대리점을 통한 판매도 늘려나갈 계획”이라며 “2005년 시장점유율 10%를 넘는데 큰 문제가 없을 것이다”라고 자신감을 나타냈다.
[역삼투압 VS 중공사막] 정수방식 우열논쟁 제2라운드
정수기의 생명은 필터. 필터가 얼마나 유해물질을 잘 걸러주느냐에 따라 마시는 물의 품질이 결정된다. 정수기는 물을 거르는 정수방식에 따라 여러 가지로 나뉘지만 국내 제품은 대부분 역삼투압 방식과 중공사막 방식을 쓰고 있다.
역삼투압 방식은 식물이 물을 흡수하는 삼투압을 응용한 것으로 머리카락 굵기의 100만분의 1 정도까지 정수한다. 유·무기 오염물질, 세균, 바이러스, 중금속을 포함한 이온성 물질까지 걸러내며 정수 능력이 가장 뛰어나다. 웅진코웨이, 청호나이스 등 국내 정수기의 80% 이상이 이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역삼투압 방식은 정수능력이 뛰어난 대신 물 속에 있는 몸에 유익한 성분인 미네랄까지 걸러내는 것이 단점으로 지적된다. 또한 정수 방식의 특성으로 인해 물이 낭비된다는 비판도 있다.
이에 비해 중공사막 방식은 미세한 구멍이 뚫려 있는 실인 ‘중공사’(中空絲)를 이용하는 것으로, 세균이나 대장균 등 각종 유기물질이나 미생물 대부분을 걸러낼 수 있다. 그러나 중금속과 화학물질은 제거되지 않아 지하수를 이용하는 곳에서는 문제가 있는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최근 교원은 중공사막 방식인 웰스정수기를 출시하면서 “이미 유럽과 일본 등지의 선진국에서는 미네랄이 부족하고 물 낭비가 심한 역삼투압 방식은 대부분 식수용이 아닌 공업용으로 쓰이고 있다”며 경쟁업체들을 깎아내리며 선제 공격했다.
이에 대해 웅진코웨이와 청호나이스 등 관련 업체들은 “물을 통해 흡수하는 영양소는 얼마 되지 않고 대부분 음식물을 통해 섭취하기 때문에 문제될 것이 없다”고 화답했다. 영업이 가열화되면 이에 대한 논쟁은 더욱 치열해 질 것으로 예상된다.
전문가들은 정수방식이 어떻든 먼저 정부가 공인하는 검사마크인 ‘물’ 마크가 있는지 꼭 확인할 것을 권유하고 있다. 물 마크는 한국정수기협동조합이 환경부의 승인을 받아 구조 및 재질, 유효 정수량, 정수성능 등을 시험해주는 품질보증 마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