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본 메세지] ---------------------
아버님이 권투를 좋아하셨는데 저역시도 그영향으로 초등학생때부터 권투광이었습니다. 70년대에서 80년대초 그당시 매주마다 MBC의 일요권투와 KBS의 토요권투에선 한국랭킹전까지 생중계해줄정도로 복싱인기가 좋았던 시절이었죠.
김득구선수를 처음 알게된건 정확히 기억이 안납니다만 아마 동양챔피언시절쯤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이미 그당시 탐독하던 <스포츠동아>나 <펀치라인>등을 통해 김득구의 프로필은 꽤고있었구요.
딴건 세월이 흘러 기억이 안나지만
시합을 마친후 방송중계석에 와 인터뷰하던 모습이 늘 기억에 납니다.
상당히 말을 조리있게 잘했습니다.
흔히 권투선수들 보면 말솜씨가 눌변인게 태반인데 김득구선수도 외모로 보면 그쪽계통 같아보이지만, 말할때 단어선택이라던지 굉장히 지적수준이 높은 사람임을 느낄수있었습니다.
가정환경때문에 학업을 중단한채 먹고살기위해 공장에서 일하면서도 틈틈히 공부해 검정고시합격했다는 기사를 읽은적이 있기에 어려운환경속에서도 옭굳게 살아갈려고 몸부림치는 건전한 사람같아서 더 좋아했는지 모릅니다.
맨시니와의 대전을 앞두고 전초전을 마친후 중계팀과 인터뷰할때의 대화내용은 잘 기억안나지만 그 눈빛만은 생생합니다.
그 시합에 자신의 모든것을 걸었다는것이 굳이 말로 표현안하더라도, 사생결단의 심정이 투지로 이글거리는 눈빛에 다 담겨있었습니다.
그 시합만 이기면 평생 만져보지 못할 돈방석에 앉게 되지않습니까.
체급이 중량급이라 빅매치도 많기때문에 챔피언이 된후 미국무대에서 계속 경기를 가지면 당시 장정구나 유명우가 국내에서 10번방어전 하면서 벌 돈을 한두게임에 벌수있었겠죠.
맨시니와의 경기가 김득구로서는 지긋지긋한 가난에서 벗어나 약혼녀와 함께 행복하게 살수있는 절호의 기회였을겁니다.
근데 맨시니가 그렇게 만만한 물 챔피언이 아니었죠.
비록 이전에 전설적인 복서 아르게오한테 지긴 했지만 그땐 신인급때 얘기고 이젠 어엿한 챔피언이 되어 한참 물이오른 전성기시절이었으니까요. 주먹을 휘두르면 "붕붕"하는 소리가 난다고해서 붐붐멘시니라고 불릴정도로 돌주먹이었죠.
제 예상으로도 김득구가 힘들것이라고 봤지만 그래도 꼭이기길 빌었습니다. 일요일날 중계방송해준걸로 기억하는데 전 아침부터 목욕재개 하고 기도하는 심정으로 아버지와 함께 중계를 봤습니다.
경기가 시작하기도 전에 제손엔 긴장으로 땀이 배이고 자꾸 소변이 마려워 화장실을 들락거렸습니다.
특이하게도 야외링에서 경기를 했는데 김득구가 링에 올라설때 입술을 꽉 다문채 독기어린 눈빛으로 주먹을 올리며 파이팅하던 모습도 기억나구요 경기는 하도 본지가 오래되서 자세히는 기억에 안나지만 탐색전없이 초반부터 바로 치고받는 난타전으로 들어갔을겁니다.
맨시니로서는 가벼운마음으로 올라왔는데 이름도 듣고못한 무명의 동양선수가 죽기살기로 덤비니까 상당히 당황하더라구요.
맨시니가 한대 때리면 김득구도 한대 때리고....
일진일퇴의 공방전이었으며 난타전의 진수였습니다.
관중들도 처음에 김득구가 소개될땐 야유를 퍼붓더니 경기가 진행될수록
박수와 환호를 보내주더군요.
중반까지 몇번 맨시니가 위험한때가 있었습니다.
정타를 턱에맞고 휘청거리며 당황해하던 모습이 생각납니다.
하옇튼 맨시니는 경기내내 당황한 표정이었습니다.
그때 좀더 몰아부쳐 끝냈어야 했는데 후반으로 갈수록 김득구의 체력이 떨어지는것이 느껴지며 승부의 추가 미세하게나마 맨시니쪽으로 흘러가는것같더군요.
언젠가 읽은 기산데 당시 세컨보던 코치말로는 이미 10라운드쯤부터 김득구는 정신이 없는상태에서 무의식적으로 싸웠다더라구요.
13라운드쯤 김득구가 많이 맞아 점수를 까먹었는데 만회할려고 그랬는지 14라운드 시작하자마자 뛰어나오다가 맨시니의 정타를 맞고 쓰러졌습니다. 기어서 링줄을 붙잡고 힘겹게 일어서던 모습은 정말이지 지금도 마음아픕니다. 그러나 열망에도 불구하고 심판은 일어선 김득구를 앉은채 경기스톱을 시켜버립니다.
이때 김득구의 허망해하는 표정....
맨시니는 퉁퉁부은 얼굴로 코치들을 껴앉고 기뻐 괴성을 지르고....
시합끝난후 라커룸에 누워있는데 의식불명상태에서 코를골길래 코치들은
"이거 큰일났구나." 뇌를 다친것같다고 직감하고 병원에 후송했지만
뇌사상태에서 깨어나지못해 결국 어머니가 미국으로 가 장기기정 동의서를 쓰고 산소마스크를 떼냈다고 알고있습니다.
이때 언론이 한심하고 잔인한것이, 어머니가 출국하기전에 목욕을하고 몸단장을 하고 갔다고 그걸갖고 구설수에 올리는겁니다.
아들이 사경을 헤매고있는데 그럴 여유가 있냐는식으로요.
저도 김포공항에서 출발하는 뉴스를 봤지만 김득구선수 어머니 고생을 많이 해선지 나이보다 훨씬 늙어보였습니다.
소복비슷한 한복을 입고있었는데 햇빛에 그을려 까만얼굴에 주름진 모습이 영낙없는 촌에 할머니더군요.
보니까 꾸민것도 하나도 없더구만 아들 산소마스크떼러가는 어머니심정이 오죽 아플텐데 그런걸갖고 씹는지 모르겠습니다.
결국 어머니도 나중에 자살을 하셨다고 들었는데....
여러정황으로 보면 김득구는 이미 10회전 이전에 정신이 없는상태에서 무의식적으로 싸웠다는 얘긴데, 나중에 죽음에 이를정도의 펀치를 맞고 다운됬는데도 어떻게 일어서서 싸우겠다는 의사표시를 했는지 지금도 모르겠습니다.
지금 곰곰히 생각해보면 만일 그때 다시 시합이 재개되어 김득구가 이겼더라면 그는 죽지않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죽음의 원인으로 펀치에 의한 쇼크보다는, 심판의 경기스톱신호가 나자 이젠 졌다는 절망감때문에 경기내내 필사적으로 부여잡고있던 정신을 놓아버린탓이 크지않나 싶습니다.
이 경기를 당시 레너드가 해설했다고 하는데 경기내내 김득구의 칭찬을 많이 햇다고 하더군요.
홍수환도 후추와 인터뷰때 그러더군요.
"나보다 김득구가 더 훌륭한 선수다.
그는 목숨을 걸고 경기를 했던 진정한 투사다."
* 하도 오래전 일이라 흐릿한 기억에 의존해 글을 썻는데 잘못된 부분이 있으면 지적해주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