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학리 출신
◇약력 ▲1949년 전남 완도 ▲1968년 목포고 ▲1974년 신세계 입사 ▲1984년 신세계 인사과장 ▲1996년 신세계 이마트 분당점장 ▲1997년 이마트 서부산점장 ▲2000년 이마트부문 판매담당 상무 ▲2004년 신세계푸드 총괄 부사장 ▲2005년 신세계푸드 대표이사 ▲2009년 신세계 이마트부문 대표이사
전남 완도군의 한 작은 섬 출신인 최병렬 대표. 그는 37년 동안 신세계에 몸 담아 온 ‘신세계맨’인데요. 그는 목포고등학교를 졸업한 직후 대학 진학 대신 취업을 선택, 1974년 신세계백화점에 입사했다고 합니다. 당시 유통업계에는 대졸 사원이 흔하지 않았고, 고졸 사원도 승진에 제한을 받지 않았기 때문인데요. 종종 “신세계에 입사한 일은 내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이라고 말하곤 하는 최 대표를 만나 봅니다.
세계 유통업계에서 한국 시장은 ‘연구 대상’으로 꼽히는데요. 월마트, 까르푸, 코스트코 등 세계적인 대형할인점 업체들이 야심차게 들어왔다가 제대로 힘도 못 쓰고 아예 철수하거나 매장을 잇달아 폐점했기 때문이죠.
심지어 ‘글로벌 유통업체의 무덤’으로 불릴 정도로 이런 현상이 벌어진 이유는 바로 이마트와 롯데마트, 홈플러스 등 국내 할인점 업체들이 확고하게 시장을 점령했기 때문인데요. 그 선두주자가 바로 이마트입니다.
신세계가 1993년 국내에 처음으로 선보인 이마트는 현재 매장 수 154개(중국 점포 25개 포함), 연매출(2010년) 12조원으로 국내 1위의 할인점으로, 올해는 매출 14조원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해요.
이마트의 고속성장에 일조했다는 보람, 가장 커
이런 이마트를 이끌고 있는 사람이 누구일까요. 바로 고졸 사원에서 CEO 자리까지 오른, 입지전적 인물인 최병렬(62) 대표인데요. 전남 완도군의 한 작은 섬 출신인 최 대표는 목포고등학교를 졸업한 직후 대학 진학 대신 취업을 선택, 1974년 신세계백화점에 입사했습니다.
그는 고졸 말단사원에서 시작해 인사과장, 영등포점(백화점) 업무부장, 특판사업부 영업1팀장 등을 거쳤는데요. 신세계도 1990년대 초 할인점 사업에 진출, 1993년 이마트 1호점(창동점)을 개점했고 이후 국내 최대 할인점 업체로 성장하게 됩니다.
<틈나는 대로 ‘음식만화’를 탐독하며 만화책에서 식품을 다루는 기본을
배웠다는 최병렬 대표>
입사 후 백화점 부문에서 계속 일해 왔던 최 대표가 이마트 부문에서 일하게 된 것은 1996년인데요. 최 대표는 총무팀 부장, 이마트 분당 점장과 서부산점 점장, 판매담당 이사·상무, 판매본부장 등을 거치며 이마트를 이끌어 왔습니다.
이후 그가 신세계푸드로 옮기기 전까지 8년 동안 점포 수는 4개에서 72개로 늘었다고 해요. 그는 이에 대해 “이마트 초기 고속성장에 일조한 것이 30여 년의 직장생활 중 가장 보람 있는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1990년대 국내경제가 성장하면서 국내 유통업체들이 잇달아 대형할인점 시장에 뛰어들었지만, 이마트는 한 번도 1위를 놓치지 않고 국내 할인점 업계를 이끌어 왔습니다. 백화점만 운영할 당시 매출면에서 유통업계 라이벌인 롯데쇼핑에 뒤지고 있던 신세계는 이마트의 성공으로 국내 유통업계의 ‘2강(强)’으로 떠오르게 되지요.
최 대표는 2004년 12월 승진과 함께 신세계그룹 계열사인 신세계푸드 부사장을 맡았고 2006년부터 2009년까지 신세계푸드 대표이사직을 역임하는 등 몇 년간 이마트와 멀어졌지만, 2009년 12월 신세계 이마트 부문 대표이사로 친정에 복귀하게 됩니다.
당시 최 대표가 국내 1위 할인점의 대표이사로 기용된 것은 외부보다 신세계 조직 내부에 던지는 메시지가 크다고 업계 관계자들은 평가했는데요. 간판이나 형식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좋은 실적을 내고 높은 성과 및 기여도를 보여 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강도 높게 전달했다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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