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화(전도)2
전도하지 않은 죄
2차 대전 후 독일 기독교의 대표적인 지도자였던 마르틴 니뮐라라는 목사가 '2차 대전 책임 백서'라는 것을 발표해 굉장한 논쟁을 불러일으킨 일이 있습니다. 2차 세계 대전의 발발에 대해 그는 히틀러를 비방하기보다는 독일 교회와 독일 그리스도인들에게 주로 책임을
물었습니다. 그가 히틀러를 노골적으로 비난하지 않는 것에 대해 대 부분의 사람들은 납득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습니다.
이때 그는 다음과 같은 간증을 했다고 합니다.
"저는 그동안 일곱 차례에 걸쳐 동일한 꿈을 꾸었습니다. 그것은 제가 주님의 심판대 앞에서 주님의 질문에 대답을 하고 지나가는데 제 뒤에 있던 사람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예수께서 '너는 왜 나를 믿지 않았느냐?'하고 물으시자 그 사람은 '아무도 저에게 예수그리스도를 증거한 사람이 없었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목소리가 익숙해서 돌아보니 그는 다름 아닌 아돌프 히틀러 였습니다. 이 사건이 제 삶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그때까지 그가 죽기를 바란적은 수없이 많았지만 그의 영혼을 위해서 기도한 적이 없었다는 사실을 새롭게 인식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 독일 그리스도인들은 그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진지하게 접근하지 않은 것에 모두 책임을 느껴야 할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서 복음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 삶이 자유롭지 못하고 삶이 공허하고 불안하고 뒤틀려 있는 사람들 그래서 인생의 자리에서 악을 쓰고 있는 이웃들 그들이 느끼는 삶의 절망에 저와 당신은 책임이 없습니까?
전도자의 지혜로운 답변
예수님을 믿은지 얼마 안 돼서,
마음속에 전도에 대한 열망이 한창 걷잡을 수 없이 피어나 학생들에게 전도를 많이 하던 때였습니다.
하루는 버스를 탔는데 뒷자석에 스님이 앉아 계셨습니다.
일부러 스님 옆에 않았습니다.
그리고 주머니에서 신약성경을 꺼내서 읽었습니다. 그러니까 스님이 자꾸 저를 쳐다보더니 말을 건네는 것이었습니다.
"학생, 예수 믿나?" "예,예수 믿습니다."
"왜 예수 믿나?" "스님은 왜 예수님을 안 믿습니까?'
"기독교는 차원이 너무 낮아서..."
"왜 기독교가 차원이 낮다고 생각하십니까?"
"거,성경에 원수를 사랑하라고 그러지 않았소?" "예,그렇지요."
"우리 불교에서는 아예 원수가 없소."
"스님은 인생을 살면서 아주 껄끄럽고, 보기도 싫고, 보기만 하면 소화도 안되는 그런 사람이 있었습니까?솔직히 대답해 주십시오."
"그거야 있었지."
"그것 성경에서는 '원수'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있는 것 없다고 하지 않습니다.
있는 것은 '있다'고 해놓고 '어떻게 사랑하며 살아갈 것인가'하는 것을 성경에
서는 가르칩니다."
80% 의 성도 전도에 관심이 없다
인구증가율을 감안하면 한국 교회의 63.4%가 성도 ‘정체’ 혹은 ‘감소’ 현상을 보이고 있으며 신입 성도 중 순수 불신자가 차지하는 비율이 10%에 불과하는 등 교회 성장이 제자리 걸음인 반면 교회간 성도의 수평 이동 현상은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실제로 전도에 힘쓰는 성도는 ‘소수’ 또는 ‘거의 없다’는 응답이 79.7%에 달해 성도의 전도 열의가 대단히 부족한 것으로 조사됐다.
목회와 신학 11월호는 창간 14주년 기념 세미나의 참석자 295명(목회자 43%,강도사 5%,전도사 31%,평신도 11% 등)을 대상으로 실시한 ‘한국교회 건강성에 대한 목회자들의 인식도’ 설문조사 결과를 인용,이같이 밝혔다.
이번 조사에 따르면 교회의 전도 사역에 대해 응답자의 29.8%가 ‘대안을 갖지 못한 편’이라고 답했으며 ‘전도할 마음을 거의 상실한 상태다’라는 응답도 3.7%에 달했다. ‘당신의 교회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잘 받고 있나’라는 질문에는 전체 조사자의 56%가 ‘대체로 잘 받고 있다’고 응답했지만 ‘그저 그런 것같다’(31.9%)와 ‘잘 받고 있지 못한 것 같다’(10.8%)라는 응답도 적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전도에 대한 열의 또는 불신자 전도에 대해서는 열의가 매우 낮았지만 ‘교회에서 진정한 영적 각성과 은혜를 체험하는 교인들을 얼마나 자주 보나’라는 질문에는 ‘종종 있다’‘상당히 흔한 편이다’가 68.5%에 달해 신앙적 체험이 아직도 교계를 지배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응답자의 75.8%가 ‘개척교회 10곳 중 서너 곳 이상이 문을 닫는 것을 목격했다’고 답해 개척교회의 생존율이 매우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한국 교회의 생존과 부흥 차원 뿐 아니라 총제적인 관점에서 교회 개척 문제를 검토해봐야 할 때임을 시사하는 것으로 지적됐다.
또 안티 기독교 운동에 대해서는 조사자의 55.6%가 심각하다고 응답했다. 우리 사회의 기독교에 대한 호감와 관련,‘그저 그렇다’(51.9%) ‘나쁜 편이다’(44.4%) 등 부정적인 응답이 압도적이었고 ‘좋은 편이다’는 3.1%에 불과했다. 그러나 한국 교회의 미래에 대해서는 ‘괜찮을 것이다’(50.5%) ‘아주 낙관적이다’(11.5%) 등 긍정적인 전망이 62%에 달해 상당수의 목회자가 희망적으로 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현실은 어려울지라도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믿는 교회로서 실패할 수 없다는 하나님의 구원 계획에 대한 기독교적 신앙고백이 아직 교계를 지탱해주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소년의 전도지
주일 오후가 되면 늘 거리로 나가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전도지를 나누어주는 한
그리스도인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던 어느 주일 오후, 몹시 피곤했던 그는 자기 집 서재에서 조용히 쉬고 있었습니다. 그 때 그의 11살 된 아들이 아버지가 집에 게신 것을 보고 놀라며 물었습니다.
"아빠, 오늘은 왜 전도지를 나누어주러 가지 않으세요?"
"비가 너무 많이 오고 있구나."
그는 가볍게 대답했습니다.
"아빠, 그럼 비가 오는 날에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구원하시지 않으시나요?"
놀란 그는 아들에게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비가 너무 많이 내릴 때에는 거리에 사람들이 별로 없단다. 게다가 나는
지금 몹시 피곤하거든."
"아빠, 그렇다면 제가 아빠 대신 나갈까요?"
아들의 진지한 모습을 본 그는 전도지를 주면서 다 나눠준 후 곧장 집으로 돌아오라고 주의를 주었습니다. 그러나 전도지를 나눠주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마침내 소년의 손에 한 장이 남게 되어 그는 가장 가까운 집을 찾아가 문을
두드렸습니다.
"누구지죠?"
몹시 침통한 표정의 나이 많은 여인이 문을 열었습니다. 소년은 얼굴에 큰 웃음을 띠고 공손히 말했습니다.
"미안해요. 아줌마, 저는 아줌마께 이 전도지를 전해드리러 왔어요."
그리고 다음 주일 예배 시간에 찬송과 기도 후 목사님께서 주님의 은혜를 간증하고 싶은 분이 계시냐고 물었습니다. 그 때 한 나이 많은 여인이 일어났습니다. 그녀의 얼굴에는 하늘의 빛이 감돌고 있었습니다.
"저는 남편과 아들을 잃어버린 후 인간의 모든 고통을 맛보았습니다. 오랜 갈등 후 저는 자살을 결심했습니다. 비가 많이 오던 주일 밤, 목을 맬 준비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습니다. 문을 열어보니 거기에는 생기 발랄한 작은 천사가 서 있었습니다. 그는 저에게 전도지 한 장을 주었습니다. 그것을 읽으면서 저는 하나님께서 저를 저버리지 않으셨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감사기도로 남편 전도한
어느 자매/ 꽃망울같은 꿈을 안고 결혼을 했는데 결혼 첫날부터 남편이 술망태가 되어서 독수공방으로 지새웠다.
그후 10년의 세월이 흐르도록 남편의 버릇은 고쳐지지를 않았다. 아무리 마음을 고쳐먹고 살아보려고 해도 더이상 살수가 없어서 이혼을 결심했다.
그러던 어느날 직장 동료가 사연을 물은즉 대답 동료말. 그러지 말고 점심시간에 우리함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자, 우리교회 목사님이 무슨일이나 감사를 드리면 하나님께서
감사드린대로 되게하신다고 하셨다고 그래서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남편, 술주정뱅이인 것을 감사합니다..... 그러고 집에 돌아가니 그렇게도 밉던 남편이 밉지가 않았다.
며칠후 주일 아침에 교회를 가기위해 옷을 갈아 입는데 당신 어디 가오 `몰라서 물어욧`하고 쏘아 붙쳤다.
글쎄 어디가느냐고. 어디는 어디요 교회가요 `나도 따라갈까?` 이양반이 누구 약올려요?
약올리긴 나도 가면 될까?
정말이세요? 그래. 남편이 그날 교회가서 통회 자복을 하고 새사람이 되었다.
전 폭력배 보스 전도사로 변신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그 얼굴의 도우심을 인하여 내가 오히려 찬송하리로다."
(시편 42 : 5)
"어둠속에서 살아온 젊은날을 속죄하고 이웃에게 사랑과 복음을 전할때면 가슴이 벅찹니다" 수원시내 최대 조직폭력단체인 '남문파' 보스였던 허윤석(옛 이름 허벽)씨가 전도사로 변신, 제 2의 인생을 살고 있다. 지난 80년 삼청교육대에 끌려가기도 했던 허씨가 사회의 빛과 소금이 되기위해 신앙생활을 시작한 것은 94년 5월이다.
이름 앞에 언제나 붙어다니는 전과 10범이라는 꼬리를 떼고 허씨가 교회를 찾게 된데는 3년간 단 하루도 빠짐없이 철야기도를 계속해 주신 어머니의 간절한 사랑이 계기가 됐다. "저를 위해 기도를 마치고 돌아오시다 교통사고를 당해 산소 호흡기로 연명하시 면서도 막 출소한 저의 두 손을 꼭 잡으며 '함께 주님에게 가자'는 마지막 말씀에 통한의 눈물을 흘리지 않을수 없었습니다.
이후 허씨는 ' 과거의 허벽이는 죽었다'고 다짐했고 다시 태어나는 의미로 이름도 바꾸고 수감중 어머니가 넣어준 성경책과 더불어 참 인생의 길을 걷고있다. 신앙 생활 4년째, 지난 1월 수원제일교회 집사가된 허씨는 한때 뒷골목에서 자신을 자신에게 칼을 들이댔던 폭력배들에게도 사랑을 전하며 새 삶을 인도하여 교회로부터 '전도 1등상을 받기도 했다.
어거스틴의 어머니 모니카가 아들을 위해 소망을 가지고 약 20년간의 눈물어린 기도를 한끝에 어거스틴이 회심하게 된다. 이 기사의 허윤석씨도 어머니의 3년간의 눈물어린 소망의 기도로 새로운 삶을 시작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것이 소망을 잃지 않고 인내한 자의 열매이다.
사랑의 전도자
성 구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요일 3:18)
신학을 전공한 사람만이 사역자는 아닙니다. 당신도 충분한 사역자가 될 수 있습니다. 한 탤런트의 고백입니다. “굶주림에 허덕이는 아이들을 보니까 정말 가슴이 아팠습니다. 그런 아이들에게 아무것도 해줄 게 없어 고통스러워하는 부모들을 보니까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나더군요.” 최수종 씨, 그를 일컬어 ‘사랑의 전도자’라는 말을 한다고 합니다. 언젠가 토크쇼를 보니까 자기 아이를 위해 손수 자수도 놓고 육아책도 냈다고 합니다. 가정과 연예인 사이에서도 소문난 최수종 씨는 소외된 사람들에게 끊임없는 사랑으로 예수님의 향기를 전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세민 지역의 이웃 사랑회 탁아소를 방문해서 유아들을 목욕시키고 점심도 먹여주고, 슬럼가 빈민들에게는 직접 나서서 배식을 해주기도 한답니다. 또한 아동 학대 방지 캠페인 홍보자료와 광고에 대가없이 출연하고, 불우 아동 보호시설을 방문하는 등 틈나는 대로 이웃 사랑을 실천하면서 청각 장애인 골프선수와 의형제를 맺었다는 기사도 보았습니다. 그에게는 단지 인기를 얻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정말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에 모신 사람의 사랑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너무 어렵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마음이 있으면 실천할 수 있습니다. 우리들이 이렇게 사랑을 실천하는 모습을 볼 때 예수님은 기뻐하시며 영광 받으실 줄 믿습니다. 방황하고 있는 걸인에게 오늘 당신의 사랑을 실천해 보십시오.
무언의 전도자
그 전도자는 어떤 날 제자들을 데리고 전도를 떠나 하루종일 시가지를 아무 말도 없이 돌아 다니다 들어왔다. 그 때에 제자들이 말하기를 `어떻게 한마디의 말씀도 없이 전도를 하
십니까?` 하였다. 선생은 내주일에 보라고 하였다. 그 다음 주일에 많은 사람들이 예배당에 모였다. 목사님은 기뻐서 설교를 하신 후에 예수 믿을 사람은 손을 들라고 하였다. 그 때에 많은 사람들이 손을 들었다. 목사님은 예배를 마치고 내려가서 결신자더러 `어떻게 예수 믿을 마음이 생겼습니까?
` 물어보니 `나는 저 전도 선생의 전날 전도 여행의 경건한 모습에 감화를 받고 예수를 믿기로 결심하고 오늘 예배당에 온 것입니다.` 고 하였다. (딤전4:8)
혀와 귀가 잘리면서도 전도하며 숨진 순교자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 줄을 믿노니 이는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사셨으매 다시 죽지 아니하시고 사망이 다시 그를 주장하지 못할 줄을 앎이로라." (로마서 6 : 8-9)
1950년 6.25가 발발 했을 때 김대운 전도사는 평양의 장진 교회에서 시무하고 있었다. 평양에서는 당국의 지시로 교회는 문을 닫게 되었고 기독교인들은 체포되어 끌려가기 시작했다. 김 전도사는 체포당하여 사리원으로 끌려 갔다.
악랄한 내무 서원들로부터 회유를 받아야 했다. "예수만 믿지 않는다고 하시오, 앞길이 구만리 같은 젊은이가 예수 때문에 죽어야 되겠는가?" 그러나 김 전도사는 신앙 절개를 굽히지 않았다. "아닙니다.
제가 어떻게 주님을 배반합니까?
주님은 우리를 위해 피흘려 죽으셨습니다. 그분을 믿어야 삽니다. 이것이 생명의 비밀입니다." 그때였다. 한 내무 서원이 소리쳤다. "저 새끼 혀를 잘라 버려." 몇 사람의 젊은이들이 김전도사에게 달려들어 혀를 늘여 칼로 잘라 버렸다.
입에서 피를 토해 내는김전도사는 말을 할 수 없자 손가락으로 십자가를 만들어 쳐들었다. 피는 그 입에서 폭포처럼 솟구쳤다. 상관인 듯한 자가 또 한 번 명령했다.
"저 자식 우리말 듣지 않는 저 귀를 잘라 버려." 젊은이들은 또 다시 달려들어 귀까지 잘랐다. 김 전도사는 그래도 지지 않고 십자 성호를 그었다.
거지 전도
예수님이 열두제자를 부르사 둘씩 둘씩 보내시며 더러운 귀신을 제어하는 권세를 주시고 명하시되 여행을 위하여 지팡이 외에는 양식이나 주머니나 전대의 돈이나 아무것도 가
지지 말며 신만 신고 두벌 옷도 입지 말라 (막 6:8). 주님은 제자들에게 걸식전도의 훈련을 시키신 것이다. 주님 자신도 머리 둘곳 없는 걸식전도자라 할 수 있다. 바울은 천막 노
동전도자였고, 중세 수도승과 프렌시스교단과 탁발승단도 거룩한 거지전도단이었다.
대학생 거지전도단을 내 보내 봤더니 잠재워주고, 밥 얻어먹은 사람에게 전도하는 것이, 병고쳐 주고, 구제품 주고, 노래와 영화로 잔치해 준 경우보다 진지하고 순수하게 예수
를 대한다는 실증이 있다.
한국 선교시대의 묵시 같은 경험이다. 거지 전도는 선교사 훈련의 필수과목이어야 한다.
포기하지 않는 전도
어느 대학교수가 믿지 않는 친구에게 예수님을 소개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주님을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하였지만 좀처럼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같이 길을 걷다가 예수님의 이야기를 또 꺼냈습니다. 그 친구는 "제발 그 이야기는 그만하게. 계속 그러면 절교하겠네"라고 말했습니다. 친구는 이렇게 권면하였습니다.
"여보게 진짜 예수를 안 믿어도 좋으니까 길 건너 보이는 저 교회에 들어가서 '나는 주님을 믿습니다. 왜냐하면 나를 구원하시려고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셨기 때문입니다.'라고 세 번만 소리지르고 나면 10만원을 주겠네."
그 친구는 재미있게 들었습니다. 아무도 없는 교회에 가서 세 번만 외치고 나면 되는 것입니다. 그는 수락하였습니다. 세 번을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그렇게 하고 나오는 친구에게 말했습니다. "다시 한 가지 더 '주님이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라고 외쳐주면 다시는 전도하지 않겠네." 그 친구는 그 말을 외치다가 목이 메이고 말았습니다. 2천 년전 사건이 지금도 효력을 나타냈습니다. 그 친구는 엉엉 울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영접하였습니다. 이같이 복음을 전하면 하나님께서 같이 하시고 그렇게 한 사람에게는 자랑의 면류관을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발은 면류관이 보장되어 있는 아름다운 발입니다.
기도: 내게 믿음을 주신 주님, 내가 만나는 사람들마다 모두 구원얻기를 소원합니다. 그들에게 담대히 복음을 전할 때에 나의 입술과 생각에 주님의 말씀으로 역사하소서.
담대히 전도하라
평소에 전도에 자신이 없던 사람이 큰 용기를 내어 아파트에 전도를 갔다. 벨을 누르고는 나와서 욕할 것을 상상하고 윗층으로 도망갔다. 한참후에 그래도 해야지 하고 또 벨을
눌렸다. 그리고 겁이나서 또다시 도망갔다. 꼭해야지 각오하고 세번째 눌렀다. 죽을 각오하고 문 열기를 기다렸다.
`왜 그래요` `예수 믿습니까` `이사왔는데요. 그렇찮아도 교회를 정하지 못하여서 생각 중인데 반갑습니다. 들어 오셔요` 그리하여 쉽게 한 가정을 인도하였다.
네 행위로 전도하라
어느 부흥회에서 모든 사람들이 간증을 하는데 두 사람이 일어나서 열심으로 간증했습니다. 그 간증을 들은 많은 사람들이 감동을 받았는데 한 부인은 아주 분한, 경멸하는 표정으로 간증하는 두 사람을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옆에 있는 사람이 왜 그렇게 분해하느냐고 물었더니 그 두 사람이 옛날에 자기의 돈을 많이 꿔 가더니 전혀 갚아 주지 않아서 먹을 것도 없을 정도로 망하게 되었는데 지금은 저렇게 예수 믿고 은혜를 받았다고 간증을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사례는 얼마든지 우리 주변에서 있을 수가 있습니다. 예수 믿는 것을 윤리적인, 인격적인 변화도 없이 그냥 말이나 생각으로, 아무런 희생도 없이 진실됨도 없이 껍데기로 믿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을 때 진실되게 회심을 해야 되겠습니다.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빌1:27상)
소년원 출신, 전도사로 인도
성 구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마 5:16)
9년 동안 50여 명의 소년원 출신 10대들을 집에 데려와 함께 생활하며 바른 길로 이끌어온 부부가 있다. 서을 명동에서 양복점을 하는 이홍균(61)씨와 부인 윤영지(57) 씨다 이들의 서을 여의도 아파트에는 전도사를 희망하는 세 명의 소년원 출신 청년이 함께 산다 모두 신학생이다. 이들보다 먼저 13명이 전도사가 됐고, 세 명은 해외 선교사로 새 인생을 살고 있다. 이씨 부부가 이들과 인연을 맺은 건 1991년, 부인 윤씨가 운영하는 유니 선교회에서 천안소년원에 '사랑의 편지'를 보내면서부터다. 그렇게 1년간 사랑의 편지'를 보내던 부부는 92년 어떤 결심을 하게 된다. "소년원을 나와도 오갈 데 없는 청소년들이 다시 범죄의 길로 빠져드는 걸 막기 위해선 따뜻한 가정에서 사랑과 관심을 가져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두 아들 진국(31,목사)과 진영(30, 대학원) 씨도 또래인 소년원 출소자들과 가족같이 지내겠다고 약속했다. 그 동안의 생활 속에서 친부모와의 마찰도 있었다. 92년 소년원을 나온 한씨를 처음 데리고 올 때 무속인이었던 그의 어머니가 거세게 반대했다 하지만 수년 후 아들이 올바르게 자라 선교사가 되자 '태가 데려왔으면 다시 방황했을지도 모를 아들을 이렇게 훌룡하게 인도해 줘 고맙다. "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전도가 해답이다
대심방과 웃으시는 예수님 사진: 우리 교회의 적극적인 신앙과 일치한다.
광림의 적극적인 신앙으로 살아가는 광림인들의 가정의 모습을 보시고 예수님이 웃으신다는 목사님의 해석이 있었다. 종종 성경 어디에 웃으시는 예수님에 대한 설명이 있느냐는 질문이 있었다고 한다. 아마도 오늘 본문의 이야기에서 호탕하게 웃으시는 예수님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고 해도 한없이 행복해 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예수님은 수가성 우물가에서 한 여인을 전도하시고는 만족해 하신다.
식사를 걸러 시장하셨다. 제자들이 동네에 가서 먹을 것을 구해 왔다. 그러나 식사하시기를 청하는 제자들의 말을 무시하면서 `내게는 너희들이 알지 못하는 양식`이 있다고 하신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것이 나의 먹고 마실 것이라고 하신다. 그리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이란 다름 아닌 수가성의 여인과 같이 보잘 것없는 사람이라도 귀중히 여기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관심하고 전도하여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는 일이었던 것이다.
본래 `행복`에 촛점을 맞추어 설교를 하고 싶은 마음이었으나 총력전도 기간이기에 `전도`에 촛점을 맞추어 오늘 본문에서 교훈을 찾고자 한다.
1. 행복한 인생을 살고자 하는가?
공허한 인생을 살던 한 여인이 등장한다. 권태롭고 따분한 인생이었다.
행복은 그림자도 찾아 볼 수 없는 우물가의 여인의 모습이다.
행복에의 갈증은 누구가 가지고 있다. 더 행복해지려고 아침부터 밤이 늦도록 일하는 것이다. 사람이 행하는 모든 것은 결국 행복해지고자 하는 욕구와 연결된다. 그런데 문제는 행복을 원하며 행하는 일들이 그들의 행복에
아무런 보탬이 되고 있지 못하다는 점이다.
행복해지고자 하나 그것을 얻지 못하는 헛된 수고들이 있다.
물질:
성(환락):
권세:
지식:
참된 행복에 도달하는 데는 여러가지의 길이 있을 수 있다. 오늘 본문은 그중의 하나 중요한 길을 보이고 있다. 한 여인을 전도하여 그 인생이 새로와진 것을 보시고는 다른 어떤 것으로 대신할 수 없는 깊은 행복감에 사로잡혀 계시는 예수님의 모습이 그것을 보이는 것이다.
행복한 인생을 살고자 하는 이가 있는가? 전도가 그 해답이다. 전도는 한 영혼을 깊히 사랑하는 일이요 한 생명을 가장 존귀하게 세우는 길이요. 우리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사랑의 표현이며 보람된 일인 것이다. 따라서 사랑하는 마음으로 한 영혼을 구원하여 주님의 백성이 되게 한 이는 예수님이 경험하셨던 먹고 마시지 않아도 마음 속에 넘쳐 나는 행복을 얻게 될 것이다.
2. 위대한 인생을 살고자 하는가?
수가성 우물가의 여인의 생: 다섯 남편을 둘 정도로 인생의 편력이 심했다. 복잡하고 혼잡한 인생이었다. 편할 날이 없이 애쓰고 힘쓰고 노력하며 살아왔던 것이다. 그러나 그 결과 그가 얻은 것이라고는 수치심과 죄책감과 공허심과 권태의 마음 뿐이었다.
위대한 생에의 욕구는 누구나의 것이다. 한번 뿐인 인생(일회성의 인생), 하나 뿐인 생명(유일성의 인생)이다. 멋있게 살아야지. 훌륭하게 살아야지. 후회할 것이 없이 살아야지. 무엇인가 창조적인 결실을 남겨야지. 호랑이는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이름을 남긴다고 했는데 명예로운 이름을 남겨야지. 누구나 다 이같은 생각을 가진다.
그러나 사람들은 좀처럼 일상성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무엇을 하는 것이 내 인생을 위대하게 만드는 것인지 실 생활에 임하여서는 매사가 모호할 뿐이다. 좋은 일인 줄 알았는데, 선한 의도를 가지고 행동했는데 결과가 정반대로 나타날 때도 많이 있는 것이다.
여기에 예수님이 좋은 해답을 보이고 있다. 역사상 존재했던 그 누구보다 위대한 생을 살았던 예수, 헤아릴 수 없는 사람들이 자신의 삶의 모범으로 생각하고 자나 깨나 그를 본받으려 했던 예수, 온 인류의 구주로 인정받아 온 예수,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 우리에게 위대한 인생의 본을 남기신 예수시다.
예수님이 평생에 하신 일이 무엇인가? 무엇이 예수님으로 하여금 위대한 인생으로 평가받게 했는가? 물론 예수님의 십자가를 연상할 수 있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가장 중요한 요소인 것이 사실이다. 자기 자신을 희생하여 죄인을 구원하신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 사실인 것이다. 그러면 그 십자기는 무엇을 위한 것이었던가? 죄인으로 하여금 그 죄를 용서받을 수 있게 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함이 그 목적이 아닌가? 그리고 죄인을 불러 하나님의 자녀되게 하는 일이 바로 전도가 아닌가? 그렇다고 하면 예수님의 생의 촛점은 바로
전도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예수가 전 생애를 바쳐 행한 일은 바로 전도이다. 제자 선택, 훈련, 끊임없이 계속된 여행, 십자가의 죽음... 오직 영혼을 사랑하여 그들을 구원하기 위해 살고, 그들을 구원하기 위해
죽었다. 달리 말하면 전도를 위해 살고, 전도를 위해 죽었다. 오직 이 한가지 때문에 그의 생은 위대한 생으로 평가되는 것이다. 학위를 받은 일이 없다.
기업을 세우거나 경영한 일이 없다. 저서를 남길 일이 없다. 과학, 철학의 이론을 발표한 일도 없다. 오직 전도를 위해 살았다는 것 이것이 그의 위대성의 전부인 것이다. 예수의 생애를 사랑이니 속죄니 구원이니 희생이니 하는 등의 말로 표현하고 있지만 이 모든 것이 개개인에게 적용되지 않으면 의미가 없는 일이며 이 적용의 과정까지 생각하면 우리는 이를 포괄하여 전도라 할 수 있고 이런 의미에서 예수의 위대성을 이루는 것은 그가 오직 전도를 위해 힘썼다는 점에서 볼 수 있는 것이다.
에수는 전도를 위해 힘썼고 그를 따르는 자들이 전도하도록 길을 열어 놓으신 분이다. 예수가 없었다면, 예수님의 생을 전제로 하지 않으면 전도가 성립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참으로 위대한 생을 살고자 하는 이가 있는가? 세상인들의 헛된 관점이 아니요 하나님 보시기에 위대한 생을 살고자 원하는 일가 있는가?
우리는 그 해답으로써 전도를 말할 수 있는 것이다.
3. 성숙한 신앙인이 되고자 하는가?
인간이란 무엇인가? 가장 잘 알 것같으면서도 가장 알 수 없는 문제이다.
가장 평범한 것같으면서도 가장 신비한 것이다.
내가 얼마나 제한된 존재인가를 알려면 내가 내 자신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가를 살펴보면 된다. 내 자신에 대한 자신의 무지에 대해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안다고 하더라도 내 마음대로 통제할 수 없는 일들이 많다.
더러는 내 능력, 기술, 지혜가 미치지 못하며 더러는 내 몸이지만 그 통제를 내게 맡겨져 있지 않은 것도 있다. 예컨대 우리의 심장과 같은 자율신경계통을 하나님이 직접 통제하시는 부분이라고 하겠다.
우리 몸에 대해 의외로 무지하기 때문에 우리 몸에 어떤 이상이 생겨나면 이를 우리에게 통지해 주는 장치가 있다. 물은 우리 몸에 필수적이다. 이것의 보유정도가 필요량 이하로 떨어지면 갈증이 일어난다. 네가 측정해 본 일이 없지만, 그래서 너는 모르고 있지만, 물이 현저하게 줄어들었으니 이를 보충하라는 뜻일 것이다.
우리 몸을 유지 관리하는데 필요한 에너지가 떨어지면 허기증이 생긴다.
배고픈 것을 참을 수 없다고 하곤 하는데 이는 정기적으로 에너지를 채우고자 함인 것이다. 임산부가 이것저것 먹고 싶어 하는 일이 많은데 이는 어떤 영양의 요소가 특히 요구되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일게다.
통증은 우리 몸에 이상이 생겼다는 사인이다. 이를 감지하여 치료의 절차를 밟으라는 통지다. 통증이 제때에 있지 않으면 치료의 시기를 놓치게 되고 이같은 유형의 병이 위험한 병이 되는 것이다.
이같이 몸에서 일어나는 싸인들이 많은데 그중에서 불안이라는 것도 있다.
흔히 불안과 공포를 구분한다. 공포는 분명한 대상이 있다. 불안은 어떤 원인이나 대상이 없지만 알 수 없이 우리의 마음에 느껴지는, 그리고 좀체로 제거할 수 없는 감정의 현상이다.
그런데 갈증이 물을 먹으라는 뜻이요, 허기가 밥을 먹으라는 뜻이요, 통증은 치료하라는 뜻이라고 볼 때, 불안도 무엇인가 우리에게 주는 메세지가 있을 것이다. 그것이 무엇인가? `너는 홀로 설 수 없는 존재이다. 너는 나에게 의존되어 있는 존재이다. 너는 나를 필료로 한다. 나와 함께 함으로써만 너는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나를 통해서만 너는 영생을 누릴 것이다`라는 하나님의 메시지를 우리게 전달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하나님의 품에서 안식을 누리기까지 우리에게 참된 안식이 있을 수 없다고 말한 어거스틴의 말처럼 하나님없이 우리는 절대로 행복할 수가 없는 것이다.
모든 사람들은 그 깊은 내면으로부터 영원을 지향하는 성향, 하나님을 섬기고 따르고자 하는 성향, 영적인 것에의 욕구를 가진다. 이것없이 행복은 불가능한
것이다.
본문의 수가성의 여인을 생각해 보자. 그녀도 진지한 영적인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메시야를 대망하고 신앙적인 의문을 가지고 있다고 예수를 만나 물어보고 있는 것이다.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 그런데 이같은 영적인 관심을 갖고 조상과 더불어 그 길을 걷고 있음에도 그의 영적인 생활은 피상적인 것에 지나지 않았다. 자신의 인생을 새롭게 하지 못하는 신앙생활,
자신의 인생을 변혁시키지 못하는 신앙 생활, 자신에게 피곤만을 더하는 것으로 그치는 신앙 생활이 문제인 것이다. 개미 체바퀴 돌듯 겉만을 돌다가 만다. 성숙한 신앙에 이르지 못한다.
과연 신령과 진정에 이를 수 있는 길은 무엇인가. 성숙한 신앙에 달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전도가 그 해답일 수 있다. 전도를 통하여 우리의 신앙이 재확인되고 한 영혼을 사랑하여 구원하는 진지한 노력을 통하여 우리 자신도 성숙되는 것이다. 그래서 수가성의 여인은 예수의 전도를 받고는 마을로 달려가서 예수를 증거하기에 힘썼던 것이다.
예화 모음:
전도자로 변신한 철주먹 포먼 한때 세계프로복싱 헤비급 참피언으로 알리와 프레이저를 차례로 캔버스에 눕히면서 92.3%의 KO율을 자랑하다 77년 지미 영에게 통한의 판정패를 당한 후 은퇴, 전도자가 된 `세기의 복서` 죠지 포먼(40)... 현재 미국 텍사스주 휴스턴시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는 포먼의 전도경력은 12년이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학교에 가기가 싫어 어머니의 속을 무던히도 썩였다.
어머니는 모정에 이끌려 포먼의 앞날에 관해 마음죄며 기도한 일이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휴스턴 뒷골목의 불량소년이었던 그에게 잊지 못할 사건이 하나있다. 지난 66년 캘리포니아주 플리잰턴에서 16세의 포먼이 그가 속해있던 직업공단의 동료에게 반죽음이 되도록 폭력을 휘두른 일이다.
기술 공단에서 벌어진 이 무자비한 폭력을 지켜본 권투 선수 지도자 브로더스는 그를 선수로 키우며 교화하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그는 권투선수로서 하루가 다르게 성장, 68년 미국대표로 멕시코 올림픽에 출전했고 헤비급 금메달을 따내는 영광을 안았다.
그때로부터 74년 아프리카의 자이르에서 알리에게 8회 KO패할 때까지 수백만달러의 돈방석에 앉은 그는 하나님 따위는 아랑곳없이 자신의 주먹만을 신봉했었다. 그런 그에게 77년 아르헨티나 산후안에서 가진 지미 영과의 시합에서 어이없이 패하고 앉아있던 탈의실의 체험은 잔인한 인생전환점이 되었다.
적수가 못되리라던 무명 선수에게 판정패한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그에게 엄습한 것은 난생 처음 느낀 죽음의 공포였다.
`헛되고 헛되었다. 슬픔의 냄새를 맡으며 주위를 둘러보니 내게 있는 건 죽음뿐이었다`고 회고하는 포먼은 금고 속의 수백만 달러도 한낱 종이 조각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이 깨달음을 계기로 신앙에 귀의한다.
쉴 수 없는 전쟁
William Booth (1829-1912) 는 공중 권세 잡은 사탄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죽어가는 영혼을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여 내는 전도는 결코 포기하거나 물러설 수 없는 성전이라 생각하고 구세군을 창설하였다. 그가 불행한 환경을 이기고 만난을 극복하면서 복음 전도자가 된 후 어느날 유명한 장군댁을 방문하게 되었다. 그때 장군의 부인이 `이제 장군은 칼을 버렸지요. 칼대신 괭이를 가지고 매일 밭에 나가 한가로운 농부의 생활을 한답니다`라고 했을 때 부드는 `각하의 전재에는 평화도 있고 쉴 때도 있는군요. 그러나 우리들의 전쟁에는 휴전이나 휴식이 없읍니다. 매일 긴장하고 계속해야 할 전쟁이지됴. 그러나 우리에겐 봉급도 없읍니다. 아마 천국에서나 받게 되겠지요`라고 대답했다.
미국에서 선교를 위해 쓰는 돈
미국 내 각 교파의 외국 선교비를 합하면 약 2억불 (200million) 이다. 그것은 입술연지 (lipstick) 에 쓰이는 4억6천만불의 절반도 안된다. 삼푸에 소요되는 950억불의 50분의 1에 해당한다. 구경거리 (영화, 운동경기)에 쓰여지는 2천7백억불에 비하면 1천분의 일이다. 하나님을 위한 투자에는 너무 등한히 하고 있다.
이반 일리히의 씁쓸한 최후
톨스토이의 명작 `이반 일리히의 생애와 죽음`은 마지막 장면이 억울하다!`하고 뇌까리며 화가 나서 죽는 것이다. 이반 일리히는 정직한 남편, 정직한 아버지로서 정직하게 살고 평생을 바쁘게 살았다. 그렇지만 죽음이 다가온 시간에 생각해 보니까 정말 행복다운 행복도 못느꼈고 보람있는 시간들을 가진 것같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마지막 순간을 화가난 채 죽은 것이다.
인디언 전도자 브레너드
미국 인디언 전도에 평생을 바친 데이빗 브레너드 (1718-47) 는 인디언과 함께 살면서 갖은 고생을 겪다가 병에 걸려 27세에 죽었다. 인디언에게 성자로 알려진 청년 전도사였다. 그의 마지막 일기는 이렇게 맺어 있다. `주님없는 고생은 지옥이다. 주님 곁에서의 고생은 천국이다. 주님이 내 곁에 계시지 않았다면 나의 생활은 짐승과 차이가 없을 것이다. 내가 사람답게, 그리고 조금이라도 보람있게 살았다면 그 모든 원인은 주님 곁에 내가 있었기
때문이다.`
막아버린 전도의 문
한 곳에 융통성 없이 목회하는 교역자가 있었다. 그는 안 믿는 동민을 보고 지옥 갈 사람들이라고 하여 대화는 물론, 마을이 협동하여 하는 일을 비난하다가 난처한 입장에 빠지고 말았다. 성경 진리대로 보면 불신자가 지옥가게 되어 있고, 불신자와 멍에를 같이 메지 말라고 하였으니 잘못은 없다. 그러나 그 바른 말이 덕을 이루지 못하여 전도의 문을 막아버리고 말았다.
죄는 밉더라도 죄인은 불쌍히 여기고 사랑으로 인도하여야 하는데도, 율법주의자들처럼 정죄하고 절교까지 하였으니, 크게 잘못된 것이다. 세상은 신자와 이교도와 불신자가 함께 사는 곳이다. 불신자 안에 들어가지 못하면 전도가 안된다. 전도의 문을 막았다면 교역자도,교인도 진리를 배반하는 것이 된다.
또 한 곳에 이웃에서 제사를 지낸 떡을 받아 가지고는 그가 보는 앞에서 `교인은 우상의 제물, 더럽다고 안먹어요`하고는 구정물에 부어버린 여전도사가 있었다. 그 이웃 사람이 얼마나 당황하고 분개하겠는가는 말할 필요도 없다. 우상의 제물은 신앙 양심상 안먹은 것을 잘한 일이다. 그러나 바른 말이 덕을 이루지 못하여 이웃과 대화가 끊어졌으니, 전도의 문을 막은 것이다.
미전도종족 이렇게 접근하라
미전도종족을 향한 선교관심과 전략은 금세기 선교에 핵심이다. 이를 위한 여러형태의 전략들이 동원되기도 했지만 효과적으로 주님의 지상명령을 수행하기 위해서 이들 지역에 대한 올바른 상황인식과 적절한 전략설정이 필요하다.
이번호에는 미전도종족에 관한 이해와 효과적인 접근방법에 대해 살표보고자 한다. 예수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이땅의 모든 종족으로 제자를 삼으라고 명하신다.
1. 미전도종족에 대한 지리적 이해
현재 진행중인 미전도종족 입양운동본부에 따르면 오늘날 전세계에 12,00개의 종족집단 이 존재하며 그중 5,310개의 집단이 미전도종족이라 칭하고 있다. "어느 종족이 복음으로 접근되었는가"라고 말할때 접근되었다고 말하려면 그곳에 "외부의 도움을 요청하지 않고도 자기종족을 전도할 수 있는 충분한 인원과 재원을 가진 "가시적인 토착교회를 가지고 있는 지의 여부에 달려있다. 그렇지 못한 집단을 "미전도집단" 혹은 "미전도 종족집단"이라고 지칭하는데 이는 "그룹들의 그룹"이므로 실제 총수는 수록된 5,310집단의 거의 두 배 정도가 될 것으로 추정한다. 옆에 게재된 지도에 나타난 흑점들은 10/40창 국가들의 지도와 목록이다. 지도에서 보 면 10/40창은서아프리카부터 중동을 지나 아시아까지 뻗어있는 북위10도에서 40도 사이에 있는 지역이다.(이들은 또한 모두 최소 5,000명 이상의 인구를 가진 국가이다)
2. 10/40창의 특수성
이 창은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복음에 저항적인 세력을 포함하고 있다.
회교권, 불교권, 힌두교권의 대부분이 이 창 안에 포함되어 있으므로 선교사 입국 비자로 접근하기 어려운, 새로운 선교전략이 필요한 지역이다. 또한 바렛과 존슨이 "미복음화"된 국가로 구분한 30개 국가중 23개국(약77%)을 포함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10/40창은 전세계 빈민의 82%와 전세계 40개 저개발국가중 18개국을 포함하고 있다. 10/40창은 복음도 없고 물질적 빈곤으로 고통당하고 있는 종족집단을 표적으로 하여 이 두가지 기아를 전문적으로 채우는 사역이 필요하다. 랄프 위터의 말처럼 선교는 진역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종족으로 가는것을 의미하기에 체계적이고 전략적인 접근이 요청된다.
3. 미전도종족을 향한 접근전략
이러한 특수성을 지닌 지역에 대한 접근은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기존의 전략이 아닌 새로운 전략을 세워 체계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우선 이들 나라들 중 선교사라는 비자를 통해서 입국이 불가능한 지역에 대한 접근이다. 세상의 어떤 나라와 종교, 정치상황하에서도 사랑많으신 하나님의 출입을 제한할 수 없다. 수년전 서구 선교사의 손련입국이 금지되었을 때, 아프리카출신의 그리스도인은 그곳 대학에서 유학하며 동시에 복음을 전파할 수 있었다. 회교원리주의 국가인 파키스탄에서는 자선병원을 설립하여 자선 진료를 통한 복음전파를 행하고 있다. 전통적인 선교사로서의 접근이 용이하지 않을 때 직업이나 학업을 통해 접근이 가능하며 사회봉사요원이나 외교등 접촉가능한 경로를 통해 복음을 전파할 수 있다.
구호와 개발사역과 연계된 전도는 이런 물질적인 궁핍에 처해있는 지역에 가장 효과적인 사역방법이다. 성경 전체를 통해 그리스도의 근본적인 의무로서 궁핍한 자를 도와야 된다고 언급하고 있으며 예수님의 지상사역 가운데 이를 손수 실천해 보이셨음을 볼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통하여 우리에게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사랑하라" 는 대계명과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는 대명령을 내리셨다. 이 계명과 명령에 귀를 기울이고 적절한 반을을 보이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매우 중요한 의무라 생각한다. 이제 우리앞에 놓여진 마지막 불신의 장벽을 허물고 말씀에 기갈되고 육적으로 굶주린 지역이 영적, 육적인 기아의 굴레에서 해방될 수 있도록 도와야 할 것이다.
전도
그리스도인에게는 날마다 일어나는 세 가지 기적이 있는데, 그것은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성경말씀은 거들떠 보지도 않는것,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전도할 생각은 전혀 하지 않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믿고 사랑한다고 자신 있게 말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우스운 이야기 같지만 현실입니다. 이는 전도에 대해서만 생각해 보아도 그렇습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에 대한 얘기는 밤을 새워서까지 하려고 합니다. 한 가지 예로, 멋있는 사람과 막 교제를 시작한 처녀를 보십시요.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자신과 교제하고 있는 사람에 대해 말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왜 예수님에 관해서 만큼은 입을 꼭 다물고 있는 걸까요?! 어떻게 그 놀랍고도 감격적인 복음을 혼자만 알고 있을 수 있을까요? 우리 모두 자문해 보아야 할 일입니다.
전도의 시기
어느 회사를 경영하는 사장이 신앙생활을 잘하고 있었습니다.
꼭 자기는 주일날이면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리는 사람인데 전도는 하지 못했습니다. 다른 사람을 보고 예수를 믿으란 말을 한마디도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자기 회사에 같이 일하는 사람이 많이 있어도 다른 이야기는 늘 하지만 한번도 교회에 가자고 전도를 해보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주일날은 설교를 듣고 나서 전도를 못한 자기의 잘못을 깨달아서 꼭 전도를 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자기 회사 사무실에 나가서 사장 자리에 앉았습니다.
조금 후 문을 열고 제일 먼저 들어온 사람은 자기 비서였습니다. 가만히 생각 해보니까 이 비서에게 한번도 예수를 믿으라고 전도해 본 일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먼저 비서가 교회에 다니고 있는지 물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이 비서가 놀란 표정으로 왜 그런 것을 묻느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를 믿어야 구원을 받지 하면서 사장은 다시 전도를 하였습니다.
그러자 비서는 "제가 사장님을 15년 동안 모셨는데 저한테는 한번도 전도를 안 하셔서 제 생각에 저 같은 존재는 예수를 믿을 수도 없나보다 생각했습니다. 오늘 이렇게 저한테 전도를 해주시니 감사합니다. 저도 다음 주일부터는 교회에 다니겠습니다."라고 말하더랍니다.
선교, 전도2
선교는 하나님의 명령이요, 예수님의 마지막 부탁이요, 성령님의 권면입니다. 아시아에 세계인구의 50%이상이 살고 있는데 그중에 2%만이 예수를 믿습니다. 98%가 아직 예수를 믿
지 않고 있읍니다. 한국의 선교 사명이 얼마나 큰지 모릅니다.
하나님은 한국 민족을 수난으로 연단시켜서 말세에 아세아와 온세계에 선교하는 민족으로 세계 복음화의 사명을 맡기셨읍니다.
본전도 못건지는 자랑
어떤 사람이 해변가로 이사를 갔다. 이웃사람은 하루종일 바위위에 앉아 고기를 낚는 낚시광이었기 때문에 서로가 어쩌다 상냥한 인사나 나누는 정도이지 그 이상으로 진전될 수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날 그는 낚시광이던 이웃이 커다란 물고기를 들고 다가오는 것을 보았다. 그는 밖으로 달려나가 얼른 물고기를 받아들며 그 후한 선물에 대해 심심한 사의를 표했다. 그는 어딘지 당황해하는 낚시광의 태도를 보고 이상히 여기기는 했으나, 그저 사람이 겸손한 탓이거니 여기고 그냥 지나쳤다.
그 후 일년이 지나 두 사람이 어느 정도 친분이 깊어지고 나자 이웃사람이 작년 여름에 있었던 일을 솔직히 고백하였다. "나는 그때 내가 잡은 물고기 중에서 제일 큰 놈을 당신에게 그저 보여주려고 자랑하려고 왔었을 뿐이었소."
헛된 자랑은 본전도 못건진다.
무자격 전도사에게 임한 성령
어느 목회자가 그가 처음 부임한 교회에서 겪었던 이야기다. 28세 때 무자격 전도사가 한 교회로 갔는데 그가 간 지 반년 만에 부득이 담임목사가 떠나가게 되었다. 이 전도사는 앞이 캄캄해졌다. 그도 그럴 것이 신학교 문턱을 넘어보지도 못한 것은 물론 변변한 참고도서마저 없었기에 설교준비를 도저히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경험 많은 노인장로들이 "살림과 심방은 우리들이 다 맡아하겠으니 전도사님은 아무 걱정 마시고 설교준비만 하시요"
라고 했지만 그에게는 여전히 설교가 난관으로 부딪혀왔다. 코너에 몰려 다급해졌을 때, 그는 자석에 달라붙는 철가루처럼 강단 앞에 나아가 엎드렸다. 처음은 10분도 앉아있기가 힘들더니 차츰 그 자리는 떠날 수 없는 자리로 변했다. 영하 20여도의 혹한인데도 눈물로 마룻바닥을 흥건하게 적셔서 얼어붙었으며 물의 열기는 냉기를 능가했다. 이렇게 하루세시간 이상의 기도를 계속하기를 3개월 정도했을 때 하나님께서 그에게 응답을 주셨다. 그때 그는 성령충만이라는 무엇인지 체험했다. 우찌무라 선생이 "성령의 충만
을 잠깐 맛보기 위해 10년간 기도해도 아깝지 않겠더라"고 말한 것이 이해가 되었다. 그는 그 자리에서 일어서고 싶은 생각이 털끝맡큼도 안 생겼고 그렇게 멀게만 느껴졌던 주님이 실제로 그와 함께 하심을 느꼈다. 그 이후 그에게 있어 설교는 물론 목회 전반에 걸쳐 어렵다고 느껴지는 것은 아무것
전도
덴마크왕 크리스챤이 어느날 길 모퉁이에 서 있을 때 자동차 한대가 총알같이 질주해 오고 있는데 네 살쯤 되어 보이는 어린 아이들이 불쑥 길을 건너고 있었다.
두 아이는 차가 질주해 오는 것을 보지 못했으므로 구경꾼들은 새파랗게 질려 외마디 소리를 질렀다.
어린 아이들이 차 바퀴 밑에 깔리는 듯 싶었으나 그 왕이 신속히 달려 들어가 아이들을 두팔에 끌어 안고 무사히 x나왔다. 그후 두 소녀는 죽음 직전에 왕에 의하여 어떻게 구원
받았는지 수백번 즐겁게 되풀이 이야기했다.
우리의 강하신 왕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영원히 구원하고자 몸소 사망으로 돌진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기 위하여 최선의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전도자가 말한다, 헛되고 헛되다
전 1:2, 12:8
전도자는 평생 인생의 의미를 고민하는 현인이었다. 그가 전도서를 저작할 무렵 그는 지긋한 나이에 걸맞은 연륜과 학식을 갖춘 신앙인이었다고 추측된다. 그는 묻고 또 묻는다. 1)인생의 의미는 무엇인가? 2)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3) 인간은 과연 무엇을 정확하게 알 수 있을까? 이런 물음을 갖고 세상사를 관찰한 결과는 헛됨이다. 그러나 전도자가 염세주의자, 회의주의자 혹은 비관론자이기 때문에 그런 대답을 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는 인생의 중요성을 '헛되다'고 역설적으로 표현했을 뿐 그의 중심은 신앙과 삶과의 조화를 추구하는 데 있었다. 그는 결론짓는다. 1)인간은 피조물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2)지성인들은 자기 만족과 이기심에서 벗어나고 3)물질주의자들은 회개해야 한다. 우리는 물어야 한다. 나의 신앙이 나의 삶에 무슨 의미를 갖느냐고. 나는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라고 말이다.
(화) 모든 것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전 2:24-26
전도자는 자신이 발견한 인생의 헛된 부분들을 나열한다. 성공, 성취, 불평등, 보상의 부재 등. 그가 추구하여 얻으려 했던 지혜와 지식과 기쁨 그리고 심지어 재산도 몇몇 사람에게만 허용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전도자는 자신의 인생 경험에서 볼 때 가장 가치가 있는 것으로 먹고 마시고 자기 일의 보람을 느끼는 것으로 귀결지으며 이는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라고 말한다. 다시 말하면 "네 은혜가 족하다"는 바울의 말씀과 같은 맥락에서 현재 나의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왔음을 의미한다. 이 점에서 인간은 어떤 상황에서도 감사와 기쁨을 가질 수 있다. 그러므로 전도자는 하나님의 선물인 현재를 마음껏 누리라고 말하면서 동시에 이 기쁨과 즐거움은 제한되어 있고 또한 절제가 요구된다는 것을 망각하지 말도록 경고해 준다.
(수) 모든 일에는 다 때가 있습니다
전 3:1
전도자는 모든 것은 거기에 맞는 때가 있다고 믿지만(3:1-8), 그의 질문은 인간은 그런 때를 알지 못한다는데 있다(3:9-15).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 지식을 허락하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인간 세계에서 이루어지는 사건에 대해 저항할 수 있는 힘이 인간에게는 배제돼 있기 때문에 사람이 애써 수고한 일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고 인간의 한계를 말한다. 그 '때'에 대해 인간의 지식도 부족하고 조절할 수도 없음을 고백한다. 전도자는 '때'에 대한 다양한 인생사를 서로 대비시키고 있다(탄생/죽음, 전쟁/평화). 설사 인간이 이런 때들을 모두 경험한다고 하지만 전부 이해했다거나 설명할 수 없다. 시간(때)이란 하나님에 의해 결정되기에 우리가 이해하기 어렵고 신비하다. 지금은 무슨 때인가? 우리는 하나님의 때에 맞게 살아야 한다.
(목) 여호와 경외는 우리의 마땅한 태도 입니다
전 3:14
전도자는 인간의 능력이 매우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통감한다. 지혜인들은 생명, 소유, 명예와 같은 가치를 매우 중요하게 여기고 이들을 지혜의 보상으로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전도자는 또 다른 차원을 발견하는데 그것은 지혜인의 지혜로도 파악할 수 없는 이 세계의 질서와 하나님의 주권적 통치이다. 인간의 지혜로 결코 설명할 수 없는 부분들이 있다. 그러기에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것은 인간 한계에 대한 바른 표현이요 인간의 마땅한 응답이다. 만일 하나님의 활동과 계획을 잘 이해할 수 없다면 그리고 만일 사람이 하나님의 사랑이나 미움을 이해할 수 없다면 거기에서 오는 두려움은 바로 여호와 경외에로 이끌어져야 한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모든 것을 감사하고 하나님께서 어떤 훈련을 주시든 기꺼이 받을 준비를 하는 것은 바로 여호와 경외자의 몫이다.
(금) 하나님은 심판하십니다
전 3:17
전도자는 자신이 살던 시대의 온갖 불의에 분노하고 있다. 그때나 지금이나 온갖 부정과 부패는 세상을 더럽히고 이 세상을 혼란케 하고 있다. 그는 그 시대에 팽배한 악들을 다음과 같이 열거하고 있다. 1) 공정치 못한 법정 2) 무차별적인 죽음 3) 억압자와 피억압자/고용주와 피고용주 4) 부의 축적 5) 권력의 무상 6) 만족될 수 없는 인생 7) 보상과 벌이 제 때에 이루어지지 않음 등. 그는 신앙인으로 이런 현실을 고발하고 있다. 이 시대도 마찬가지이다. 불합리하고 불의한 세상사를 본 전도자는 그의 신앙적 양심과 믿음으로 독자/청중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을 확인시킨다. 세상은 하나님의 섭리로 운영된다. 심판은 반드시 존재한다. 인간은 의인이든 악인이든 반드시 심판을 받게 되어 있다.
(토) 하나님께 돌아가기 전에
전 12:7
전도자가 반복적으로 간곡하게 부탁하는 말 가운데 하나는 "…전에…"(전 12장)이다. "늙기 전에", "해와 빛과 달과 별들이 어두워지기 전에", "먹구름이 곧 비를 몰고 오기 전에", "…우물에서 도르래가 부숴지기 전에" 등. 한편 전도자는 인생이 결코 짧은 것만은 아니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과연 전도자가 "…전에"라고 한 것들은 무엇을 말하는가? 전도자는 결론적으로 여호와 경외와 계명 준수 그리고 하나님의 심판을 마지막으로 주지시키고 있다. 이것이 전도자가 전도서 전체를 통해 궁극적으로 말하고 싶었던 것들이다. 동시에 그는 이 땅에서의 삶 자체를 결코 부인하지 않고 오늘 여기에서 충실히 살 것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사랑의 전도자들
본문: 고린도전서 13:1∼8
고린도전서 13장은 사랑의 장입니다. 고린도전서 13장의 사랑은 주님의 사랑입니다. 우리 자신의 힘으로 사랑할 만큼 아가페의 사랑이 우리에게는 없습니다. 주님께서 성령을 통해 우리 속에서 사랑을 행하십니다. 주님이 주신 두 가지 명령은 ‘전도하라’,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최고의 사랑은 영원한 생명을 나누어 주는 것입니다. 이는 예수님 제자로서의 표시이고 임무입니다. 하나님의 사랑, 주님과 나만의 첫사랑이 없는 사람은 사랑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행하는 것이 참 사랑이며, 그렇지 않으면 불순물의 사랑일 수밖에 없습니다. 진실로 주님과 나 사이에 사랑의 강권함이 없이 행하는 전도는 울리는 꽹과리에 불과합니다. 종교적 열정 때문에 몸을 불태우고, 병 고침을 받는 사람들은 어딘지 모르게 종교적 허영심 내지는 공명심 등의 이기적 동기가 그 이면에 숨어 있는 듯 합니다. 그러나 주님이 마음 중심에 살아 있는 사람은 사랑을 하면서 참회를 하고, 겸손해 집니다.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행합니다. 그리고 죽는 순간에 “주님! 아무 것도 잘한 것이 없습니다.” 라고 고백하는 이것이 참 사랑의 모습입니다.
사랑은 모든 악을 금하고, 모든 선을 권하며, 사랑은 전폭적이며, 사랑의 필요(need)에 항상 관심을 가집니다. 목마른 자에게는 물을 주고, 고독한 사람에게는 위로를, 절망하는 사람에게는 소망을 항상 하나님의 것으로 나누어 줍니다. 나는 사랑의 전도체이고, 전달자이고, 사랑의 중보자가 될 뿐, 내게는 사랑의 근본적 자원(source)이 없습니다. 우리의 아픔은 사랑 없는 아픔이고, 우리의 사모하는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사랑받고 싶고 하나님께 애정을 드리고 싶은 사랑의 목마름입니다.
사랑의 최우선의 첫 번째 대상은 항상 하나님입니다. 그 다음은 믿음의 형제들에게, 그리고 모든 사람에게 선한 사마리아인의 심정을 품고 사랑을 베풀어야 합니다. 우리가 위대한 사랑의 영웅이 될 수 없더라도 겸손한 자세로 사랑의 가치관을 정립시킨 삶을 살아야 합니다. 사랑하고 싶은 열정이 있고, 주님 안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나도 사랑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일용할 양식을 달라고 기도하듯 날마다 날마다 사랑을 구해야 합니다. ‘주님, 오늘 하루의 삶 속에서 냉수 한 잔과 머금은 미소와 작은 친절에도 인색하지 않으며, 누군가를 위하여 옆에 앉아 주고, 기도해 주고, 누군가를 행복하게 해 주는 삶을 살게 하소서.’ 최소한이라도 함께 있고 편지를 쓰고 전화를 걸고 기도해 줄 수 있는 이것은 결코 작은 사랑일 수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사랑을 연습하고 훈련하는 것입니다. 운동 선수, 가수, 사업가, 연극 배우, 정치가, 교수 등 세상 사람들은 자기를 위해 밤잠을 줄여 가면서까지 땀 흘리는 수고와 희생을 감수하며 연습하지 않습니까.
생명의 가치관, 사랑의 가치관을 재인식해야 합니다. 일생 동안 살면서 자기의 것을 많이 쌓아 두는 것이 유익인 줄 알지만 그것은 하늘에 보물을 쌓는 것에 있어 마이너스(-)이고 영혼에게도 마이너스(-)입니다. 남을 위해 시간과 돈과 마음을 써 주고 무엇인가 소모하고 희생된 것만이 생명책에 기록될 영원한 가치이고, 영혼의 투자입니다. 우리가 주는 삶을 훈련하고 사랑을 연습하여 세상을 역전시키는 사랑의 혁명 개념을 낳아야 하겠습니다.
우리 생명의 필수품인 이 사랑을 주어야 내 영혼이 살아납니다. 내 영혼이 살찌고 자손에게도 유익함을 줍니다. 정신 위생상 병이 되는 것은 바로 이기주의 때문입니다. 진드기처럼 모든 사람을 자기의 수단으로 생각하여 긁어 모으기만 하고, ‘나를 위해서, 내가, 내가, 내가…’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는 것은 죽음에 이르는 병입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평안과 만족이 없고, 항상 불안하며, 경쟁과 긴장과 적개심과 공포가 있을 뿐입니다. 누구에게 총칼을 겨누고 완전 무장을 한 채로 다녀야 합니다. 아무 것도 소유한 것이 없는 거지와, 소유가 많아도 여전히 계속하여 부족함을 느끼는 두 종류의 거지가 있습니다. 후자에 속한 사람은 더 많은 사랑과 명성과 인기를 찾아 헤매며 다른 사람의 것마저도 빼앗아 자신의 사리사욕을 채우려 합니다.
사랑의 필요(need)라고 하는 것은 반드시 물질적인 것을 통하지 않더라도 옆에만 있어도 향기이고, 햇볕이고, 공기가 되는, 함께 걷기만 해도 위로와 기쁨이 될 수 있는 너무나 소중한 것들로 채울 수 있습니다. 아무 잘못된 것이 없어도 부딪히기만 하면, TV나 신문에 나타나기만 해도 기분이 나쁘고 피하고 싶은 사람이 있는 반면에, 그 얼굴을 보기만 해도 어딘지 모르게 가난해지고 겸허함을 느끼게 하는 성자 같은 사람이 있습니다.
C.C.C.전국대학생 여름수련회 후에 떠나는 거지 순례 전도를 통해 민족의 구석진 곳을 밟으며 복음을 전하는 예수로 충만한 사람들은 태양 광선을 안고 다니며, 맑은 공기 주머니를 달고 다니는 것처럼 그리스도의 향기와 영생과 평화와 기쁨을 가지고 다니므로, 어쩐지 불안하고 답답했던 마을의 분위기는 그들로 인하여 기쁨의 소문으로 가득찰 것입니다.
복의 근원인 사람들, 사랑의 농축도가 짙은 사람들, 이들이 만약 이 땅을 떠나가면 세상은 너무도 춥고 삭풍이 불어대는 겨울로 변해버리고 지옥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끊어지고 생명이 끊어진 곳이 바로 지옥입니다. 초막이나 궁궐이나 예수님 계신 곳이 천국입니다.
기회가 닿는 대로 거지 순례 전도여행을 꼭 해볼 수 있기를 권면합니다. 이렇게 사나 저렇게 사나 하루에 세 끼 이상 밥 먹고 사는 사람은 없습니다. 대개는 많이 먹어서 병이 납니다. 모든 사고와 행동을 중단하고 거룩한 거지가 되어 주님의 가난과 고난에 동참합시다. 민족의 가슴마다 그리스도를 심는 거지 순례 전도에 동참하여 시골 마을에서 얻어 먹는 보리밥은 그렇게 맛이 있고 감사할 수가 없습니다.
사랑을 연습해서 사랑을 나눠주는 사랑의 사도가 되어야 합니다. 그 사랑에는 반드시 예수님이 붙어 있고 구속과 성령이 붙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없으면 참 사랑이 아닙니다. 장삿 속이나 쇼를 통하여 영혼을 착취하면 정신적 주종 관계를 만들기 위해 베푸는 거짓 사랑입니다. 하나님이 중심에 없는 동기에서 나오는 사랑은 서로에게 상처를 입히고 죄가 될 뿐입니다. 아주 독하고 위험한, 감추어진 교만과 쇼와 거짓이 들어 있는 것입니다. 정말 순수한 것은 주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성자들은 죽을 때,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행하였던 그러한 일도 기억하지 않은 채 “주님! 잘한 것은 하나도 기억나지 않습니다.” 라고 말할 뿐입니다. 주님은 바로 이렇게 겸허하게 고백하는 이 머리 위에 면류관을 씌워 주십니다.
사랑의 실천자는 전도자입니다. 영원한 생명의 길로 인도하는 복음을 들고 사랑의 사도가 되어 이 나라 민족과 강산 위에 사랑을 편만하게 퍼뜨리는 사랑의 전염병, 사랑의 핵, 사랑의 밀알이 되어야겠습니다.
영원한 사랑은 완전한 사랑, 입체적인 사랑, 아가페 사랑, 주님의 사랑입니다. 한 손에는 사랑의 심장을 안고, 한 손에는 복음을 들고 세계의 외진 곳을 찾아가는 한국형 전도자, 사랑의 전달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사랑의 의술로 전도하는 의료봉사단
병든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문둥이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쫒아내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마 10:8)
광주교회 (한상윤 목사) 침술선교회는 매주 목요일이면 지역주민에게 침술을 펼쳐 잔잔한 사랑을 전한다.
선교회는 지난 91년 한상윤 목사 사모의 소개로 남기민 목사(영광제일교회)에게 침술을 배웠다. 선교회의 봉사인원은 모두 3명으로 작지만 효과적인 선교활동을 위해 침술을 선택한 것, 처음 침술 선교회는 미자립교회를 대상으로 봉사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배운 기술을 상업적으로 쓰지 않기로 결심하고 의료혜택을 받기 어려운 농어촌 지역으로만 가서 침술 및 노방전도를 실시했다.
침술선교회는 겨울이 되어 농한기 (2월경)가 찾아오면 봉사활동을 시작한다. 전국에서 직접 연락받은 농어촌 지역의 미자립교회와 사정이 어려운 개척교회를 순회하면서 2박3일 간 진료활동을 하는 것이다.
물론 선교비는 자체적으로 충당한다. 지금까지 강원도 차항, 도암, 용산교회와 부여의 가중교회 등에 정기적으로 의료봉사를 실시하여 교회가 지역사회에 필요한 존재로 자리매김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침술 선교회는 효과적인 사역과 농어촌 지역 선교의 활성화를 위해 네 가지 원칙을 세웠다. "침을 놓기 전에 항상 기도합니다.
상호간에 기술이 다르지만 간섭하지 않습니다. 교회 사정을 알기에 선교비를 절대 받지 않습니다. 교회에서 요청이 오면 기도 응답을 받고 선교지로 갑니다." 최승열 집사는 서로 간에 생각이 다르지만 모두 선교와 봉사만을 위해 헌신한다며 이런 원칙을 설명했다.
아버지 전도한 딸
아버지 구원위해 간절히 울면서 전도 그래도 안믿다. 어느날 교통사고로 죽었다.
그 딸의 일기를 보니 구구절절이 아버지 구원위해 기도한 내용이었습니다.
`주여 아버지의 영혼을 구원하는데 필요하시다면 저의 생명이라도 데려가 주십
시요` 그것 보고 아버지`오냐 네가 그렇게도 내가 구원받기를 원했다면 믿지` 하고
믿었다는 사실이다.
전도하고 있는가?
어떤 신자는 매일 일곱명을 만나 일곱장씩 전도지를 배부하며 살아가고 있다. 일곱은 완전 수이니 일곱장은 전해 야겠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일년이면 2,555명에게 전도지를 전해주는 것이다. 어떤이는 앉아 있는 이들에게만 전도지를 전한다. 앉아 있는 사람이 전도지를 읽을 가능성이 가장 많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또 어떤이는 진도하려고 결심한 사람들의 이름을 적어서 그것을 비닐코팅을 하여 성경책에 끼워두고 매일 기도할 때마다 열심히 그를 위하여 기도하고 있다. 그런데 평균 3년 내에 그 기도해준 사람이 꼭 신앙생활을 시작하더라는 것이다.
어떤 교회의 어린이부 선생님은 한 어린이를 전도하기 위하여 계속 그 어린이를 방문했다. 갈 때마다 그 어린이는 뒷문으로 뺑소니르 쳤다. 부모들도 가만있는 아이를 왜 꾀어내려 하느냐는 투였다. 그러나 그 선생님이 아무 말도 하지않고 명랑한 모습으로 열아홉 번째 찾아간 날, 그 부모가 나와 선생님 손을 잡고 선생님처럼 우리 아이에게 관심을 가진 사람은 처음입니다. 나도 열심히 노력해서 우리 아이가 다음 일요일에는 꼭 교회에 나가게 하겠습니다 하였다. 그 어린이는 다음 주일에 교회에 나와서 훌륭한 신앙인이 되었다.
당신은 전도하고 있는가? 전도를 위하여 기도하고 있는가?
.박천 강씨의 딸(신앙,본, 전도,고난)
박천의 강씨 집안에 딸만이 교회에 열심히 나갔다. 부친은 딸이 열심히 교회에 나가는 것이 몹시 못마땅했다. 그리하여 딸이 교회에 나가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온갖 수단을 썼다. 하루는 딸이 교회에 나가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토요일 저녁에 딸을 불러서 "내일은 목화밭에 나가 목화를 다 따도록 하라"고 했다. 딸은 주일을 지켜야겠는데 큰 일이 났다. 저녁에 궁리하고 궁리한 끝에 곧바로 밭에 나가 밤새도록 목화를 땄다. 요행 달빛이 발아서
목화를 따기에 좋았다. 무서운 생각이 들었으나 안식일을 지키기 위해 이토록 애쓰는데 하나님께서 지켜주시리라 믿고 열심히 목화를 땄다. 아무리 달빛이 밝다 해도 흰 목화는 잘 보였으나 가시는 잘 보이질 않아 이리 찔리고 저리 긁혀서 두 손은 온통 피가 흘렀다. 밤새 목화를 다 딴 딸이 아침 일찍 교회에 가려 하자 부친은 목화는 따지 않고 교회에 간다고 몹시 나무랐다.
딸은 밤새도록 딴 목화가 있는 곳으로 부친을 안내했다. 부친은 감탄했다. 더우기 그토록 아름답던 딸의 손이 온통 피투성이가 된 것을 보고 마음이 몹시 아팠다. 그 후로는 딸이 교회에 가는 것을 막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온 가정이 다 예수를 믿게 되었다.
주님의 명령(전도복음화)
인도에 가서 일한 선교사 가운데 유명한 와일더 박사라는 선교 사가 계셨읍니다.
한번은 인도에 미군 해병부대가 도착한 일이 있읍니다.
그래서 인도에서 일하고 있는 선교사님들과 해군 장 교 한 팀이 같이 식사를 나누게 되었읍니다.
그 중에 더러는 믿 지 않는 군인도 있었읍니다.
어떤 장교한 분이 여러가지 이야기 를 하다가 `아니, 선교사들이 여기까지 와서 일할 필요가 뭐가 있겠는가?
선교는 미국에서나 하면 되지, 이 인도인에게 기독교 가 필요가 뭐가 있겠는가?
선교는 미국에서나 하면 되지, 이 인 도인에게 기독교가 필요하겠는가`라고 말합니다.
이 소리를 들 은 와일더 선교사님 이 자리에서 일어나서 그 장교에게로 다가 갔읍니다.
그리고 정중하게 이런 질문을 던졌읍니다.
`장교님, 당신의 사령관이 오늘밤 당신에게 당신의 배를 가지고 당신의 소대를 이끌고 콘스탄티노플을 향해서 떠나라고 말하면 어떻게 하겠소?`
이 장교는 대답하기를 `명령이라면 가야죠`라고 했읍 니다.
`장교님, 내 인생의 사령관이신 예수께서 명하시기를 가 야 한다고 명하셨소. 나는 그래서 그 명령을 따라 이 자리에 와있소`라고 말합니다.
주님께서 당신과 저에게 이 명령 앞에서 당신의 대답은 무엇입니까?
시간은 우리를 기다려 주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명령 앞에 당신이 응답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당신의 변명은 무엇입니까?
판사님의 전도생활
60년대초의 일이다.
그 당시 서울 고등법원 원장으로 재직했던 김홍섭 판사댁을 내가 아는 분이 방문하고 돌아와서는 참으로 검소한 분이라고 극구 칭찬하면서 어느 성직자보다도 더 고결한 삶의 태도를 보고 왔다고 했다. 집에 들어서니 찢어지게 가난한 모습이 역력했는데 방에는 군데군데 장판이 때워져 있고, 그 부인이 들고 나온 커피잔도 금이 가 있을 정도였으며, 김 판사의 옷도 남루했고 양복 하나 제대로 된 것이 없어 짜집기로 기워 입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는 과거 수많은 정치적 사건 등 자유당 말기에 큰 세도를 부릴 수 있는 여건을 가졌었고 소위 0김창룡 중장 암살사건0같은 큰 사건 등을 다룬 심판관이기도 하였다. 또한 고등법원의 월급이 그리 작지도 않은데 문자 그대로 청백리 였다고
한다. 물론 구두조차도 가죽구두가 아닌 비닐구두를 신고 다녔는데, 그가 그렇게도
가난하게 산 이면에는 참으로 귀감이 될 만한 얘기가 있다.
그는 월급을 타기가 무섭게 우선 신앙서적과 성경을 구입할 돈과 교회 헌금을 떼어 놓고서야 집으로 월급을 가져왔으니 가난할 수밖에 ....
그뿐만 아니라 많은 불우한 사람들이 법정으로 범법자가 되어 오는 경우 꼭 도와야 될 사람은 경제적으로도 도와주었다고 한다. 또 그는 봉급날 떼어놓은 돈으로 각종 신앙서적을 구입하고서는 교도소의 죄수들을 찾아 다니면서 전도에 힘썼다고 한다. 얼마나 훌륭한 삶을 살았는가? 그러한 김 판사에게 감동받고 예수를 믿게 된 이들 중엔 0허태영 대령0도 포함되어 있었다고 한다.
그는 과연 법관으로서의 양심과 자비와 사랑과 정의감을 가지고 몸소 실천하면서 살아간 법조인의 귀감이자 신앙인의 모범이었다.
열려진 마음으로 전도
이미 세상을 떠났지만 스탠리 죤스 선교사가 젊은 나이에 인도에서 선교사업을 하게 되었다.그런데 아무리 열심히 복 음을 전해도 완악한 인도 사람들은 회개하지 않고 복음을 받 아 들이지 않았다. 스탤니 죤스는 너무 한심하기도 하고 사 기가 떨어져서 사과나무 밑에 쓰러져 누워 있었다. 그 때 나무 사이에서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 왔다. `스탠리 죤스,피 곤하지? 지쳤지?` `예, 하나님, 지쳤읍니다.` `왜 지쳤느냐?` `제가 아무리 복음을 전해도 저들이 예수를 영접하지 않습니 다. 저들에게 열매가 없읍니다.` 하나님께서는 조용히 말씀하 셨다. `이 사과나무를 보아라. 지금은 열매가 없는 것 같으나 뿌리가 땅에 묻히고 잎이 태양을 향해 열려져 있어 언젠가는 좋은 열매가 맺힐 것이다. 끝까지 포기하지말고 기도하자!
어린이 전도의 중요성
주님은 어린이를 축복하시고, 천국은 돌이켜 어린이같은 마음으로 단순하고 순수하게 받아들려야 된다고 말씀하셨다.
어린이는 무신론자가 없고 신앙의 씨앗을 심기에 비옥한 처녀지다. 어린이들의 마음은 어느 계층의 연령층보다 주님을 향해 열려 있으며 빈부귀천의 차이나 편견이나 기존 관념 이 없어 벌거벗고 잘 어울릴 수 있어 쉽게 교회로 인도될 수 있다. 토치카처럼 굳게 닫힌 도시의 부자집 문도 어린이들을 통해서 쉽게 열릴 수 있다. 교회가 장관, 부자보다, 어
린이의 영혼의 가치를 말 보다 마음으로 소중히 여기고 전도해야 하겠다.
어린이 전도 강습을 받은 한 국민학생이 교장선생님에게 중요한 일로 만나뵙기를 청하여 [사영리]라는 전도책자를 읽어주어 그가 예수를 믿고 교실마다 예수 부흥이 일어난 일도
있고, 한 대령이 어린딸의 전도로 예수를 믿고 전 연대에 크게 전도 운동이 일어난 일도 있었다. 교회마다 어린이 총동원 전도를 해야겠다.
스펄젼목사의 개인전도
스펄젼 목사가 한 번은 보우트를 타게 되었는데, 그는 노를 젓는 사공에게 가까이 다가가서 `당신은 내세에 어떤 소망을 가지고 있습니까?`하고 물었다.
사공은 `예, 저는 술마시지 않고 아픈 사람을 도와주고 있습니다`
라고 대답했다. 목사는 다시 물었다. `어떤 죄를 지은 적이 있습니까?` `죄를 많이 지었지만 다 잊어버려 지금은 기억해 낼 수가 없군요 ` 사공이 말했다.
스펄젼은 `예수 그리스도를 힘입지 않고는 죄사함을 받을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내세의 소망으로 영접하십시오`라고 했다. 사공은 너무나 정중한 스펄젼 전도에 이끌리어 그 뒤로 교회에 나가기로 약속을 했었다.
환자들이 건강한 자들을 전도
일제시대 부산 동래군 감안리 나병원 환자들은 보통 사람들과 격리되어 특별한 생활을 해야 한다.
바깥에서 생각하기에는 산 지옥 같고 병자 감옥같이 여겨지지만 막상 그 곳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은 변화산 같고 신학교처럼 경건한 곳에서 생활하는 것같이 은혜의 생활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매일 성경읽기와 기도로 하루를 보냈으며, 온 몸이 멀쩡하고도 주님을 알지 못하는 형제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그래서 이들은 매일 병원에서 주는 반찬값에서 1전씩 모아 1926년부터 1929년 9월까지 손양원 전도사를 파송하여 열심히 전도한 결과 밀양 수산과 산방어진에 교회를 건설하였다.
1928년부터는 손양원 전도사가 울산 남창리에서 전도하여 매주일 30명씩 그 곳에서 예배를 드렸다.
전도지를 버리지 마세요
한 선교사가 아시아의 힌두교 나라에서 어느 크리스천 여인과 담소하고 있었다. 그런데 한 절뚝발이 거지가 와서 동냥을 했다. 선교사는 동전과 함께 그들의 언어로 된 전도지를 주었다. "당시의 전도지를 그에게 허비하지 마세요." 그 여인은 말했다. "그는 결코 크리스천이 될 수 없어요." 그러나 이 선교사가 놀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3일 후에 이 절뚝발이 거지가 선교사의 집 앞에 나타났다. 그는 선교사가 사는 곳을 찾아낸 것이었다. 그리고 그 곳에 오기 위해 8마일을 걸어왔다. 이번엔 돈을 요구하지 않았다. 단지 다른
전도지를 원했다. 거지는 새로운 전도지를 받은 뒤, 그 집 문 앞에 몇 시간 앉아서 그것을 공부했다. 그는 다시 와서 말하기를, "성경책이라고 하는 것에 대해 적혀 있더군요. 저도 그 책을 좀 빌려 볼 수 있을까요?" 그 결과 한 달간의 교육을 받고 절뚝발이 거지는 세례를 받게 되었다. 그는 기독교 서점의 경비로 사무원으로 일하면서 틈틈이 책꽂이의 모든 책을 읽기 시작했다.
어떤 사람에게는 전도가 합당치 않은 것 같지만, 하나님께서 당신의 증거를 통해 무엇을 하실지 결코 알 수 없다. 그 분은 우리가 알 수 없는 놀라운 장소와 상황 가운데 그 분이 택한 사람을 가지고 계신다.
기도: 모든 일을 가능케 하시는 주님! 사도 바울처럼 일생의 전환기가 있었는가를
살펴봅니다. 강한 환상은 아닐지라도 주의 말씀이 나를 사로잡았던, 그래서 걷잡을 수 없는 회개의 눈물이 흘러나왔던 그때를 생각하며 주 사랑하는 마음 변치 않게 하소서.
열성적인 전도
전당포 주인이었다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후 새로운 생활을 하게 된 사람이 있었다.
이 사람은 신앙생활을 하게 된 후 주위 사람을 전도했는데 하루는 술에 취한 사람에게 그리스도를 영접할 것을 권면했다. 그때 술취한 사람이 빈정거리며 말했다.
"여보슈, 내가 정말 지옥과 천당이 있다는 걸 확신한다면 당신처럼 이렇게 소신 없게 전도하지는 않겠소. 나는 더 열성적으로 전도할 거요."
이 말에 충격을 받은 그 사람은 그 때부터 열렬하게 전도하며 구제활동을 폈다. 그가 1878년 구세군을 창설한 윌리엄 부드다.
전 폭력배 보스 전도사로 변신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그 얼굴의 도우심을 인하여 내가 오히려 찬송하리로다." (시편 42 : 5)
"어둠속에서 살아온 젊은날을 속죄하고 이웃에게 사랑과 복음을 전할때면 가슴이 벅찹니다" 수원시내 최대 조직폭력단체인 '남문파' 보스였던 허윤석(옛 이름 허벽)씨가 전도사로 변신, 제 2의 인생을 살고 있다.
지난 80년 삼청교육대에 끌려가기도 했던 허씨가 사회의 빛과 소금이 되기위해 신앙생활을 시작한 것은 94년 5월이다. 이름 앞에 언제나 붙어다니는 전과 10범이라는 꼬리를 떼고 허씨가 교회를 찾게 된데는 3년간 단 하루도 빠짐없이 철야기도를 계속해 주신 어머니의 간절한 사랑이 계기가 됐다.
"저를 위해 기도를 마치고 돌아오시다 교통사고를 당해 산소 호흡기로 연명하시 면서도 막 출소한 저의 두 손을 꼭 잡으며 '함께 주님에게 가자'는 마지막 말씀에 통한의 눈물을 흘리지 않을수 없었습니다.
이후 허씨는 ' 과거의 허벽이는 죽었다'고 다짐했고 다시 태어나는 의미로 이름도 바꾸고 수감중 어머니가 넣어준 성경책과 더불어 참 인생의 길을 걷고있다.
신앙 생활 4년째, 지난 1월 수원제일교회 집사가된 허씨는 한때 뒷골목에서 자신을 자신에게 칼을 들이댔던 폭력배들에게도 사랑을 전하며 새 삶을 인도하여 교회로부터 '전도 1등상을 받기도 했다.
초기선교사 지방 전도
감리교 선교사인 아펜셀라 목사는 배재학당에서 교육을 통하여 학원선교에 힘쓰면서 일반 전도의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그는 우선 자기와 접촉하는 가까운 사람들에게 그리고 방문객들을 대상으로 전도를 시도하였고 이수정과 로쓰목사가 번역한 복음서와 전도문서등을 제시하여 읽으라고 권고하였다. 드디어 1887년 6월 24일 성경의 진리를 학습한 배재학당의 한 학생이 세례받기를 지원하였다. 아펜셀라목사는 비밀히 자기집에서 그 학생에게 세례를 베풀었다. (The Gospel in All Lends for December 1887.P.525)
언더우드 목사는 1887년 봄, 황해도 솔내에서 상경한 서경도,최명오, 정공빈의 세 사람이 세례받기를 간청하므로 그들에게 세례를 주었는데 이 세례식이 진행되는 동안 육영공원의 교사 헐버트(Hubbert)는 대문에 지켜서서 일이 발각되지 않도록 망보았다는 이야기가 남아있다.
(L.H. Underwood, Underwood of Korea,P61)
1888의 언더우드 목사와 아펜셀라목사는 서울을 떠나 관서지방으로 평양으로 향해 여행을 떠났는데, 그 도중에 서울로 귀환하라는 긴급연락이 왔다. 천주교에서 정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명동에 성당 건축을 강행하고 있어 관민이 격분하여 그 보복 조치로 일체의 기독교 사업에 금지령을 내렸다는 내용이었다. 예루부터 왕궁을 내려다 보는 높은 장소
에나 왕궁보다 크게 짓는 집은 국법으로 건축이 금지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해 가을에는 이러한 사정이 약간 완화되어 아펜셀라목사는 혼자서 평양을 거쳐 의주에까지 방문하여 박상모와 송상하 두사람에게 세례를 베풀었다. 그뒤에 스크랜튼과 죤스(George H.Jones) 목사가 이곳을 방문하여 의주에서 또다른 세사람에게 세례를 베풀었다.
스트랜튼 의사는 원산까지의 전도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자신의 의료선 교정책에 관하여 의견을 제시하면서 다음과 같이 언급하였다. [ 진료와 전도를 겸한 의료전도대 (Medico-Evangelistic Trio)를 조직하여 시골 깊숙히까지 들어가는 것이 효과를 크게 발생하였다]라고 (Annual Rep-
ort of the Missionary Society of the Methodist Episcopal Church f-
or 1887,P.315)
언더우드 목사는 1889년 3월, 신혼여행이라는 명목으로 부인 릴리어스 홀튼(Lillias S,Horton) 과 함께 압록강 하류에 있는 의주와 강계 지방에까지 다녀왔다. 그때 언더우드 목사는 여행을 떠나기전에 정부로부터 유람 이외의 기독교 선교행위는 해서 안된다는 제재를 받았고, 또 미국 공사도 한국인을 상대한 종교 의식은 삼가라고 충고하였다.(L.H.Under- wood, Fibteen Yers Among Top-Knots,P 56) 그러나 그가 의주에 도착하 여 보는대로 세례를 받으려는 요청이 너무나 간절하여 이 요구를 도저히 물리칠 수 없었다. 그는 압록강 한가운데 배를 띠워 강물을 떠서 백홍준 조사의 사돈되는 김이련 진사를 비롯하여 사위되는 김관근과 33인에게 세례를 베풀었다. 4월 27일에 거행된 이 세례식이야말로 한국교회 사상 [한국의 요단강 세례]라는 말로 불리어 매우 유명하다.
1888년 미국 북장로회 선교회에서는 네사람의 한국인 전도자를 선정하여 선교사들의 전도사업을 돕게하였으며 백홍준은 관서지방을, 서상륜은 경기지방을 정공빈과 최명오는 해서지방을 각각 담임 관할케하였다.
그들은 한국 최초의 유급교역자가 된 셈이다.
1893년 관서지방의 전도구역은 교세가 많어졌으므로 양분하여 평안북도는 의주 전도사 김관근이가, 평안남도 일대는 평양전도사 한석진이가 담당하게 되었다.
북감리교 선교회에서도 1888년 두사람의 한국인 전도사를 임명하였다.
강재형은 지방 전도사업을 위하여 조한규는 교육사업을 위하여 배재학당에서 일하게 하였으며 1892년 강재형은 인천지방 전도사로 파견되어 인천교회 개척에 적지않은 공을 세웠다. 선교사들은 속히 한국인 교역자를 양성하여 한국민속으로 뿌리깊게 복음이 침투되기를 희망하였다.
남의 아들 기른 전도사 사랑
어느 전도사 사모 폐병3기였습니다. 좀 나아서 결혼을 하여 아들을 낳았으나 도저히 기를 수가 없어 친구 전도사에게 맡겼습니다. 그 전도사 사모가 잘 길렀습니다.
또 아들을 낳았는데 또 기럴수가 없어 맡겼습니다. 그런데 또 잘 길러 주었습니다.
특별한 사명(전도)
대학교를 졸업하는 어떤 젊은이가 구원받지 않은 자기 친구에게 복음을 전해야겠다는 마음의 짐을 느끼기 시작했읍니다. 그는 졸업하기 전까지는 그 친구에게 복음을 전하지 않았으며, 두 사람은 졸업한 후 공군장교가 되어 각기 다른 곳으로 배치를 받게 되었읍니다. 그 그리스도인은 자기 친구에 대한 관심을 계속 갖고 있었지만 그의 소재를 알 수 없었기 때문에 자기 친구인 톰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할 수 밖에
없었읍니다. 6개월 후에 그는 터어키로 배치를 받게 되었습니다. 어느날 그는 군사기지에 있는 상점의 계산대에서 자기 친구인 톰을 보게 되었읍니다! 두 사람은 상점 밖에서 재회의 기쁨을 나누었습니다. 톰의 부대는 수 천 마일이나 떨어진 미국에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그 당시 톰은 특별한 사명을 띠고 터어키에 와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얼마동안 대화를 나누었는데, 대화를 통해서 드러난 사실은 틈의 결혼생활이 파산할 지경에 이르렀다는 것과
이로 인해 고독을 느낀 톰이 행복을 갈구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톰은 그리스도인 친구에게 이렇게 말했읍니다. `너는 정말 행복하고 평안하게 보여. 나는 지금 그것을 바라고 있단 말이야.` 이 말은 그리스도인 친구로 하여금 간증과 복음을 나누게 만들었고, 드디어 톰은 주 예수님을 영접했읍니다. 이틀 후에 톰은 구원받은 사람으로서 터어키를 떠났읍니다. 톰의 특별한 사명은 누가 부여했을까요? 공군이었을까요, 하나님이었을까
요?
위대한 의료 전도사 탄생
윌프레드 그렌펠은 런던에서 의과 대학생이었을 1885년, 무디 목사의 권유로 `그리스도 제자훈련 '이라는 프로그램에 참여하였다.
교육과정을 다 마친 후, 그는 자신이 봉사해야 할 곳이 라브랑드르의 황폐한 해안가임을 깨달았고, 그 곳에서 의료전도사로서 열심히 일한 결과 이름이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그로부터 14년이 지난 후, 어느 날 그렌펠 박사는 보스턴에 있는 무디 목사를 방문하였다.
"무디 목사님, 정말 감사드립니다. 목사님이 아니셨다면 저는 아직도 예수 그리스도를 몰랐을 겁니다."
"그것도 벌써 14년 전의 일이군요. 그런데 그 동안 무슨 일을 하셨습니까?"
"무슨 일을 했느냐고요 ? 저는 단지 그 곳에 살면서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알 수 있게 되도록 그저 묵묵히 일만 했습니다."
"이렇게 된 일을 후회하나요 ?"
"천만에요. 후회하는 사람은 아마도 그리스도를 만났지만 만난 이후로 무슨 일을 했느냐는 질문을 받고 아무것도 한 것이 없어 고개를 떨구는 사람이겠죠
전국 선교사들의 전도여행
1891년 2월에 미국 북장로회 파송 선교사인 마펫(Samuel A.Moffett)목사는 동료인 게일 (James Gale)선교사와 함께 서울을 출발하여 평양과 의주를 거쳐 중국 만주의 중심지인 심양까지 여행하여 그곳에서 영국인 선교사 로쓰(John Ross)목사를 만났다.
마펫 선교사는 여행 목적에 관하여 [전도,한국어 연습, 지리 답사,주민에 관한 연구 및 의주와 만주지역에서의 선교사업 진행상황의 답사]에 있다고 말하였다. (S.A.Moffett, Evangelistic Tour in the North of Korea,1891,PP. 329-331)마펫과 로쓰목사는 상면하여 4일간 숙식을 함께 하면서 로쓰목사로부터 만주에 산재한 한국인들을 위한 선교사업
의 실정을 청취하였다. 마펫 게일 선교사는 심양을 떠나 동행하여 서간도 한인촌 기독교인 부락을 방문하였고, 이곳 동북국경에서 국내로 들어와 함흥을 거쳐 5월 중순에 서울로 귀환하였다.
전도여행을 끝낸 마펫목사의 회고담은 다음과 같다. [3개월 여행중에 우리들은 한국어를 사용하는데 적지않은 진보를 보았고 수천명 한국인을 만나 그들에게 복음의 씨를 뿌렸다. 외국인이라해서 푸대접을 받은 일이 없었고 복음전도에 반대를 받지도 아니하였다.]
(S.A Maffett,The Church at Home and Alroad for October,1891,P.331) 동부지역은 그후에 스왈렌 (W.L.Swallen)과 게일 그리고 맥길 (Willi-
am McGill)선교사 등이 답사하였고 1892년에는 감리교의 홀(William James Hall) 선교사가 평양을 찾아가 보았다.
그해 가을에 올링거 (F.Ohlinger)목사는 원산을 순방하였고, 미국 남장로회에서는 1892년부터 호남지역을 답사하였다. 1892년 크리스마스를 전후하여 레이놀드 (W.D Reynolds) 목사가 공주를 방문하였고 1893년에는 젼킨(W.B.Junkin)목사와 테이트(Mattie S.Tate)목사가 전주지방을찾 아가 전도하였으며 1894년에는 레이놀드와 드루(A.D.Drew) 의 두 목사가 전라도 전역에 걸친 전도여행을 수행하였다. 이리하여 1894년 청일 전쟁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한국 주재 선교사들은 전국 각지에 걸쳐 답사하는 큰 작업을 일단 완료하였다.
이 시기에 선교사들이 지방을 여행할 때에는 외무아문에서 발급하는 호조를 소지하였다. 이는 중앙정부에서 지방 관리에게 알리는 일종의 지시서와 같은 것으로 외국인 선교사에게 숙소와 환전 그리고 신변을 보호하는 편의를 제공하라는 내용의 문구가 기재되어 있었다. 이러한 조치가선 교사들의 전도여행을 위하여 적지않은 도움이 된 것은 사실이었으며, 그
럼에도 불구하고 위험에 대처하기 위하여 호신용으로 권총을 휴대하거나 (The Church at Home and Alroad for August, 1893,P 106) 한국 군인을 대동하기도 하였다. (J.S.Grale,Korean Sketches,P.19).이와같이 한국에서 프로테스탄트가 정부로부터 국가적인 비호를 받았다는 사실은 카토릭교회가 조선왕주 시대에 당한 국가적인 박해와 대조적인 모습이라 하겠다.
선교사들은 지방 주민들과의 통역을 위하여 한국어 교사와 길 안내인을 동행하였다. 여행장비는 복음서와 전도지외에도 통조림과 침구, 의약픔 그리고 여비로 사용될 돈등을 휴대하였다. 당시의 통화는 무겁고 부피가 있는 엽전이어서 이러한 것들을 운반하기 위하여 일꾼을 별도로 고용해 야하는 불편이 뒤따랐다.
그런고로 선교사의 지방 행차는 인마부대의 출동과 같은 진풍경이었다.
점심때 또는 저녁때에 행차가 멈춰지는 주막앞에는 양인들괴 기이한 행
려장비를 구경하기 위하여 동네의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선교사들은 이러한 기회를 놓치지 않고 촌락민들에게 복음서와 의약품을 나눠주면서 전도의 성과를 올렸다.
선교, 전도
공산주의 혁명의 레닌이 1917년 제정 러시아에 대한 혁명의 기치를 높이 들었을때 그 혁명의 지지자는 불과 4만명이었으나 그로부터 약80년이 지난 오늘날 10억의 공산주의자들이 세계 적화를 위하여 필사적인 권모와 술수를 다하는 것을 볼 때에 사탄의 감화를 받은 자들도 이러하거늘 예수께서 오셨다 가신지 약2,000년이 지난 오늘날 우리 기독교인은 10억도 복음화하지 못했다는 사실은 얼마나 가슴아파해야할 사실입니까?
선교, 전도1
빠카스박사는 임종시에 주치의사에게 내가 살 시간이 얼마 남았는지 말해달라고 하였읍니다. 의사의 말이 30분밖에 안 남았다고 하니까 나는 남은 30분을 세계의 구원을 얻지 못한 영혼을 위해 바치겠다고 하며 일어나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다가 운명하였습니다.
주객전도
주일학교에서 설교했던 한 소녀교사의 얼굴에 수심이 가득하였다. 아마 설교를 만족할 만하게 하지 못하여 학생들의 반응이 나빴던 까닭이려니 하고 위로할 생각으로 그 연유를 캐 물었다. 그랬더니 그 소녀의 대답은 뜻 밖의 것이었다. 단추하나가 떨어진 것을 모르고 그냥 설교를 마쳤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 소녀교사는 사뭇 눈물을 글썽이기까지 하면서 그 칠칠맞은 꼴을 모든 사람에게 보이고 말았으니 어쩌면 좋을 지 모르겠다고 상심하였다.
나는 그 소녀교사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으며 몸을 단정히 꾸미려는 그 마음은 귀엽고 기특하기 조차 하였다. 그러나 그 소녀교사의 관심이 설교에 모아진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집중된 것은 나무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오늘의 한국교회는 이 소녀선생님과 별로 다를 바가 없는것 같다.
1세기나 성장했으면 이제는 소내의 때는 벗어났음직도 한데 아직도 의연히 소녀적인 것이다. 교회의 번민과 초조는 비좁과 허술한 예배당과 낡은 장식 제음성을 발하지 못하는 풍금 따위에 있고 굉장한 군중을 모아들이지 못하는데 있는것 같다. 그리고 교회의 모든 관심은 웅장하게 솟아오르는 건물, 티크로 만든 가구품 광장을 꽉 채우는 군중에 기우러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 곳에서 전해지는 말씀이 잡답인지 사설인지에는 아랑곳 하 지 않으며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전파하느냐에 대하여도 착안하지도 않는
다. 오직 0 0 0 목사는 목회를 잘하여 근사한 예배당을 짓고 수 백명을 모아 들였다는 것이 자랑스러운 화제일 뿐이다. 그래서 외곽을 잘 꾸미지 못한
목사는 부끄러운 곳을 남에게 보이거나 한 듯이 초조해 하는 소녀처럼 번민
과 수심이 끝없이 많게 된다.
그러나 사실 교회사상 진정하고도 자랑스러운 교회는 토굴 속에 모였던
로마의 카타콤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하리라.
전도된 본말
범스테드(Bumstead)가 이발을 하고 있다.
이발사는 신나게 무슨 말을 지껄이고 있다.
주인공은 그 이야기를 귓전으로 흘려 보내는데, 한참 후 이발사가 묻는다.
세상이 이래서 잘못된 것입니다.
그렇찮아요 ?
범스테드의 의견을 물어 온 것이다.
입장이 곤란해진 범스테드다 당신의 이야기를 귀담아 듣지 않아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고 하자, 이발사는 잔뜩 화가 나서 말한다.
내 말을 듣지 않으려면 당신은 도대체 무엇 때문에 여기 앉아 있는 거요라고.
블론디(Blondie)라는 만화 이야기다.
본말이 전도된 인생살이의 한 단면을 꼬집은 익살이다....
어느 욕심 많은 목장 주인이 있다.
이 사람은 그 욕심이 자기 몸뚱이보다 커서, 자기 눈에 띄는 소는 모조리 자기 것으로 착각하는 습성을 지니고 있다.
보이는 소마다 무조건 데려와서 먹이고 관리해 왔는데, 어느 날 소의 참 주인들이 몰려와서 자기네 소를 찾아가 버리고 말았다.
이렇게 하여 목장에 가득 찬 소들이 사라지고 난 다음, 자기의 소를 찾아보니 단 한 마리도 있지 않았다.
남의 소에 정신이 팔려있는 동안 개밥에 도토리 신세가 된 그의 소들은
귀거래사(귀거래사)를 읊조리며 사라져 버린것이다.
비본질적인 것에 사로잡혀 본질적인 것을 잃은 인간상을 꼬집은 우화(우 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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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게 가장 귀한 것은 자기의 생명이다.
대부분의 인간들은 이렇게 중요한 자기의 생명은 전혀 돌보지 않고 마치 쓰레기와도 같이 무가치한 것들에 정신에 빼앗겨 있기 십상이다.
이런 삶을 어찌 헛된 삶이라 하지 않겠는가. 남의 눈을 속여서 수많은 재산을 모은 사람, 불의한 방법으로 권력을 장악한 사람, 권모술수를 동원하여 일시적으로 사회적인 명성을 획득한 사람이 있다.
이들은 자기네가 성공자라고 확신하고 있는데, 실은 자기의 참 생명을 잃어버린 사람이다........
전도
그리스도인에게는 날마다 일어나는 세 가지 기적이 있는데, 그것은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성경말씀은 거들 떠 보지도 않는 것,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전도할 생각은 전혀 하지 않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믿고 사랑한다고 자신 있게 말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우스운 이야기 같지만 현실입니다. 이는 전도에 대해서만 생각해 보아도 그렇습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에 대한 얘기는 밤을 새워서까지 하려고 합니다. 한 가지 예로, 멋있는 사람과 막 교제를 시작한 처녀를 보십시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자신과 교제하고 있는 사람에 대해 말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왜 예수님에 관해서 만큼은 입을 꼭 다물고 있는 걸까요?! 어떻게 그 놀랍고도 감격적인 복음을 혼자만 알고 있을 수 있을까요? 우리 모두 자문해 보아야 할 일입니다.
전도
언젠가 저는 백화점에서 친구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때 내 옆에 있던 어떤 여자가 굉장히 불안한 듯이 줄담배를 피우며 어찌할 줄 모르면서 서성대는 것을 보았습니다. 저는 그 여자가 걱정이 되어서 그녀에게 다가가 인사를 하면서 “예수님을 전해 드릴께요”하고 말을 걸었습니다. 그러자 그녀는 저에게 화를 내면서 말했습니다. “여보세요. 설교가 필요하면 당신에게 부탁하겠어요. 하지만 지금은 필요없어요.” 그래서 저는 속으로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오. 주님. 정말 주님께서는 제가 저 여인에게 예수님을 전하길 원하십니다. 제가 더 좋은 방법으로 전도하지 못한 것을 회개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아버지. 제가 그녀에게 심은 말씀의 씨앗을 보호해주셔서 꼭 열매를 맺도록 하여주옵소서...그런데 최근에 이 여인이 저를 찾아왔습니다. “목사님. 저를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얼마 전에 목사님께서 제게 전도하신 적이 있습니다. 저는 그때 화가 나서 목사님께 저에게 전도하지 말라고 쏘아 붙였지요. 그런데 얼마 후. 예수님을 믿는 친한 친구가 저에게 또 전도를 하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결국 저는 주님을 믿게 되었고 이제는 성령 세례까지 받게 되었습니다. 전에 목사님께서 저에게 처음 전도하셨던 것이 헛된 일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말씀드리고 싶어서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리고 주님 안에서 이웃을 섬긴 우리의 수고는 어떠한 것이든 하나도 헛되지 않는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전도
덴마크왕 크리스챤이 어느날 길 모퉁이에 서 있을 때 자동차 한대가 총알같이 질주해 오고 있는데 네 살쯤 되어보이는 어린 아이들이 불쑥 길을 건너고 있었다. 두 아이는 차가 질주해 오는 것을 보지 못했으므로 구경꾼들은 새파랗게 질려 외마디 소리를 질렀다.
어린 아이들이 차 바퀴 밑에 깔리는 듯 싶었으나 그 왕이신속히 달려 들어가 아이들을 두팔에 끌어 안고 무사히 나왔 다. 그후 두 소녀는 죽음 직전에 왕에 의하여 어떻게 구원 받았는지 수백번 즐겁게 되풀이 이야기했다. 우리의 강하신 왕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영원히 구원하고자 몸소 사망으로 돌진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기 위하여 최선의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전도 말못할 때
어떤 사람이 장사를 하고자 하였으나 자본이 없었다.
겨우 행상정도 시작하게 되었는데, 시작은 했으나 '물건 사라'는 말을 못하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다른 상인의 말을 따라서 '무얼 사시오'하면, 자기 상품을 내보이면서 '이것 두요' 하다가 다음엔 점차 자발적으로 소리 치면서 하였다고 한다.
신자가 전도의 말이 나오지 않는다고들 한다.
다른 전도인의 전도에 동참하여 해보면 점차 능숙해 질 것이다.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 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마28:18-20)
전도 방법
콘택트 렌즈를 분실했다.
힘쓰고 애쓰며 찾아보았으나 못 찾고 있었을 때 어머니가 와서 찾아냈다.
아이들은 물었다.
"어머니, 우리는 못 찾았는데, 어떻게 찾아 내셨습니까?"
"나는 너희들 같이 플라스틱이나, 유리조각 찾듯이 하지 않고, 수십 만원 짜리 보화를 찾듯이 하였기 때문이란다."
전도할 때, 한 생명을 찾아 구원할 때, 천하보다 귀한 것을 찾는 그러한 심정으로 하여야 할 것이다.
전염성을 가진 사람
영화 {황태자의 첫사랑} 중에서 이런 장면이 나옵니다.
황태자가 유학 중에 그의 신분을 모르는 한 친구가 질문했습니다.
"자네는 졸업후 무엇을 할건가 ?"
그때 황태자는 단호히 말했습니다.
"나는 단지 부친의 직업을 이어받을 것이네."
그렇습니다. 그는 자부심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친구는 그것을 알 수 없었습니다. 아주 우습게 생각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형제여 ! 우리는 황태자입니다. 온 세상의 주인 되시는 분의 자녀입니다. 이런 긍지를 갖고 그 다웁게 삽시다.
주님을 모르는 어떤 친구가 한 주일은 형제를 따라 다니게 하고 다른 한 주일은 세상사람을 따라다니게 했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는 여생동안 누구를 따르기로 결심할까요 ?
마땅히 하나님의 자녀는 그런 긍지와 기쁨, 행복, 소망, 사랑의 모습을 보여주며 살아야 합니다.
달세계에 발자욱을 남긴 한 우주 비행사는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전도자로 변신하였습니다.
나는 형제가 전염성을 가진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즉 예수 사랑의 전염성을 갖길 바랍니다. 형제의 학교, 그리고 형제의 가정은--바로 그런 시범을 보여 주기 위해 하나님이 보내신 곳입니다......
전도도 특권이다
전도폭발운동을 제일 먼저 시작한 제임스 케네디 목사님의 도전 가운데 하나는 이런 것입니다. 전쟁에서 어느 날 병사들이 서로 “우리가 왜 이 전쟁터에서 고생을 하는가. 장군들이나 전쟁터에 보내어 싸우고 우리는 편히 쉬자”면서 작당을 합니다. 이것이 있음직한 소리입니까? 이것은 말도 안되는 소리입니다. 그런데 케네디 목사님의 지적은. 이 말도 안되는 소리가 기독교 교회 역사 속에서 지금까지 통해왔다는 사실입니다. “전도를 왜 우리가 하는가? 월급 주고 목사 고용했는데 목사로 하여금 전도하게 하지.” 케네디 목사님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한 목사의 역할과 책임은 이것입니다. “목사는 운동선수가 되려고 해서는 안된다. 코치가 되어야한다. 유능한 코치는 나가서 직접 뛰는 사람이 아니라 사람들로 하여금 뛸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사람이다.” 목사 한 사람이 전도해야 얼마나 할 수가 있습니까. 이 세상에서 제일 전도할 수 없는 사람이 사실 목사입니다.
왜 그런 줄 아십니까. 저는 워싱턴에서 믿지 않는 사람을 한 사람도 모릅니다. 제가 알고 있는 사람은 워싱턴 제일 한인 침례교회 교인밖에는 없습니다. 누가 제일 전도를 잘 할 수가 있습니까? 전도 대상자를 제일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예수 믿은 지 오래된 분도 전도할 가능성이 없습니다. 아는 사람이란 믿는 사람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방금 예수 믿은 사람이 전도 대상자를 가장 많이 소유하고 있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그 사람 주변의 사람들은 거의 믿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그 사람이 만약 복음의 훈련을 받아서 전도의 영광과 그 능력을 알게 되면. 얼마나 많은 자기 주변 사람들을 주님 앞으로 인도할 수 있겠는지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이 전도의 책임, 특권, 영광이 얼마나 위대한 것입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얼마나 자주 이 전도의 특권은 잊혀지고 있습니까? 당신은 얼마나 전도하십니까?
전도를위한기도
제가 이번에 부산에서 열린 세미나에 참석했을 때의 일입니다. 식사시간에 여러 목사님과 함께 식사를 하면서 우연히 어느 목사님의 간증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 분은 고등학교 다닐 때 주님을 영접했는데. 그 집에는 가족이 11명이나 되었다고 합니다. 그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후 얼마나 마음이 뜨거웠는지 가족의 구원을 위해 날마다 눈물을 흘리며 기도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형님 내외는 끝내 반대하고 절에만 다녔습니다. 몇 년 후. 그는 굳은 결심을 하고 신년 초에 하나님 앞에 서원을 했다고 합니다. “하나님. 금년 한해 동안 우리 식구 10명이 전부 예수믿고 돌아오게 해 주세요. 그러면 제가 신학을 공부하고 주의 종이 되겠습니다”라는 서약기도를 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새벽기도회에 나가고 낮 12시만 되면 기도하고 밤에는 또 정해놓은 시간에 기도했다고 합니다. 그 결과 하나님께서 놀랍게 응답하셨습니다. 그 해가 다 가기 전에 가족 모두가 교회를 찾아나왔던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께 약속드린대로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가족의 구원을 위해 눈물과 땀으로써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구체적으로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그럴 때에 하나님의 역사는 일어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알고도 자기의 인격이나 삶이 변화되지 못한 사람은 힘있게 전도를 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사로잡혀서 진정으로 복음을 전할 기회를 찾는 사람에게는 아무리 완악한 사람의 마음문도 열리기 마련입니다.
전도의사표
번역 선교사 타우센트라는 분의 전기에 이런 일화가 있습니다. 타우센트가 남미에서 전도를 하면서 한 원주민 젊은이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빌레모라는 이름의 그 젊은이는 복음을 받아들여 그리스도인이 되었고. 뿐만 아니라 사명감을 느껴서 복음 전도자가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후 그는 전도자가 되어서 열심히 복음을 전하고 주님을 위해 힘껏 일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어느 날 갑자기 타우센트 선교사에게 와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선교사님. 전 사표를 내겠습니다. 여기 전도자 사표를 가지고 왔습니다.” 타우센트 선교사가 물었습니다. “왜 사표를 내려고 하는가.” “전도하기가 너무너무 힘들어서요. 저는 전도가 이렇게 어려운 건지 몰랐어요. 이제 사람들의 욕설과 고함 소리와 비난과 비웃음 등이 모든 것을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어요.” 빌레모를 바라보던 타우센트가 말했습니다. “빌레모군. 자네가 예수님을 영접하고 나서 얼마 후에 나에게 찾아와 .주님이 복음을 전하도록 저를 부르십니다.라고 이야기하지 않았는가.” “예.” “그렇다면 나는 자네의 사표를 받을 수가 없네. 그 사표를 받을 수 있는 분은 오직 주님뿐일세. 그러니 자네는 지금 내게 말한 그대로 주님께아뢰고 주님 앞에 사표를 내게나.” 주저하던 이 청년은 기어들어가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주님께 이야기하면 아무래도 안 받으실 것 같은데요.” 그러자 타운센트 선교사가 “주님께서 사표를 받으시지 않는다면. 그분은 아직도 자네를 사용하셔서 복음 전하기를 원하신다는 것이 아닌가.”라고 말하자. 빌레모는 눈빛이 빛나더니 곧 이렇게 대답했습니다.“아. 그렇군요. 맞습니다.” 그는 곧 일어나 기도하고. 성령 충만함 가운데 복음 전도의 길을 걸어갔다고 합니다.
7센트의 고민
빌 4:18-20; 고후 8:2-7; 막 12:41-44
사이러스 햄린이라는 열 살된 소년에 관한 이야기다.
어느 국경일을 맞아 어머니가 소년에게 용돈을 7센트를 주었다. 사이러스는 그 돈으로 빵과 사탕을 사먹으려고 하였다. 그 때 어머니가이렇게 말했다. "사이러스, 그 중에서 1센트나 2센트는 파러 아주머니 댁게 있는 선교 모금함에 넣는 것이 좋지 않겠니?"
사이러스는 파러 아주머니 댁으로 가면서 깊은 생각에 잠겼다. 골치아픈 문제였다.
`선교헌금으로 1센트를 넣어야 하나, 2센트를 넣어야 하나? 어머니가 딱 몇 센트를 넣으라고 정해 줬으면 좋았을텐데.' 한참 만에 사이러스는 2센트를 넣기로 결심했다. 그러자 이번엔 양심의 소리가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뭐라고? 배를 채우는 데는 5센트를 쓰고 영혼을 구원하는 일에는겨우 2센트를 내겠다고?'
그리하여 사이러스는 군것질에 4센트, 헌금에 3센트를 내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도 마음이 가볍질 않았다. 드디어 선교헌금함에 다다른 사이러스는 순간적으로 망설이게 되엇다. 얼마를 넣는 것이 옳은지를 결정하는 것이 어린 소년의 마음에는 커다란 점이었다. 사이러스는 눈을 딱 감고 용돈으로 받은 7센트 전부를 헌금함에 털어 넣었
다.
집으로 돌아온 사이러스는 허기로 지쳐 있었다. 어머니에게 자지가굶게 된 경위에 대해 말씀드리자 어머니는 접시에 빵과 우유를 가득담아사이러스에게 가져다 주었다. 어머니는 자랑스럽게 웃고 게셨고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내렸다.(Sunday School Tim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