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에게는 잊지 못할 손님이 있습니다. 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일찍 발을 내딛었지요. 스물두 살에 슈퍼마켓에서 계산원으로 일하게 되었습니다. 처음 하는 사회생활이라 여러 모로 힘든 일이 많았습니다. 계산대에 손님들이 줄을 서 계시면 마음이 초조해져서는 때때로 돈 계산을 틀리게 했어요.
또 돈이 모자라면 제 월급에서 채워 넣곤 했습니다. 일에 서툰 저를 질책하며 혼자서 많이 울고 꼭 이렇게까지 일을 해야 하나, 하는 생각에 당장 그만두고 싶다는 마음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눈물을 쏟고 나면 다시 용기를 냈지요. 여기서 포기하면 안 된다고요.
몇 달 전의 일입니다. 아침부터 손님이 많아 눈 코 뜰 새 없이 바쁜 날이었습니다. 한 손님이 오시더니 십만 원짜리 수표를 현금으로 교환해 달라고 하시더군요. 계산대에는 손님들이 줄 서서 기다리는 데다 다른 손님의 물건 값을 계산하던 중에 그런 부탁을 하시니 순간 짜증이 확 밀려왔습니다. 저는 온갖 안 좋은 표정을 지으며 마지못해 돈을 바꿔 드렸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그날 또 돈이 모자랐습니다. 결국 2만 5천이나 되는 돈을 물고서 수표를 현금으로 바꿔 달라던 손님 때문이라며 흉을 보았지요.
그런데 며칠 뒤 그 손님이 슈퍼에 다시 왔습니다. 슈퍼에 들어오자마자 제게 물었습니다.
“혹시 내게 현금으로 십만 원을 바꿔 준 날, 돈이 부족하지 않던가요? 그날 내가 들렀던 곳이 빵집과 슈퍼인데 돈이 2만 5천원 남더라고요. 빨리 돌려 줬어야 했지만 급히 부산으로 출장을 가야 해서 이제 왔어요. 늦게 와서 미안해요.”
그 순간 정말 부끄러웠습니다. 제가 더 죄송한데 손님이 늦게 와서 미안하다며 사과까지 하다니요. 저는 그분께 연신 고맙다는 말을 하면서 고개 숙여 인사 드렸습니다. 세상에는 이렇게 양심적인 손님도 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