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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자광록대부 참지정사 상장군 김공 부인 인씨 묘지명(金紫光祿大夫叅知政事上將軍金公夫人印氏墓誌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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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元義(김원의) 1147~1217 |
본관 해양(海陽). 시호 경간(景簡). 1170년(의종 24) 명종이 영립될 때 우중금(右中禁)으로 어가(御駕)를 수종한 공으로 대교(隊校)에 올랐다. 1174년(명종 4) 서경에서 일어난 조위총(趙位寵)의 난을 평정한 공으로 별장(別將)에 올랐다. 이어 우군병마녹사(右軍兵馬錄事)로 남도의 난을 토벌하고, 낭장(郞將)에 승진하였다. 1181년 운중도감세사(雲中道監稅使), 1188년 전라도안찰사를 역임하고, 1196년 장군으로 급사중(給事中)을 겸하고 대장군이 되었다. 1208년(희종 4) 수사공 ·좌복야 ·삼사판사(守司空左僕射三司判事)에 이르렀다. 1212년(강종 1) 예부판사, 이듬해 문하시랑평장사 ·병부판사(門下侍郞平章事兵部判事)가 되고, 1215년(고종 2) 치사하였다. 성품이 과욕(寡慾) ·공렴(公廉)하였다.
* 김원의公은 본관이 海陽으로 되어있으나 광산김씨의 먼조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광산김씨홈페이지에서는 김원의公의 부인이신 인씨부인의 본관을 연안으로 표기하고 있는데 부인의 본관은 연안이 아니라 교동이 맞다. 김원의公이 졸한 연도가 1217년이고 우리나라 연안인씨 의 시조라고 할 수 있는 연안부원군 인후公이 제국대장공주와 함께 고려에 귀화한 것이 1270년이니 김원의公과 인씨부인이 살아계실 당시에는 연안인씨는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 되기 때문이다. 참고로 연안인씨의 시조인 인후公께서는 제국대장공주를 모시고 고려에 귀화해서 당시 대장군이셨던 교동인문의 조상이신 인공수公의 성을 빌려 자신의 성을 印으로 삼았다고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