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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시 첫 여성 서기관 ‘김경이’ 국장‘ 여성’이기에 가일층 일에 매진한 ‘익산시 맏언니’
열린신문이 만난사람-익산시 첫 여성서기관 ‘김경이’ 주민생활지원국장
단아하고 포근한 외모를 지닌 김경이 익산시 주민생활지원국장(57). 조용조용한 말씨와 부드러운 미소는 금방이라도 상대방의 마음을 사로잡는 매력이 있다. 여성 공무원이 흔치 않던 시절, 공직사회에 첫발을 디딘 후 오롯이 ‘익산시민과 함께해 온’ 다정함이 움직임 하나하나에 고스란히 묻어난다. 그런 그가 마침내 익산시 공직사회에 새 역사를 썼다. 익산시 개청 이래 첫 여성 서기관이란 타이틀을 거머쥔 것. “서기관 승진이 뭐 대수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의 승진에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 익산시 전 공직사회를 통틀어 최초의 여성 서기관이기 때문이다.
역대 익산시 여성 공무원 중 가장 높은 직급에 오른 것이다. 그는 이제 희망복지지원과 등 본청 6개 과와 국민생활관, 시립도서관, 함열출장소 등 3개 사업소를 총괄하는 주민생활지원국의 첫 여성 수장이다. 그는 부드러움과 섬세함을 갖춘 데다 현장 적응능력과 정책 추진력이 뛰어나 행정전문가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바로 이런 경험과 실력을 높이 사 이 자리에 임명했다는 게 인사권자의 말이다. 그는 1976년 9급 공채로 익산시(옛 이리시)에서 공직 생활을 시작해 38년 동안 외길 인생을 걸었다. 당시 여성들은 공무원 시험 볼 기회가 적었다. 민원 창구 여직원이 그만두면 그때그때 임시방편으로 뽑는데 그쳤다. 낙타가 바늘구멍 들어가는 것만큼 힘든 시절에 당당히 공무원 시험에 도전할 수 있었던 용기는 순전히 대학에 진학하고픈 일념 때문.
이리여고를 졸업하고 대학에 진학하고 싶었지만, 어려운 가정형편에다 딸이라는 이유로 포기해야만 했다. 그래서 야간대학이라도 들어가 배움의 꿈을 이루고 싶어 택한 게 지금까지 공직자의 길을 걷고 있다. 공직에 몸담은 그는 방송통신대 가정학과에 입학해 2년 간 공부를 마치고, 행정학과(4년제)로 편입해 꿈에 그리던 학사모를 썼다. 내친김에 원광디지털대학교 한방건강학과와 사회복지학과를 복수전공, 올해 2월 2개 학과를 동시에 졸업하는 늦깍이 학구열을 불태우기도 했다.
공무원 생활도 공부만큼 재미있었다. 춥고 배고팠던 시절, 어려운 사람들에게 행정 서비스를 제공하고, 민원을 해결해주면 밥을 먹지 않아도 배가 불렀다. 집안일에 아이들(2남) 돌볼라 몸은 피곤했지만 보람찬 하루하루는 깃털처럼 가벼웠다. 2006년 공무원의 꽃인 ‘사무관’으로 승진한 그는 영등1동장을 시작으로 가정복지과장, 시립도서관장, 주민생활지원과장, 지식정보과장, 행정지원과장, 종합민원과장 등 본청의 주요보직을 두루 거쳤다. 그는 가는 곳 마다 커다란 ‘별’을 달았다. 어린이집 평가인증 우수기관 국무총리상, 익산시 사상 첫 우수도서관(마동도서관) 선정, 자치센터(영등1동) 최우수상 등 크고 작은 상을 익산시에 안겨주었다. 여성 공무원 최초로 인사계장과 행정지원과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그는 이 같은 보직을 두루 섭렵할 수 있었던 것은 능력보다 과대평가를 받았기 때문이라고 겸손해 한다. 하지만 이러한 생각이 그를 더욱 채찍질했다. 잘못할 경우 "여성이라 그래”라는 소릴 듣기 싫어 일에 매진했다. 행여 후배들에게 누가 되지나 않을까 하는 노파심에 업무에만 매달렸다. 공무원 생활 중 가장 행복했던 기억은 아마 2002년 자원봉사 전담부서를 만들어 근무할 때. 미국생활을 경험했던 조한용 시장에게 자원봉사를 활성화시키려면 전담부서를 조직해야 한다고 건의해 초대 자원봉사계장을 맡았고, 자원봉사센터와 함께 자원봉사를 범 시민운동으로 확산시켰다. 교통행정과 차량계 근무시절 일화는 지금도 후배들 입에서 회자될 정도로 유명하다. 당시 공업사 인허가 업무를 맡았던 그는 기계장치를 알아야 하는데 막막했다. 남자 직원에게 물어보자니 자존심이 상했다. 고심 끝에 기계장치 사진을 노트에 오려붙여 현장에서 확인 후 통과시켰다. 여성이라 적당히 넘어가도 될 줄 알았던 공업사 직원들이 혼쭐이 난 것은 명약관화하다.
그의 공직생활 철학은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화엄경의 핵심사상을 이루는 말로 ‘세상사 모든 일은 마음먹기에 달려있다’는 뜻이다. 공무원 후배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이기도 하다. 설사 힘이 들고 기피부서로 발령이 났어도 마음먹기에 따라 자기계발과 인정 받을 수 있는 기회의 장이 될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는 ‘제2,3의 김경이’가 나와야 익산시와 여성 공무원의 위상이 높아질 수 있다고 말한다. 뒤를 이을 후배로는 신차란 여성청소년과장, 전종순 문화관광과장, 유창숙 지식정보과장, 박귀자 여성친화담당관, 강태순 인화동장, 나덕진 용안면장(무순) 등을 꼽았다.
“남성과 여성의 경쟁이 마치 대결 구도 같았던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성별을 떠나 누구나 열심히 하면 능력을 인정받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후배 여성공무원들이 선의의 경쟁에서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맡은 바 업무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또 여성공무원들의 맏언니인 만큼 전폭적인 후원을 아끼지 않겠다는 약속도 전하고 싶네요.” 주말이면 사진을 찍으러 자주 시외로 나간다는 그는 요즘 통 카메라를 잡지 못했다. 업무 파악도 해야 하지만 밀려오는 책임감 때문에 하루도 맘 놓고 쉴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익산시 첫 여성 서기관이란 수식어가 무색하지 않도록 항상 최선을 다할 각오다. 그래야 똑똑하고 성실한 후배들이 중요한 업무를 맡아 책임 있게 일할 수 있는 풍토가 조성되리라 믿기 때문이다.
익산열린신문/조영곤 기자 (2014.2.27)
김경이 국장이 걸어 온 길
2001 자치행정국 총무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