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순봉에 올라 '두향'을 생각하다
퇴계와 두향의 사랑 이야기
예나 지금이나 남녀 사랑이야기는 마음을 설레게 한다. 특히 수백년 전 선비와 기생의 사랑이야기는 더욱 애틋하다. 조선시대 황진이와 서화담, 매창과 유희경, 두향과 퇴계, 그리고 현대에 들어와 자야와 백석 시인의 사랑 이야기 등은 시대를 넘어 아름답고 애절한 시(詩), 그 자체이다.
지난 5월 21일(토), 필자가 몸담고 있는 산악회 산우들과 함께 충북 옥순봉과 구담봉에 올랐다. 이들 봉우리는 2007년에 제비봉과 함께 올랐던 적이 있다. 참으로 오랜만이다. 충주호 주변에는 종종 왔었지만 옥순봉-구담봉 산행은 15년 만이다.
김홍도 옥순봉도, 1796년 병진년화첩 중. 보물 782호, 삼성미술관 리움 소장
산천은 여전히 의구하다. 충주호 호반에 우뚝 솟아있는 기암벽들, 누구든 이곳에 오르면 시인이 되고 묵객이 됨직하다. 단원 김홍도 역시 1796년 진경산수화로 '옥순봉도'를 남겼다.
'옥순봉'이라는 명칭은 퇴계 이황이 '단애를 이룬 석벽이 마치 비온 뒤 솟아나는 옥빛의 대나무순과 같다' 하여 지어준 이름이다.
발 아래 굽이굽이 출렁이는 충주호, 호반을 따라 단애를 이루고 있는 옥순봉과 구담봉 등은 한 폭의 그림이다.
최근에는 옥순봉 아래 ‘출렁다리’도 놓여져 아름다움을 더하고 있다.
충주호는 1985년 충주시 종민동과 동량면 사이의 계곡을 막아서 지어진 충주댐에 의해 만들어진 인공호수. 소양호에 이어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 담수량이 큰 호수이다. 충주댐 면적은 67.5㎢ 규모로 흔히 ‘육지 속의 바다’라고 불릴 만큼 크다.
옥순봉·구담봉은 특히 조선 명종 때 단양군수로 부임한 퇴계 이황(1501-1570)과 단양의 명기(名妓) 두향과의 사랑이이야기로 유명하기도 하다.
첫째부인, 둘째부인과 사별하고 슬픈 나날을 보내다 48세로 단양 군수로 오게 된 퇴계 선생은 현지에서 두향이라는 이름 난 기생을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된다.
퇴계는 뛰어난 미모에 거문고는 물론 시문에도 능한 두향을 가까이 하게 되었고, 신분의 차이를 뛰어 넘는 정신적인 교감을 나누게 된다.
두 사람은 아름다운 산수를 함께 거닐며 사랑을 익히고 시문으로 화답하곤 하였다. 퇴계는 두향과 함께 단양의 아름다운 산과 물을 ‘단양팔경’이라 이름짓고 노래했다. 단양 남쪽으로 흐르는 남한강 줄기를 따라 형성된 도담삼봉·단양석문·옥순봉·상선암·중선암·하선암·사인암·구담봉 등이 그곳이다.
퇴계 선생이 단양을 떠나 서로 만나지못하고 그리워하기만 하다 1570년 69세로 숨을 거두게 되자 두향은 소복차림으로 단양에서 머나 먼 안동 도산서원까지 사흘을 걸어서 찾아가 먼 발치에서나마 장례 모습을 보고 큰 절하며 고운 님과의 안녕을 고하였다.
그리고는 걸음걸음 눈물을 흘리며 단양 강선대, 퇴계선생과 함께 머물곤 하던 그곳으로 돌아와 식음을 전폐하고 아침저녁으로 상식을 떠놓고 안동 쪽을 향해 절을 하고 곡을 했다고 한다. 그러기를 몇날 며칠 그녀는 결국 퇴계가 써 준 ‘혹애일매(惑愛一梅)’ 서지(書紙)로 얼굴을 감싸고 검푸른 빛이 감도는 깊은 남한강에 투신, 먼저 간 퇴계의 뒤를 따랐다.
두향이 죽고 450여 년이 지난 후에도 두향의 퇴계를 향한 높은 절개를 기리는 이들이 있다. 단양에서는 매년 두향제를 올리며 두향과 퇴계와의 애틋한 사랑을 추념하고 그 붉었던 두향의 외로운 넋을 위로하고 있다고 한다. 장회나루에는 ‘퇴계 이황·두향의 사랑이야기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12개의 스토리석과 함께 퇴계 선생과 두향 모습을 새긴 조각상도 있다.(글,사진/임윤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