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낮 하루 밤 동안의 이탈 (선유도 기행)
산은 생각을 단련시켜주기에 이지적이고, 바다는 느낌을 키워주기에 정서적으로 보인다. 그래서 만약 선 수행자(禪 修行者)로써 아직은 모든 느낌들을 내려놓는 단계에 있다면 , 수행 터를 정할 때 바다가 바로 코앞에 보이는 장소만큼은 피할 법하다.
바닷가 사람들은 대체로 감각적이며 억세다는 말을 듣는 편인데--- , 느낌들이 바다를 통해 강화되었기 때문일까 ? 그리고 중학교 시절 옆 마을 순이가 오래 오래 내 기억에 남게 된 원인도 교회 중등부 여름철 수양회를 ‘격포’라는 바닷가로 갔기 때문이고 ?
선유도(仙遊島)가 있는 전북에 살다보니, ' 풍경이 빼어나다. ' 는 말과 더불어 , ' 함께 가보자 !' 는 제안을 여러 사람들에게서 받아 왔지만 군산에서도 뱃길로 1시간이 넘다 보니 , 항상 뒤로 물러서곤 했다.
게다가 섬 이름에 대한 거부감도 만만치 않았다. ‘신선이 노니는 섬’이라니 ! 이름이 크다보니 혹시 과장이 섞이지 안했나 의심을 품게 했다. 아울러 그 이름 때문에 지나친 기대감을 품고 찾았다가 허탈한 느낌이 아주 크다면, 투자된 시간과 비용을 아깝게 여길 성 싶었다. .
바로 1 주일 전 , 교회 친지들과 어울려 1박 2일 일정으로, 짝이 선유도에 갔다. 초저녁 무렵, ‘ 저녁 식사를 직접 마련하느라 불편은 없었는지 ?’ 묻는 전화가 그녀에게서 왔다.
‘ 그대가 없으니 매우 불편하다.’고 사실대로 말하면, 가정주부로써의 그녀 존재 가치를 확실히 인정하는 것이련만---. 그로 인해 아직 남은 그녀 여행이 불편해질 것만 같아 , 정반대로 대답했다.
뒤이어 선유도의 매력에 대한 이야기가 오래 계속된 것으로 미루어 보아 , 전반부는 그냥 인사 치레였고 후반부가 진짜 통화목적이었나 보다. 들뜬 기분에 그녀 목소리도 한 음정 올라가 있었지만, 내 반응은 그저 무덤덤한 편이었다.
그녀가 집에 돌아온 후 우리 대화 중 상당 부분을 선유도가 차지했다. 그리고 그 대화들은 ' 가까운 시일 내에 당신과 함께 꼭 다시 한 번 가보고 싶다. '는 그녀의 소원으로 끝을 맺곤 했다.
그녀를 강하게 자극한 것은 풍치의 아름다움일 수도 있지만, 그 보다는 젊은 남녀들이 자전거를 함께 타고 해변을 달리거나 , 도란도란 정담을 나누며 모래사장을 거니는 모습이었나 보다.
저녁노을이 예사로워 보이지 않는 그녀 나이엔 그만 시샘에 이를 정도의 부러움을 일으켰을 법하다 . 아무튼 그녀로 하여금 그 부러움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만드는 지름길은 가능한 빨리 함께 한번 다녀오는 것이었다.
지리산은 , 멀리서 바라보면 산맥들이 매우 높고 넓어 웅장한 매력이 있다. 그러나 산을 오르기 위해 그 속에 들어가면 풍경에 큰 변화가 적다보니 , 감정 표현이 절제된 남성을 떠올리게 된다. 반면에, 기암괴석들의 모습이 다양하게 펼쳐지는 설악산은 감정 변화가 잦은 여인네에 비유될 법하다.
모양이 각기 다른 여러 섬들이 주변에 있고 또 그 섬들의 괴암들 때문일까 ? 섬에 다가가는 뱃머리에서 보았을 때, 선유도의 첫 모습은 설악산의 바로 그 여성적인 느낌을 떠올리게 했다.
처녀, 총각 시절엔 사소한 것을 보아도 감동할 수 있을 정도로 여리기 마련이다. 그래서 웃음이나 그 밖의 다른 감정 표현들이 좀 헤퍼도 괜찮다. 해변에 나서자 짝은 ' 새 신이 불편해서---'라며 맨발로 걷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나이가 있어, 어떤 변명도 없이, 맨발로 걷기엔 좀 어색했나보다. 그런 짝을 보자 좀 더 젊은 시절에 이런 기회를 자주 마련해 주지 못한 것에 대해 매우 미안했다.
장자도로 방향을 잡고 해변을 따라 걷다가 우연히 아카시아 나무를 보았는데--- 5월에 피는 꽃들이 가을이 깊어가는 이 시기에 맺혀있었다 ! 계절 감각을 잃은 그 나무가, 젊은 것들 흉내 내어 손 목잡고 선유도에 온 우리 부부와 닮아 보여 색다른 친근감을 느끼게 했다.
해변을 향해 듬성듬성 서있는 소나무 가지들 사이로 보이는 바다 풍치 또한 일품이었다. 나는 왠지 모르게 그 파란 바다에서 이제 막 피어오르는 처녀의 청순함을 보는 듯 했다.
바로 그 바다로부터 바람에 실려 오는 내음이 어찌나 향기롭던지--- . 싱싱한 오이를 갓 썰었을 때 베어 나오는 바로 그 녹색(?) 향이었다. 오랜 갈증 끝에 , 오아시스의 물 냄새를 향해 코를 벌름거리는 사막의 낙타처럼, 나는 게걸스럽게 심호흡을 했다.
마음이 녹아내리자 물위에 떠 있는 갈매기들도 더 없이 아름다워 보였다. 우리 인간들이 잔디밭에 앉아 편안하게 시간을 보내듯 , 파도에 몸을 맡긴 채 휴식을 즐기는 그 갈매기들이 어찌나 한가로워 보이던지 ! 그동안 헉헉거렸던 생활의 거친 숨결도 덩달아 차분히 가라앉는 느낌이었다.
그 후미진 길에선 모든 느낌이 이렇게 새로웠다. 심지어 파도 소리도 그랬다. 모래사장에선 바람 소리가 뒤섞여 혼탁했었는데 , 산모퉁이가 바람을 막아주니 파도 소리마저도 새삼스레 맑게 들렸으니까.
어설프게 정든 사람이 있다면 이곳에 함께 와야 할 것 같다. 술에 취하고, 경치에 취하고, 정에 취하다 보면 그만 깊은 정으로 변할 것 같으니까 ---. 그리고 이 아름다운 자연에 대한 느낌에서 온전히 하나가된 한 순간의 공동 경험은 두 사람의 일생을 꽁꽁 하나로 묶는 강한 쇠사슬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저녁 식사를 마쳤을 때엔 초가을 어스름이 번지기 시작했다 . 여관방에 들어가 눕거나 텔레비전을 본다는 것이 너무 밋밋해서 어둠이 짙게 내릴 때까지 다른 쪽 해변 풍치도 감상하며 다시 걷기를 계속했다.
선유도 풍치 덕분에 오랜만에 걷기 운동을 제대로 그리고 즐겁게 해본 것 같았다. 그리고 몸이 피곤하자 낯선 잠자리에 들었어도 뒤척임 없이 곧장 잠이 들어 그 또한 좋았고---.
잠결에 들려오는 파도 소리에 잠이 깨었다가 또 바로 그 파도 소리에 졸음이 더해서 다시 잠들곤 했는데---, 이제 더 이상 잠이 오지 않을 것이라 생각되는 순간 시계를 보자 새벽 4시 반이었다.
‘ 동행이 있으면 가거나 오거나 멈출 때에 자유롭지 못하니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는 수타니파타 구절이 떠올라 깊이 잠이든 짝을 깨울까 말까 한동안 망설이다 조용히 빠져 나왔다.
이른 새벽의 짙은 어둠이란, 현실세계의 각박함으로부터의 가리개이자 망각이기에 어머니 품속과 같은 포근함이 있었다. 그 어둠에 묻힌 해변을 혼자 걷다보니 시선이 자꾸 과거로 향했다.
먼 과거도 현실로부터 훌쩍 벗어나 저 멀리 비껴 서있기에 , 때로는 새벽녘 어둠처럼 아련하고 포근해 보이기 마련이다. 그래서 현실 생활이 초라하거나 힘겨울수록 과거에 의지하는 경향이 있다. .
그 순간 ‘기억’이라 불리 우는 항구의 모래사장을 따라 주-욱 늘어서서 ' 과거'라는 밤바다를 향해 깜박이는 '의식'의 가로등 불빛이 서러움을 느끼게 할 정도로 맑고 맑기 마련이다.
내 일생 중 가장 유지시키고 싶었던 순간을 딱 떼어 내어 , 공간상으로는 선유도라는 곳에 올려놓고 상상해보니 , 만약에 내 짝 혹은 내 자신이 그 어느 다른 누구와 함께 처녀 총각 시절에 여기 선유도에 왔었더라면 , 부부로 만나는 우리의 인연은 불가능했을지도 모르겠다.
선유도에선 과거가 만들어진다면, 그 과거에 대한 집착이 너무 강해질 것 같다. 그렇다면--- 젊은이들은 그 곳에 가면 안 된다. 특히 남자와 여자가 함께 가면 안 된다. 백년을 같이 살지 못하면 그 아픈 기억이 평생 남을 터이고 , 그러면 너무 오랜 세월 동안 큰 부담이 될 터이니까 . 이미 선유도에 온 젊은이들은 ? 멋모르고 정말 잘못 온 것이다 !
그동안 생각을 비워 오는 공부만 해온 반작용일까 ? 눈에 보이는 선유도의 아름다움을 가슴에 가득 채운 다음, 결코 잊지 않으려는 집착으로 키우고 싶은 의지가 작용하는 것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