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달 전 협곡에 휘몰아치던 강풍도 빗줄기도 다 어디로 가버리고 백운대 뒷 등성이에는 어느사이잔잔한 가을 빛깔이 자리를 잡았습니다.
아직 불타는 단풍은 아니지만 이곳 저곳 곱게 물들어가고 있는 오솔길에 잔잔한 바람은 불어 주고 백운대,인수봉,만경대 세 봉우리의 암릉마다 사람이 열매처럼 다닥다닥 많이도 열렸는데 호랑이굴을 기어서 통과할 재주가 없는 鈍足에 암벽의 바윗줄을 타고 백운대에 오를 勇氣마저 없으니 어디 사람 축에 낄 수 있겠습니까.
두번 째 오르는 밤골에서 숨은벽 오르는 코스가 어느정도 눈에 익은 것 같은데 사기막골에서 오르는 길과 만나는 지점의 넓은 바위터에서 원효봉에서 백운대까지 뻗어가는 능선이 만들어내는 협곡의 경치를 즐기는 기분이 꽤 괜찮습니다.
협곡 건너편에 이미 단풍이 완연히 물들기 시작하였으니 그야말로 무심한 세월인데 단풍에 지는 산의 이모습,저모습을 세월아 네월아 하며 바라보고 숨은벽 그 경사진 바위를 맨손으로 오르는 산꾼을 조마조마하게 바라보기도 하고 도저히 바위 타는 흉내는 낼 수 없으니 계곡으로 내려가 호랑이 샘물 한 모금 마시고 호랑이굴로 올라갑니다.
바위의 차진 감촉을 따뜻하게 느낄 줄 알아야 한다나 뭐라나.
호랑이굴을 신프로가 탐색하고 와서 기어서 통과한 후에 밧줄만 타면 바로 백운대로 연결되는 것 같다하나 모두들 모험은 하기 싫은 눈치이고 더구나 호랑이굴은 배 나온 사람이 통과하기가 상당히 거북하다하니 허허 그것참 하며 그저 입맛만 다실 뿐입니다.
나중에 백운대에서 확인해 보니 암벽을 몇미터 걸어 올라가는데 겁만 먹지 않는다면 가능한 길인 것 같습니다.물론 네발로 기는 것이 양반 체통에 문제가 된다면 그 것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인수봉 암벽,만경대 릿지,염초봉 릿지에도 사람이 제법 많이 붙어 있는 것을 보면 부끄럽기도 한데 오늘 구파발에서 우연히 만나 동행한 고교 동기 徐모도 바위 타는 것은 극력 반대합니다.
조금 심문을 해 본 결과 역시 南모와 같은 충청도 출신이라하니 어디가서 띨띨하다는 소리는 안 듣더라도 똑똑하다는 이야기는 듣기 힘 들 것 같은데 설악산 無泊 산행등 요즈음 등산에 한창 재미를 붙여나가는 눈치입니다.
위문 옆을 지나 백운대에 오르니 올해들어 네번 째 오르는 것인데 가스 때문에 전망이 좋지 못하고 멀리 보이는 산자락들이 검은 매연층에 잠겨있으니 감흥이 떨어질 수 밖에 없고 헤쳐나가야하는 현실인 양 암울하기까지 합니다.
용문산쪽 백운봉은 보여야 하는 건데 안천 앞바다는 커녕 팔당댐도 볼 수 없습니다.
대동문쪽으로 하산하려다 비가 내릴 조짐이 농후해지는지라 대피소에서 중성문쪽으로 처음 하산길을 잡았는데 계곡의 물이 많고 길도 꽤 좋아 삼각산 오솔길 중에는 제일 평탄한 곳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시간은 오후 세시반이지만 사위는 어둑어둑해 오후 7시가 훨씬 지난 것 같은데 아니나 다를까 털보네 막걸리집에서 한 잔 기울이려니 제법 쏟아지기 시작하는데 솥뚜겅에 두부를 지져 내고 신김치를 곁들여 안주를 삼습니다.
권커니 잣커니 흘러간 시대,흘러가는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로 술 맛을 더해 가는데 徐모의 무박 산행 이야기를 들으니 南모가 반성해야 할 점이 산악회를 좇아 산을 오르면 체력 훈련도 되고 시간내에 꼭 무엇을 해내겠다는 정신력도 좋아지고 무엇보다도 비용도 대폭 줄일 수 있는 것 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남도 산행 경비도 대폭 줄여보겠습니다.
10.12(토) 산행은 당초 운길산-적갑산-예봉산 산행을 예정하였으나 신프로의 불참 관계로 관악산으로 하되 아침 09:30에 사당역에서 만나 삼성산이나 안양까지 제법 멀리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내장산 아홉 봉우리 일주 산행은 10.18(금)23:40발 기차를 타고 갔다가 10.19(토) 19:04분 서울 도착 예정입니다.
본격적인 무박 산행의 전초전을 하는 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