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슬로우 가정이 행복하다.
창 35장 1~5절
할렐루야! 저를 따라 해 보시기 바랍니다.
"나는 행복합니다." "나는 건강합니다." "나는 잘되는 사람입니다."
옆사람과 인사하시겠습니다. "교회에 잘 나오셨습니다."
공사장으로 큰 차가 들어온다며, 교회차를 이동주차 해 달라고
교회로 올라오신 분이 문 앞에 서서 "계세요"라고 물었습니다.
저는 그 때 목양실에서 말씀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바로 일어날 수 없어서 "예"라고 먼저 대답했습니다.
그런데 그 분이 하필이면 제가 "예"라고 대답 할 때에
또 "계세요"라고 큰 소리로 외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제가 "예"라고 대답하는 소리를 듣지 못한 것입니다.
그분의 성격이 급한가 보구나 싶어서 한 템포 쉬고
다시 제가 "예"라고 대답을 했는데
하필 그 때 또 "계세요"라고 그러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식으로 해서 다섯 번 정도 물었는데
그 분은 자기가 말하는 소리 때문에 "예"라는 말을 듣지 못해 놓고도
대답하지 않는다고 뒤에 가서는 신경질적으로 부르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던 일을 멈추고 급히 뛰어나가 보았더니
그 큰 차가 이미 교회차를 다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내가 말을 했으면, 남이 대답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하는데
그 대답하는 말조차 듣지 못하는 그 사람은
어떻게 보면, 우리 주변의 살아가는 모습을 잘 둘러보지 못하고
자기만 바쁘게 정신없이 살아가는
현대인의 모습을 닮은 것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너무 바쁩니다.
우리 한국인은 무엇이든지 "빨리 빨리" 해야 하는 습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외국에 나가면 가장 먼저 배우는 말이
"안녕하세요" 라는 말이고, 다음으로는 "빨리" "빨리"라고 합니다.
요즘 1회용품의 산업은 너무나도 발전을 하였습니다.
정부에서 오히려 규제를 해야 할 정도로 발전을 했는데
그것은 바로 현대인의 바쁜 생활 때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여성들이 아침에 화장하는 것은 큰일과입니다.
여성들이 화장하는 것은 그 나름대로 즐거움이 있지만
바쁜 여성에게는 그것같이 번거로운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다기능성 화장품이 큰 인기라고 합니다.
얼굴을 하얗고 예쁘게 해 줄 뿐만 아니라
주름살도 제거해 주고, 자외선도 차단 해주는
한꺼번에 여러 기능을 해결해 줄 수 있는 화장품이 큰 인기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그만큼 바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바쁘면 더 빠른 성과를 올릴 수 있지만
주변을 세심하게 돌아볼 여유가 없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우리가 자동차를 운전할 때에
시속 100킬로 이상으로 달리면 주변의 것을 둘러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30킬로 정도로 천천히 달리면 주변의 것을 더 많이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빨리 달리면 목적지에 더 빨리 갈 수 있지만
주변의 것을 보지 못하는 단점이 있습니다.
우리가 너무 바쁘게 살다 보면 자연적으로 등한히 되는 것은 가족들입니다.
가족들을 세심하게 돌봐 줄 여유가 없습니다.
부모님이 어떻게 지내시는지
어떤 고민을 가지고 있는지 돌아볼 여유가 없습니다.
배우자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어떤 것에 재미가 있는지, 그것에 맞추어 살 기회가 없습니다.
자녀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청소년들도 얼마나 힘든 시간을 보내는지 모릅니다.
요즘 청소년들이 하는 공부는 옛날과는 너무 다릅니다.
공부에 대한 압박감에 시달리고 있을 때
우리는 얼마나 그 문제를 갖고 자녀들과 대화를 하고 있습니까?
공부가 안되면 과외를 붙이고, 학원을 보내고
배고프다면 시켜 먹게 하고
그러면서 돈으로 쉽게 해결해 버리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렇게 하면서, 모든 욕구를 충족시켜 주었을 때에
더 행복할 수 있으면 좋은데,
과연 그렇게 했을 때에 행복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분명한 것을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행복은 빠른 것과 상관이 없습니다.
행복은 물질로 충분히 채워주는 것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행복은 우리의 따뜻한 마음과 따뜻한 사랑이 채워져야 합니다.
그런데 너무 바쁘게 살다보면, 그렇게 할 여유가 없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래서 행복은 느림이라 할 수 있습니다.
"빠름이 행복이 아니라, 느림이 행복이다."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요즘에 전라남도 완도 밑에 있는 청산도가 참으로 인기입니다.
이 섬은 2천여명의 사람들이 사는 작은 섬입니다.
그런데 이 섬은 주민들의 3배 이상의 관광객들이 몰려들어 북적이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얼마 전에 국제슬로우시티로부터
세계슬로길 제1호로 선정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 섬은 아무튼 천천히 걷는 것이 중요합니다.
총 100리길로 되어 있는 이 섬을 1박 2일 동안 천천히 걷는 것입니다.
천천히 걸으면서 그 지역의 음식 문화도 체험하고
천혜의 자연경관도 구경하고,
그러면서 천천히 걸으면서 행복을 찾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너무나 인기가 있어서
청산도를 찾는 사람들이 더 많아지고 있다고 합니다.
이것은 꼭 예수님의 전도 방법과 비슷한 방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전도 방법도 슬로우 전도 방법입니다.
마태복음 10장에 보면, 2명씩 짝을 지어서 전도하라고 파송을 했습니다.
한 영혼을 구원하는 것은 급한 일이지만
전도하는 방법에서는 천천히 하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전도하러 갈 때에 돈을 가지고 가지 말라 했습니다.
또한 두 벌 옷도 챙기고 다니지 말라 했고
지팡이나 여유분의 신발도 가지고 다니지 말라 했습니다.
그냥 맨몸으로 다니라 했습니다.
그러면서 필요한 것마다 전도하는 집에 가서 공급을 받으라 하는 것입니다.
왜 그렇게 하라 했을까요? 슬로우 전도를 하라는 것입니다.
전도를 많이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한 가정 한 가정을 들어가 그들을 깊이 만나라는 것입니다.
그들이 무엇을 먹고 있고, 그들이 어떻게 살고 있고
그들이 어떻게 힘들고 어려운 점이 있는지 깊이 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슬로우 전도입니다.
슬로우 전도를 통해서 죽어가는 한 영혼 영혼을 구원하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가정과 삶의 행복을 위해서
슬로우 (천천히)의 삶의 패턴을 찾는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저는 처음에는 저의 집사람과 함께
쇼핑을 하거나 서울 나들이를 하면 항상 불만인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너무 천천히 한다는 것입니다.
쇼핑을 가면, 국어책 더듬 더듬 읽듯이 모든 상품을 다 들여다 봅니다.
그러면 옆에서 기다리는 저는 얼마나 답답하고 심심한지 모릅니다.
또한 서울에 나들이를 가면
저는 일을 빨리 보고 집으로 왔으면 좋겠는데
저의 집사람은 또 천천히 걸으면서 따라옵니다.
그러면 저는 답답해서 저만치 빨리 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천천히 오고 있다는 것에 불만이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
씩씩 거리면서 집사람을 바라보기도 합니다.
때로는 엉뚱한 방향으로 가서 기다리고 있다가
집사람이 따라오면 제대로 따라 오라고 핀잔을 주기도 합니다.
그래도 따라올 것은 다 따라옵니다. 그러나 천천히 걷는 것은 여전합니다.
그래서 제가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왜 저렇게 천천히 걷는 거야?
저는 처음에는 저에게 불만이 있어서 그런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것 때문에 더 화가 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뒤에 알고 보니까 저에게 불만이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저의 집사람은 천천히 걸으면서
주변의 것들을 다 구경하며 걷는 즐거움을 갖는 사람이었습니다.
옛날과는 어떻게 변했는지, 색상은 어떤 것인지,
사람들이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어떤 현수막이 걸려 있는지,
어떤 물건들을 팔고 있는지 -
그것들을 자세히 구경하는 즐거움을 갖고 걷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가만히 생각해 보니 빨리 걷는 것보다
천천히 걷는 것이 더 가치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쇼핑을 해도 마음껏 쇼핑을 할 수 있도록
여유있게 기다려 주려고 합니다.
또한 서울과 같은 곳에 나들이를 하면
이젠 집사람과 똑같이 걸어가면서 구경하는 즐거움으로 살고자 합니다.
그리고 실제적으로 그렇게 해 보니까 더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 가정도 슬로우 가정이 될 필요가 있습니다.
사업을 한다고, 직장을 다닌다고
우리 가정을 세심하게 들여다 보지 못한 것이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슬로우 가정으로 좀 바꾸어서
우리 가족들을 세심하게 돌봐줄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야곱의 가정을 볼 수 있습니다.
야곱은 너무나 바쁘고, 너무나 정신이 없이 살았습니다.
아무 것도 없이 빈주먹으로 시작해서 고대 근동의 엄청난 거부가 되었지만
그의 가정은 이상하게 변해가고 있었습니다.
야곱은 욕심이 좀 많은 사람이지 않습니까?
형 에서가 받을 축복을 자신이 가로챈 다음에
삼촌 라반의 집으로 도망하고, 그곳에서 20여년간 살았습니다.
그곳에 결혼도 하고 자녀도 낳고 다복한 가정을 이루었지만
삼촌 라반의 거짓말로 재산을 하나도 모으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극적인 축복으로 부자가 되어서
그곳에서 도망 나와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형 에서와의 관계가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에
고향으로 돌아온다는 것이 쉽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많은 고민을 했고 기도도 많이 있습니다.
그럴 때에 하나님께서 그에게 극적으로 화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셔서
고향으로 돌아와 처음에는 숙곳에서 정착해 살았습니다.
그리고 다음에는 세겜 성읍 앞에 있는 땅을 사고 그곳에 정착하면서 살았습니다.
자기 땅을 살 때까지 야곱은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습니다.
고생도 많이 했고, 수고도 많이 했습니다.
그는 어떻게 보면, 빈손으로 시작해서
자기 땅을 가질 만큼 자수성가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가정은 변해가고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디나라고 하는 딸 하나가 있었는데
그 딸이 세겜 성의 추장 아들과 어울려 지내다가
그만 그로부터 강간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세겜 추장의 아들이 야곱의 딸 디나를 사랑했기 때문에
강간을 빌미로 결혼을 신청했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야곱의 딸 디나와 세겜 추장의 아들이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야곱의 아들들이 결혼은 시켜주지만
그냥은 안된다며 할례를 받으라 했습니다.
그래서 세겜성의 모든 남성들이 할례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디나의 친 오빠가 되는 시므온과 레위가
그 성에 들어가 모든 남성을 학살해 버린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야곱의 자녀들이 엄청난 일을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그의 딸은 강간을 당했고
그의 아들은 세겜 성의 남성들을 학살했습니다.
어마어마한 죄를 자녀들이 지은 것입니다.
야곱은 자녀들이 이렇게까지 할지를 전혀 몰랐습니다.
그의 딸을 강간을 당할 만큼 가나안 문화에 푹 빠져 있는 줄을 몰랐고
그의 아들들이 세겜성의 남성들을 학살할 만큼 잔인해 진 줄을 몰랐습니다.
그는 오직 성공만을 위해서 인생을 달려왔습니다.
그는 자신이 성공하면
가족들의 문제도 자연히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했을지 모릅니다.
그런데 이제 살만하니까 자녀들이 엄청난 사고를 친 것입니다.
우리도 이따금씩 이런 경우를 경험할 때가 있지 않습니까?
살만하니까 더 이상 바꿀 수 없는 가정이 될 때가 있습니다.
이제 가족을 돌아볼 수 있는 때가 되었는데
돌아선 가족의 마음이 더 이상 돌이켜지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야곱이 지금 그런 상황에 빠진 것입니다.
그래서 야곱이 고민을 합니다.
이것을 어떻게 할 것인가 많은 고민을 하다가
그곳을 떠나 벧엘로 가기로 결정을 합니다.
왜 벧엘로 가게 되느냐 하면, 그가 가장 힘들 때에
하나님을 만난 곳이었기 때문입니다.
3절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자. 내 환난 날에 내게 응답하시며
내가 가는 길에서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께
내가 거기서 제단을 쌓으려 하노라 하매"
벧엘은 야곱이 가장 어려움을 받았을 때
하나님께서 도와주었던 곳입니다.
야곱은 평생 그 벧엘을 잊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자기의 가정이 완전히 무너질 위기에 빠져 있을 때에
다시 벧엘을 생각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곳으로 올라가기로 결심을 합니다.
자신뿐만 아니라 모든 가족을 데리고 가기로 합니다.
문제를 일으킨 딸도 데리고 가고
난폭한 살인자가 되었던 아들들도 데리고 가기로 합니다.
그는 그곳에 가서 무엇보다 제단을 쌓겠다고 합니다.
다시말해서 하나님을 예배하겠다고 합니다.
그동안 너무 바쁘게 살다 보니
자녀들을 신앙으로 키우지 못했습니다.
너무 세상적으로만 키운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가정을 신앙적으로 다시 세우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녀들로 만들겠다는 것입니다.
다시말해서 가정의 패턴을 슬로우 가정을 바꾸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예배하고, 주일성수 철저히 하면서
가족들을 신앙적으로 더 돌아보는 슬로우 가정으로 만들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슬로우 가정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주일날 가족들과 함께 예배할 수 없을 만큼 바쁘게 살아서는 안됩니다.
주일 성수를 철저히 하면서
부모님이 어떻게 잘 지내시는지 돌아보면서 살아야 합니다.
요즘 노인들 5명 중에 한 분 꼴로 자살을 한다고 합니다.
그 자살을 하시는 분이 우리 부모님이 되실 수 있습니다.
왜 자살을 하겠습니까? 노년의 삶이 너무 고통스럽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부모님들이 외롭지 않도록 친구분도 챙겨드리고
용돈도 부족하지 않도록 챙겨드리고
건강하게 사실 수 있도록 건강을 챙겨 드릴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영적으로 평안할 수 있도록 많은 기도를 해드려야 합니다.
우리는 배우자도 잘 돌봐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마음 고생하지 않고, 너무 외로워 고통받지 않도록
인생을 즐겁고 행복하고 보람이 있으며 신앙적으로 살 수 있도록
배우자에게 철저히 맞추어 살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또한 자녀들이 알아서 하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 아니라
늘 함께 해주는 부모로 살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힘들고 어려운 일은 그 자신이 해결할 수 있도록 하되
그 어려움과 시련 속에서도 굳굳하게 일어설 수 있도록
기도로 도와주고, 격려와 칭찬으로 힘을 주고
사랑으로 외롭지 않게 해 주며,
항상 자녀들과 대화하는 것을 잃어버려서는 안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제 삶의 속도를 줄여야 합니다.
너무 세상적으로 과속하는 것 줄여야 합니다.
이제는 슬로우 가정을 만들어
가족들을 깊이 들여다 보면서 살아야 합니다.
부모님도 들여다 보아야 하고, 배우자도 들여다 보아야 하고,
자녀들도 들여다 보아야 합니다.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싶다면 슬로우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가족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여유로운 삶을 찾아야 합니다.
또한 무엇보다 신앙적으로 슬로우가 되지 않으면 안됩니다.
신앙적으로 슬로우가 되지 않으면
가정의 어떤 아픔과 고통을 치유할 수 없습니다.
마음은 원이지만 뜻대로 이룰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도와주셔야 하기 때문에 야곱처럼 벧엘로 올아가고자 하는
영적인 변화가 일어나야 합니다.
그래서 슬로우 가정을 통해서
행복한 믿음의 가정을 이루는 모든 성도들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