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10시 30분에 시작한다고 하여 2시간 정도 걸릴 거라 생각하고, 집에서 8시 30분쯤 출발했었습니다.
출발하자마자 나의 예상이 빗나갔습니다.
출근시간이어서 그런지 차량이 많아 길이 막혔기 때문입니다.
집에서 1km 정도 떨어진 북부 경찰서 사거리에서 지체가 시작되더니, 서방 시장 사거리에서 또 지체되었습니다. 여기까지 왔을 때 벌써 9시가 되었습니다.
그래도 시내만 벗어나면 괜찮겠지 하며 느긋하게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러나 사정을 갈수록 태산이었습니다.
광주교대 앞에서 지체되었고, 조선대학교 주변 도로에서 지체되었습니다.
남광주 사거리에서 좌회전했는데 또 지체되었습니다.
지원동을 벗어날 때까지 지체가 풀리지 아니하였습니다.
너릿재 터널을 지났습니다. 내려가는 도로에서도 차량이 많습니다.
화순 외곽도로로 접어들었습니다. 도로 사정이 조금 나아지는 듯 했습니다.
편도 2차선 도로에 차량이 속도를 내며 달립니다.
능주를 지나자 도로는 다시 편도 1차도로 좁아졌습니다.
관광버스 4대가 나란히 달립니다. 그 뒤로 대형 트럭이 달리고 나를 비롯하여 승용차도 몇 대 달립니다. 속도를 전혀 내지 못합니다.
시간을 흘러 9시 50분이 지나갑니다. 마음이 조급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신설 도로 위에 분리봉을 빽빽하게 그것도 두 줄로 박아 놓았기 때문에 추월할 수도 없었습니다.
“꼭 오세요.”
당부한 신기동 교감선생님의 목소리가 귓가에 들리는 듯 생생합니다.
이양을 지나 청풍으로 접어들었습니다. 이곳에서 자동차에 연료를 주입했습니다.
시계는 8시 58분을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집에서 여기까지 보통 1시간 정도 걸렸었는데 오늘은 1시간 30분이나 걸린 것입니다.
이제 남은 시간이 30분인데, 가야 길은 60Km가 넘습니다. 더구나 편도 1차인 산골 도로를 달려야 합니다.
하는 수 없이 속도를 높였습니다. 또 다른 차량을 추월하기도 했었습니다.
군데군데 감시 카메라도 피해서 지나쳐야 했습니다.
이렇게 위험한 운전을 하다보니까 마음이 언짢아졌습니다.
행사 시간을 아침 10시 30분으로 정한 것은 학교까지 100km 이상 달려가야 할 사람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입니다.
내가 이 행사에 참여하려는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이것은 회진초등학교 교장으로서 퇴직하기 바로 전, 2008학년도 시작과 함께 예산액 32억 7천만원의 사업이 확정된 매우 의미있는 업적이었기 때문입니다.
현재 회진초등학교 신기동 교감 선생님도 당시 나와 함께 근무했기 때문에 이 사업이 이루기까지의 어려웠던 상황을 많이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행사에 참석하도록 강조했던 것입니다.
유치면에 있는 장흥댐 주변 도로 위를 달리고 있는데 핸드폰에서 벨이 울렸습니다.
“교장 선생님, 지금 오세요?”
학부모 정경자씨의 전화였습니다.
정경자씨는 내가 근무할 당시 자모회 총무로 학교 행사에 많이 협조한 분입니다. 학부모와 학생이 어울려 학교 청소 봉사활동을 할 때에도 협조했었고, 도서관 도우미로도 협조했습니다.
운동회에서는 구경 나온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의 입장을 대변하여 그들을 배려하는 일도 했습니다.
“교장 선생님 안 오시면 나도 안 갈려고요.”
이게 무슨 말인가?
며칠 전에는 또 다른 학부모 김비자씨로부터 ‘준공식에 꼭 오시라.’는 전화를 받은 일이 있었습니다.
김비자씨에게는 아들만 둘 있는데, 당시 2학년이었던 둘째 아들 재원이가 교장인 나에게 ‘교장 선생님은 친절하세요.’라고 칭찬했었습니다. 비록 어린 아이의 칭찬이었지만 나는 무척 기뻤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번 외에도 김비자씨는 간혹 전화로 학교 소식을 알려주었습니다.
회진초등학교에서 근무할 때, 도벽이 심하고 다른 학생들에게 난폭하게 행동한 학생을 운영위원장, 자모회장, 해당 학부모 등과 만나 여러 가지로 당부하면서 계도한 일이 몇 차례 있었는데, 2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까지 이 학생에게서 도벽하는 버릇이 나타나지 아니한다는 반가운 소식을 전해주기도 했었습니다.
시계는 10시 13분이 되었습니다.
유치면에서 터널을 지나 부산면으로 들어섰습니다.
이 도로에는 과속 감시 카메라가 2대나 설치되어 있습니다.
장흥읍을 지나고, 자울재를 넘어 용산면으로 접어들었습니다.
자동차는 미끄러지듯 빠르게 달렸습니다.
용산면을 지나고, 관산읍을 지나 회진면으로 들어서는 관흥 삼거리에 가까이 왔을 때 또 전화벨이 울렸습니다.
“지금 어디 오세요?”
“거의 다 왔어요.”
“지금 시작합니다. 조심해서 오세요.”
신기동 교감 선생님의 전화였습니다.
학교에 도착했습니다.
많은 차량이 교문 주위에 늘어서 있었습니다.
교문에서 들어오지 말라는 수신호를 보고 자동차를 도로 왼쪽에 세웠습니다.
‘아, 교장 선생님!“
교문을 지키던 준꼬가 반색을 하며 달려왔습니다.
교문에 들어서니 우뚝 선 학교 건물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준공된 교사>
기념식을 마치고 건물 안쪽으로 들어갔습니다.
산뜻한 복도와 교실이 참 좋습니다.
<교실 내부>
<복도>
학교를 나오면서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왼쪽으로부터 정경자씨, 황호연 위원장,그리고 오른쪽에 김비자씨입니다.
모두 고마운 분들입니다.
황호연 (전)위원장은 운영위원회 총무로 또 위원장으로 고생이 많았습니다.
2005학년도에는 한철봉 위원장, 황호연 총무 체제로 운영되었는데,
그 해 회진면장인 장승호 선배께서 운동장 주변에 우천로를 개설하고 체육 및 운동 기구를 재배치하였고, 울타리를 수선하는 등 학교를 위해 많은 투자를 했습니다.
운동장에 마사토를 넣었었는데, 15톤 트럭으로 14대분이나 쏟아 놓았습니다.
이 때 황호연 총무는 집에서 사용한 콤바인에 기차 철로를 매달고 운동장을 이리저리 다니며 바닥을 편편하게 골랐던 일도 있습니다.
2006학년도부터는 위원장으로 14개 교실에 설치된 56개의 낡은 브라인드 커튼을 제거하고 롤 스크린 커튼으로 교체하였는데, 그 비용을 혼자 감당하기도 했었습니다.
또 학교 교사 재건축 사업을 진행할 때에는 군의원, 도의원은 물론 지역교육장을 찾아가는 등 적극적으로 협조해주었고, ‘교장 선생님, 학교 교사 재건축 사업이 이루어지면 비석을 세워 드릴께요.’(이런 말을 곧이 곧대로 믿었던 것은 아닙니다.) 등 이런 말로 나를 독려한 분입니다.
학교 재건축 사업을 진행하면서 자기의 비용을 사용함은 물론 다른 분들로부터 비난을 받으면서도 꿋꿋이 자기의 생각을 펼치며 수고하고 애를 썼기 때문에 이렇게 아름다운 교사가 건축되었습니다.
준꼬와도 사진을 찍었습니다.
중학교 1학년이 된 딸 하련이, 4학년인 아들 종탁이와 함께 행복하기를 빕니다.
퇴직하기 전에, 회진초등학교에서 근무한 흔적을 남기기 위해 재직 기념으로 나무 한 그루를 심었습니다. 키가 크고 수형이 아름다우며 열매는 귀중한 한약제로 쓰인다는 황칠나무입니다.
<재직기념 식수 : 황칠나무>
회진초등학교 학생들이 장차 우리나라와 지역사회를 위해 귀한 존재로 성장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나무를 선택한 것입니다.
당시에는 나무 심을 마땅한 자리가 없어서 체육관 뒤쪽 언덕에 심었었는데, 이번 공사를 하면서 교사 앞 쪽으로 옮겨 심었다고 합니다. 아주 편하고 좋은 위치에 자리를 잡은 것 같습니다.
이 일이 이루어지게 한 분은 바로 황호연 위원장입니다.
고맙습니다.
당시 근무했던 분들 대부분은 전출하였고, 교사에서 승진한 신기동 교감선생님, 운전기사 이향규, 교무 보조 신미진, 전산 보조 김성훈, 청소 용역 준꼬 이렇게 4분만 남아 있었습니다.
무척 반가웠습니다.
그러나 바쁘게 움직이고 있어서 따뜻한 말 한 마디 못해준 것이 못내 아쉬웠습니다.
학부모로는 운영위원장에 김현동, 자모회장에 김경선이 담당하고 있었는데 이 분들도 모두 학교를 위해 수고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교육가족으로 전라남도장흥교육청 김길도 교육장을 비롯한 관리과장, 시설계 직원들과 명덕초등학교 위계찬 교장 선생님, 회덕중학교 교장 선생님도 얼굴을 마주했습니다.
이 외에도 회진초등학교 1회 동창회장, 총동창회 윤형호 회장, 장흥군의회 황월연 의원, 회진새마을 금고 김진홍 이사장, 회진 면장 등도 반갑게 만났습니다.
안타까운 소식도 있었습니다.
회진초등학교 교사 재건축 사업을 추진할 때, 많은 도움을 주었던 전라남도의회 이민우 의원이 얼마 전에 타계했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