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몸 바쳐 큰 가르침 남기시고…
법장스님 15일 영결식
|
조사 낭독하는 천주교 대표 15일 서울 종로구 견지동 조계사에서 열린 대한불교 조계종 총무원장 법장 스님의 영결식에서 천주교를 대표한 김희중 주교가 조사를 낭독하고 있다. 이종승 기자
11일 입적한 대한불교 조계종 총무원장 법장(法長) 스님의 영결식이 15일 오전 서울 종로구 견지동 조계사에서 정·관계 및 종교계 인사와 불교 신자 등 3만여 명이 모인 가운데 조계종단장으로 엄수됐다.
종정 법전(法傳) 스님은 송광사 방장 보성(菩成) 스님이 대신 읽은 법어에서 “법장 대종사는 생명에 대한 외경과 애종심(愛宗心)이 깊었고 이사(理事)에 집착하지 않는 기략(機略)이 있었다”고 추모했다.
티베트의 지도자 달라이 라마는 초펠라 동북아 대사가 대신 읽은 조사에서 “법구(法軀·스님의 시신)를 기증하신 스님의 거룩한 보살행은 우리가 따라가야 할 모범”이라고 칭송했다.
법장 스님의 법구 기증으로 이날 다비식은 열리지 않았으며 영결식 후 스님의 위패와 영정 훈장 등은 충남 예산군 수덕사로 옮겨졌다.
이날 영결식 행사 중 하늘에 햇무리가 나타나 조문객들은 “하늘도 법장 스님의 명복을 빌어 주는 것 같다”고 말했다.
기상청에 따르면 햇무리는 대기가 습할 때 햇빛이 구름의 수증기에 의해 분산되면서 생기는 빛의 산란현상으로 서울에선 올해 들어 8차례 발생했다.
무소유와 나눔의 삶 살다간 법장스님
|
"모든 고통 내게 버려라” 현실참여 파격의 수행 |
|
죽어서도 시신을 연구용으로 기증하는 무소유 삶을 실천한 법장 스님은 불교계에서 몇백년 동안 내려오던 전통을 일거에 바꿔놓은 파격적인 삶을 살다 갔다. “고통은 모두 제게 버려 달라”는 그의 가슴 따듯한 법어 또한 오랫동안 뭇사람에게 회자될 것 같다.
2003년 2월 제31대 총무원장에 오른 법장 스님은 조계종 최초로 ‘비구니 부장’(문화부장 탁연 스님)을 임명하면서 ‘고정관념 타파’ 신호탄을 쏘아올렸다. 비구니 차별이 엄존하는 현실에서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올해 초 지진 피해를 입은 남아시아 국민들을 위해 ‘자비의 탁발’로 20여억원을 모금한 것도 종단 사상 초유의 일이었다. 자신도 직접 거리 탁발에 나섰다.
법장 스님은 평소 호흡이 가쁜 협심증을 앓고 있었지만 생전에 ‘한달에 1만㎞’를 다닌 것으로 유명하다. 특히 입적하기 4개월 전인 지난 5월부터 3개월 동안 이라크, 미국, 북한, 대만, 사할린, 일본 6개국을 순방했다.
그의 이라크 자이툰부대 방문은 민간 지도층 인사로는 최초였다. 이라크 방문을 지켜보는 국내 시각은 엇갈렸지만, 법장 스님은 “나는 순수하게 종교인으로서 이역만리 타국에서 이라크인들의 재건과 평화를 위해 노고가 큰 우리 장병들을 위로하기 위해 찾아왔다”고 담담히 밝혔다.
법장 스님은 역대 총무원장 가운데 처음으로 북한과 미국을 방문했다. 그는 미국 순방 중 백악관과 국무성 고위 관리들과 연쇄적으로 만나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과 6자회담 재개를 설득했다.
법장의 ‘파격’은 무소유의 또 다른 실천행동이었다. 그의 행보는 입적 후 비로소 진면목이 드러났다.
그는 1994년 장기기증운동 단체인 생명나눔실천본부를 설립하면서 사후 장기기증을 서약하고 유언장까지 써뒀다. 이미 법장의 의식 속에는 다비식이라는 불교의 수천년 ‘전통’마저도 생명나눔이라는 ‘가치’ 앞에 한발 뒤로 물러 설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법장스님은 평소 지병인 협심증을 앓고 있으면서도 ‘한달 평균 1만㎞ 순회법회’를 강행군했다. (사진 왼쪽부터)이라크 자이툰부대를 방문, 한국군을 위로하고 있다. 서울대를 방문해 줄기세포 연구의 권위자인 황우석 교수를 격려하고 있다.
15일 종단 사상 처음으로 치러지는 ‘다비식 없는’ 영결식에는 열세살짜리 여자아이가 조사를 맡게 된다. 이것 역시 초유의 일이다.
주인공은 서울 효제초등학교 6학년 최예슬양. 복지 사각지대에 있던 예슬이는 지난해 법장 스님과 결연을 맺었다.
당시 예슬이를 비롯해 종로구 관내 20명의 아이들은 총무원 부·실장 스님들과 결연을 해 충남 예산 수덕사도 여행하는 등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었다.
특히 예슬이는 잃어버린 자신의 안경을 맞춰주고 “대학까지 보내줄테니 꿋꿋하게 공부만 하라”는 ‘법장 할아버지’의 격려에 용기백배했다. 지난 12일 엄마와 함께 법장 스님의 빈소를 찾은 예슬이는 “할아버지처럼 잘해 주셔서 꼭 은혜에 보답하려 했다”며 하염없이 눈물을 훔쳤다.
사후 대종사(大宗師)로 추대된 법장 스님은 생전에 ‘고통을 모으러 다니는 나그네’ 등 몇권의 저서를 남겼다. 골자는 “고통은 모두 제게 버려 주십시오. 제가 다 짊어지고 가겠습니다. 여러분은 이제 삶의 주인으로서 행복하게 사십시오”라는 것이었다. 그는 이 법어를 만나는 사람마다 전했다.
법장이 일관되게 견지했던 수행의 화두는 무엇이었을까. 그가 길지 않은 생애를 통해 보여준 ‘현실참여의 삶’ 자체가 스승에게 깨침을 점검받기 위한 ‘법거량(法擧揚)’은 아니었을까.
지금 불교계는 법장의 유지를 받들어 장기기증을 통한 생명 나눔의 물결이 거세게 일고 있다. 법장 스님은 갔지만 그가 보여준 ‘파격’은 한국 불교사에 뚜렷한 이정표로 남을 것이다.
◇사찰순회시 어린아이를 만나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있다. 결연을 맺은 최예슬양을 격려하고 있다.
----------------------------------------------------------------------------
법장스님 영결식…1만 7,000여 명 애도행렬 |
"남김없이 주고 가신 큰 스님, 찬란한 빛으로 다시 오소서." |
|
시신마저 사회에 주고 떠난 불교 조계종 총무원장 법장 스님의 영결식이 15일 오전 서울 견지동 조계사 앞마당에서 조계종단장으로 엄수됐다.
영결식에 참석한 조문객 1만7000여명은 조계사 앞 도로변까지 가득 메웠으며, 정락 스님(교구본사 주지 대표), 혜국 스님(수좌대표), 명성 스님(비구니 대표) 등 불교계 인사는 물론 노무현 대통령(김병준 청와대 정책실장 대독), 달라이 라마(초펠라 동북아대사 대독), 가키누마 센신 일한불교협회 회장, 이명박 서울시장, 정동채 문화관광부 장관, 이운산 태고종 총무원장, 김희중 가톨릭 주교, 박원순 아름다운재단 상임이사 등 각계 인사의 조사가 줄을 이어 사회장(社會葬)을 방불케 했다.
행사는 오전 10시 타종으로 시작해 삼귀의, 육성 법문, 영결법요(원명·능허 스님), 행장 소개(적명 스님), 영결사(장의위원장 현고 스님), 법어, 추도사(중앙종회의장 법등 스님), 각계 대표의 조사, 조계사 여성합창단의 조가, 문도 대표 인사 등으로 2시간 가까이 진행됐다.
이날 조계종 종정 법전 스님은 영결 법어에서 “생전에 법장 대종사는 생명에 대한 외경과 애종심(愛宗心)이 깊었고 이사(理事)에 집착하지 않는 기략(機略)이 있었다”고 추모한 뒤, 이어 “종단의 갈등과 대립을 통합하고 원융(圓融)과 화합으로 종풍(宗風)을 드높이고 불조(佛祖)가 전승한 법등(法燈)을 빛내기 위해 정진하던 그 모습이 산승의 눈에도 밟힌다”고 설했다.
법장 스님이 결연하고 후원해준 최예슬(13·서울 효제초6)양은 ‘큰 스님에게 올리는 편지’를 떨리는 목소리로 읽어나갔다. 최양은 “수덕사에서 잠깐 만나 뵈었을 때 많은 이야기를 나누진 못했지만 항상 따뜻한 눈길로 바라보시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며 “아직도 살아 계실것만 같고 ‘예슬아’하고 불러주실 것만 같은데 돌아가셨다고 하니 서운한 마음에 눈물이 자꾸 날 것만 같았습니다”라고 해 식장을 숙연케 했다.
행사에는 문희상 열린우리당 의장,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 김혜경 민주노동당 대표, 신낙균 민주당 수석부대표, 이재정 민주평통 부의장, 손학규 경기도지사, 이혜정 원불교 교정원장, 황우석 서울대 석좌교수 등 각계 인사들이 대거 참석했다.
이날 조사가 진행되던 오전 11시10분과 영정과 위패가 예산 수덕사로 향해 영결식장을 떠나던 낮 12시20분쯤 두차례 조계사 하늘 위에는 작렬하는 태양 주변으로 일곱 빛깔의 영롱한 햇무리가 5분가량 떠 있어 오묘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법장 스님이 출가했던 수덕사의 비구·비구니 스님들은 이날 시신 기증으로 위패와 영정으로 돌아온 법장 스님을 맞으며 주검마저 수습하지 못한 아쉬움에 오열했다. 이날까지 스님·재가불자 등 324명이 법장 스님의 유지를 받들어 ‘장기·각막·시신 기증서’에 서약했으며, 한동안 불교계에 장기기증을 동반한 추모 물결이 이어질 전망이다.
법장 스님의 빛, 불교계 장례문화 바꾸나
법장 스님이 주지를 지낸 충남 예산군 수덕사의 스님들이 15일 법장 스님의 유지를 받들기 위해 시신 장기 기증 서약서에 서명하고 있다. 오른쪽은 불교 전통 장례 의식인 다비식. 사진 제공 대한불교 조계종 총무원
11일 입적한 대한불교 조계종 총무원장 법장 스님의 법구(法軀·시신)가 생전 스님의 서약대로 동국대 일산병원에 기증된 후 스님들과 불교 신자들이 장기 시신 기증 서약에 잇달아 동참하고 있다. 이 같은 분위기가 확산되면서 오랜 전통의 불교 장례의식인 다비(茶毘·화장) 의식이 사라질지 주목된다.
조계종 총무원 기획실장 법안 스님과 문화부장 탁연 스님, 불교신문 사장 향적 스님 등은 13, 14일 조계사 대웅전에 마련된 생명나눔실천본부의 서약서 접수대에 들러 사후 시신 기증을 약속했다. 이어 다른 스님과 일반 신자 320여 명도 기증을 약속했다. 15일 오전 서울 조계사에서 영결식이 끝난 뒤 수덕사에서 법장 스님의 영정과 위패를 모시는 의식을 치른 수덕사 스님들도 설정 수좌스님의 권유로 시신 기증을 서약했다.
법장 스님이 원력(願力)을 세워 1994년 창립한 생명실천나눔본부는 11년간 불교계를 중심으로 장기 시신 기증사업을 펼쳐 왔다. 현재 총 1만7000여 명이 장기 시신 기증을 서약했는데 이 중 스님은 1100명에 이른다. 조계종 스님 1만2000여 명 중 약 10%가 시신 기증에 서약한 셈이다. 이번 법장 스님의 법구 기증을 계기로 앞으로 더 많은 스님과 불교신자가 서약에 동참할 것으로 보인다.
법장 스님의 법구 기증이 결정되기까지 ‘불경스럽다’며 반대하는 여론도 만만치 않았으나 장의위원회(위원장 현고 스님)와 문도회(門徒會)는 스님의 유지를 받들기로 최종 결론을 내렸다. 이번처럼 다비식 없이 영결식이 치러지는 것은 종단장 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법장 스님의 사형(師兄)인 설정 스님은 “개인통장 하나 없이 마지막 남은 법구마저도 남김없이 중생에게 회향(回向)하겠다는 법장 스님의 뜻을 우리는 따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다른 스님도 “법장 스님은 입적하시면서 훌륭한 일을 해내 일거에 그 어떤 조사(祖師)보다도 빛을 발하셨다”고 칭송했다.
불교계는 시신 기증을 자신의 육신마저 이웃에 보시(布施)하는 행위로 부처님의 가르침에 부합한다고 해석한다. 부처님 전생의 생활을 묘사한 설화집 ‘본생담(本生譚·자타카)’에 따르면 부처님은 전생에 보살로 있을 때 자신의 몸을 여러 번 공양한 적이 있다는 것이다.
불교계에서는 다비가 전통 장례로 자리 잡은 것은 부처님이 살았던 고대 인도의 일반적 장례 의식이 화장으로 치러졌기 때문이지, 이것이 절대적인 것은 아니라고 보고 있다. 중생을 위해 보시한다는 정신에 따른다면 장례 형태가 어떻든 상관없다는 것이 부처님의 근본 가르침이라는 것이다.
부처님도 승가는 장례에 신경 쓰지 말라고 가르쳤다고 한다. 스님이 입적하면 티베트에서는 높은 산에 시신을 던져 두어 독수리나 까마귀가 뜯어먹게 하는 조장(鳥葬)을 치르며, 시신을 물에 던져 물고기가 먹게 하는 수장(水葬)을 하는 지역도 있다.
해인사 주지 현응 스님은 “법장 스님은 불교계가 장기 시신 기증운동에 적극 나설 수 있도록 이끌어 주셨다”며 “법장 스님의 이번 법구 기증은 스님들이 입적하고 난 뒤 사리를 찾고 부도탑을 사치스럽게 세우는 불교계의 풍조에 일침을 가한 면도 있다”고 말했다.
큰스님 가시는 길 3만 신도 '동행'
법장스님 영결식… 불자들 장기기증 서약 줄이여
|
11일 새벽 입적한 불교조계종 총무원장 법장 스님의 영결식이 15일 오전 서울 견지동 조계사에서 사부대중 3만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조계종단장으로 엄수됐다. 법정 스님의 법구 기증에 따라 종단장으로는 처음으로 다비식은 치러지지 않았다. |
'실바람 같은 나그네로 살다가 민들레 씨처럼 가벼운 영혼이 되어서 언젠가는 저 세상으로 날아가야겠다.'
평소 어느 것 하나 남기지 않고 떠나겠다던 조계종 총무원장 법장 스님의 영결식이 15일 서울 종로구 견지동 조계사에서 사부대중 3만 여명이 모인 가운데 종단장으로 거행됐다.
영결식은 오전 10시 타종으로 시작해 삼귀의, 영결법요, 행장 소개, 영결사, 법어, 추도사, 조사, 헌화 등의 순으로 약 2시간 동안 진행됐다.
영결식에서는 교구본사 주지 대표 정락 스님, 수좌 대표 혜국 스님, 비구니 대표 명성 스님, 노무현 대통령(김병준 청와대 정책실장 대독), 중앙신도회 김의정 회장권한대행, 정동채 문화관광부 장관, 이명박 서울시장, 가톨릭 김희중 주교, 달라이라마(초펠라 동북아대사 대독) 등 각계 인사의 조사가 낭독됐다.
이 자리에는 열린우리당 문희상 의장,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 민주노동당 김혜경 대표 등 정계 인사와 황우석 교수 등도 참석, 고인을 애도했다.
법장 스님이 결연 후원한 최예슬(13ㆍ서울 효제초 6년) 양은 '큰스님에게 올리는 편지' 낭독을 통해 "아직도 살아 계실 것만 같고 '예슬아' 하고 불러주실 것만 같은데 돌아가셨다고 하니 서운한 마음에 눈물이 자꾸 날 것만 같았습니다"라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스님의 위패, 영정, 훈장 등은 이날 오후 스님을 배출한 충남 예산 수덕사로 이운돼 봉안됐다. 수덕사는 스님이 주말마다 내려가 수행하던 토굴과 스님이 읽던 책 등 유품을 공개했다.
한편 법장 스님의 유지를 받들어 장기, 시신을 기증하겠다는 서약이 줄을 이어 이날까지 스님 52명과 재가불자 286명이 사후 장기, 시신 기증을 결의했다.
불교계 보시 릴레이 영결식장 무지개 떴다
|
법장스님 육신공양 이어 400여명 장기기증 약속 |
지난 11일 입적한 대한불교 조계종 총무원장 법장 스님의 ‘육신 공양’을 이으려는 보시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법구(주검)를 동국대 일산병원에 기증해 종단장 사상 최초로 다비식 없이 거행된 15일 영결식 날까지 사흘 동안 서울 조계사 빈소 앞에선 스님 38명과 재가불자 286명 등 324명이 생명나눔실천본부에 장기·각막·주검 기증을 서약했다.
특히 법장 스님이 출가한 본사인 충남 예산 수덕사에선 법구 없는 영정이 도착한 뒤 수덕사의 좌장격인 설정 스님과 수경 스님(관련 사진)이 “몸뚱아리와 장기 등 모든 것을 중생에게 돌리겠다”고 나서자 스님 14명과 재가자 4명이 즉석에서 장기·각막·주검 기증에 서약했고, 법장 스님의 상좌 39명도 스승의 뜻을 잇기로 했다.
지금까지 장기 기증운동은 개신교와 천주교를 중심으로 펼쳐졌고, 우리나라 종교 인구의 절반이 넘는 1200만 불자를 이끄는 불교계의 참여는 낮은 수준이었다. 불자들의 존경을 받는 큰스님들이 다비를 통해 사리를 탑에 봉안하는 장례 문화의 영향을 받은 탓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법장 스님의 입적 뒤 이런 전통적인 장례 방식을 포기하고 그의 유언이 실현되자 “어떤 것이 과연 대승 보살 정신인지”에 대한 각성이 일어났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전통 사찰인 수덕사의 스님들이 사후 다비장이나 사리탑이 아니라 죽어가는 이들을 살리기 위한 육신 공양의 길을 가기로 선언함에 따라 전통적인 장례 방식을 고집해온 불교계에 상당한 파문이 예고되고 있다.
▲ 15일 오전 서울 종로구 견지동 조계사에서 열린 불교 조계종 총무원장 법장 스님의 영결식 도중 하늘에 햇무리가 생겨 사부대중의 눈길을 끌었다. 연합뉴스
옥스퍼드대와 하버드대에서 공부한 미산 스님(승가대 교수)은 “이번에 장기기증 서약을 했다”며 “기존의 호화로운 장례에 대한 경각심이 생기고, 더욱 수행자답게 홀가분하고 자비롭게 생을 마치려는 생각을 하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한편, 15일 오전 10시 조계사에 영결식엔 3천여 승려와 신도 3만여명이 경내를 메웠고, 열린우리당 문희상 의장,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 민주노동당 김혜경 대표, 이명박 서울시장, 황우석 박사와 중국, 일본, 대만, 티베트 불교 대표 등이 함께했다.
영결식이 진행되던 중 청명한 하늘 한가운데 오색 햇무리가 떠오르자 식장에선 환성이 터졌다. 또 법장 스님의 위패와 영정 등이 수덕사로 떠나기 위해 만장을 앞세우고 산문을 나가는 것을 환송하는 불자들이 “스님, 스님!”하고 불러 눈물바다를 이룰 때 다시 하늘에 오색 햇무리가 떠 오르자 스님들과 불자들은 하늘을 가리키며 “스님이 생명의 빛으로 오셨다!”고 외쳤다.
국악가 최수정씨와 합창단이 부른 ‘빛으로 오소서’란 노래를 뒤로 한 채 영정이 떠난 영결식장엔 ‘가르침대로 이타행을 실천하겠습니다’란 펼침막이 걸려 있었다.
'나눔 빛' 밝히시고…법장스님 조계사서 다비식 없는 영결식
스님.신도 등 300여 명 장기기증 서약
|
▶ 법장스님의 영결식이 15일 서울 견지동 조계사에서 열렸다. 식이 끝난 뒤 신도들의 오열 속에 고인의 위패와 영정이 조계사를 나가고 있다.[오종택 기자] |
11일 입적한 불교 조계종 총무원장 법장스님의 '다비식 없는 영결식'이 15일 오전 10시 서울 종로구 조계사에서 조계종단장으로 엄수됐다.
행사는 법장스님의 육성 법문 상영, 조계종 종정 법전스님 법어 낭독, 각계 대표의 조사와 헌화 등이 이어지며 2시간 동안 진행됐다. 각계 인사 2만여 명이 참석한 행사 직후 법장스님의 영정과 위패는 스님이 주지를 지냈던 충남 예산군 수덕사로 향했다.
영결식은 법구(스님의 시신)도 운구 절차도 없이 치러졌다. 법장스님이 생전에 했던 약속에 따라 법구가 연구용으로 기증됐기 때문이다. 큰스님의 장례라기엔 조촐하기 그지없는 행사였다. 하지만 그가 한국 불교계에 던지고 간 화두의 파장은 적지 않았다.
스님의 마지막 화두는 '시신 기증 보살행'이었다. 영결식에 온 이들은 "법구 기증은 신선한 충격"이라고 입을 모았다. 장기 기증 운동단체인 생명나눔실천본부가 조계사 내에 마련한 접수대에서 13일부터 15일 오후 1시까지 모두 324명(스님 38명, 일반 신도 286명)이 서약했다. 또 이날 영결식 후 수덕사에선 스님 14명과 신도 4명이 서약했다.
영결식 도중 조계사 하늘 위에 10여 분간 무지개가 떠올랐다. 전국비구니회 회장인 명성스님(운문사 승가대학장)은 "비오는 날도 아닌데 태양을 중심에 놓고 무지개가 뜨는 것은 처음 본다"며 특별한 의미를 부여했다. 그는 "다비식을 호화롭게 하는 것이 달갑지 않았었다.
그런 점에서 오늘 행사는 그 어떤 영결식보다 의미가 크다"고 밝혔다. 명성스님은 또 "법장스님은 총무원 문화부장에 비구니 스님을 처음 임명하며 남녀평등을 실천했고, 비구니부 설치를 계획하는 등 후속 개혁작업을 앞두고 있었다"며 갑작스러운 입적을 아쉬워했다.
조계종 기획실장 법안스님은 "유품을 정리하다 보니 흔한 개인 저금통장 하나 없었다. 법구까지 모두 베풀고 떠나셨다. 불교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며 불교계 장례문화를 바꾸는 계기가 될 듯하다"고 말했다.
영결식에는 문희상 열린우리당 의장,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 김혜경 민주노동당 대표,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 정동채 문화관광부 장관, 이명박 서울시장, 손학규 경기지사, 김진선 강원지사, 심대평 충남지사 등 정치권 인사와 문재인 청와대 민정수석, 유홍준 문화재청장, 황우석 서울대 석좌교수, 김희중 가톨릭 주교, 박원순 아름다운재단 상임이사, 그리고 중국불교협회와 일.한불교우호교류협회 관계자 등 국내외 인사들이 대거 참석했다.
아~ 그 깊던 인간사랑 -법장스님 영전에
지환 (조계종 기본선원장)
남다른 원력과 열정, 따뜻한 마음으로 열심히 일하시는 스님의 모습을 이제 다시 뵐 수 없어 가슴이 텅 비고 슬픔마저 하얗게 되어버렸습니다.
'함께하는 종단, 신뢰받는 종단'을 내걸고 총무원장으로 선출되어 가시는 마지막 날까지 의욕적으로 종단 발전을 위해 몸을 아끼지 않으셨던 스님, 스님의 헌신적인 활동으로 종단의 위상이 크게 높아졌지요.
큰 수해로 어려움을 겪은 스리랑카에 복지센터 '조계종 마을'을 건립하신 일, 최근에는 '이라크 아르빌에서 워싱턴, 그리고 평양까지'행사 등 스님이 역대 총무원장 가운데 가장 활발하게 대외 활동을 펼쳤다는 평가는 결코 헛된 말이 아닙니다.
일에 대한 원력과 열정 못지않게 스님의 따뜻한 마음에 저는 항상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토록 바쁜 일정 속에서도 항상 활기차고 밝은 모습으로 만나는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는 힘? ? 주셨지요. 만나는 사람 한 사람 한 사람을 소중하게 생각하시는 스님의'인간사랑'에서 비롯되었다고 믿습니다.
정치인, 공무원, 기업인, 운동선수, 어려운 소년소녀에 이르기까지 스님에게서 삶의 지혜와 용기를 얻는 사람이 셀 수 없이 많습니다. 바로 스님 특유의 활기찬 마음과 자비심이 그들에게 감회를 주신 덕이 아닐까요.
수덕사 주지 시절 소외받기 쉬운 뒷방 노스님들이 편안하게 지내셨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습니다. 아침저녁으로 찾아뵙고 문안을 드리며 불편함이 없는가 자상하게 살펴주신 스님의 배려 덕분에요. 이렇게 스님의 '인간사랑'은 언제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시든지 사람들을 따뜻하게 해 주시고 편안하게 해주셨습니다.
지난해 여름 유난히 무더운 날씨에도 젊은 학인 스님들이 개최하는 전국학인 학술대회를 격려하기 위해 동화사에 내려오셨을 때의 일입니다. 강원 학인 스님들까지 따뜻한 베풂으로 일일이 챙겨주실 때 학인 스님들이 용기백배하는 모습을 제가 지켜봤었지요. 지금도 커다란 감동으로 남아있습니다.
스님은 아무리 바쁜 일상 속에서도 선원에서 수행하는 선객 스님들의 애로까지 살피시어 대중공양을 20여 년간 해 오셨지요. 선원과 수좌 스님들에 대한 스님의 애정은 제 방에서 묵묵히 정진하는 수좌 스님들의 마음까지 훈훈하게 적셔 주셨습니다.
저는 참선한다고 선방에서 살다보니 베푸는 삶에 익숙하지 못함을 통감합니다. 어찌 보면 받기만 하고 베풀면서 살지 못한 저를 일깨워 주시기 위해 스님을 선지식으로 만나는 인연이 지어졌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제부터는 제가 스님께 배운 따뜻한 마음으로 크게 베푸는 삶을 실천해 가겠습니다. 제가 아까워하고 옹졸해질 때마다 스님을 생각하며 후덕하게 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스님께서 마지막으로 베풀어주신, 인간의 목숨이 아침이슬 같고 물거품 같이 무상하다는 법문을 사무치게 느껴 더욱 열심히 정진하겠습니다. 스님! 자비원력으로 다시 오시어 못다 하신 불교중흥 다 이루소서!
법장스님 극락왕생 길 '햇무리 이채'
|
|
|
|
“법장 대종사가 무지개로 화했다.”
|
15일 오전 서울 견지동 조계사에서 열린 법장스님 영결식중 하늘에 해무리와 무지개가 서 사부대중의 눈길을 끌었다. /뉴시스 |
제31대 조계종 총무원장 법장스님의 영결식이 15일 오전 서울 견지동 조계사에서 국내외 조문객 2만여명이 운집한 가운데 엄수됐다. 마지막 남은 육신마저 병원에 기증, 시신 없이 치러진 이날 영결식에서는 법장스님의 극락왕생을 기리는 듯 맑은 하늘에 무지개와 해무리가 뜨기도 했다.
영결식은 오전 10시 스님의 입적을 애도하는 5차례의 종이 울리며(명종·鳴鐘) 시작됐다. 이어 “여러분이 갖고 있는 모든 고통 내가 갖고 갈 테니, 여러분은 ‘만족의 보물’을 쥐고 신바람 나게 살라”는 생전의 법장스님 육성법문이 울려 퍼지자 영결식장은 숙연해졌다.
외국 순방중인 노무현 대통령은 김병준 청와대 정책실장이 대독한 조사에서 “사회 갈등을 해소하고 종교간 화합과 세계평화에 헌신하고, 열반에 드시면서 모든 것을 중생들에게 아낌없이 주고 간 무소유를 실천하셨다”고 말했다.
법장스님이 결연하고 후원해준 소녀가장 최예슬양(13)이 울먹이는 목소리로 “‘예슬아’ 하고 불러주실 것만 같은데 돌아가셨다고 하니 눈물이 날 것 같습니다”라는 조사를 하자 조문객들 사이에서는 울음이 터져나왔다.
특히 각계 조사가 이어지는 가운데 하늘에는 일곱색깔의 선명한 무지개가 피어올라 참석한 신도들은 “법장스님이 무지개로 화했다”며 박수를 치고 환호하기도 했다.
영결식 직후 법장스님의 위패와 영정, 불자, 국민훈장 등은 만장을 앞세우고 사부대중의 슬픔을 뒤로 한 채 스님이 주지로 있던 충남 예산 수덕사로 향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