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동숭동의 대학로에는 마로니에가 있다고 했다. 나도 대학로를 여러 번 가본다고 했지만, 마로니에를 보지 못했다. 사실은 마로니에가 어떻게 생긴 나무인지를 모르는 것이 가장 큰 이유였을 것이다. 마로니에 나무가 있는데도 내가 모르고 지나갔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과연 동숭동 구 서울대 자리에 마로니에는 어디에 있을까 ? 문예진흥원에 가던 길에, 방송통신대학 가는 길에, 서울대 병원 가는 길에, 샘터 다방 가는 길에, 아니면 소극장 찾아가는 길에....
노래를 통해서만 들었던 마로니에. 오래된 이야기처럼 동숭로에 가면 마로니에가 있겠지 생각했다. “....루루루루루~지금도 마로니에는 피고 있겠지. 눈물 속에 봄비가 흘러내리듯, 임자 잃은 술잔에 어리는 그 얼굴...” 마로니에 단어를 떠올리면 사랑과 이별 그리고 그리움 등이 자연스럽게 연상되곤 하였다.
근데 영국에 와서 마로니에 나무를 처음 알게 되었다. 어느 봄날 선배와 함께 셰익스피어 생가를 방문하던 길에 그의 부인 앤 헤서웨이의 집 근방 주차장에 차 세우고 나오다가, 그 일곱 잎사귀의 마로니에를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파리에 유학하고 돌아온 어느 젊은이가 공부하던 그 시절의 추억을 달래기 위해 씨앗을 가지고 와서 동숭로에 퍼트린 것이 마로니에가 대학로에 자리잡게 된 연유라고 한다.
사진 : 캠브리지 대학에서 본 가을날의 마로니에 잎
왜 하필 일곱 잎사귀일까 ? 우리의 7월 7일 칠석날에는 헤어졌던 견우와 직녀가 까막까치가 눈물로 놓아준 오작교를 건너 다시 만나는 날이지 않은가 ? ‘직녀에게’라는 민중가요에서 절규하고 있었지. ‘...우리는 만나야 한다’고... 유행가 가사에서는 헤어진 여인을 그리워하는 절절함이 베어있지만, 나는 마로니에 잎사귀가 7개인 것이 엉뚱하게도 다시 만나야한다는 이미지로 연상되면서 다가왔다.
사진 : 파리의 어느 공원에 있는 마로니에 숲에서
한번 마로니에가 어떤 나무라는 것을 알게 되니, 정말 마로니에 나무가 나에게 다가왔다. 버밍햄대학 주변에 왜 그리도 마로니에 나무가 많이 보이는지, 집에서 학교 가는 길에 전에 몰랐을 때에는 전혀 보이지 않던 그 나무들이 갑자기 보이기 시작한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이런 경우에도 적용된다니, 한편 우습기도 하다. 마루니에 옆을 지날 때는 자동으로 유행가 가사가 입에서 흐른다. 루루루루루~~
사진 : 버밍햄대학 주변 길가의 가로수, 신록의 마로니에
어느 봄날 스톤헨지를 찾아가던 길이 하도 멀어서 중간에 브리스톨이라는 곳에 잠시 들렸는데, 공원의 마로니에가 꽃망울을 터트려 봄 기운을 발산하고 있었다.
가을이다. 영국에서 가장 먼저 가을이 온 것을 느낄 수 있는 것은 노랗게 변해가는 마로니에 잎이다. 한시에서는 계단의 오동잎이 가을이 왔음을 알린다 했지(階前梧葉已秋聲). 봄날 그 화려했던 마로니에 잎이 한 잎 두 잎 떨어지고 있다. 바람에 나뒹군다. 그림을 그리시는 선배 교수님이 인터넷으로 안도현 시인의 ‘가을엽서’를 보내오셨다.
가을엽서 (안도현)
한 잎 두 잎 나뭇잎이
낮은 곳으로
자꾸 내려앉습니다
세상에 나누어줄 것이 많다는 듯이
나도 그대에게 무엇을 좀 나눠주고 싶습니다
내가 가진 게 너무 없다 할지라도
그대여
가을 저녁 한 때
낙엽이 지거든 물어보십시오
사랑은 왜
낮은 곳에 있는지를....
사진 : 영국 20-1 904 가을 길가에 물들어가는 마로니에
내년 봄이 되면 지금도(?) 마로니에는 피고 있겠지, 눈물 속에 봄비가 흘러내리듯...
나도 몇 달 후면 고향에 돌아간다. 그 때 영국에서 생활했던 추억을 떠올리며 마로니에를 다시 생각하고 있겠지.
첫댓글 어제 저녁부터 여러번 시도햇는데, 게시물 용량잉 한도를 넘는다고 사진이 안 올라갑니다요. 잉잉....하여 사진도 다 지우고, 다시 시도했는디도 뭐시기가 잘 안됩니다 그려. 너그러운 마음으로 보시기를...
서교수님 오랫만입니다. 이국에서 그리움은 서교수님의 정서에 향기와 빛깔을 더하는군요. 안부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