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그맨 심형래는 한국 대중문화 역사 상 대단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인물이다. 고대 출신의 수재임에도 불구하고 바보 연기로 전국적인 사랑을 받았던 그는 이제 한국 SF 영화의 수준을 한단계 끌어 올리며 개그맨에서 진정한 영화인으로 대 변신을 준비하고 있다. 때로는 비웃음을 샀고, 때로는 비난을 받았지만 영화에 대한 심형래의 그 '단순한' 열정은 저절로 고개가 숙여지는 부분이다.
심형래의 '영화' 는 우리가 잘 아는 <영구 시리즈> 로 부터 시작된다. 개봉만 하면 100만명의 관객을 모았다고 할 정도로 어린이들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았던 <영구 시리즈> 는 남녀노소 세대를 가르며 웃음을 선사한 그의 대단한 흥행작이었다. <영구와 땡칠이><영구와 홍콩할매><영구 람보> 등의 <영구 시리즈> 가 큰 성공을 거둔 이래 그는 <우뢰매 시리즈> 를 제작해 다시 한번 큰 성공을 거둔다.
이렇게 역사에 길이 남을 '아동영화' 에 힘을 기울이던 그가 처음으로 "아, 이제 진짜 영화를 만들어 봐야 겠다." 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은 바로 <티라노의 발톱> 때 였다. 그 당시 <티라노의 발톱> 과 같이 개봉됐던 영화는 아이러니 하게도 비슷한 소재의 <쥬라기 공원>. 심형래는 <쥬라기 공원> 을 보고 공룡에 대한 신선한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부끄러워서 참을 수 없었다. 같은 소재로 영화를 만들었지만 <쥬라기 공원> 은 세계 영화사를 뒤바꾸는 영화였던 반면에 <티라노의 발톱> 은 그야말로 웃음거리에 불과했기 때문이었다. 내가 왜 이 영화를 만들었을까, 난 지금 영화를 했나 장사를 했나...많은 것을 깨달았고 몸서리 칠 만큼 치욕스러웠다. 영화 뿐 아니라 내 자신에 대해서도."
<쥬라기 공원> 의 존재는 심형래에게 "헐리우드 못지 않은 SF 영화를 만들겠다." 라는 오기를 심어줬다. 그는 '공룡' 을 소재로 전국에서 알아주는 영화인들을 모으기 시작했고 <영구 아트 센터> 를 건립, 본격적인 'SF 영화 만들기'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그리고 탄생한 것이 바로 영화 <용가리> 였다.
영화 <용가리> 의 탄생은 개봉 전부터 대단한 화제였다. <고질라> 에 맞먹는 스펙터클과 CG 로 해외 수출이 줄을 이었고 심형래는 '신지식은 1호' 로 "못하니까 안하는 것이 아니라 안해서 못하는 것입니다." 라는 불후(?) 의 명언을 남기며 승승장구 했다. 그러나 불운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닥쳤다. 바로 해외 수출이 '사기' 를 당하며 막대한 자금이 하늘 속으로 사라진 것이다.
심형래는 이러한 장애물 속에서도 꿋꿋이 <용가리> 를 개봉 시켰지만 반응 역시 시원치 않았다. 100억의 제작비로 대단한 화제를 모았지만 <용가리> 의 CG는 어색하기 짝이 없었고 스토리 라인도 혀를 찰 정도로 부실했다. 게다가 "개그맨이 무슨 영화냐" 라는 충무로의 냉대 역시 심형래에게는 큰 충격이었다. 심형래는 이 때를 두고 "사실 영화제에서 특수효과상 하나는 받을 줄 알았다." 라며 서운한 감정을 표출할 정도다.
'신지식인 1호' 심형래는 어느새 '사기꾼' 으로 전락했고 비웃음과 멸시의 대상이 됐다. 대단한 좌절의 시기였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심형래는 술렁거리는 <영구 아트 센터> 를 수습하고 <용가리> 를 넘어서는 거대한 프로젝트에 다시 착수했다. 그의 도전은 결코 "한국" 이라는 좁은 땅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한국영화가 진정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헐리우드 영화" 와 맞서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바로 영화 다. 용이 되지 못하고 주저 앉은 전설의 괴물 '이무기' 를 소재로 만들어진 는 예고편 하나만으로도 <용가리> 를 뛰어넘는 모습을 보여주며 대중과 언론의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다. 작년 마무리 작업이 모두 끝나고 개봉을 기다리는 이 영화는 8월 한국과 미국에 개봉할 예정.
게다가 300억이 넘는 제작비는 충무로의 입까지 떡 벌리게 할 정도로 놀라움을 선사하고 있다. 이게 과연 '헐리우드' 가 아닌 '한국' 에서 만든 영화란 말인가. 전 세계에서 헐리우드를 제외하고 SF 영화 수준이 이 정도까지 성장한 나라는 아마 한국 밖에는 없으리라. <용가리> 때만 해도 '아시아 최고' 라는 자부심이 있었으니 는 말할 필요가 없다.
헐리우드가 장악한 SF 영화를 한국인이 성공하지 말라는 법 없다. 충무로의 영화인들이 '스크린 쿼터' 따위를 사수하기 위해 거리로 나섰을 때, 그저 흥행하기 위한 조폭 코미디를 끊임없이 만들어 내고 있을 때 '심형래' 라는 개그맨은 한국 영화의 기술을 한 발자국, 한 발자국 묵묵히 진일보 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실패할 수도 있고, 성공할 수도 있겠지. 그러나 작품의 성패와 관련없이 심형래라는 이름 세글자가 위대한 까닭은 가장 성공한 시절 자신이 좋아하는 '영화' 를 위해 모든 걸 바쳤고, 냉대와 비웃음 속에서도 자신의 꿈을 지켰고, 끝없는 열정과 투지로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고 있기 때문이다. 과연 이 시대 누가 존경받아야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