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연극엔 위대한 성격이 있다.' 라는 말이 있다. 드라마나 영화 역시 매력 있고 개성적인 성격의 창조가 작품 성공의 관건이 된다고 할 수 있겠다. 한마디로 성격을 살리는 것이 곧 드라마를 살리는 지름길인 것이다. 이제 성격묘사에 있어서 알아 두어야 할 실제적인 지침들을 제시해 보고자 한다.
a.생활보다 더 크게.
드라마는 위대한 성인이나 위대한 악인을 다룬다고 한다. 일상적인 크기는 거의 다루지 않는 것이 연극의 오랜 전통이었다. 희랍시대의 비극작가들은 신이나 영웅을 주인공으로 하여 작품을 썼으며 이런 전통은 셰익스피어 시대까지 이어졌다. 햄릿, 리어왕, 멕베드, 오델로가 그러하다. 그러나 오늘날 20세기의 주인공들은 놀라울만큼 다양한 특징들을 가지고 있다. 새롭고 독특하고 개성적인 주인공들이 속속 들어나 드라마를 이끌어 가고 있는 것이다. 제임스 본드와 같은 스파이, 록키와 같은 복서, 인디아나 존스와 같은 모험가, 맥가이버 같은 특수요원, .... 이 현대판 주인공들은 보통사람이 아닌 상식을 초월한 예외적인 인물들로서 오래전 영웅들이 그랬듯 관객에게 호소력을 가질 수 있다.
만약 당신이 창조한 인물이 시시하고 지루하게 느껴진다면 콜롬보 형사의 피터 포크나 고래사냥의 안성기, 강수연처럼 괴팍하고 비상식적인 인물로 만들어 보라. 그가 지저분한 사람이면 아주 지저분하게 만들고 사기꾼이면 정말 혀를 내두를 만큼의 사기성 있는 인물을 만들어라. 왕룽일가의 쿠웨이트 박처럼 별난 매력을 풍기게 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아직도 많은 제작자들은 실제 생활보다 더 큰 인물을 관객이 바란다고 굳게 믿고 있다.
b. 평범한 인물의 모델.
영화 아마데우스에서 모짜르트와 같은 천재가 될 수 없었던 인간 살리에리의 내면에는 컴플렉스가 깊게 깔려 있다. 그는 결국 정신병동에 갇혀 "나는 보통 사람들의 신이다" 라고 절규한다.
TV시대 이후 드라마에서 보통사람들의 이야기가 많이 다루어지게 되었다.(최근작으로는 '반달곰 내사랑' 을 예로 들 수 있겠다.) 일상성이 강조되고, 영웅이 아닌 평범한 인물들이 드라마의 주인공으로 떠오르기 시작하였다. 미국의 극작가 패티는 드라마의 생명은 일상성에 있다고 주장하면서 드라마의 독자적인 성격묘사법으로 다음의 세가지를 제시하였다.
첫째-드라마의 주인공은 특수하고 보기 드문 사람이 아니라
극히 흔하고 평범한 사람을 택할 것.
둘째-드라마의 주인공 성격은 일상생활의 나날에 전력투구하는
성실하고 친숙해지기 쉬운 성격이 적당하다.
셋째-인물의 성격을 따라 가며 드라마를 앞으로 진행해 나가는 것 보다는
인물의 성격을 파고들어 보다 깊은 내면의 드라마를 만들 것.
패티는 이러한 세가지 원칙을 제시혀면서 드라마의 고전이 될만한 명작들을 남겼다. '마티'
'어머니' 등이 그 예이다. 그는 또 왕이 누구에게 암살되었느냐 보다는 옆집 푸줏간 주인이 누구와 결혼하느냐가 더 드라마답다 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평범한 인물을 주인공으로 했을 때 작가는 특히 성격의 섬세한 구석구석까지를 잘 포착해 내지 않으면 안된다. 패티의 말대로 깊게 파고들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시청자들은 자신들과 똑 같은 평범한 인물로부터 매력을 느낄 수 없다. 가령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에 나오는 스탠키 코왈스키는 산업사회의 뒤안길에서 소외당한 수많은 소시민의 모델이였으며, 전원일기의 최불암의 모습 또한 코왈스키와 궤를 같이하고 있다.
평범한 사람들이 나와 별것 아닌 이야기가 펼쳐지는 드라마를 관객들이 보는 이유는 명백하다. 그 평범한 주인공의 모습에서 결코 영웅이 될 수 없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자신의 가족과 이웃의 모습을 보기 때문이다. 바로 이 점을 노려야 한다. 작가가 그리고자 하는 인물이 영웅이 아닌 보통 사람이라면 많은 평범한 사람의 전형적인 성격을 부여해야 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c. 지배적인 특성을 살려라.
인간의 성격은 참으로 다양하고 복합적이다. 한 인물 안에도 여러가지 성격의 갈래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기 마련이다. 따라서 작가가 인물을 깊이 있게 묘사한다 하여 시시콜콜한 성격의 면면을 일일이 다 펼쳐 보일 수는 없다. 그럴 필요도 없고, 그럴만한 사람도 없다.
작가가 주인공의 성격을 창조함에 있어서 무엇보다도 먼져 해야 할 일은 주인공의 여러가지 성격적 특질 중에서도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지배적인 특성이 무엇인지를 포착하고 그것을 확실하게 부각시켜야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오델로는 용감하고 열성적이며 통솔력 있는 사람이지만 그의 성격의 지배적 특징은 질투심이다. 그는 질투심 때문에 결국 자신을 파멸로 몰아간다. 햄릿은 우유부단함이 리어왕은 성급함이 화를 부른다.
지배적 특성은 성격의 요지 또는 성격의 중심이라 불리는 것으로서 그 인물을 특징지우는 가장 핵심적인 부분을 이야기한다. 주인공에게 이렇게 지배적 특성을 부여해 놓는 것은 작가로서 여러가지 이점을 지난다. 우선 성격을 확실하게 부각시킬 수 있으며 그러한 성격 특징을 이용해 드라마의 갈등국면을 더욱 고조시킬 수도 있고, 주인공을 비극의 구렁텅이로 몰아갈 수도 있게 된다.
희랍극에서부터 주인공을 비극으로 몰아 넣는 것은 주인공 자신의 성격에 포함된 어떤 결함 때문이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오이디푸스는 성급한 성격 때문에 아버지 라이어스를 살해하게 되었고, 메디아는 질투심 때문에 자식을 죽였으며, 가을동화의 은서는 우유부단하고 착한 성격 때문에 주위의 오해를 사 두 남자로부터 모두 버림받게 된다.
이것이 바로 주인공의 성격속에 포함된 지배적 특성으로 인하여 주인공이 빠지는 함정에 빠지는 예들이다. 이런 것을 잘 이용하는 것이 현명한 주인공에게 강한 특성을 부여하고 그 다음에 그의 개성을 개발하여 풍부하게 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d. 성격의 변화를 추적하라
인간의 성격은 가변성이다. 그러나 희랍시대 비극의 주인공들은 한결같이 고정된 성격이었으며 셰익스피어극의 주인공들 또한 이 점에 있어선 마찬가지였다. 드라마를 통해 성격의 변화를 묘사하기 시작한 것은 근대 리얼리즘극의 등장에서부터 비롯되었고 입센은 "인형의 집" 을 통하여 본격적인 성격극을 시도하였다. 그 이후 인간의 성격변화를 추적하고자 하는 극작가의 노력이 드라마 작업의 큰 흐름을 형성하면서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막심 고끼리의 소설을 각색한 브레히트의 희곡 '어머니' 에는 일개 평범한 노동자의 어머니였던 여인이 혁명가로 변신해 가는 과정이 밀도있게 묘사되어 있고 '일포스티노' 에서는 식민지 지배하의 평범한 농부가 시인으로 변해 가는 것이 묘사되어 있다. 이 외에도 많은 명작들에서 주인공의 성격 변화를 추적하는 것은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일본의 거장 구로자와 아끼라의 "살다" 에리아 카잔의 "워터 프론트" 등의 명작들이 바로 그렇다. 또 하나 잊을 수 없는 영화로 헬린 켈러를 주인공으로 극화한 "기적은 사랑과 함께"를 들 수 있다.
작가가 인물의 성격변화를 시도하는 데 있어서 명심해야 할 사항은 인간의 감정이나 심리는 수시로 변할 수 있지만 성격은 좀체로 변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이것을 망각하고 성격변화를 준다고 해서 소심하고 소극적이던 인물이 갑자기 과격한 혁명분자로 둔갑한다든가, 무신론자가 하루아침에 광신자가 되어 나타난다거나 해서는 곤란하다.
가을동화의 태석은 가장 기본적인 성격 모토가 은서의 대한 사랑으로 나타나기에 그의 성격 변화는 개연성과 공감을 획득할 수 있는 것이다. 그의 변화의 모든 원인은 단 한가지였기 때문에 관객들은 그에게서 매력을 찾을 수 있다.
이렇게 사람의 성격이 변화하기 위해서는 그 변화의 전제가 되는 동기가 중요하다. 그 동기는 어떤 사랑의 감정일 수도 있고, 돈과 명예 때문일 수도 있으며, 때로는 절박한 삶의 의지가 될 수도 있다. 신파극 이수일과 심순애에서 심순애가 이수일을 배신한 것은 돈(다이아몬드) 때문이었으며 심순애의 배신 이후 이수일은 오로지 돈만 아는 냉혈한이 되고 만다. 비록 신파적이 포석이었다고는 하지만 주인공의 성격 변화의 동기가 비교적 설득력 있게 묘사되고 있다.
이처럼 성격변화에는 그에 상응하는 필요충분조건이 갖추어져야 한다. 가령 전쟁이나(여명의 눈동자) 급격한 환경변화('엄마의 바다'에서 고소영)는 개인이나 집단의 성격을 변화시키는 요인이 된다. 또한 죽음에 직면했던 경험, 파산, 이혼, 배신, 질투, 배우자의 죽음 등 혹독한 시련을 통해 성격에 변황를 줄 수도 있으며 반대로 사랑, 결혼, 출산 등의 달콤한 경험도 성격변화를 일으키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이 밖에도 소외감 , 컴플렉스 등 현대인의 성격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요인은 많다. 작가는 이 모든 것을 연구해야 한다.
또 한 가지. 사람의 성격이 변화한다고 해서 180도로 완전히 바뀌는 설정은 피해야 한다는 것이다. 원래 자신이 가지고 있던 성격을 토대로 하여 어느 정도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지 본래의 성질이 말끔히 없어지고 딴 사람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우리나라 작가들의 고질적인 문제점은 악역이 점점 선해지는 성격으로 설정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인데, 많은 명작들에서 이러한 문제점이 지적되 극의 완성도를 떨어뜨리는 원인으로 작용하게 된다.
e. 인물간에 대조적인 성격을 부여하라.
시골의 아침에는 닭이 우는 것이 보통이겠죠. 옛날에는 닭의 울음소리로 사람들이 잠에서 깨어나 일터로 나갔는데요. 만약 닭이 울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요. 여기에 이 '울지 않는 닭'을 놓고 벌이는 논쟁이 있습니다.
성격 1 : 울지 않거든 목을 쳐라.
성격 2 : 때려서 울려라.
성격 3 : 울 때까지 기다려라.
어떻습니까? 한 가지의 사소한 사건을 놓고도 성격에 따라 반응이 천지차이죠? 성격 1은 아주 급하고 다혈질적이며 성격 2는 합리적이고 냉철하며 성격 3은 참을성 있는 성격이죠.
주인공과 대립자 사이의 성격도 이와 같이 상반된 특성으로 뚜렷이 구별되게 쓰는 게 보통입니다. 가령 주인공이 선한 성격이라면 대립자는 악한 성격으로, 주인공이 우유부단하다면 대립자는 냉철한 성격으로 말이죠.
만약 주인공과 대립자가 동일한 목적을 향해 나아가는 우군인 경우 친구, 형제, 부모지간이라도 성격에 차이를 주는 것이 좋습니다. 중국의 고전 수호지에서 보면 두령 108인의 성격이 모두 다 가지각색이죠? 바로 이것이 수호지가 영원한 고전으로 남을 수 있었던 원동력인 거죠.
성격 창조에 있어 특히 유의해야 할 점은 부수적인 인물(단역, 조연)이라고 해서 무시하지 말고 한 사람 한 사람 모두를 살아 있는 개성적인 인물로 만들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왜냐하면 그들 모두는 작가가 버릴 수 없는 작가의 자식들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죠.
f.악역 만들기
작가는 자기가 창조한 악역에 특히 애착을 갖는다고 합니다. 베니스의 상인의 샤일록, 오델로의 이야고, 쿼바디스의 네로 황제, 이브의 모든 것의 김소연, 미스터 Q의 송윤아. 이런 악역들이 드라마를 얼마나 흥미롭고 박진감 있게 해 주고 있는지를 생각해 보면 작가에게 악역이란 갈등을 심화시키고 위기감을 고조시킴으로서 작품의 재미를 높여 주는 일등공신들이 아닐 수 없습니다. 작가는 악인을 절대 무시해서는 안됩니다. 성공적인 극작을 위해서는 주인공보다 악역을 키워야 합니다. 2000년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았던 숀 코네리가 악역으로 대뷔해 인상적인 연기를 했다는 사실은 너무나도 잘 알려져 있죠. 우리나라의 여배우 송윤아도 악역으로 깊은 인상을 심어 지금 톱스타 대열에 올랐죠.
이러한 악역의 전형을 가장 잘 살펴볼 수 있는 것이 미국의 서부극인데요. 서부극의 전형적인 구조는 항상 정의롭고 고독한 주인공과 부도덕하고 포악한 악당과의 대결로 이루어집니다. OK 목장의 결투라는 영화 아시죠? 악한은 많은 패거리들마져 거느리고 있어 주인공을 더욱 더 외소하게 만듭니다. 세인의 아란 랏드, 하이눈의 게리 쿠퍼, 황야의 무법자의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한결같이 거대한 골리앗의 존재 앞에 노출된 초라한 양치기 소년으로 비춰집니다. 그들은 절대적으로 불리한 상황 속에서 다윗의 역전극을 연출해 냄으로서 영웅이 됩니다.
서부극에 있어서 악당의 존재가 주인공보다 열세로 느껴지게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 불문율로 되어 있는데, 현대 드라마도 마찬가지입니다. 요즘 주가를 올리고 있는 '수호천사' 의 강세현은 회장의 이복동생으로서, 기획실장으로서 막강한 파워를 자랑하면서 주인공들을 곤경에 빠뜨리죠.
상대역을 키운다는 것은 곧 주인공을 키우는 것과 같습니다. 어린아이와 싸워 이기는 어른에게 누가 박수를 보내겠습니까? 주인공이 커지기 위해서는 강한 상대와 싸워 이겨야지요. 라이벌 선수끼리 숙명적인 대결을 펼치는 스포츠 경기를 볼 때 우리는 얼마나 큰 희열을 느낍니까? 그렇죠? 드라마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악역을 키운다고 해서 무조건 나쁜 면만 강조하려 드는 것도 안됩니다. 절대적인 선과 절대적인 악의 대결은 이미 낡은 수법입니다. 악역에게 리얼리티를 부여하기 위해서는 악인적인 성격에다 인간적인 면을 섞어 놓아야 합니다. 그래야 진부한 악인이 아닌 설득력을 지닌 현대적인 악인으로 살아날 수가 있습니다. 대부의 주인공 콜레오네는 비정한 갱조직의 보스지만 어린 손자를 위해서라면 뭐든지 하는 자상하고 천진한 성격의 소유자입니다. 베니스의 상인에서 샤일록은 빚 대신 사람의 살점을 요구하는 악덕 고리대금업자지만 그는 기독교 사회가 주는 유태인에 대한 멸시 속에서 유태인으로서의 자존을 지키기 위한 독립투사적인 면도 보여주고 있죠.
악인속에 이런 인간적인 면들이 살아 있기 때문에 관객은 악인을 미워하면서도 동시에 연민과 동정을 느끼게 됩니다. 악역 창조에 있어서 성공의 단서는 악함과 인간적인 면의 절묘한 조화에 있습니다. 악 일변도로 밀어부치면 절대 극작가로 대뷔할 수 없습니다. 먼저 인간미가 있는 매력 있는 인물을 만든 다음, 악인의 요소를 덧붙여 나가는 겁니다. 그렇게 창조한 악인은 관객이 미워하면서도 사랑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삼국지의 조조를 생각해 보시죠.
g. 보이지 않는 악역
절대로 악역이 아닌데도, 상황 때문에 악인이 되어야 하는 역할도 있습니다. 작가가 아닌 일반 관객은 전혀 이사람이 악역이라는 것을 인식할 수도 없는 악역이 있습니다.
좀 어렵다구요? 그럼 예를 들죠. 쉽게요.
요즘 '수호천사' 라는 드라마가 방영되고 있죠? 거기에 나오는 다소의 딸 '어진' 이 바로 보이지 않는 악역입니다. 아니 어린아이가 어떻게 악역이 될 수 있냐구요?
어진은 다소의 언니 딸로서 다소를 미혼모로 만듭니다. 처녀를 미혼모로 만들었으니 얼마나 악역입니까? 그리고 종국에는 태웅과의 사이에 가장 큰 걸림돌로 작용할 것입니다.
몇년 전 방영되었던 '젊은이의 양지'를 예로 또 들어 보죠. 거기에서는 이종원만이 악역이었을까요? 아닙니다. 홍경인도 악역이었죠. 보이지 않는 악역. 장애를 갖고 태어나 누나를 도탄에 빠드리는 악역이죠. 이렇게 장애를 가진 가족이나 경제력없는 친구 등도 상황적으로 악역의 역할을 하게 됩니다.
이렇게 보이지 않는 악역은 주인공의 현실 걸림돌로 작용하는 인물을 말합니다. 엄밀히 말해서 이러한 역할들은 악역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분명히 주인공의 더욱 더 위기의 구렁텅이로 몰아가는 것은 사실입니다.
전업작가가 되기 위해서는 이러한 보이지 않는 악역을 아주 섬세하고 개연성있게 설정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드라마가 일상 생활과 다른 매력을 주는 하나의 요인이기도 하죠.
보이든 보이지 않건 "악역"이라고 부르는 것은 번역상의 오류라고 볼수 있으며..이를 한자어 그대로를 빌려 그냥 직역을 한 데서 의미 부정확이 나온 것입니다. 악역보다는 적대역, 반동세력, 반동인물, 안타고니스트라고 불러야 더 합당합니다. 악역은 도덕상의 문제가 많은 인물의 역할만을 국한적으로 불릴 때나 합당함.
첫댓글 보이지 않는 악역...우와 정말 놀랬어요
보이든 보이지 않건 "악역"이라고 부르는 것은 번역상의 오류라고 볼수 있으며..이를 한자어 그대로를 빌려 그냥 직역을 한 데서 의미 부정확이 나온 것입니다. 악역보다는 적대역, 반동세력, 반동인물, 안타고니스트라고 불러야 더 합당합니다. 악역은 도덕상의 문제가 많은 인물의 역할만을 국한적으로 불릴 때나 합당함.
악역 역시 어렵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