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소 설 가
오영수는 1909년 2월 11일 경남 울주군 언양면동부리에서 아버지 오시영과 어머니 손필옥 사이에 장남으로 출생하였다. 본관은 해주(海州), 호는 월주(月州), 난계(蘭溪)
어린시절 허약한 유년기를 보냈으나 언양의 아름다운 자연경관은 그에게 정서적이고 안정된 동심을 형성시켜주었고, 훗날 그가 자연을 배경으로 하는 많은 서정적인 작품들을 출산하는 모태가 되었다.
9세까지 서당에서 한학을 수학하다가 언양 보통학교에 입학. 1928년 졸업한다. 그러나 가계가 어려웠던 탓에 졸업 후 면사무소일, 우체국 사무원, 실내장식사, 간판일 등으로 생계를 꾸려야만 했다.
1937년 일본으로 건너가 동경 국민예술원에 입학하여 1939년 졸업한 후 귀국하였다. 그 해에 7세 연하인 김정선과 결혼하게된다.
만주를 방랑하다가 43년 귀국하여 만주에서 벌어온 돈으로 고향에서 진 빚을 청산하고 교사인 그의 아내가 동래 일광보통학교로 전근됨에 따라 어촌인 동래 기장으로 이사를 한다. 이 때의 생활은 후에 오영수의 대표적 작품인「갯마을」의 배경이 되었다. 당시 일광에는 김동리의 백씨였던 김범부가 피신하고 있었는데, 이를 계기로 오영수는 김동리와 처음 인연을 맺게 된다.
오영수에게 있어서 김동리와의 인연은 문인의 한 사람으로서 자신을 알아봐주는 귀인을 만났다는 의미에서 커다란 전환점이 되었다. 1945년 해방이 되고, 그는 부산 경남여고에서 국어, 미술과를 맡아 교사로 부임하게 된다.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문학수업을 들어서게 되는데, 4년 후 1949년 9월에 오영수는 김동리의 추천으로 《신천지》에 「남이와 엿장수」를 발표하여 등단하게 된다.
오영수의 본격적인 문학활동은 1950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공모에 「머루」가 입선되면서부터 정식으로 시작된다. 6.25전쟁이 일어나자 그는 자원하여 종군작가로 참전하게 된다.
이 때의 체험들을 「동부전선」「종군기」「전우」「한탄강」「두 피난민」등의 작품에서 생생하게 담아내었다. 원산을 마지막으로 종군을 끝낸 오영수는 부산으로 돌아와 학교에 복직하게 된다.
서울 수복후 조연현, 임상도, 김구룡, 박재삼 등과 함께 순문예지인 《현대문학》을 창간하여 이때부터 오영수의 서울 생활이 시작되었다.
1954년 동심의 세계와 서정성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제1창작집 『머루』를 발간하고, 1956년에는 토속적이고 성격적 요소가 강한 제2창작집 『갯마을』을, 1958년에는 사실적이고 풍자적인 경향의 제3창작집 『명암』을, 1960년에는 원시적이고 선도적인 경향의 제4창작집 『메아리』를, 1965년에는 전통사회에 대한 그리움이 보이는 제5창작집 『수련』을 내놓으면서 왕성한 창작활동을 하였다. 그런데 그는 서울에서의 생활에 회의감을 느끼게 된다. 서울에서의 부정적인 체험은 「박학도」「불구」「여우」등의 작품에서와 같이 인간성 상실의 모습으로 드러난다.
1966년 신경성 위궤양 수술을 받음과 동시에 오랜 직장이었던 《현대문학》사를 떠난다. 1970년 한국문학가 협회 소설분과 위원장으로 피선되기도 하였다.
오영수는 고민과 고통으로 육체와 정신이 쇠약해져 고향과 자연에 대한 그리움을 이기지 못해 1976년 제6창작집 『황혼』을 출간한 후, 그 다음해 3월에 결국 경남 울주군 옹촌면 곡천리로 낙향하고 만다.
이 곳에서 그는 그동안 부진했던 창작에 전념하여 쇠약해진 건강에도 불구하고 1978년 제7창작집『잃어버린 도원』을 펴내었다. 1979년 1월 각 지방 사람들의 특성을 지리지에 의거하여 쓴 「특질고」가 문제가 되어 오영수는 심한 정신적 충격을 받고 앓아 누워 더 이상의 작품 창작을 할 수 없게 되었다.
여러 지방의 특질적 성격을 향토적이고 토속적 차원에서 고찰하고자 쓴 글이 특정지역 토속인들의 특성을 크게 파헤친 셈으로 받아들여져 커다란 물의를 빚게 되었던 것이다. 결국 그해 5월 15일 오영수는 간암으로 타계했다.
오영수의 현실인식과 문명비판 현실인식
오영수는 전형적인 단편소설 작가로서 주로 토속적이고 소박한 리리시즘과 소시민적인 따스한 정취가 작품의 주조를 이루고 있다. 그 때문에 일부 평론가들은 그를 현실도피적이고 환상적인 작가라고 비판하기도 하지만, 그의 소설이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
오영수의 작품에도 현실 인식이 담긴 것을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그도 해방 전후 공간이나 전쟁 전후 공간을 도외시할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는 한쪽 이데올로기를 채택하거나 근본적인 사회현실에는 큰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오영수는 그러한 상황에서 그만의 독특한 문제 의식을 찾아낸다. 적어도 그는 자본주의/사회주의의 이항대립 속에서 끊임없는 소모로 한쪽의 정신을 지키려는 노력보다는, 그 혼란스런 틈을 잠시 벗어나 그것보다 더 근본적인 무엇이 있지 않을까 고뇌한 것으로 보인다.
오영수는 "내가 보는 현실도피는 바로 사대(事大)다. 어떤 외래사조나 경향에 자신을 합리화시키거나 혹은 편승해버리는 것, 말하자면 주체성의 상실 내지는 포기다. 작가의 현실이란 현실과 타협할 수 없는 데서부터 비롯된다.
타협할 수 없기 때문에 하나의 세계를 설정한다. 그것은 이상이라고 해도 좋고 꿈이라 해도 좋다"라고 「변명」에서 그 나름의 지론을 강조하고 있기도 하다. 또한 그 글에서 "내가 쓴 소설에서 만에 하나라도 기쁘고 노하고 슬프고 즐거운 인생을 공감할 수 있었다면 나는 그것을 사회참여라고 할 수 있는 것이요 또한 작가로서 보람을 느낀다"고 술회하였다.
오영수는 시대문제를 다루고 있긴 하지만 그것을 배경으로 깔아두거나 부수적인 주제로서 그려낸다. 그것을 그의 기법상의 특징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후일담」에서는 '거창 학살 사건'과 유사한 '제주도 반란'을 다루고 있으면서도 이념보다는 생명 존중의 문제를 직접적으로 다루고 있다.
평범한 양민에 불과한 한 여인이 이념에 의해 희생되는 모습을 그린 이 소설은 빨치산이나 경찰의 폭력성을 고발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고통당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림으로써, 근본적으로 이념의 횡포를 고발하고자 하는 것이 오영수의 중요한 의도다. 그에게는 이념이 민족이, 또 그것보다는 생명의 숭고함이 더 소중하였던 것이다.
오영수의 초기의 작품들에서 보여준 근원적 가치를 찾으려는 몸부림은 점차 버림받거나 소외된 사람에 대한 관심으로 연결된다. 이념에 충실하고 시대에 적응하는 사람보다는 거기에서 이탈된 생명체일지라도 그가 인간이라면 삶의 진정한 가치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이 오영수가 시대와 현실, 그리고 자신의 삶을 바라보는 태도이다. 「안나의 유서」에서는 자신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양갈보가 된 소녀가 자신의 죄는 "주어진 한 생명을 성실히 살아온 죄"밖에는 없다고 말하며 죽어간다. 「피」는 김소령이 간첩인 동생을 자수시키려다가 동생에게 일깨움을 주고 스스로 죽는다.
이렇듯 오영수는 이념을 다루기보다는 전쟁으로 희생된 사람들에 대한 사회적 무관심이나 냉대에 더욱 가슴 아파한다. 그래서 그는 이념을 우회적으로 거부하고, 보다 적극적으로 문명에 대한 비판으로 나아간다.
문명비판
오영수의 이상과 꿈은 결코 웅장하거나 거창한 세계로의 지향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가 의미하는 것은 인간의 가장 진솔한 원시성 같은 것이다.
물질만능의 세계에서 권력과 금력에 시달리고 허덕이며 패배의 쓴 잔을 마신 가련하고도 착한 인간들을 그는 즐겨 작품 속에 등장시키면서, 그러한 무리들이 어쩔 수 없이 모정과도 같은 것-이것이 오영수 문학의 토양이며 속성이라고 하겠다.
오영수의 소설은 반외래사조와 이에 따르는 향토성 옹호, 그리고 좀더 근본적으로는 반문명과 이에 따르는 인간의 원초성 옹호로 특징지어진다. 이것은 1950년대 문학에 팽배했던 무비판적 외국 문화 수용에 대한 반작용으로 보아진다.
오영수는 이념보다는 '문명'의 문제가 더 근원적으로 인간을 황폐화시키는 것이라고 보았다. 그는 직접적으로 시대 현실을 다루고 있지는 않으나 문명비판이라는 현실 인식을 통하여 그의 소설을 전개해 나간다. 식민지와 한국전쟁의 후유증, 그리고 산업화 초기의 갈등들... 오영수는 문명화되어가는 시대현실, 제대로 된 가치관도 없이 이데올로기에 휩쓸려 가는 현실이 걱정이었던 것이다.
우리는 문명화의 이름으로 파멸을 향하여 치닫고 있었던 것이다. 시대나 사회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그대로 부정적으로 드러났다면 그것은 한낱 패배주의에 그치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나 오영수는 절대적으로 절망적인 상황에서 깊은 고뇌를 통해 새로운 삶의 방향을 찾아냈다. 그리하여 인간성의 진정한 회복이 가능한 세계가 「잃어버린 도원」으로서 그려지게 된다.
「박학도」에서 박학도는 시대의 희생자로서 끝까지 우리 사회나 우리 문명 속에 적응하지 못하게 된다. 결국에는 아내를 양공주로 떠나보내는 지경에 이르르게 될 정도로 무능력한 박학도를 화자는 따뜻한 시선으로 받아들인다.
소외된 타인에게 끊임없이 관심을 보이는 이러한 태도는 범휴머니즘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오영수는 등장인물에 대해 무한한 애정을 기울인다. 그들은 현실 속에서 버림받고, 소외되고, 범죄의 늪에 빠지기도 하나 본래부터 그렇게 추악한 사람은 아니다. 다만 급변하는 문명 속에서 적응하지 못했을 뿐이다. 오영수는 인간을 욕하기 보다는 문명비판의 지점으로 나아간다.
오영수의 작품세계
오영수의 작품세계는 배경과 주제, 그리고 작중인물을 기준으로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첫째, 주로 그의 초기 작품에 많이 나타나는 것으로 농어촌의 순박한 서민들의 인정, 도시 서민들의 애환, 순진무구한 동심의 세계를 통하여 선량한 서민들의 정서를 나타낸다.
둘째, 작가가 6.25전쟁의 체험을 바탕으로 하여 형상화한 작품들로 이데올로기에 의해 희생되는 소시민의 비극과 분단으로 인한 이산가족의 슬픔, 산업화와 더불어 일어난 물질문명의 가속화가 이기주의와 황금만능주의를 가져와 인간성의 상실을 초래한 것을 비난, 염려하는 내용들을 담고 있다.
셋째, 문명의 손길이 닿지 않은 원시 공동사회에 가까운 생활을 하면서 그곳에 사랑의 공화국을 세우는 원시 지향의 자연성과 작가가 말년에 도시생활에서 염증을 느끼고 낙향한 후에 주로 나타난 이상세계에 대한 향수를 다룬 작품들이다.
소설에 등장하는 인간상
오영수의 소설에 등장하는 상당수의 인물들은 농어촌에 살고 있거나 그런 곳을 고향으로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다. 현실대처에 있어서는 상당히 소극적이지만 선량하며 따뜻한 인정을 소중히 여기는 인물들이기도 하다. 이들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은 선의로 가득차 있고, 인간을 긍정적으로만 바로보면서 따뜻한 인정의 미학을 구축해 왔다. 그렇기에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선하고 그 분위기는 소박하면서도 서정적이다. 소설에 등장하는 인간상은 바로 그의 소설이 서정적이게 하는 요소가 된다.
오영수는 자연 속에서 인간 본연의 삶을 추구했고, 자연과 조화된 생활만이 현대문명의 피해로 잃어버린 인간성을 회복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했다. 「머루」「화산댁이」「갯마을」「메아리」「태춘기」등의 오영수 작품들은 인간의 갈등, 대립 관계를 비판적인 입장에서 보기 보다는 따뜻한 인간애를 서정적이고 긍정적인 입장에서 보려 하는 작가의 시선에서 기인한다.
오영수의 작품들에서 도시를 배경으로 살아가는 서민들은 두 가지 관점에서 보여진다. 먼저 그 인물들은 다분히 나약한 순종의 모습과 패배한 군상의 씁쓸한 좌절의식을 가지고 있다. 현실에 내밀리고 생존에 패배한 낙오된 군상이다. 이들 군상들은 현실을 증오할 줄도 모르고 묵묵히 자신의 새로운 삶을 찾아 떠다니는 소극적인 운명론자들이다. 이처럼 이들의 의식과 행동이 생활인으로서는 나약한 것이 사실이지만, 조용하고 나지막한 그들의 목소리와 수동적인 그들의 태도에서 진실된 삶의 의의와 인간의 참모습을 발견할 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예로 범죄자들이나 지극히 순박하고 순수한 모습으로 묘사한 「명암」이 있다.
또한 그의 작품은 주로 자연을 등지고 도시를 배경으로 한 인물들의 대립에서 선한 인물이 피해를 입는 것으로 설정되어 있다. 이는 이들의 삶이 자연에 몰입하여 농촌 생활을 근본으로 삼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게 불행한 결과를 낳게 되었다는 작가의 주관을 반영하고 있다. 이 외에도 순진무구한 동심의 세계를 표현하기 위해 때묻지 않은 순수한 소년, 소녀를 등장시키기도 한다. 자연 그대로인 동심을 통해 인간의 선성을 강조하려 하는 것으로 「태춘기」「코스모스와 소년」「요람기」등이 있다.
전쟁과 물질문명에 대한 비판
전쟁이 끝나고 1960년대에 이르자 전쟁휴유증과 갑작스런 산업화에서 비롯된 숱한 폐해들이 잇따른다. 오영수도 그러한 현실에 대해 깊은 고뇌를 표출하였다. 「피」「후일담」「안나의유서」등에서 이를 찾아볼 수 있다. 그는 「안나의유서」를 통해 전쟁으로 인해 희생된 사람들에 대한 사회적 무관심이나 냉대를 고발, 비판하고 있다. 작가는 현실을 직접적으로 비판하지는 않으나 안나의 기구한 일생과 그녀의 항변, 그리고 그녀의 죽음을 보여줌으로써 가슴 뭉클한 감동과 함께 사회에 대한 간접적인 비판을 하고 있다.
분단시대를 체험하면서 그는 이데올로기에 의해 무참히 희생되는 서민들을 등장시켜 전쟁의 잔악성을 고발하면서 인간의 휴머니즘을 강조한다. 오영수는 전쟁의 잔악성을 고발하는 것에만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6.25의 상처가 준 아픔과 그 치유의 문제를 다루는 데서 한걸음 나아가 이산가족의 문제를 통해서 분단상황을 검증하기도 했다. 이러한 경향의 작품으로 「새」「오도영감」등이 있다.
오영수는 전쟁 휴유증이라는 역사적인 문제에만 관심을 기울인 것은 아니었다. 그는 도시생활에서 얻은 결론으로 도시인들이 급속적으로 발달하게 되는 물질문명의 폐단으로 인간성을 상실하고 있음을 극렬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그에게 있어서 물질문명의 발달은 인간을 자유스럽고 편안하게 해주기 보다는 삶을 부자연스럽게 만들고 정신적인 불안정과 혼란을 가져오는 병폐가 된다. 고도로 발달한 기계문명이 비인간화로 치닫게 하는 모종의 기여를 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인간성 상실에 대한 비판의식은 「여우」「개개비」「기러기」「악몽」「낮도깨비」「회신」「피로」「골목 안 정경」「엿들은 대화」「세배」「어떤 대화」등의 작품에 잘 나타나 있다.
발빠르게 변모한 산업사회에서 비롯되는 문제에는 환경오염과 도시성 질병, 산업 재해 등 여러가지가 있다. 또한 간접적인 폐해로 인간성의 상실도 들 수 있다. 물질문명의 발달은 환경오염, 각종 사고, 질병 등의 직접적인 폐해 뿐 아니라 황금만능주의와 이기주의 및 개인주의를 유발시켜 인간성 부재라는 간접적인 폐해를 가져왔다. 오영수 소설에 나타난 인간성 상실의 경우를 들어보면 예전의 농촌사회에서는 결코 찾아볼 수 없었던 사기 행각, 불신 풍조, 폭력 난무, 부정부패, 공금횡령 등 극단적인 개인주의와 이기주의에서 비롯된 각종 범죄들을 의미한다. 이처럼 오영수는 인간의 본성을 무너뜨리는 현대 문명사회의 이기성을 고발하며, 편리와 물질본위의 도시사회에서 점차로 상실되어가는 인간에 대한 존엄성을 고발하고 있다.
귀향,귀농의식
오영수의 후기 문학은 주로 자연으로 돌아가서 인간답게 살자고 주장하는 귀향 의식과 귀농 의식에 바탕을 둔다. 바로 새로운 이상향의 추구에 대한 문제를 제시하고 있다. 그의 소설에 나오는 배경들은 대개가 농어촌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 그래서 오영수의 소설을 서정 소설이지만 농촌 소설, 전원 소설이나 농민 소설이라고도 한다. 이러한 경향은 '자연으로의 회귀'라는 오영수 소설의 일관된 주제에서 비롯된 것이다. 「망향기」「삼호강」「황혼」「실향」「메아리」「은냇골 이야기」「오지에서 온 편지」「잃어버린 도원」등 다수가 있다.
오영수는 불신풍조가 만연하고 인간성이 상실되어 가는 이 시대에 사람을 믿고 서로 도우며 사는 사회의 모습을 제시한다. 즉 물질만능주의, 기능다원주의, 기계의 인간 대체주의가 만연하는 피폐한 현실 속에서 제대로 삶의 뿌리를 내리지 못하는 사람들의 인정과 애정의 공동체를 건설하려 한 것이다.
그것은 근대화되기 이전의 순수 소박한 상태, 즉 문명의 손길이 닿기 이전의 생활방식을 그리는 가운데 가장 토속적인 삶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곳에는 상호간의 적대적, 경쟁적 관계를 청산하고 신뢰하고 단결하는 생존의 끈질긴 몸부림만이 존재한다.
이처럼 그는 도시의 물결에 오염되지 않은 아름다운 자연풍경이나 비정한 도시인심에 오염되지 않은 순박한 시골 사람들의 생활 풍경을 동경하고 그곳을 이상향으로 추구하고 있다. 즉 도시의 혼돈 속에서 지치고 시달린 사람들이 그 도시를 버리고 인간이 타고난 선성이 제대로 뿌리박을 수 있도록 두메산골을 찾아가는 것이다. 이처럼 그의 이상향은 농촌의 원시 공동체 생활을 의미한다.
< 갯 마 을 >
줄거리
동해의 H라는 어촌은 유독 과부가 많다. 해순은 뜨내기 고기잡이와 해녀 사이에서 난 처녀이다. 그녀는 열아홉에 성구에게 시집을 간다. 착실한 성구는 혼자 힘으로 홀어머니와 동생 , 아내를 부양한다.
고등어철이 돌아오자 성구는 여덟사람이 한패가 되어 원양출어를 나간다. 갓시집온 해순은 돌담에서 전송을 한다. 바다로 떠난지 사흘째 되던 날 폭풍이 몰아치더니 그들의 배는 돌아오지 않는다.
해순은 성구가 돌아올 것을 믿지만 세 식구가 먹고 살아야 하기에 물옷을 입고 바다로 나간다. 어느날 밤 해순은 종일 미역바리를 하고 쓰러져 잠이 든다. 압박감에 눈을 뜬 그녀는 상고머리를 한 사내가 자기를 겁탈하고 있음을 발견한다. 다음날 시어머니는 잘 때 문단속을 잘하라고 한다.
방바위 옆에서 한천을 펴고 있는 해순에게 상수가 나타나 고향에 가서 함께 살자고 하나 해순은 어젯밤의 사내가 상수임을 알고 칼로 위협하나 실패한다.
아낙네들 사이에 이 소문이 파다해지고 시어머니는 해순더러 제사나 지내고 개가하라고 한다. 결국 해순은 상수를 따라가나 상수가 징용으로 끌려가자 산골에서 견디지 못하고 바다를 그리워한다. 두번째로 맞는 성구의 제사를 사흘 앞두고 해순이 삼십리 산길을 단숨에 달려온다.
그녀는 다시는 갯마을을 떠나지 않겠노라고 한다. 초여름밤 멸치잡이를 알리는 꽹과리 소리를 울리자 해순은 후리막으로 나가 줄을 잡는다. 누군가가 해순의 손을 잡고 치마 밑을 더듬는다. 후리질이 끝나고 해순은 짓(수확물)을 받아들고 집으로 돌아온다. 돌아오지 않는 성구와 징용으로 끌려간 상수를 생각하면서 해순은 괴로운 밤을 보낸다. 늦게 잠이 든 그녀의 방에 시어머니가 들어와 문을 걸고 자라고 하자 해순은 얼굴이 달아올라 고개를 들지 못한다.
작품분석
플롯 :「갯마을」은 해순의 삶이 두부분으로 나뉘어 서술되고 있다. 그러나 뒷부분은 그 양이나 내용에 있어 미미할 뿐만 아니라 독립성을 지니지도 못하고 일종의 에피소드로 처리되고 있어 이 소설은 단순플롯의 구성을 지니고 있다.
시점 : 시점에 있어서 작가는 해순을 제외하고 거의 대부분 객관적인 위치에서 사건을 서술하고 분위기를 묘사하고 있다. 그러나 해순을 묘사함에 있어서 작가는 작가의 전지적 입장을 취하고 있으며, 부분적이긴 하나 성구와 윤노인 그리고 상수를 묘사함에 있어서도 주관적인 경향을 보이고 있다. 따라서 이 소설의 시점은 전지적인 면이 적지 않지만 작가 관찰자시점으로 봄이 좋을 듯 하다.
배경 : 공간적 배경은 바닷사람들의 기쁨과 애환이 깃든 갯마을이 주종을 이루고 있다. 시간적 배경은 해순이 현재의 삶이 묘사되다가 해순의 어린시절과 결혼 등이 회상되고 다시 현재로 돌아와 이야기가 진행된다. 사상적 배경은 자연친화사상과 애로티시즘을 엿볼 수 있다.
내용분석
오영수의 소설세계는 주로 문명과 동떨어진 원시적 세계가 주무대를 이룬다. 자연과 인간이 하나로 교감되는 세계, 인간과 인간이 갈등이 없는 세계이다. 그의 무대는 오지나 벽지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삶은 도회지의 삶을 살고 있는 우리로서는 매우 비현실적인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문명의 흐름에 아랑곳않고 과거의 삶을 고스란히 안고 있는 모습으로 보이고, 사람들도 어리석어 보인다. 「갯마을」에서 그리고 있는 것은 이렇게 배경과 인물의 원시적 건강성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인물들은 원시적 자연 그대로의 삶을 살아간다.
이 소설에서 주된 스토리를 형성하는 남녀 간의 문제는 이 원시성과 관련해서 살펴보아야 한다. 해순이가 여러 남자를 거치는 것은, 그녀가 반도덕적이어서가 아니라 인간의 자연스런 성정과 관련되는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원시 공동체의 성의 풍속은 '공유하는 성'이었으며, 「갯마을」에서의 성의 모습도 이런 성격을 띠고 있다. 자연적 질서에 놓인 인물이 바로 해순이란 점을 고려한다면, 이 소설 이후에도 해순이의 삶은 계속 그런 질서에 놓이게 될 것이 드러난다.
해순이가 바다로 되돌아옴은 기존의 삶으로의 복귀, 즉 성구와의 첫 인연으로 회귀함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해순은 그런 인륜적 도덕심으로 돌아온 것이 아니다. 이 작품은 먼저 현재의 상황이 그려지고 후반부에서 과거가 조명된다. 현재의 상황은 상수를 따라갔다가 바다를 못 잊어 되돌아온 날 밤이다. 여기서 시어머니는 "얘야, 문을 꼭 닫아 걸고 자거라."라고 말한다. 문을 닫아 걸고 잔다는 것은 다른 남자의 침입을 막는 것을 의미한다. 성구가 죽고 난 뒤 문을 닫지 않아 상수의 침입을 받았고, 상수를 따라 개가해 갔던 것인데 이 사건을 요약적으로 말해주는 이 말이 현재의 상황에서도 다시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이 점은 해순이를 계속해서 완강하게 따라다닐 것이다.
해순이가 바다로 돌아온 것은 바다가 그리웠기 때문이고, 바다에는 천진한 원시성이 그대로 녹아있는 세계이며, 그 자연의 일부로 애욕적 세계가 있는 것이다. 따라서 해순의 애정문제는 바다라는 자연의 한 요소일 뿐이다. 여기에서 작가의 의식을 엿볼 수 있다. 즉 해순이가 도저히 떠날 수 없게 만드는 자연을 중심으로 삼았다. 자연과 인간이 혼융일체가 된 원시성의 건강한 자연에 매료된 해순을 통해 문명과 동떨어진 세계의 풋풋한 삶을 보여주려는 것이다. 해순에게 바다는 생활의 터전이 아니라 삶 그 자체인 것이다. 바다가 없이는 한 순간도 견딜 수 없을 정도로 그녀에게 이미 바다는 종교와 같은 세계다. 해순이는 성구나 상수 등 어떤 사내를 전전하는 삶을 살 수는 있으나 바다 없는 삶은 살 수 없는 것이다.
오영수가 그리는 세계는 이렇게 자연의 원시성이 살아있는 이상향이다. 그것은 자연과 인간이 어우러져 하나의 공동 사회를 이루며, 이는 생명의 유지를 위한 작업들도 함께 나누며, 분배에 있어서도 자기 소유가 없으며, 자연의 싱그러움을 에너지원으로 삼는 원시 공동체를 의미한다. 후리막에서의 공동작업, 미역 등 해산물을 함께 따면서 나누는 아낙네들의 모습에서 그런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갈등 없는 화합의 세계, 문명적 요소가 없는 원시적 세계, 건강한 생명의 약동이 있는 세계가 바로 오영수의 이상세계였던 셈이다.
<참 고 문 헌>
울산문화원, 울산의 문화인물, 2000
송승환. 한국현대소설 제대로 읽기. 우리 문학사. 1998
장사선. 한국현대소설 연구. 새문사. 1990
송현오. 현대소설 이해와 감상. 관동출판사. 1992
이재인. 오영수 문학연구. 문예출판사. 2000
김윤식. 작가와 내면풍경. 동서문학사. 1991
한국문학평론가협회 편. 한국현대작가연구. 백문사. 1989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