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코리아 출신 탤런트 고현정씨(32)와 신세계 정용진(35) 부사장이 지난 11월 19일 전격 협의이혼함으로써 8년6개월간의 결혼생활에 종지부를 찍었다. 이에 앞서 5년 전 동아그룹 최원석 전 회장과 이혼한 옛 인기가수 배인순씨 (55-본명 김인애)는 최근 최 전 회장과의 만남과 이혼 과정을 기록한 자서전 형식의 소설 [30년 만에 부르는 커피 한 잔]을 출간, 발간 닷새 만에 8만부가 팔리는 등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며칠 간격으로 터진 배인순씨와 고현정씨 사연은, 재벌과 스타 연예인 커플의 결혼과 파경이라는 공통점으로 인해 세인의 관심을 한층 더 증폭시키고 있다. 고현정-정용진의 이혼 스토리 역시 배인순-최원석 스토리 못지않게 복잡한 내막이 있을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시각이다.
■안인숙-정윤희-문희 잡음 없어
재벌과 스타 연예인 커플로는 최원석-배인순, 정용진-고현정 외에 대농그룹 박영일 회장과 영화배우 안인숙씨, 그리고 1970년대 트로이카 중 한 명이었던 정윤희씨와 조규영 중앙산업 회장이 있다.
안인숙씨는 1970년대 한국 영화의 한 획을 그은 최인호 원작-이장호 감독의 [별들의 고향]에서 여주인공을 맡은 배우다. 박영학 대농그룹 창업주의 장남이었던 박영일 회장은 당시 미도파 사장이었는데, 청순한 이미지로 인기가 높던 안인숙씨에게 평소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다가 1974년 가을 미도파백화점에서 열린 연예인미술전에 출품된 안인숙의 수채화를 보고 청혼할 마음을 굳힌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두 사람은 당시 TBC TV 해설위원이었던 봉두완씨의 소개로 만나 교제를 했고 1975년 4월 화촉을 밝힘으로써 부부가 됐다.
정윤희씨와 조규영 중앙산업 회장은 1984년 조 회장의 부인이 두 사람을 '간통'으로 강남경찰서에 고발하면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다. 당시 정윤희씨는 유부남과의 불륜으로 한 가정을 파탄시켰다는 비난을 받으며 '간통죄'로 유치장 신세까지 졌고 이를 계기로 연예계를 완전히 떠나게 됐다. 그러나 정윤희씨가 조 회장을 만났을 당시 조 회장은 이미 이혼절차를 밟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고, 이후 조 회장은 아내와 이혼 후 정윤희씨와 결혼했다. 안인숙씨와 정윤희씨는 결혼과 함께 가사와 육아에만 전념했고, 두 사람 모두 지금까지 잘 살고 있다.
배인순-최원석 전 회장이 결혼한 건 박영일 회장과 안인숙씨가 결혼식을 치른 이듬해인 1976년 10월이었다. 배인순씨는 동생 배인숙씨와 함께 1960년대 말 '펄 시스터즈'라는 이름으로 무대에 올라 대중의 폭발적 사랑을 받았다. 당시로서는 상당히 큰 키인 168㎝의 훤칠한 신장에 날씬한 몸매, 빼어난 미모, 호소력 짙은 가창력은 대중의 눈과 귀를 사로잡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자매는 데뷔하자마자 스타덤에 올랐는데, 그들에게 첫 음반에 담길 곡을 준 이는 바로 미8군무대에서 만난 록의 대부 신중현씨이다. 당시 신중현씨에게 받아 노래한 [커피 한 잔] [님아] [떠나야 할 그 사람]은 거리마다, 방송마다 흘러나왔을 정도로 인기를 얻었다. 이 음반은 오디오 보급이 미흡했던 시절임에도 불구하고 1백만 장이라는 경이적인 판매고를 기록했다. 데뷔 1년 남짓 만에 가수왕에 등극됐을 정도다.
■대를 이어 연예인과 관계 맺기도
8년여 동안 가수로서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펄 시스터즈는 배인순씨가 최 전 회장의 프로포즈를 수락하면서 해체됐다. [30년 만에 부르는 커피 한 잔]에 따르면 최 전 회장과 배인순씨는 미국에서 겨우 몇 번 만났을 뿐인 상태에서 결혼을 결정했다. 배인순씨는 최 전 회장의 두번째 부인이다. 배인순씨와 결혼하기 전 최 전 회장에게는 이미 그가 스무 살 시절 사랑했다는 여배우 ㅇ씨와의 사이에 낳은 딸과, 정식으로 결혼한 첫째부인 사이에서 낳은 남매가 있었다. 최 전 회장의 첫번째 부인 김혜정씨 역시 연예인이었다는 점도 흥미롭다. 김혜정씨는 1960년대 한국 영화계를 주름잡았던 육체파 여배우였다.
안인숙-정윤희씨 외에 잘 살고 있는 재벌-연예인 부부는 지금은 작고한 장강재 전 한국일보 회장과 결혼, 은막을 떠난 1960년대 톱스타 문희, 그리고 영화계 재벌로 명성을 떨친 곽정환 서울극장 사장과 결혼한 고은아씨이다. 모 그룹 창업주인 ㅅ회장과 이 기업의 CF모델로 활동하던 ㅅ씨도 20여 년 전부터 실질적인 결혼생활을 하고 있다.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은 재벌들의 대를 이은 연예인과의 관계이다. 최 전 회장의 장남으로 첫 부인 김혜정씨의 소생인 최우진씨는 수개월 전 영화배우 전도연씨와 염문설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가 꺼졌고, 장중호 일간스포츠 사장은 탤런트 명세빈씨와 결혼한다는 이야기가 어머니인 문희씨의 발언을 통해 언론에 보도됐으나, 이후 '없던 일'이 됐다. 전도연-최우진씨의 열애 보도 이후 국내 연예지 등에서는 과연 전도연씨가 1999년 최 전 회장의 세번째 아내가 된 KBS 아나운서 출신인 장은영씨와 고부지간이 될 것인가를 두고 설왕설래했다.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가 될 뻔한 이들의 나이 차이가 겨우 세 살밖에 나지 않아서였다.
당시 언론보도에 따르면 전도연씨와 최우진씨의 만남도 고현정-정용진 커플 못지않게 드라마틱했다. 본격적으로 사귀기 전부터 서로 얼굴을 알고 지내는 사이이긴 했으나 두 사람을 결정적으로 연결해준 사건은 지난해 9월 서울 강남의 한 포장마차에서의 소동이었다. 포장마차에서 매니저와 함께 술을 마시던 전도연씨에게 몇몇 건달이 시비를 걸어왔고, 위기감을 느낀 매니저가 최우진씨에게 도움을 청해 최씨가 '백마 탄 왕자'가 됐다는 것이다. 전도연-최우진씨의 염문설은 지난 봄 여성지를 중심으로 번졌으나, 전도연씨가 한 인터뷰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지금은 두 사람이 친구 사이로 되돌아갔다고 한다.
고현정씨와 정 부사장의 만남도 한 편의 영화와 같았다. 1993년 미국 뉴욕. 어머니와 함께 뮤지컬 [미스 사이공]을 보기 위해 브로드웨이의 한 극장에 들어선 고현정씨 모녀는 언어가 통하지 않는 상황에서 좌석을 못찾아 고생했고, 이때 주변에 앉아 있던 정 부사장이 도움을 줬다. 이튿날 뉴욕 거리에서 고현정씨는 소매치기를 당했는데 마침 절묘하게 정 부사장의 도움을 또 받게 돼 데이트를 시작하게 됐다는 것이다.
■황신혜-한성주 안타까운 이별
그러나 소설 같은 만남과 열애, 결혼까지 이어졌고, 슬하에 아들과 딸까지 둔 두 사람은 몇 년 전부터 끊임없는 불화설에 휘말렸다. 결혼과 함께 병적으로 언론을 기피해온 고현정씨는 2001년 4월 서울 한남동 집에서 시가 1억5천만원 상당의 다이아몬드 반지를 도난당한 사실이 보도된 것을 시작으로 지난해에는 새벽에 한남동 근처에서 홀로 BMW 승용차를 몰고 가다가 3중 추돌사고를 일으켜 다시 한 번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그리고 가장 최근인 지난 10월 25일 새벽 서울 한강시민공원 주차장에서 신세계 법인 소유의 시가 1억7천5백만원 상당의 스포츠카 포르셰와 8백50만원 상당의 금품을 도난당한 일이 발생했다. 이 사건이 두 사람의 이혼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는 게 일반적인 시각이다.
배인순-고현정씨 외에도 재벌 또는 준재벌과 화촉을 밝혔으나 끝내 헤어져 안타까움을 자아낸 여자 연예인은 탤런트 황신혜씨와 미스코리아 출신 아나운서 한성주씨이다.
황신혜씨는 1987년 ㅇ그룹 2세와 결혼, 9개월 만에 이혼하는 아픔을 겪었으나 현재 두 살 연하의 청년사업가와 재혼, 여섯 살배기 딸을 두고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있다. 또 한성주씨는 1999년 ㅇ그룹 3남과 결혼했다가 10개월 만에 헤어졌다. 이혼 후 한성주씨는 3년간 두문분출하다가 방송활동을 재개했다.
반면 1997년 당시 한글과컴퓨터로 유명세를 떨친 이찬진 드림위즈 사장과 결혼한 김희애씨, 2001년 이재웅 다음커뮤니케이션 사장과 화촉을 밝힌 아나운서 황현정씨, 그리고 지난해 휴먼컴 홍승표 회장과 결혼한 탤런트 오현경씨 등은 아직까지 별 탈 없이 잘 살고있다.
정신과 전문의 정찬호 마음누리 원장은 재벌과 연예인의 결혼에 대해 다음과 같이 분석했다.
"사람은 누구나 목표가 있어야 하는데 기본적으로 의식주에 대한 욕구가 채워져 있는 데다 경제적 부까지 이미 이뤄놓은 사람은 정치적 야망을 갖거나 누구나 선망하는 사람을 자신의 소유로 만들고 싶은 욕망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들의 눈에 쉽게 들어오는 게 여자 연예인이다. 그러나 그들의 결혼생활은 순탄치 않은 경우가 많다. 결혼에서 초반 행복의 여지는 이질성이지만 한 연구에 의하면 이질적 사람간의 결혼보다는 동질적 사람간의 결혼이 오래가고 행복도도 높다고 한다. 재벌과 연예인은 그 이질성 때문에 처음엔 서로 상당한 호감을 느끼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시들해지기 쉽다. 누구나 선망하는 톱스타였다고 해도 일단 자기의 아내가 되면 연예인이 아니라 마누라로 인식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