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산 건봉사
여행 포인트
한국전쟁을 거치며 완전히 폐허가 됐던 절이어서, 여전히 폐허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대부분의 전각들이 새로 지은 것이지만, 일주문은 옛 모습을 보존하고 있다. 금강산 자락의 건봉산 중턱에 자리잡아 ‘금강산 건봉사’라 불리는 이 절은 서기 520년 아도화상이 ‘원각사’라는 이름으로 창건했다. 기록대로라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고구려 절집 가운데 하나다. 한때 3천 칸이 넘는 위용을 자랑했지만, 1878년에는 산불로 절집 건물이 모두 소실됐으며, 이후 복원했으나 다시 한국전쟁 때 잿더미로 바뀌었던 수난과 폐허의 절집이다. 전쟁 이전의 모습으로 살아남은 것은 1919년에 세운 불이문이 유일하다. 불이문은 절집의 세 가지 문 중 가장 안쪽에 있는 문으로 聖과 俗, 즉 부처의 세계와 세속이 서로 다르지 아니하다는 뜻으로 붙인 이름이다. 현재까지 남아 있는 불이문을 기준으로 그 안쪽 절집의 규모를 보면, 이 절의 한창 때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불이문 바깥으로 일정한 거리를 두고, 천왕문과 일주문이 있었다 생각하고 짐작하면 된다. 또 지금도 확인할 수 있는 부도전만으로도 건봉사의 옛 규모를 가늠할 수 있다. 민통선 안쪽에 자리 잡고 있는 까닭에 1988년까지는 민간인의 출입이 불가능했다. 덕분에 고즈넉한 옛 절터의 분위기가 잘 보존되어 좋다.
출처:(대한민국 여행사전)
건봉사급건봉사말사사적[乾鳳寺及乾鳳寺末寺事蹟]
요약
『건봉사급건봉사말사사적』은 한용운(韓龍雲)이 31본산의 하나인 건봉사 본사와 말사에 관한 자료를 수록하여 1928년에 간행한 사적기이다. 건봉사 본사와 말사 각 사찰의 연혁을 편년체로 적고, 부속 암자, 재산, 유물, 진영, 명소 등의 순으로 정리·기술했으며, 고승들의 활동을 소개했다.
정의
한용운이 31본산의 하나인 건봉사 본사와 말사에 관한 자료를 수록하여 1928년에 간행한 사적기.
저자
만해 한용운(1879∼1944)은 충남 홍성 출신의 승려 시인이자 3·1운동에 불교계 대표로 참가한 독립운동가이다. 시집 『님의 침묵』(1926)으로 유명하며 불교 개혁론을 담은 『조선불교유신론』(1913)도 널리 알려져 있다.
어려서 한학을 배우고 동학 농민 혁명에 참여했다가, 1896년 설악산 오세암에 들어갔다. 1905년에 백담사(百潭寺)에서 출가했고, 1908년 전국 사찰 대표 52인의 한 사람으로 서울 원흥사(元興寺)에서 원종(圓宗) 창설에 중요한 부분을 담당하고 일본에 가서 신문명을 시찰했다. 1910년 일본의 강제 병합 이후 임제종 운동에 가담했고 불교계의 혁신을 주창했다. 1918년, 서울에서 월간지 『유심(惟心)』을 발간했고, 1919년에 3 · 1운동 때는 백용성(白龍城, 1863-1940)과 함께 불교계를 대표하여 민족 대표 33인에 들어가 활동했다. 이후 조선총독부가 시행한 사찰령(寺刹令)의 철폐를 주장하며 불교 자주화와 대중화를 추진했고 신간회 경성 지회장을 맡는 등 저항 운동에 앞장섰다.
구성과 내용
『건봉사급건봉사말사사적(乾鳳寺及乾鳳寺末寺事蹟)』은 1878년(고종 15)의 건봉사 화재로 인해 사찰 자료가 소실되자 부족한 기록을 보완하여 갖추기 위해 만든 사적기이다. 1878년 4월 3일 산불이 일어나 사우 3,183칸이 전소되었다. 그 이듬해에 고종과 왕비 및 왕세자 등 왕실의 후원으로 대웅전과 어실각, 명부전 등 전각 상당수가 중건되었지만 사찰 사료는 대부분 없어졌다. 이후 일제강점기인 1927년 31본산의 하나인 건봉사의 본말사회 회의에서 사지(寺誌) 편찬이 의결되었고, 1928년 6월 건봉사에서 이 책이 간행되었다. 건봉사 주지 덕련 덕문(德蓮德文, 1887∼1949)이 최관수(崔觀洙) 등에게 본사와 말사를 답사하여 문헌 기록을 조사 · 수집하게 했고, 한용운이 이를 바탕으로 취사선택하여 사적기를 편찬했다.
『건봉사급건봉사말사사적』은 편년체로 각 사찰의 연혁을 적고 부속 암자, 재산, 유물, 진영, 명소 등의 순으로 정리 · 기술하였다. 권두에는 이대련(李大蓮)과 한용운이 쓴 서문, 그리고 범례가 나온다. 말미에는 고문서나 사적기 등의 중요 자료가 수록되어 있다. 건봉사 본사에 대한 내용은 총 7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사적과 소속 사암에 대한 개관에 이어 제3장 '건봉사의 건물 토지 임야’, 제4장 '건봉사의 보물’, 제5장 '건봉사의 탑 · 부도 · 비’, 진영과 명소, 고기록 등을 유형별로 묶어 정리했다. 본서의 내용은 조선 후기 건봉사와 말사의 고승과 사세(寺勢)의 변천에 관한 것이 주류로서 건봉사와 말사인 백담사(百潭寺) · 신흥사(神興寺) · 낙산사(洛山寺) · 화암사(禾巖寺) · 명주사(明珠寺) · 영혈사(靈穴寺) · 수타사(壽陀寺) · 심곡사(深谷寺) · 오제암(烏啼庵) 등을 다루고 있다. 연대 표기는 불기(佛紀)를 사용했고 왕력(王曆)과 간지(干支)를 병기했으며 일제강점기의 다른 사지들과는 달리 일본식 연호는 사용하지 않았다. 저자 한용운은 또한 일제의 사찰령 관련 서술도 가급적 배제하고 있다. 한편 이 책에는 해당 지역의 읍지나 문집류에 있는 「건봉사 극락전 상량문」, 「건봉사 수륙보적기(水陸寶積記)」 등 일부 기문이 누락되어 있고, 19세기 이후 건봉사에서 열린 5차례의 만일회(萬日會)에 관한 내용도 제외되었다. 아울러 임진왜란 때 사명 유정(四溟惟政)이 건봉사에서 승군을 모아 일본군과 항쟁한 사실도 당국의 검열로 실리지 못했다.
의의 및 평가
일제강점기에는 각 본산에서 스스로의 역사와 전통, 본말사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경쟁적으로 사지 편찬에 나섰다. 처음 나온 본말사 사지는 1927년 안진호(安震湖)가 펴낸 『봉선본말사지(奉先本末寺誌)』였다. 그 다음이 1928년에 나온 한용운의 『건봉사급건봉사말사사적』이었다. 이는 건봉사를 중심으로 한 금강산 일대의 사찰에 관한 사항과 고승들의 행적을 파악할 수 있는 기본 자료라는 점에서, 그리고 화재로 소실된 사찰의 역사를 복원할 수 있는 정보가 담겨져 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자료의 한계로 인해 비교적 소략한 형태의 사지이지만 한국전쟁 때 건봉사와 주변 말사가 소실되어 원형을 잃음에 따라 이 책의 자료적 가치와 중요성이 매우 커졌다.
참고문헌
『건봉사급건봉사말사사적(乾鳳寺及乾鳳寺末寺事蹟)』
「건봉본말사순례기(乾鳳本末寺巡禮記)」
이영선, 『금강산 건봉사 사적』(동산법문, 2003)
출처:(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고성 건봉사 능파교[ 高城乾鳳寺凌波橋 ]
정의
강원특별자치도 고산군 거진읍 건봉사에 있는 조선후기
제19대 숙종 연간에 축조된 무지개 형태의 다리. 홍교. 보물.
개설
건봉사는 520년에 창건된 사찰로 처음에는 원각사라 하였다가, 1358년(공민왕 7) 나옹(懶翁)이 중건하고 건봉사라 하였다. 능파교의 명칭은 “속세의 파도를 헤치고 부처님 세상으로 이르는 다리”라 하여 ‘능파’(파도를 헤침)의 이름을 붙인 것으로 보인다. 건봉사의 대웅전 구역과 극락전 구역 사이에 흐르는 계곡을 건너기 위하여 놓여진 다리로서, 2002년 2월 6일 보물로 지정되었다.
역사적 변천
이 다리는 1704년(숙종 30)부터 1707년 사이에 처음 축조되었다고 한다. 그 후 1745년(영조 21)에 홍수가 나 무너진 것을 1749년에 고쳐 세웠고, 1880년(고종 17)에 다시 무너진 것을 고치면서 석재 일부를 대웅전의 돌계단과 산영루 수축에 이용하기도 하였다.
내용
무지개다리는 다리 밑이 반달 또는 무지개 모양을 이루어 그 모양이 아름답고 또한 다리 밑에 기둥이 없으므로 급격히 불어날 적에도 다리의 훼손을 막아주는 장점이 있다. 이러한 무지개다리는 지금 우리나라에 몇 개밖에 남아 있지 않은데 그 중에서도 능파교는 규모도 크고 보존상태도 좋은 편이다. 다리의 폭은 3m, 길이는 14.3m이며, 다리 밑의 한 가운데 높이는 4.5m이고 밑지름은 7.8m나 된다. 이 다리의 축조방식은 양쪽 다리의 바닥 부분에 두꺼운 2단의 바닥돌을 놓고 그 위로 29개의 긴 돌을 차곡차곡 맞추어 둥그렇게 배열한 것으로 밑에서 위로 올라갈수록 돌의 규격이 작다. 다리의 윗부분은 여러 장의 석재를 짜 맞추어 판판하게 닦여져 있으며 양 끝에는 다리 폭보다 더 넓게 경계석이 놓였다.
의의와 평가
건봉사 능파교는 단칸 무지개 돌다리로 자연지형을 잘 이용하여 축조하였으며, 축조시기와 건립자 등을 알려주는 능파교신창기비(凌波橋新創記碑)가 근처에 세워져 있어 우리나라 무지개다리의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참고문헌
『한국사찰전서』(권상로, 동국대학교출판부, 1979)
문화재청(www.cha.go.kr)
출처:(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024-12-09 작성자 명사십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