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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광인전(準狂人傳)
계 용 묵
1
선생님! 세상에는 이런 일도 있노이다. 제가 미쳤노이다. 제가 왜, 미치겠노이까. 그러나 선생님! 세상은 저더러 미쳤다 하노이다. 그러니, 저는 과연 미쳤는가. 미치지 않은 것 같은 이러한 제 마음은 정말 미친 것인가. 제 마음이건만 저도 분간을 못 하고 있을 밖에 없노이다.
선생님! 저는 이제, 저를 길러 주신 선생님에게 이렇게 미치게 되기까지의 그 경과를 아니 사뢸 수가 없노이다. 제가 미쳤다면 선생님은 제 자신보다도 더 아파하실 것을 모름이 아니오나, 한편 생각하올 때면 저의 신변에 이러한 일이 있었음에도 숨기고 있다는 것은 선생님에게 대한 저로서의 도리에 도리어 예의가 아닌가 하여 차마 들기 부끄러운 붓을 벼르다 벼르다 이제 들었노이다.
선생님! 바로 그게 사 년 전 그 해의 여름이었노이다. 그날 오정 가까이 김군과 같이 읍내의 옥거리를 지나다가 하도 목이 클클하기에 맥주집에 찾아들어갔더니 게서 우연히도 한군과 손군을 만난 것이 아니었겠노이까. 그리하여 우리 네 사람은 한 자리에 합석이 되어 오래간만에 서로들 술잔을 나누며, 유쾌한 시간을 가질 수가 있었노이다.
그런데, 선생님! 그때 제가 말한 이야기 가운데는 저도 하기 싫은 이야기였노이다만은 몹시도 그들을 놀라게 한 것이 있었노이다. 바로 영주가 세상을 떠났다는 보고가 그것 이었노이다.
“머야! 영주가 죽어?”
“아ㅡ 사람이 그렇게도 죽나!”
한군과 나는 서로들 이렇게 놀라며 인생의 무상함을 다시금 느끼는 듯이 한숨을 쉬고 고인의 모습을 그리어 보는 듯이 눈들을 내려깔고 무엇인지의 생각에 잠깐의 침묵이 계속되었노이다. 그러는 동안 또 조, 박, 허, 세 사람이 하던 부채질을 하며 들어오는 것이 아니었겠노이까. 선생님! 마치 이날은 그 술집이 우리들의 회합 장소나처럼 되었노이다.
그런데, 선생님도 아시다시피 조, 박, 허, 그들도 다 같이 허물없는 저의 친한 벗이요, 또 영주의 벗이었기 때문에 이야기는 자연 그들로 하여금 또다시 영주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로 되풀이하지 않을 수 없었노이다. 그리고는 고인의 장점, 단점의 비판, 또는 그의 생전의 자랑거리이던 그 아릿자릿한 로맨스, 이런 것들로 친구의 인물된 품을 추억하며 노닐던 나머지 우리들 사이에는 벗을 조상하는 뜻을 어떠한 형식으로 표하는 것이 가장 적당할 것인가 하는 의견이 또, 바꾸이게 되었노이다. 그리하여 우리 어덟 사람이 (민군과도 교섭을 하여 참가케 하기로 하고) 한 폭에다 연서를 하여 만사를 보내기로 결정을 하였었노이다. 그리고는 우리 여덟 사람이 일행으로 다 같이 장례에 참여하여야 할 것을 결의하고, 만사는 비단으로 하되, 글씨는 한군이 쓰기로, 글은 박군이 짓기로 각각 그 장기를 따라 맡기고 내일 모레는 다시 ××구락부로 모여서 서명은 각기 자서로 하기로 하였었노이다. 그렇게 하는 것이 우리 일동이 다 같이 친의가 보다 도텁다는 표시도 될 것임으로써였노이다.
그리고는 이런 뜻을 민군에게도 속히 알리기로 박군에게 그 책임을 맡기고 우리 일행은 각각 집으로들 헤어졌던 것이었노이다.
2
그랬으니까 선생님! 그 이튿날 하루를 지나서 저도 약속한 대로 ××구락부를 향하여 떠날 것이 아니겠노이까. 그러나, 그날 저는 피치 못할 가정의 약간 사정으로 작정한 시간보다 거의 두 시간이나 늦어서 열두시에 모이자던 것이 새로 두시가 가깝게야 집을 떠나게 되었노이다. 그리하여 걸음에 불이 번쩍이도록 그야말로 속력을 다해서 움을 향하여 걷고 있었노이다.
그런데, 선생님! 큰길을 추어올라서 거리로 들어가는 십자길 어구에 선 광고판에는 어제 없던 광고가 큼직큼직한 글자로 가장 눈에 뜨이기 쉽게 붉은 잉크로 관주까지 그리어 붙인 것이 아니었겠노이까.
金哲鎬는 미친 사람이니 누구든지 ―擧―動에 있어 그와는 삼가기를 바란다. 虛無한 存在를 事實인 것처럼 꾸미어 ―般人心을 迷惑케 하는 것이 그의 이즘의 行動이다. |
아, 선생님! 이게 웬일이겠노이까. 거기에는 분명히 이렇게 쓰여져 있었노이다. 김철호, 그것이 제 이름인 이상 실로 아니 놀랄 수 없었노이다. 그러나, 미치지 않은 제 자신을 너무도 똑똑히 아는 저이오라, 한편으로는 우습기도 하였노이다.
하지만, 선생님! 다시 생각하올 때 미치지도 않은 사람을 이렇게 광고판에까지 대서 특서하여 붙인 것은 불쾌하다면 불쾌하지 않을 수도 없는 일이었노이다. 혹, 김철호라는 사람이 저 밖에 또 있어 그가 미친 것은 아닌가도 문득 생각이 들었으나, 그것은 글씨로 보아서 한군의 글씨에 틀림없었고 문투로 보아서 박군의 문투에 조금도 의심할 여지가 없었노이다. 그리하여, 그것은 벗들 가운데서 저를 가리켜 한 장난임이 즉석에서 깨닫기 었노이다.
선생님! 이것이 너무 과한 장난이 아니겠노이까. 아무리 허물없는 벗으로서의 악의 없는 장난이라 하더라도 이러한 장난을 받는 저로서는 다소 불쾌하지 않을 수가 없었노이다. 이렇게 큰길 가에다 써도 크게 써 붙인 광고였으니 이것은 저만이 보았을 것도 아니고, 이 길로 지나는 사람이었으면 누구나 한 번씩은 다 눈을 거치었을 것이오니 만일 저를 모르는 사람이라면 김철호라는 사람은 정말 미진 사람으로 알 것이 아니겠노이까. 그리고, 남의 단처라면 침을 흘려 가며 외이고 싶어하는 것이 세상의 인심이오라, 이런 말이 어찌어찌 세상에 퍼지게 된다면 저의 신변에 어떠한 불리한 영 향이 미치게 될는지도 모를 일이 아니겠노이까. 그리과. 생각하니 선생님 ! 솔직 하니 말씀이오이다만 불쾌함을 참을 수 없었던 것이 사실이었노이다.
선생님! 그리하여, 저는 제가 벗들 가운데서 이토록 미친 사람으로 농을 받도록 그러한 미친 짓을 한 때가 있었나 우두커니 서서 생각하여 보았노이다만 아무리 생각하여 보아도 기억에 남는 그러한 일은 찾아낼 수가 없었노이다.
그러니, 선생님! 그것이 대체 어찌된 영문인 것을 저인들 알 턱이 있었겠노이까. 궁금한 수수께끼를 안은 채 구락부로 그대로 달릴 밖에 없는 저이었노이다.
3
그랬더니, 선생님! 구락부에 막 발을 들여놓자 저를 대하는 첫인사가 한군의 입으로 또 이렇게 나오는 것이 아니었겠노이까.
“미친 자식!” 하고.
이미 광고를 보고 오던 길이오라, 혹은 이러한 말을 듣게 될는지도 모른다고 전연 예기를 아니하였었던 바는 아니었으나, 그 순간, 여간 마음이 좋지 못하였던 것이 아니었노이다.
그러나, 그뿐이오리까.
“이 자식 오늘두 정신이 들지 않었군, 지금이 몇 시인데 이제야 보이는 게야.”
“정신이 그렇게 쉽게 들면 사람 구실 허려구!”
“에이익 미친 놈!”
벌써 모여 앉았던 벗들은 한군의 말이 미처 끝도 나기 전에 제각기 이런 말을 던지는 것이었노이다.
저는 그만 무안하였노이다. 여느 때 같으면 이런 말이 그리 나무럽게도 들리지 않고 그저 귓곁으로 흐르고 말았으련만 이때만의 제 감정은 실로 좋지 않았노이다. 그러나, 뭐라고 대답하여얄지를 모르는 저는 다만 발을 문 안에 들여놓다 말고, 어리둥절하여 그대로 섰을 밖에 없었노이다.
“저 눈! 저 눈 봐! 미친 놈의 눈 같다드니 멀쩡히 먼산만 바라보네.”
민군도 또 이렇게 나서는 것이 아니었겠노이까.
선생님! 이것이 물론 벗으로서의 농담에는 틀림없을 것이오나, 광고까지 보고 이런 말을 뒤이어 들을 때의 제 감정은 차츰 도수를 더해 왔노이다. 그러나, 제가 그에 대한 감정을 꺼내어놓는다면 아무리 제 감정은 좋지 못하다 하되, 농담을 농담으로 받지 못하는 저를 도리어 글렀달 것이므로 그렇다고 제가 그 자리에서 감정을 그대로 토로할 수는 없었노이다.
“이 자식들이 미치긴 웬 뚱딴지로…….”
이렇게 말을 받으며 저는 그저 빙그레 웃어 보일 뿐이었노이다.
“네가 그럼 미 치지 않구?”
민군이 또 나섰노이다.
“어째서?”
“어째다니 ! 저게 무슨 장난이야? 그럼!”
민군은 뒷벽을 돌아보며 손짓을 하였노이다. 거기에는 다섯 자 길이나 되는 백숙소 전폭에 한군의 글씨로 영주의 만사가 쓰여져 걸려있었노이다.
선생님! 그래서 저는 영주의 만사로 해서 제가 그런 농담을 받을 만한 조건이 있었던 것을 비로소 짐작을 하게 되었노이다. 그러나, 그것이 어떻게 되어서 그런 탈을 쓰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인가는 물론 알턱이 없었노이다. 저는 무엇보다도 그것이 궁금하였었노이다.
“그게 어쨌단 말이야 그래?”
이렇게 묻는 저의 말은 저도 모르게 시치미를 뗀 항의적 언사이었노이다.
“저것이 군의 설도라는데!”
“그래 내 설도라면?”
“군은 왜 영주의 만사를 이렇게 하지 안해서는 안 되었든구?”
“군은 그럼 벗으로서의 영주의 만사에 동의하지 않는단 말인가?”
저와 민군의 이야기가 이까지 진행되었을 때에 일동은 별안간 와― 하고 웃었노이다. 그러니까 민군도 다시 뒤를 이으려던 말을 못 잇고 따라 웃는 것이었노이다. 저는 이것이 물론, 어떤 영문인지는 모르면서도 그들의 기분에 띄어 저도 모르게 웃어 버렸노이다. 그러니까 좌중은 아 하하― 하고 더욱 소스라쳐 웃게 되었노이다. 한군과 민군은 박수까지 치는 것이 아니었겠노이까.
선생님! 여기에 저는 그들이 저로 해서 웃었음을 알았고 따라서 제가 웃음은 제가 저를 웃는 격이 되었음을 그 순간 또 깨달았노이다. 제 얼굴에는 후끈 하고 불덩이가 지나갔노이다. 저는 될 수 있는 대로 그런 기색을 나타내지 않으려고 마음에 힘을 주었노이다만은 저의 붉어진 얼굴은 그들의 눈에 아니 띄우지는 못하였던 모양이었노이다. 그리하여, 제가 너무도 미안해하는 것 같은 기색을 그들도 살피었음인지 웃음 소리를 일시에 뚝 그치고 한군이 나서며 하는
“아니 웃지들만 말구 김 군의 의혹을 풀어 주어?”
하는 것이었노이다. 그러니까, 민군도 한군의 의견에 동의를 하는 듯이 아까와는 다소 태도를 달리하여 나직한 음성으로 말을 건네는 것이었노이다.
“김군! 글쎄 동의 부동의는 고사하구 웬 뚱딴지로 영주가 죽었다구 짓이 이 짓이야 글쎄! 만사까지 써서 걸고…… ”
“아니 이건 누구더러 하는 말이야? 자네가 그런 말을 전하지 않았나?”
“이건 정말 미쳤군!”
“왜, 누가 미쳐?”
“누가 미치다니 내가 언제 군더러 영주가 죽었다구 했나? 영주의 동생 영수가 죽었다구 그랬지.”
이렇게 저는 그때 들었던 대로 대들고 대답을 하였노이다만 본래 듣길 민군에게서 들었던 것이오라, 제가 그때 잘못 들었던 것으로 아니 깨달을 수 없어 민군의 말을 그대로 부인하고 우길 수 없었노이다. 동시에 저는 저의 미쳤다는 원인을 알게 되었고, 또한 이것으로 저를 한번 놀려 주려는 계획 이었던 것을 알았노이다.
“글쎄 그러기에 미쳤다지 영수가 죽었다는 걸 영주가 죽었다구 들었으니 웬 ―.”
그리거 민군은 하하 하고 웃는 것이었노이다. 그러니, 조군이 또 나서며,
“아니 그 두 놈이 다 마쳤군. 제각기 옳다구 떠드니 뉘가 옳은지 우리야 알 수 있나.”
하면서 박수를 치는 것이었노이다.
여기에 선생님! 제가 어떻게 대답을 하였겠노이까? 그저 무안함에 잠자코 있을 따름이었노이다. 제가 오전을 하였으므로 뻔히 살고 있는 친구 영주가 만사까지 받게 되는 미안함도 말할 수 없었거니와 만사를 하게 만들었던 벗들에게까지 미안함을 금할 길이 없었노이다.
“아 그래서 이 자식들이 낙를 미쳤다고 떠들고 야단이로군. 광고까지 써 붙이고ㅡ.”
저는 도리어 그들을 위로하기 위하여 이렇게 농을 붙이며 웃을 밖에 없었노니다.
4
선생님! 이까지 이야기한 사실은 우리의 일상생활에도 흔히 있을 수 있는 웃음거리에 불과할 것이 아니겠노이까. 그러나, 선생님! 그 결과는 사람의 일생에 이런 일도 있을까 하리만치 파멸의 구렁에 저를 끌어가지고 들어갈 줄이야 어떻게 알았겠노이까. 응당 그 일곱 사람의 벗들도 제가 이렇게까지 되리라고는 예기도 못 하였을 것이었겠노이다.
그 이튿날 거리에 나선 저의 귀에는 이러한 소리가 들리는 것이 아니었겠노이까.
“김철호가 또 미쳤대나. 유전이란 할 수가 없어. 그의 할아버지가 미쳐서 죽드니 점잖은 가문에 원 ㅡ.”
이 말은 얼마나 저를 놀라게 한 것이었겠노이까.
그러나, 선생님! 저는 그 사람에게 내가 왜, 미쳐? 하고 대들 수는 없었노이다. 그것은 대드는 것이 도리어 제가 미쳤다는 것 같은 것을 보이는 것도 같아서 못 들은 척 그저 지나가고 말았을 따름이었노이다. 그러나, 이제 좇아 생각하오면 대들지 않았댔자 무슨 소용이 있었겠노이까. 그것은 아무러한 효과도 주는 것이 되지 못하였노이다. 날이 갈수록 여전히 저는 미친 사람으로만 화하여 가는 것이 아니었겠노이까. 그 광고를 본 사람이면 누구나 김철호가 미쳤다는 것을 자기가 가장 먼저 아는 것 같은 자랑으로 만나는 사람마다 그런 말을 아끼지 않았을 것이라 추측되노이다. 그리고, 그런 말을 들은 사람의 입으로 는 또 다른 사람의 귀에 이렇게 자꾸자꾸 다리를 놓아 한 달 후에는 저는 완전한 미친 사람이 되어 버리었노이다.
선생님! 제 벗 조, 김, 허, 민, 손, 한, 박, 이 일곱 사람 외에는 누구나 저를 대하는 태도가 일변하여 버리지 않았겠노이까. 혹 거리에서 아는 사람을 만난다 하여도 그는 제가 자기를 어떻게든지 해칠 것만 같아서 곁을 멀리하여 피하고, 피하여서는 아는 사람끼리 수군거리는 것은 그렇게 똑똑하던 사람이 미치다니 하는 것이었노이다.
선생님! 저는 기가 막히었노이다. 지금꼇 제 지방 사람들이 저를 가리켜 위인이 똑똑하다고 그렇게 신용을 하여 왔다는 것은 제가 결코 선생님에게 대해서 하는 저의 자랑이 아니노이다. 그러나, 선생님! 김철호가 미쳤다는 풍설이 돌아가자부터는 저의 신용은 납작하여지고 말았노이다. 범사에 있어 도무지 저와는 말하기를 싫어하고 자리를 같이 하여 주지 않노이다. 따라서 저는 저 호올로 이 세상에서 인생의 뒷골목길을 걷지 않으면 안 되었노이다. 그리고 선생님! 아이들의 놀림을 받지 않으면 또 안 되었노이다. 미쳤다는 제 입에서 어떠한 허튼 말이 나오나 제 입에서 나오는 말이 가령, 우스운 말이라면 그것을 들으므로 서로 웃어, 웃음으로써 한때의 행복을 삼으려는, 다시 말씀하오면 즉 저라는 물건으로써 쾌락의 대상을 삼으려는 일종 항락을 위할 따름이었노이 다.
선생님! 정신이 멀쩡하여 이렇게 미친 사람의 대우를 받지 않으면 안 되는 제 자신을 생각할 때 울고 싶도록 가슴이 아팠노이다. 아니, 선생님! 이런 것뿐이었겠노이까. 근거도 없는 허무한 풍설이 저를 이끌고 자꾸자꾸 파멸의 구렁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노이다. 김철호는 벌써 인간의 궤도를 벗어난 사람이다. 도덕과 예의는 물론 그에게는 오륜이 없다. 계집을 함부로 농락하고 사람을 치기가 일쑤다. 선생님! 글쎄. 이러한 풍설까지 도는 것이었노이다.
선생님! 저는 저에게 대하여 세상 사람들이 이러한 태도를 취할 때 자신이 파멸의 밑바닥에 떨어져 들어가는 것보다 허무한 풍설을 그대로 듣고, 믿는 그들이 오히려 더 불쌍하게 생각키었노이다. 이렇게도 세상은 어두운 것인가. 기분에서 기분으로 마치 의식 이 없는 그것과도 같이 허공을 떠돌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그들의 존재임을 알았을 때, 선생님 ! 참으로 가슴이 아팠노이다.
선생님! 저는 이제 여기에 제 인격이 더할 수 없이 파멸에 떨어져 완전히 미친 사람의 대우를 받게 되기까지의 에피소드를 말씀드리겠노이다.
5
선생님! 세상의 월편에서밖에 존재의 인정을 받지 못하는 저는 언제나 술을 찾아서 우울한 제 마음을 위로하지 않으면 안 되었노이다.
어떤 날이었노이다. 그날도 저는 어느 카페의 한 구석 의자에 앉았는 몸이었노이다. 그리하여, 웨이트레스로 위안을 받으며 술을 들이키고 있었노이다.
선생님! 이때였노이다. 카페 문이 스르르 밀리더니 저를 힐끗 한 번 마주 바라보고는 무슨 못 볼 원수나 본 것처럼 부리나케 다시 문을 밑어닫고 되돌아나가는 사람이 있었노이다. 저는 그것이 민군인 것을 알았노이다.
선생님! 이때 저의 마음이 불쾌하였던 것이 잘못이었노이까. 여느 때 같으면 멀리서라도 더욱이 술이라면 저를 보고 싫대도 굳이 청할 민군이었노이다. 만은 아무리 제가 세상에서 버림을 받은 존재라 하여도 옛날의 정의를 살필진댄 그렇지는 못할 것인데 아무러한 인사도 없이 원수나 본 것처럼 피치 않으면 안 되는 그의 행동에 저의 가슴은 기가 막히도록 아팠노이다. 저는 물론 민군이 저에게 대한 이러한 태도가 어디 있는지를 잘 아노이다. 민군도 일곱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이니까 제가 정말 정신에 이상이 생긴 사람으로 아는 사람은 아니었노이다. 민군은 저를 위하여 어디까지든지 세상의 의혹을 풀어 주기로 힘을 쓰는 줄도 저는 잘 알고 있었노이다.
그러나, 선생님! 그는 저를 피하지 않아서는 안 되었노이다. 물론 민군 자신은 제가 완전한 정신의 소유자인 줄은 아나, 세상은 저를 믿지 않으니까 세상이 믿지 않는 저를 대하여 자리를 같이한다면 세상은 저와 친의를 같이한다는 이유로 해서 자기에게까지 어떠한 영향이 미치리라는 이유에서일 것이 빤한 것이었노이다. 그리하여, 그들까지도 세상 사람과 같이 저를 미친 사람으로 대하지 않으면 안 되었고 차 버리지 않아서는 안 되었던 것이었노이다.
선생님! 저로서 이러한 민군의 태도를 생각할 때 제 마음이 과연 어떠하였겠노이까. 그러나, 선생님! 어쩐 일인지는 저는 그에게 항의하고 싶은 마음은 조금도 없었노이다. 저는 저도 모르게 그를 찾았노이다. 이것은 물론, 저의 참을 수 없는 알뜰한 정의 발로에서였으리라는 것을 저는 지금도 믿고 있노이다.
“어이 민군!”
그러나 민군은 대답이 없었노이다.
“어이 민군!”
그래도, 대답이 없음에 저는 좀더 힘차게 부르며 그를 따라 나갔노이다.
“민군! 어 어이 민군!”
“누구야! 그게.”
민군은 그적에야 피치 못할 줄을 알고 비로소 뒤를 힐끗 돌아보는 것이었노이다.
“무엇 잊은 것이 있나? 왜, 채 들어오지도 않고 돌아서나?”
“난 누군가 했지 또.”
민군은 그제서야 누구인지를 알았던 것처럼 이렇게 책임을 피하려고 하였노이다.
그런데, 선생님! 제가 민군을 대하는 태도가 더할 수 없이 반가움에 사무친 그러한 마음인 것이야 민군 자신인들 모를 것이었노이까? 그러나, 민군은 저와 같은 정으로 저를 대하려는 것이 아니었노이다. 그의 태도와 인사는 어디까지든지 냉정하였노이다. 그것은 분명히 ‘너는 세상 사람들에게 믿음을 잃은 폐물이니 옛날과 같은 나의 친구는 못 된다’ 하는 뜻이 아닐 수 없었노이다.
선생님! 제가 사회에서 믿음을 잃은 옛날과 같은 그러한 벗은 못 된다손 치더라도, 그리고, 저와 친교를 옛날과 같이 그대로 맺는 것이 자신에게 다소 영향이 미친다 하자 하더라도, 이유 없이 사회에서 믿음을 잃게 된 불쌍한 옛날의 친의를 위하여 다정하게 손목이야 한 번 쥐어 주지 못할 것이 무엇이었겠노이까. 그리고, 또 다정한 말로 저의 이 터질 듯한 심정을 조금이라도 어루만져 주지 못할 것이야 무엇이었겠노이까.
선생님 여기에 저의 감정이 될 대로 흥분되었던 것이 잘못이었겠노이까.
“술 한잔 먹자!”
“나 술 인제 안 먹네.”
“그럼 카펜 왜 들어왔어?”
“아 저 잠깐 좀 만나볼 사람이 있어서 왔던 게야.”
“누군데 그게?”
“으 ― 저 ―.”
저는 벌써 그의 심리를 다 알았으므로 다시 더 따지어 물을 필요도 느끼지 않았노이다.
“자 들게, 오래간만에 우리 한잔 먹세.”
“글쎄, 나 술 안 먹어 이젠.”
“그래 한 잔두 못 먹어?”
저의 음성은 아니 높아질 수 없었노이다.
제 기색을 살핀 민군은 아무 말도 없이 한 잔을 들이켰노이다. 저는 다시 그 잔에 술을 따랐노이다. 그러나, 민군은 다시는 그 잔을 들지 않고 밑을 떼었노이다.
“정말 못 먹겠나?”
저는 저도 모르게 부어 놓았던 술잔을 그의 가슴으로 건네 안기었노이다.
“이 자식 정말 미쳤어!”
“머시? 한 번 더 해라 그런 말을·…‥?”
저의 손은 민군의 멱살을 바싹 치켜들었노이다. 그도 가만히 있지 않았노이다. 제각기 지지 않으려고 붙안고 돌아갔노이다.
그런데, 선생님! 제가 민군보다 본래 힘이 세인 것은 아니었노이다만은 어찌된 셈이온지 제 빗장거리에 민군은 그만 잔뜩 탁자 위에 허리를 걸고 넘어졌노이다. 그리하여, 민군은 눈을 뒤집고 정신을 차리지 못하였노이다. 그러니까, 카페 안이 떠들썩 할 것이 아니었겠노이까. 구경 꾼이 쭉 모여드는데 실로 창피하였노이다.
그런데, 선생님 ! 이렇게 방안에서 떠들썩 하니까, 밖에서 숭숭거리던 패가 문을 열고 들어오는데 보니 그것이 또 우리들의 패거리 그 일곱 사람이 아니겠노이까. 짐작컨대 그들은 민군과 같이 왔다가 제가 여기 있음을 알고 몸을 피하였으나 민군이 그만 나에게 붙들려 들어왔음에 가지도 못하고 그의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이었노이다.
선생님! 이들의 태도까지 어떻게도 그리 민군의 태도와 똑같은 것이었겠노이 까.
선생님 ! 그들은 민군을 일으키기에만 열심이었노이다. 민군은 허리를 잘 쓰지 못하고 비뚝 길음으로 그들의 부축을 받으며 카페를 나갔노이다.
선생님! 이 사건에 있어서 민군 자신은 물론, 그들의 일행인 그 여섯 사람까지도 제가 그것이 정신의 이상으로 지은 행동이 아니었던 것이야 모를 것이겠노이까. 만은 저의 파멸의 씨를 뿌려 준 것이 민군이라 해서 그에 대한 감정으로 그러한 행동을 취하였다고는 촉각 오해하기 쉬울 것이라 알았노이다. 그러나, 선생님! 저의 그 민군과의 싸움이 감정에 있었던 것은 너무도 아니었노이다. 솔직히 말하노이다만 그저 참을 수 없는 정의 발로가 그렇게까지 되었던 것이었노이다. 그러나, 이것이야 제 자신밖에 백이 백 말 하면 곧이들어 줄 사람이 있겠노이까.
그러니까, 선생님! 이것을 또 세상은 김철호라는 광인의 장난이라고 한동안의 이야깃거리가 되어서 그들의 소일감이 되는 동시에 저에게 대하는 태도는 더욱 심해 가는 것이었노이다.
아니, 선생님! 이런 일이 세상에 청말 있다고 어떻게 말씀을 드리겠노이까. 글쎄 선생님! 이 일로 말미암아 저는 제 가정에서까지 믿지 못하는 몸이 되어 버리었노이다. 제 어머니가 저를 못 믿고, 제 아내가 저를 못 믿어 주노이다. 그러니까, 제 가정이 저와 같이 파멸의 도상에 걷고 있게 되는 것이 아니겠노이까. 제 힘이 아니면 제 가족은 목숨을 이을 수가 없노이다. 그러나, 선생님! 처를 믿지 못하노이다. 믿어 주지 못하는 것이 가정의 파멸인 줄을 모르노이다. 저의 정신의 이상은 신의 장난이라, 무당을 데려다 푸닥거리를 한다 굿을 한다 야단까지 부리니, 글쎄, 선생님! 이게 세상 사람에게 저라는 인간은 믿지 못할 사람이라 오히려 광고를 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노이까.
그러니, 선생님! 저는 장차 무엇이 되려노이까. 무엇이 될 것이겠노이까.
그리고, 선생님! 이런 말씀을 제가 선생님에게 드리오므로 선생님의 안온한 마음을 슬프게 하옵는 것이 잘못은 아니겠노이까, 선생님!
(辛未 6월)
〔발표지〕 《신세기》(1939. 9.)
〔수록단행 본〕 『백치 아다다』 (대조사.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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