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하제일 객잔》
## 제51화 ― 흑월의 그림자
붉은 달 한가운데 생겨난 검은 균열이 점점 벌어졌다.
마치 밤하늘에 거대한 상처가 난 듯했다.
균열 사이로 새어 나온 검은 기운이 구름을 삼키고, 산과 숲을 어둠으로 뒤덮었다.
쿠르르르—
천둥 같은 굉음이 객잔 위로 울려 퍼졌다.
결계를 무너뜨리던 흑월의 자객들조차 공격을 멈추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검은 가면의 우두머리가 한쪽 무릎을 꿇었다.
“흑월이시여.”
“천 년의 어둠이 다시 세상을 비추게 하소서.”
그의 말을 따라 남아 있던 자객들도 일제히 무릎을 꿇었다.
연우는 천명검과 청운을 든 채 붉은 달을 바라보았다.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 시선은 차갑고도 익숙했다.
“연우.”
설화가 그의 곁으로 다가왔다.
“괜찮아요?”
연우는 대답하지 못했다.
심장이 거칠게 뛰기 시작했다.
머릿속 깊숙한 곳에서 잊고 있던 기억이 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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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균열에서 긴 그림자 하나가 내려왔다.
사람의 형체를 닮았지만 얼굴도, 눈도 없었다.
오직 검은 가면만이 허공에 떠 있었다.
가면 안쪽에서 낮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천검성군.”
연우의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또 그 이름입니까?”
“저는 연우입니다.”
검은 그림자가 웃었다.
“그 이름은 네가 천 년 동안 숨어 있기 위해 선택한 껍데기에 불과하다.”
그림자가 손을 들자 붉은 달빛이 연우의 가슴을 비추었다.
순간 그의 옷 위로 푸른 문양이 떠올랐다.
검과 달이 겹쳐진 문양이었다.
풍백이 숨을 삼켰다.
“천검의 인장.”
묘묘의 눈동자가 가늘어졌다.
“마지막 봉인이 반응하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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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우가 가슴을 움켜쥐었다.
“으윽!”
천명검과 청운이 동시에 울기 시작했다.
우우웅—
두 검에서 뿜어져 나온 빛이 연우의 몸을 감쌌다.
그리고 객잔의 모습이 그의 눈앞에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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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년 전.
불타는 대지 위에 한 사내가 서 있었다.
긴 백색 도포.
푸른빛을 머금은 검.
그의 주변에는 수많은 마물과 무너진 성벽이 펼쳐져 있었다.
그가 바로 천검성군이었다.
맞은편에는 붉은 달을 등진 검은 존재가 서 있었다.
흑월이었다.
“천검성군.”
흑월이 말했다.
“네가 아무리 강해도 나를 죽일 수는 없다.”
천검성군은 피로 물든 검을 들어 올렸다.
“죽이지 못한다면 봉인하겠다.”
“내 목숨과 영혼을 모두 걸어서라도.”
그의 뒤에서는 젊은 제자들이 마지막 진법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중에는 청운을 물려받은 제자도 있었다.
“스승님!”
제자가 다급히 외쳤다.
“봉인을 완성하면 스승님의 영혼도 함께 묶이게 됩니다!”
천검성군은 돌아보지 않았다.
“알고 있다.”
“그렇다면 다른 방법을—”
“시간이 없다.”
그의 목소리는 단호했지만 손끝은 떨리고 있었다.
천검성군은 마지막으로 제자들을 돌아보았다.
“내가 돌아오지 못하더라도 슬퍼하지 마라.”
“검은 사람보다 오래 살아남는다.”
“그리고 언젠가 나보다 더 착한 주인을 찾아갈 것이다.”
제자가 눈물을 흘리며 청운을 끌어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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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검성군은 두 자루의 검을 하늘로 들어 올렸다.
하나는 천명검.
다른 하나는 이름 없는 검이었다.
“천검비록 최종식.”
“천지귀봉(天地歸封).”
수천 개의 검빛이 붉은 달을 향해 솟구쳤다.
하늘과 땅을 잇는 거대한 봉인의 진이 펼쳐졌다.
흑월의 몸이 검은 사슬에 묶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흑월은 웃고 있었다.
“네 영혼이 다시 태어나는 날.”
“봉인도 함께 깨어날 것이다.”
천검성군은 대답하지 않았다.
푸른빛이 세상을 삼켰다.
그날.
흑월은 봉인되었고,
천검성군도 세상에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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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우는 객잔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두 손으로 바닥을 짚었다.
“내가…”
“흑월의 봉인과 함께 묶여 있었다.”
설화가 급히 그의 어깨를 붙잡았다.
“그건 과거의 당신이 선택한 일이에요.”
“지금의 당신이 죄책감을 느낄 필요는 없어요.”
연우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아닙니다.”
“흑월이 다시 깨어나고 있는 이유가 저라면…”
“제가 끝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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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검은 그림자가 객잔 앞에 내려섰다.
그 발이 땅에 닿자 주변의 풀이 순식간에 말라붙었다.
“기억해 냈군.”
흑월의 그림자가 손을 내밀었다.
“그러니 돌아와라.”
“네가 내 봉인의 열쇠라면, 네가 문을 열어야 하지 않겠느냐.”
연우가 천명검을 들었다.
“천 년 전에도 거절했을 겁니다.”
청운까지 들어 올린 그가 검끝을 흑월의 그림자에게 겨누었다.
“지금도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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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월의 그림자가 손가락을 움직였다.
객잔 바닥에 검은 문양이 번졌다.
기둥과 벽, 천장에 새겨져 있던 푸른 문양이 하나씩 꺼지기 시작했다.
풍백의 얼굴이 굳었다.
“놈이 객잔의 결계를 거꾸로 이용하고 있어!”
봉인의 수호자가 바닥을 살폈다.
“이 객잔은 단순한 건물이 아니었어.”
“천검비록의 마지막 봉인진이야.”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향했다.
수호자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천검성군은 자신의 영혼만 봉인한 것이 아니다.”
“흑월의 힘을 일곱 조각으로 나누어 천하 곳곳에 감췄다.”
“그리고 마지막 조각을…”
그가 천하제일 객잔의 간판을 바라보았다.
“이곳에 봉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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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아가 눈을 크게 떴다.
“그럼 객잔이 무너지면 어떻게 되죠?”
묘묘가 낮게 대답했다.
“흑월이 완전한 힘을 되찾는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동안 객잔을 공격했던 자객들의 목적은 지도를 빼앗는 것만이 아니었다.
처음부터 객잔의 봉인을 깨뜨리려 했던 것이다.
검은 가면의 우두머리가 웃음을 터뜨렸다.
“이제 알았느냐?”
그는 가슴에 새겨진 붉은 초승달 문양을 손으로 짚었다.
“지도는 봉인지로 가는 길을 가리키지 않는다.”
“봉인을 풀어야 할 순서를 기록한 것이다.”
풍백이 품속에서 붉은 달의 지도를 꺼냈다.
지도 위의 선들이 스스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천하제일 객잔을 가리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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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우!”
설화가 외쳤다.
객잔 중앙의 바닥이 갈라지며 검은 기운이 치솟았다.
그 아래에는 거대한 검 한 자루가 꽂혀 있었다.
손잡이는 오래된 쇠사슬로 묶여 있었고, 검신에는 수많은 봉인문이 새겨져 있었다.
묘묘가 털을 곤두세웠다.
“저 검이…”
봉인의 수호자가 말을 이었다.
“천검성군이 사용했던 이름 없는 두 번째 검.”
천명검과 청운이 거세게 반응했다.
검은 기운에 묶여 있던 이름 없는 검도 낮게 울었다.
웅—
그 순간 연우의 기억 속에서 검의 이름이 되살아났다.
“수월(水月).”
물에 비친 달.
손에 잡히지 않지만 결코 사라지지 않는 검.
천검성군이 흑월을 봉인하기 위해 남긴 마지막 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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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월의 그림자가 수월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 검을 뽑아라.”
“그러면 너는 천검성군의 모든 힘을 되찾을 것이다.”
연우는 움직이지 않았다.
“대가가 있겠지요.”
흑월의 그림자가 웃었다.
“객잔의 봉인이 풀릴 뿐이다.”
“대신 너는 다시 천하제일인이 된다.”
설화가 연우의 손을 잡았다.
“듣지 말아요.”
연우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설화의 손은 떨리고 있었지만 놓지 않았다.
“당신은 천하제일인이 아니어도 돼요.”
“그냥 이 객잔의 주인이면 돼요.”
청아도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국수도 끓여야 하고요.”
무명이 도끼를 어깨에 걸치며 말했다.
“아직 밀린 장작도 많다.”
묘묘는 콧방귀를 뀌었다.
“내 생선도 챙겨야 한다.”
연우의 입가에 작은 미소가 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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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천명검과 청운을 바닥에 꽂았다.
그리고 수월을 향해 걸어갔다.
설화가 놀라 그의 팔을 붙잡았다.
“연우!”
“걱정하지 마십시오.”
연우는 검의 손잡이를 잡지 않았다.
대신 검을 묶고 있던 쇠사슬 위에 손을 올렸다.
“검을 뽑지 않고도 지킬 수 있습니다.”
천명검과 청운에서 흘러나온 빛이 연우의 몸을 지나 쇠사슬로 스며들었다.
푸른 문양이 하나씩 되살아났다.
흑월의 그림자가 처음으로 당황했다.
“무슨 짓이냐?”
“당신은 착각했습니다.”
연우가 조용히 말했다.
“천검비록은 강한 검술을 남긴 비급이 아닙니다.”
“지켜야 할 사람을 위해 검을 내려놓는 법을 기록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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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우가 두 손을 모았다.
천명검과 청운이 스스로 하늘로 떠올랐다.
두 검은 객잔 위에서 거대한 원을 그렸다.
그 빛이 수월의 쇠사슬과 연결되었다.
세 자루의 검이 하나의 진을 완성했다.
“천검비록.”
“봉검수호진(封劍守護陣).”
콰아아앙!
푸른빛이 객잔을 중심으로 폭발했다.
검은 기운에 물들었던 기둥과 바닥이 본래의 빛을 되찾았다.
흑월의 그림자는 푸른 검막에 밀려 객잔 밖으로 튕겨 나갔다.
자객들의 가면도 산산조각 났다.
그들은 비명을 지르며 검은 안개 속으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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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그림자는 마지막까지 연우를 노려보았다.
“봉인은 영원하지 않다.”
“붉은 달이 세 번째 떠오르는 밤.”
“너는 반드시 나를 찾아오게 될 것이다.”
연우는 천천히 천명검을 들어 올렸다.
“그때도 제 대답은 같습니다.”
“당신에게 내어 줄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푸른 검광이 밤하늘을 갈랐다.
흑월의 그림자는 검은 균열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쾅!
하늘의 균열이 닫히고 붉은 달도 서서히 본래의 빛을 되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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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이 찾아왔다.
부서진 창문 사이로 아침 햇살이 들어왔다.
청아는 바닥에 널린 나무 조각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다.
“이걸 언제 다 치우죠?”
무명은 부서진 탁자를 들어 올렸다.
“싸움보다 수리가 더 힘들겠군.”
묘묘는 멀쩡히 남은 의자 위에 올라가 몸을 둥글게 말았다.
“나는 다쳤다.”
청아가 눈을 흘겼다.
“아까 제일 먼저 지붕으로 도망갔잖아요.”
“전략적 이동이었다.”
설화는 피식 웃었다.
연우는 부서진 주방 앞에서 국자를 주워 들었다.
국자의 끝이 반으로 부러져 있었다.
그는 한동안 그것을 바라보다가 말했다.
“새 국자가 필요하겠네요.”
설화가 그의 옆에 섰다.
“검보다 국자가 먼저예요?”
“아침 손님이 올 시간입니다.”
설화는 어이없다는 듯 웃다가 조용히 그의 어깨에 기대었다.
“정말 못 말리는 객잔 주인이네요.”
연우는 그녀를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그래도 함께 있어 주실 거죠?”
설화가 대답했다.
“붉은 달이 몇 번을 떠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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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누구도 보지 못한 객잔 지하.
봉인된 수월의 검신 위로 작은 금 하나가 생겼다.
그 틈에서 검은 기운이 한 줄기 새어 나왔다.
그리고 어둠 속에서 낮은 목소리가 속삭였다.
“첫 번째 봉인이 흔들렸다.”
“남은 것은 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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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 화 예고
## 제52화 ― 세 번째 붉은 달
흑월이 남긴 경고와 지도에 새롭게 나타난 세 개의 봉인지.
첫 번째 목적지는 죽은 자들의 목소리가 들린다는 망혼곡.
연우 일행은 객잔의 봉인을 지키기 위해 다시 길을 떠나지만,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천 년 전 사라졌던 천검성군의 또 다른 제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