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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덟 살 복순이는 제주 바당('바다'의 제주 사투리)에 빠져 놀았다. 동네 할망들이 해산물을 잡으러 물질 나가면 얕은 바다를 다니며 팡당팡당 잠박질(자맥질)을 했다. 멀리 나간 할망·어멍(할머니·엄마) 기다리다 배가 고프면 우뭇가사리를 잘라 먹었다. 학교는 다니는 둥 마는 둥이었다. 소라를 보면 하나 둘 주워 어멍 손에 쥐여주었다. 가다 서다 소라를 잡다 보니 어느새 물에 이만큼 들어가 있었고, 그러다 물고기가 보이면 잡았고, 그러다 또 전복이 눈에 띄면 물 아래로 내려가 땄다. 할망과 어멍이 그랬듯 열 살 무렵 복순이는 벌써 해녀였다. 1940년대 이야기다.
제주의 동쪽 섬 우도에서 지난 7일 만난 일흔여덟 살 해녀 양복순씨는 옛이야기를 하면서 목소리를 높였다. "이놈의 할아방이 혼내(한 해)라도 더 벌어 먹을라구 한 거지, 하하. 똘을 놈(딸을 남) 주기가 그렇게 아까와!" 그는 이날도 바다에서 물질을 하고 왔다고 했다. 바다에서 칠십년, 양복순씨는 숨 참아가며 번 돈으로 남편 뒷바라지를 하고 딸 하나를 대학 공부시켜 서울로 시집 보냈다. 남편도 한량이었다. 그에게는 아버지, 남편, 딸이 똑같았다. 모두 목숨 걸고 거두어 먹여야 할 식솔이었다. 양복순씨는 말했다. "제주엔 애기를 남 주어버리는 사람이 없지. 우리가 물질을 허기 때문에…. 아무리 신랑이 십원짜리 하나 안 벌어줘도 여자가 다 애기들을 먹여 살리고, 공부시키고 그러지."
제주 해녀들의 이런 원초적 모성(母性)에 9년 전 한 사진작가가 매혹됐다. '한국에서 가장 비싼 광고사진작가'라 불려온 준초이(62·최명준)였다. 그는 2005년 광고 촬영을 위해 제주를 찾았다가 우연히 해녀를 만났고, 즉각적으로 빠져들었다. 그는 당시 바다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이한 소리에 먼저 홀렸다. '휘이이익! 휘이이익!' 하는, 갈매기의 비명 같은 소리는 원시적이면서 절박했다.
주위를 두리번거리자 한 제주주민이 그 소리는 해녀들이 바다에서 숨을 참았다 내뿜을 때 내는 '숨비소리'라고 설명했다.
"숨이 넘어갈 적에, 너무 힘이 들어 도저히 못 버틸 적에 나오는 소리였지요. 그 소리에서 나는 어머니만이 가질 수 있는 원초적이고 본능적인 에너지를 떠올렸습니다. 담당 직원에게 '해녀를 만나게 해달라'고 졸라 여덟 명의 해녀 사진을 찍고, 서울로 돌아갔죠."
일본 도쿄에서 유학하고 미국 뉴욕에서 젊은 시절 사진을 배운 준초이는 인물 사진에 강한 감성의 작가로 꼽힌다. 그는 "아마 어린 시절 내가 겪은 어머니의 부재(不在)가 그 원인인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젖 떼자마자 큰집에 양자로 들어가 자랐다. 강하고 따스한 어머니에 대한 갈망은 그의 작품을 이끌어간 큰 동력이었다. 그렇게 막연하게 동경하던 어머니의 모습을 그는 해녀에게서 보았다. 틈틈이 제주에 내려가 해녀를 찍다가 지난해 3월 아예 제주 우도로 거주지를 옮겼다. 그사이 9년 전 찍었던 해녀 8명 중 6명은 세상을 떴다.
준초이가 해녀 촬영에 전념키로 결정한 것과 거의 동시에 세상이 잊고 있던 해녀가 갑자기 이슈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지난해 일본 정부가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에 일본의 해녀인 '아마(海女)'를 올리려고 한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한국 해녀의 가치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졌다. 지난해 말 문화재청은 제주 해녀를 유네스코 문화유산 신청 종목으로 선정했다.
왜 지금 해녀일까. 9년 동안 제주의 해녀를 좇아온 준초이는 말했다.
"머리로만 사는 얄팍한 시대에 우리가 지친 것 아닐까요. 몸으로, 세포로 터득한 해녀의 지혜를 글로 배운 지식으론 절대 이길 수가 없으니까…."
◇"해녀가 죽는 건 태반이 욕심 때문"
7일 오전 9시 제주 우도의 바닷가. 바닷물이 서서히 빠지는 썰물의 바닷가에 해녀 20여명이 모여 물질 준비를 시작했다. 그 옆에 장화를 신고 카메라를 든 준초이가 따라붙었다. 뽕돌(잠수를 쉽게 하려고 허리에 차는 돌)을 허리에 묶던 해녀가 소리를 질렀다. "하루방, 또와쑤까아!"
"풀쑥이랑 치약으로 문지르면 수경에 김이 얼릉얼릉하지를 않거든, 으헤헤!"
고무 옷, 오리발, 뽕돌을 차려입은 해녀들은 옷 갈아입고 잡담을 하는가 싶더니 금세 바다로 '희어(헤엄쳐)' 들어간다.
해녀들의 잡담이 그들만 해독(解讀)할 수 있는 가락으로 변해 파도 소리와 섞였다. "아아아해! 아아아해! 아아아! 아아아해!"
해녀들은 현무암 해안을 토끼처럼 가볍게 걸어 바다 속으로 들어가 금세 너울너울 멀어진다. 10분이 채 지났을까 싶은데 어느새 까마득 잘 보이지 않는다. 도저히 수영으로 갈 수 있는 속도가 아니다. 50년 넘게 해녀로 살아온 윤복자(66)씨는 "물을 타고 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썰물 때 물 타고 나갔다가 물이 들어오면 같이 따라 들어오는 거지. 시계는 없어도 바다에서는 물이 돌아서는 때를 몸으로 다 알 수가 있지. 매일 하니까."
넓고 깊고 무거운 바다는 인간에게 미지(未知) 그 자체다. 지식만으로 덤비려 하면 당한다. 준초이는 "해녀들은 지성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지혜와 본능으로 산다. 생(生)과 사(死)를 다툴 때 지성으로는 생으로 못 가지만 지혜로는 갈 수 있지 않겠나"라고 했다. 해녀의 지혜는 과학으로는 설명이 잘 안 된다. 돌고래가 나타나면 다음 날 물질을 해선 안 된다거나 일본 쪽에서 오는 '샛바람'이 불면 수면은 잔잔해도 물속이 혼탁하고, 큰 파도는 네 번 이어 오지 않는다는 식이다.
'지난겨울 해녀 두 명이 폭풍에 떠내려가 이틀 밤낮을 소라를 깨 먹다 간신히 구조됐다' '덩치 좋은 한 해녀는 아침에 삭힌 홍어 한 점을 먹고 들어갔다가 급체해 바다 아래서 숨이 멎어 죽었다'…. 해녀들 사이에 죽음 이야기도 흔하다.
제주 성산의 해녀 고송환(69)씨는 "해녀가 죽는 건 태반이 욕심 때문"이라고 말했다. "요기도 있고, 요기도 있으면 요거 두 개만 가지고 나오면 되는디, 고개 들었을 때 저쪽에 또 뭐가 보이는 거지예. 욕심 있는 사람은 고개를 들었다가 그걸 주우려고 또 내려가. 숨이 차 있는 상태에서 한 번 더 내려가는 것은 굉장히 차이가 있어. '내가 저거야 못하겠느냐' 이렇게 생각하다 잘못되는 거지야…."
◇"운으로다 사는 인생이다"
죽음과 맞닿아 사는 해녀를 두고 사람들은 '독하다'고 한다. 썰물 때 바다에 나간 해녀는 네 시간 정도 지나 물이 들어올 때까지 물질을 멈추지 않는다. 수경을 쓰고 거의 90도로 물 아래로 헤엄쳐 들어가 1분 남짓 지나서야 물 밖으로 나온다. 그냥 숨 참고 있기도 어려운 시간에 해녀는 수면 아래로 10m 넘게 들어갔다가 해산물을 따서 올라온다. 한 해녀는 말했다. "당연히 독하지. 독하지 않으면 자맥질을 할 수가 없어예. 바다의 것은 욕심이 없으면 안 되니까. 하지만 독하다고 무섭지 않은 것은 아니에요. 다들 제일 무서분 게 하나씩 있어요. 내가 제일 무서분 것은 물, 그러니까 조류(潮流)예요."
첫댓글 그 숨비소리에 담겨있는 제주 해녀들의 삶의애환ᆢ좋은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