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화 장편소설 <인생> - 백원담 옮김, 푸른 숲, 1997.
- 2015년 5월 25일 부처님 오신 날 오후 7시 남포면옥에서 여주모 독서모임 -
3~4년 전에 위화의 작품 소설'허삼관 매혈기'와 ‘형제’를, 에세이집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 를 읽었다. 저 에세이집에는 문화대혁명시절의 얘기도 많이 나온 것 같다.
위화의 소설은 주로 사실적인 내용을 매끄럽게 전개하여 쭉쭉 잘 읽히는데 책 내용이 머릿속에 남아 있지 않다. 아마도 나의 나이탓일 것이다.
이 소설은 민요를 수집하는 사람이 밭에서 우연히 만난 한 노인으로 하여금 자신의 일생을 이야기하게 하는 형식으로 전개된다.
이 소설은 주인공 푸그이가 젊은 시절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결혼했으나, 노름으로 가산을 탕진하고, 아내에게 몹쓸 남편 노릇을 하고, 군대에 끌려가서 국공내전에서 산전수전 천신만고 끝에 죽을 뻔하다 가족에게 돌아왔는데, 가족들이 즉, 아들과 딸, 아내, 사위, 손자 모두를 자신의 손으로 묻고 정작 가장 나이가 많은 노인은 끈질기게 살아남은 인생이야기다.
아들은 헌혈 과다로 죽고, 딸은 출산 중 죽었으며, 아내는 구루병을 오래 앓다가 죽고,
사위는 시멘트 판 사이에 끼는 사고로, 손자는 삶은 콩을 너무 많이 먹어서 죽는다.
살림 밑천으로 어렵게 마련한 양 한 마리를 생활고 때문에 팔게 되었을 때
양에게 가축 이상의 애정을 쏟았던 노인 아들이 느낀 이별의 슬픔을 표현한 대목도 애잔했다.
화자인 노인 푸구이의 실수로 3대의 인생이 힘들고 복잡하게 돌아간 부분도 있지만
전쟁, 문화대혁명 등 사회정치적 배경이나 가난이나 열악한 의료 환경의 영향도 컸다는 것을 보면서
한편으로 지금 우리의 안락함에 안도하게 한다.
어떤 텍스트(책이나 영화 등등)를 읽다 나면 독자는 저자의 의도나 줄거리에 억매여 얘기하기 보다는
그 텍스트를 보게 된 계기로 독자 각자가 자기의 지식과 상상력을 기반으로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하게 되기 마련이다.
그래서 독서모임에서 읽은 소감은 다 차이가 나기 마련이고 그래서 독서모임이 의미가 있다.
다 자기 멋대로 읽고 발표한다는 얘기고 지금 나도 그러한데...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나의 反(반) 中國的 사고를 확인하게 되었다.
이 책은 쉽게 읽히고 한번 잡으면 쭉쭉 진도가 잘 나가지만 나는 읽다가 중간에 책을 덮어 버렸다.
중국 국공 내전에서 국민당 정부와 공산당 정부가 싸우는 과정에서 푸구이는 국민당정권의 군대에 속해 있었는데
장개석 정부가 자기 군인들을 내팽개쳐서 많은 군인들 거의 모두가 부상당하고 얼어 죽는다.
국민당 군대와 전쟁의 와중에서 일어나는 비인간적인 행태들, 부패하고 무능한 정권, 그 정권을 지원하는 미국을 비롯한 서방 정권들!
인간들의 무기력함과 추악함에 몸서리가 쳐졌다.
하기야 우리도 항일독립운동, 6.25전쟁 등에서 저것과 같은 처절한 상황이 있었겠지만,
위화가 그린 중국의 상황은 사람의 숫자가 많아서 더욱 그런지 묘사를 잘 해서 그런지 더욱 더 끔찍했다.
인간의 악행은 어디까지이고 인간은 얼마나 더 타락할 수 있는가?
중국 1960년대를 휩쓴 문화대혁명 시절의 말도 안 되는 작태들도 위화는 담담하게 어떤 때는 코믹하게 그렸지만
그 와중에 절망하고 죽어나간 인민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메어진다.
이 소설은 픽션의 형식을 빌렸지만 이 내용들이 거의 다 논픽션일 것이리라!
앞부분에서 푸구이가 노름하며 자기 인생을 망쳐가는 애기가 나오지만
주로 뒷부분에서는 한 인간이 국가시스템이나 전쟁과 같은 사회구조 속에서
얼마나 무기력하게, 그렇지만 심각하게 영향을 받는가에 대하여 얘기한다.
그 체제에서 한 인간은 어찌할 수 없이 이리저리 휩쓸리며 심각한 피해를 받지!!
이 소설의 원제(原題)는 활착(活着)이다.
활착의 사전적 의미는 <접목하거나 옮겨 심은 식물이 제대로 붙거나 뿌리를 내려서 살아가는 것>인데,
이는 인간의 강한 생명력을 이야기 하는 것이겠지!
이 책의 서문에 작가도 썼듯이 “사람은 살아간다는 것 자체를 위해 살아가지, 그 이외의 어떤 것을 위해 살아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은 사실이다.
푸구이도 그냥 살다 보니까 그렇게 기구한 삶을 살게 된 것인데,
작가는 “사람이 고통을 감내하는 능력과 세상에 대한 낙관적인 태도”로 이 소설을 썼다지만,
나는 인간의 비극성과 잔인함과 추악함에 치를 떨어야 했다.
중국 태생이지만 미국으로 귀화한 ‘하진’ 이라는 소설가가 쓴 ‘전쟁쓰레기’라는 소설을 보았는데,
누가 전쟁쓰레기냐 하면 한국전쟁에서 중공군으로 참여했다가 포로로 잡혀 포로협상 때에 (대만을 택하지 않고)
중국 본토를 택해 중국으로 돌아온 포로들을 말한다.
그렇게 죽을 고비를 넘겨 중국으로 되돌아 왔으면 환영하고 대우를 해줘야 하는데,
너희들은 고국을 위하여 목숨을 바치지 않고 왜 비굴하게 포로로 잡혔느냐 하면서 전쟁쓰레기 취급을 하고,
교육을 받을 권리와 공직에 취임할 권리를 박탈하는 등 많은 박해를 했었다고 한다.
특히 문화대혁명 때에 그 박해는 매우 심했고 1980년대에 등소평 집권 이후에 복권되었다 한다.
미국은 자기 나라 국민이 어디에서 포로나 인질로 잡혔다가 살아 돌아오면 영웅대접을 하는 것과 너무나 대조적이다.
인구가 많아서 그런지 중국은 국가의 이익을 앞세우고 인민의 생명의 존엄성이나 인권에 대하서는
눈 하나 깜짝 안하고 뭉개버리는데, 그런 반인권적 자세에 대하여 그 책을 읽을 때도 치를 떨었다.
하기야 천안문 사태 때도 탱크로 자국 시위대를 깔아 죽였지!
나는 좌익적 사고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지만
저런 중국의 성장과 패권을 두려워하여 오히려 친미적인 태도를 지니고 있는 사람이다.
미국의 악행도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지만
그래도 미국에는 양심세력이 남아있어 정부를 끊임없이 견제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는데 반하여
저런 중국은 내부의 견제세력이나 양심세력도 없고
자기들이 힘이 쎄지면 언제든지 안하무인 처럼주변국을 무참하게 짓밟을 수 있는 나라이리라!
중국 내부에 있는 소수민족들의 운명도 그러하지만,
중국이 통일이 되고 힘이 쎄지면 그 중국에게 유린당하고 수탈당한 우리의 역사가 바로 그것을 증명하지 않는가? 근래의 동북공정도 그렇고!
그 날 승종이가 그랬나? 중국의 모든 출판물은 정부의 검열과 같은 출판 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그러니 중국에는 반체제인사나 양심세력이 발을 붙일 수가 없지!
그래서 나는 저 중국이 싫고 두렵다.
첫댓글 活着은 '살아 있는(가는)' 정도로 해석하시면 됩니다.
중국에 있을 때 活着를 영화로 보고 많이 울었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