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네 살에 부모를 모두 여읜 공명은 숙부에게 의탁하고 공명의 나이 열일곱에 대학자 석도를 만난다. 군계일학의 재주를 꽃피우며 학문을 익히던 공명은 스물이 되기 전에 배움을 떠나고 양양의 명사 황승언의 딸을 아내로 맞아 부부의 연을 맺는다. 제갈공명의 가문, 제갈씨의 자제와 일족은 뒷날 삼국의 각 나라에 걸쳐 벼슬을 지내게 된다. 그들은 각 시대의 한 분야를 움직인 것이다. 그 중 제갈풍은 전한의 원제시대에 사예교위 경찰 책임의 벼슬을 지냈는데 원래부터 강직한 성품을 지닌 사람이었다. 법에 따르지 않거나 어기는 자가 있으면 어떤 특권계급도 용서하지 않았다. 그때 원제의 외척으로 허장이라는 벼슬아치가 있었다. 이 자가 국법을 어기는 행위를 자행하자 제갈풍은 언젠가는 법의 위엄을 보이겠다며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그런데 허장은 또 법을 어기고도 반성하는 빛이 추호도 없었다. 기회를 엿보던 제갈풍은 친히 부하를 이끌고 그를 사로잡으러 갔다. 그런 줄도 모르고 허장은 궁궐에서 나오다 제갈풍과 마주치자 황망히 궁궐 안으로 도망쳐 버렸다. 그리고는 허둥지둥 천자에게로 달려간 허장은 곤룡포의 소맷자락을 잡고 제발 살려 달라고 울며 호소했다. 제갈풍은 천자 앞에 나아가 국법은 결코 어길 수 없음을 설복하며 그를 옥에 가두어 버렸다. 이에 천자는 오히려 제갈풍을 미워하여 성문교위라는 벼슬자리로 좌천시켰다. 그런 뒤에도 그는 조금도 위축됨이 없이 자주 벼슬아치들의 죄를 가차없이 규탄하고 벌주려 했다. 마침내 벼슬아치들의 미움을 받아 그는 벼슬자리에서 쫓겨났다. 그는 그 뒤로 벼슬길에 오르지 못하고 고향에서 서민의 한 사람으로 생을 마쳤다. 제갈이란 성은 초기에 '갈'이라는 외자 성이라는 설이 있다. 중국 대륙의 여러 한인 성 중에도 두 자 성은 극히 귀한데 제성현에서 양도로 이사했을 때 양도의 성 안에 같은 성을 가진 가문이 있어 이와 구분하기 위해 '제갈'이라는 두 자 성으로 했다는 것이다. 공명의 부친 규는 태산군승의 관직을 가졌었고, 숙부 현은 예장태수였다. 이렇게 볼 때 이 무렵의 가세는 꽤 번성했다고 할 수 있으리라. 공명의 형제는 넷이었는데 남자가 셋이요, 여자가 하나였다. 공명은 그 중의 두 번째였다. 형인 근은 일찍부터 낙양의 대학에 들어가 유학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그의 생모는 세상을 떠나고 부친은 후처를 맞이하였다. 그런데 그 후처를 남겨 놓고 이번에는 부친 규가 죽었다. 공명이 열네 살쯤이 될 때의 일이었다. 배가 다른 어린 세 아이를 거느린 후처 장씨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이런 시기에 대학 공부를 마친 장남 근이 낙양에서 돌아왔다. 그리고 낙양에서 큰 난이 일어났음을 알려 주었다. "앞으로 이 세상은 어떤 혼란이 일어날지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황건의 난은 여러 고을에서 시작되어 낙양에까지 그 불길이 번졌습니다. 이 북쪽 땅도 머지않아 전란 속에 휘말릴 것이니 우선은 남쪽으로 난을 피해 떠나야겠습니다. 그리고 강동에 사시는 숙부에게 의탁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장남 근은 계모에게 그렇게 말하며 강동으로 갈 것을 종용했다. 근은 정직하고 고지식하여 계모를 성심성의껏 모셔 생모 모시듯 한다고 주위에서 칭송이 자자했던 터였다. 전란과 재해가 빈번했던 대륙이라 그 당시의 백성은 전란과 재해를 피해 넓은 대륙을 이리저리 떠돌아다니기에 익숙해 있었다. "남쪽으로, 남쪽으로!" 북방과 산동의 농민은 물이 낮은 곳으로 흐르듯이 각자의 살림살이 도구며 노인과 어린이를 등에 업고 강동 지방으로 이주했다. 열네 살에 불과했던 공명의 눈에도 이 처량한 유랑민, 굶주린 백성의 모습이 가슴 깊이 새겨지고 있었다. 열네 살의 나이면 이미 사서삼경을 읽었을 나이였다. '이것이 사람 사는 원래의 모습이 아닐 것이다. 이 세상에 한 사람의 위대한 인물이 나타나면 그 무수한 백성들은 겁에 질리고 생활에 찌들린 눈이며 백골처럼 여윈 얼굴이 되지 않아도 될 것이다. 하늘에 해와 달이 있듯이 천하에도 해와 달의 광명을 지닌 인물이 있을 것이다. 해와 달 같은 인재가 나타나지 않으므로 소인들끼리 뺏고 뺏기는 가운데 악한 성질만 드러내어 세상을 어지럽게 하고 있는 것이리라. 불쌍한 것은 아무것도 모르는 채 넓은 천하를 떠돌아다니는 백성들이다.' 소년 공명도 가족과 함께 유랑민들 속에 섞여 광야에서 끝없는 여행을 계속했다. 유랑 생활은 괴롭고 고통스러웠으며 생명이 위태로운 순간도 여러 차례 넘겼다. 대륙의 모래 먼지, 호우와 무더위에 시달리며 야수와 독충의 공포에 휩싸이기도 했다. 20대의 장남, 열네 살의 공명, 그 아래 아우와 누이는 이 유랑의 시기 동안 삶에는 강한 힘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우치게 되었다. 이러한 간난과 신고를 거듭한 끝에 간신히 숙부 제갈현의 집에 당도한 것이 초평 4년의 가을이었다. 그때는 동탁이 피살되고 이각, 곽사가 난을 일으킨 다음 해였다. 숙부의 집에 한 반 년쯤을 머무르고 있었는데 숙부는 형주의 유표와 연고가 있어 형주로 옮겨 가게 되었다. 이때 공명과 아우 균은 숙부의 가족과 함께 형주로 이주하였는데 장남 근은 계모 장씨와 함께 강남으로 건너갔다. 근은 오나라에서 따라 뿌리를 내릴 작정이었던 것이다. 남쪽으로 이주한 한 민족은 그 풍부한 산물과 넓고 기름진 땅에서 금세 새로운 생활의 터전을 잡기 시작했다. 유랑민의 대부분은 노비 출신이 아니면 농부들이었고, 그 중에는 공명의 가족과 같이 사대부나 학자 등 지배 계급도 많이 있었다. 그들은 각자가 선택한 토지에 생활의 터전을 잡고 그곳에서 새 사회를 형성하고 새 문화를 건설했다. 그 분포를 보면 남방의 연해 지방인 강소 방면에서 안휘, 절강에 미치고 양자강 기슭의 형주에서부터 북방으로 다시 올라가 익주까지 퍼져 있었다. 계모를 모신 공명의 형 제갈근이 오나라에 장래의 기대를 걸고 양자강을 건너 남쪽으로 내려간 것은 과연 지식인다운 행동이었으리라. 이후 7년째가 되는 해, 오의 손책이 죽은 해에 오주가 된 손권의 눈에 들어 제갈근은 손권을 섬기게 되었다. 한편, 숙부와 그 가족들과 함께 형주로 이주한 공명과 막내 아우 균은 숙부의 보호 아래 한동안은 평탄하게 지냈다. 그러나 그 이후의 운명은 형인 제갈근과는 정반대였다. 소년 공명을 단련하기 위해 온갖 시련이 덮씌워진 것이다. "형주는 큰 고을이다. 너희들이 한 번도 보지 못한 것들이 참으로 많은 곳이다. 숙부께서는 형주의 유표와는 각별한 사이인데다 이번에 부름을 받고 갔으므로 그곳에서는 귀한 대접을 받게 될 것이다. 너희들도 곧 여러 사람들로부터 '도련님' 소리를 듣고 살아야 하니 몸가짐을 단정히 해야 한다." 숙모나 주변의 어른들로부터 이런 말을 들은 소년 공명의 가슴은 기대와 희망으로 크게 뛰고 있었다. 그리고 막상 형주에 머물면서 그곳의 문화에 얼마나 신기해하고 놀라워했는지 모른다. 그런데 1년이 채 못 되어서 숙부 현은 다시 유표의 명을 받게 되었다. "예장태수 주술이 죽었으므로 그곳을 다스려 주게." 이번에는 태수가 되었으니 영전이었다. 그러나 막상 임지인 남창에 부임해 보니 문화는 보잘것 없고 거기다가 신임 태수에 복종하지 않는 세력 또한 만만치 않았다. 더욱 곤란한 것은 조정에서도 새로운 태수를 임명한 것이었다. "그는 한실의 조정에서 임명한 태수가 아니다. 우리들은 근거도 없는 지방관에게 복종할 이유가 없다!" 그를 탄핵하는 목소리가 점차 커져 갔다. 중앙에서 한조의 사령을 받는 주호라는 사람이 임지로 내려오니 이미 제갈현이 태수로 앉아 있었다. 성 안에도 들지 못한 주호가 그를 비방하는 목소리를 높이니 그에 동조하는 세력 또한 늘어 갔다. 사태가 이에 이르자 당연히 싸움이 일어났다. "내가 예장의 태수다!" "아니다. 나야말로 진정한 태수다!" 양쪽은 서로 이렇게 외치며 싸움을 벌였다. 그런데 주호는 책융과 유요의 호족들이 뒤를 밀어 주고 있어서 제갈현은 금세 전쟁에 패하여 성에서 쫓겨나고 말았다. 소년 공명과 아우 균은 이때 처음으로 전쟁을 몸으로 겪었다. 숙부 일가와 함께 난군 속에서 피신하여 성 밖 멀리 몸을 숨기고 재기를 꾀하였다. 그러나 숙부 현은 어느 날 밤 토민의 반란으로 목이 잘리고 말았다. 공명은 아우 균을 데리고 처참한 패잔병과 함께 이곳 저곳으로 몸을 피해 다녀야 했다. 그때는 이미 숙모의 가족은 모두 반란군의 손에 죽임을 당한 뒤라 주변에는 낯선 군사들만 있었다. 이 무렵 영천의 대학자 석도는 각 고을을 두루 돌아다니다가 형주에 머물고 있었다. 원래 형주와 양양 지방은 호학하는 기품이 높았다. 낡은 유학에 대하여 새로운 해석이 추구되었고, 당금의 군사, 법률, 문화 등이 정치 위에 새로운 학설을 추구해 보려는 기운이 왕성했다. 그뿐만 아니라 학교를 지어 학문 진흥에 주력했다. 숲과 샘물이 있는 곳에는 많은 새들이 모여드는 법이다. 자연히 이 지방의 호학하는 풍조를 흠모하여 모여드는 학도와 선비가 많았다. 영상의 서서, 여남의 맹건도 다 이때 모여든 사람들이었다. 숙부를 잃고 의지할 데가 없어서 세파에 시달려 오던 공명이 대학자 석도를 찾아가 배움을 청한 때가 그의 나이 열일곱이었다. 이듬해 석도는 주변의 여러 고을을 유람하며 다녔는데 그때 스승을 따라다닌 제자들 중에는 공명, 서서도 있었다. 또한 온후하고 독실한 학자풍의 인물 맹건이 있었다. 서서와 맹건은 공명보다 나이가 위였으며 학문을 배우기 시작한 것도 공명보다 빨랐다. 그러나 두 사람 다 공명을 결코 만만하게 보지 않았다. "저 사람은 장래에 한몫을 할 수재이다!" 서서와 맹건은 공명을 보고 이렇게 칭찬했다. 과연 공명은 날이 갈수록 그 재주가 빼어나 군계일학이 되었다. 뿐만 아니라 그 사람됨도 나이가 들수록 천성적인 재질을 나타내어 이른바 흔히 말하는 수재와는 그 궤를 달리했다. 그러던 중 스무 살이 되기 전에 공명은 학문의 장에서 떠나갔다. 학문을 위한 학문을 하는 학도의 무능과 이론을 위한 이론만으로 나날을 허송하는 곡학아세(세상 사람들의 비위를 맞추는 정도를 벗어난 학문)의 무리에서 벗어난 것이었다. 공명은 그 이후 양양의 서쪽 교외에서 아우와 더불어 농사를 지으며 글을 읽는 반농 반학자적인 생활을 시작했다. 문자 그대로 청경우독이었다. "꽤나 노숙한 체하는군." "벌써부터 은둔생활을 자처하다니......" 학우들은 모두 그를 비웃었다. 그를 인정하고 존경하던 사람까지도 세월이 지남에 따라 모두 그를 떠났다. 그러나 공명은 겉으로 보기에는 조용하고 한가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었지만 이때야말로 뒷날을 위한 준비를 다지고 있었다. 그 후에도 그의 초려에 자주 왕래한 사람들이 많았다. 서서와 맹건도 그 중의 한 사람들이었다. 양양에서 공명의 집이 있는 융중에 가려면 교외의 길을 20리 정도 걸으면 되었다. 융중은 산수가 수려한 곳이었다. 멀리 호북성의 고지에서 흐르는 한수의 흐름이 동백산맥으로 이어지다가 육수와 합쳐진다. 이 강물은 중부 대륙의 평원을 굽이쳐 흘러 면수로 이어지는데, 그 서남쪽 기슭에 양양을 중심으로 하는 해묵은 고을이 바로 융중이었다. 공명의 집에서는 개인 날에는 그 강물과 시가가 한눈에 바라다보였다. 그의 집은 융중의 남쪽에 있는 야트막한 언덕에 있었다. 그 언덕은 마치 누워 있는 용과 같은 모습이라 하여 와룡강이라 하였다. 하루는 친구인 맹건이 예고도 없이 찾아왔다. "곧 고향에 돌아가야겠기에 오늘은 작별 인사차 왔다네." 공명은 이렇게 말하는 선배의 얼굴을 잠시 말 없이 지켜 보다 입을 열었다. "왜 고향으로 돌아가려는 겁니까?" "양양은 지나치게 화평스러워 명문 명졸의 선비가 학문을 닦거나 천하를 논하며 소일하기는 좋은 곳이네. 그러나 나 같은 서생에게는 어울리는 곳이 아니네. 그래서 그런지 근자에는 자꾸만 고향 여남이 그리워진다네." 한참 야망과 혈기에 차 있던 젊은 선비로서 양양의 안온한 생활에 권태를 느끼고 있던 맹건이었다. 그러나 공명은 조용히 고개를 흔들며 그를 말렸다. "양양이 너무 평화롭다고 했지만 이 평화가 백년 동안 계속된다고 보시오? 더구나 고향인 북방이야말로 옛부터 문벌이 많아 벼슬아치들 사대부들이 즐비하오. 그곳이야말로 명문 호족의 배경이 없는 서생을 받아들일 여지가 없소이다. 거기에 비하면 오히려 남방의 신천지에서 유유자적하며 때를 기다리는 것이 낫지 않겠소?" 맹건도 젊은 혈기를 다스리지 못해 그런 말을 했으나 공명의 말을 듣고 헤아려 보니 깨닫는 바가 있었다. 그래서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듣고 보니 그대의 말이 지당하네. 내가 너무 답답했던 나머지 앞뒤를 헤아리지 못했네." 맹건은 고향으로 돌아가려는 생각을 바꾸었다. 맹건과 서서가 곧잘 공명의 재주를 찬양해서인지 양양의 명사들 가운데에서도 어느덧 공명의 존재와 그 인물에 대해 점차 이름이 퍼지기 시작했다. 그 당시 이른바 양양의 명사인 지식계급들 중에는 최주평, 수경 선생 사마휘, 방덕 공 등 대선배들이 있었다. 공명은 이들과도 폭넓은 교유를 가졌다. 그 중에는 하남의 명사 황승언은 공명의 사람됨을 높이 평가하고 있었다. "내게도 딸이 있지만, 만약 내가 여자라면 융중의 한 젊은이에게 시집 갈 것이다." 융중의 젊은이란 물론 공명을 가리킨 말이었다. 그가 얼마나 공명을 아끼고 있었는지를 짐작게 하는 말이었다. 그러자 중매를 서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있어서 황승언의 말은 마침내 실현되었다. 그리하여 공명은 황승언의 딸과 맺어지게 되었다. 그런데, 신부는 아버지 황승언의 얼굴을 닮아서 박색이었다. 정숙하고 얌전하여 명문의 자녀로서 교양에는 손색이 없었으나 타고난 용모는 보잘것 없었다. 그러나 공명은 그를 쾌히 아내로 맞아들였다. 공명의 결혼을 보고 사람들은 웃으며 이런 노래를 불렀다. 공명에게 아내 고르는 것만은 배우지 말라 볼품 없이 못생긴 추녀를 얻을라. 공명은 키가 훤칠하니 컸으며 살갗은 희고 몸매는 다소 여윈 편이었다. 그의 아내는 아버지 황승언을 닮아 찢어진 작은 눈에다 살색도 검고 키도 작았다. 그러나 그녀의 어머니는 형주 제일의 명문인 채씨 일가의 딸이었으며 유표의 부인과는 형제간이었다. 공명은 그의 아내를 택함으로써 형주의 두 명문과 결속을 맺게 된 것이었다. 공명이 황승언의 딸을 택한 것은 반드시 그것을 노래 택한 것이라고는 볼 수 없었다. 공명과 그 신부는 실제로 금슬 좋은 부부였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그의 융중에서의 생활은 몇 해 동안은 지극히 평화로운 일상이었다. 어느 날, 공명은 친구들과 함께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각기 시국을 논하고 장래의 포부를 얘기하고 있었다. 공명이 그들의 이야기를 미소지으며 듣고 있다가 입을 열었다. "그대들이 다 관계에 나가면 자사나 군수 정도의 출세는 할 것이네." 친구 중 하나가 즉시 그에게 물었다. "그럼 자네는 무엇이 되고 싶은가?" "나 말인가?" 공명은 그렇게 되묻고는 싱글싱글 웃기만 할 뿐 대답하지 않았다. 그의 뜻은 그런 데에 있지 않았다. 관리, 학장, 영달, 이 모두가 그의 넓고 깊은 뜻을 담기에는 부족했다. 그는 일찍부터 춘추시대의 재상 관중, 전국시대의 명장 악의 이 두 사람을 마음 속에 두고 있었다. '나의 문과 무의 재간은 바로 이 두 사람과 견주어야 하리라.' 문으로는 관중처럼 되고, 무로는 악의가 되고 싶은 것이 그의 포부였다. 따라서 학자보다는 천하를 바라보며 선정을 베푸는 법가와 병가에 탐닉하고 있었다. 악의는 춘추 전국 시대에 연나라 소왕을 도와 다섯 나라의 병마를 지휘하여 제나라 70여 성을 얻은 명장이었다. 또한 관중은 제나라 환공을 보좌하여 부국강병책을 써서 열국을 누르고 마침내 패업을 이룬 명재상이었다. '지금이 바로 그 춘추 전국 시대와 흡사한 난세가 아닌가?' 젊은 공명은 이렇게 천하를 보고 있었다. '관중, 악의, 지금 그들과 견줄 만한 인물이 나말고는 누가 있겠는가!' 공명은 마음 속으로 이렇게 외치며 학문에 전념하는 한편 명사들과 교우하며 융중에서의 10년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그는 가끔 집 뒤의 낙산에 올라가서 망망대해와 같이 끝없이 펼쳐진 대륙을 종일토록 바라보곤 하였다. 이미 형 제갈근은 오나라에서 벼슬길에 들어서 있었다. 그 당시 오나라의 손권은 남방에서 착실히 그 세력을 구축해 가고 있었다. 그러나 손권의 속마음을 알 수 없는 공명이었다. 그가 한실에 대해 반역의 마음을 품는다면 그 역시 공명의 뜻과는 맞지 않았다. 거기다가 형 제갈근이 이미 그로부터 받은 벼슬을 살고 있지 않은가. 북쪽 하늘, 조조가 있는 허도는 공명에게는 어두운 하늘로만 비쳐지고 있었다. 원소가 죽고 난 이후 조조의 위세는 우레처럼 사방에 떨치고 있었다. 그러나 백성들은 과연 조조의 위세에 진심으로 복종하고 있는지 의심스러웠다. 그가 천자를 앞세우고는 있지만 언제 그의 야심을 드러낼지 알 수 없는 지경이었다. 거기다가 천하에 내노라 하는 재사와 무장이 많았다. 공명의 눈에는 그들이 거슬렸다. 익주, 파촉의 오지는 아직 태풍권 밖에 있는 듯 두터운 구름에 싸여 있었다. 그러나 장강의 물은 그곳에서 흘러오지 않는가. 은빛 비늘을 번쩍이며 무수한 물고기들이 그곳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면 그곳이 천하의 중심이 되리라. 그러나 아직도 구름이 걷히고 찬란한 햇빛이 비칠 기운은 일지 않고 있었다. '이렇게 볼 때 내가 있는 위치는 바로 오, 촉, 위가 셋으로 나누어지는 그 한가운데가 아닌가? 형주는 그리하여 천하의 중앙이다. 그러나 이곳에서 지금 천하의 심장을 쥐고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유표가 있지만 그는 다음 세대의 인물이 아니다. 선비나 무장 중에도 그런 인물이라 여겨지는 사람은 없었다. 홀연히 저 하늘에서 내려지는 신인은 없는가? 홀연히 땅에서 솟아오르는 영웅은 없는가?' 날이 저물면 공명은 양부음의 노래를 나직하게 읊조리며 산을 내려오곤 했다. 양부음의 노래는 옛날 제나라의 재상 안평중이 복숭아 두 개로 세 용사를 죽인 것을 노래한 것이었다. 세월의 흐름은 장강의 물처럼 쉴새없이 흐르고 있었다. 어느덧 건안 12년, 공명의 나이 스물일곱이었다. 유비가 서서로부터 그의 이야기를 듣고 그 초당을 방문하고자 마음먹고 있었던 시기는 바로 그 해의 늦가을 경이었다. 서서는 유비에게 공명을 찾아가 보라고 권한 뒤 말에 채찍질을 가하며 길을 떠났다. 그러나 서서는 여전히 유비의 은덕과 두터운 정에 뒷덜미를 잡히고 있는 듯한 감정에 휩싸인 채 말을 달리고 있었다. 그 어떤 이별이던 슬프지 않은 것이 없으나 남자에게는 주인과 신하의 이별 또한 간장을 끊는 아픔이라는 것을 깨닫고 있었다. 말을 달리면서도 한동안 유비 생각을 떨치지 못하고 있던 서서는 문득 한 가지 걱정이 떠올랐다. 헤어질 무렵에 자기가 유비에게 천거했던 제갈공명의 일이었다. 어김없이 주군 유비는 금명간 공명을 찾아갈 것인데 과연 공명이 그 청을 받아들일 것인가? '아무래도 공명이 주군의 청을 쉽사리 들어 주지 않으리라!' 공명을 잘 아는 서서는 그 일이 걱정되었다. '그렇다. 와룡강에 들렀다 가도 그렇게 먼 거리를 돌지는 않는다. 작별 인사라도 나눌겸 공명을 만나고 가자. 그리고 주군의 간청에 응하라고 부탁해 보자.' 서서는 그렇게 생각하고 말머리를 돌려 양양 서교로 향했다. 와룡 언덕이 보이고, 이윽고 공명의 초당이 시야에 들어왔다. 때마침 늦가을이라 온 산은 단풍으로 물들었다. 찾아오는 이도 없는 공명의 집 지붕 위에는 낙엽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서서가 공명의 초당으로 들어가자 객과 주인은 인사를 나누었다. 공명이 서서를 보며 조용히 물었다. "갑자기 웬일인가?" 공명의 물음에 서서는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실은 나는 얼마 전부터 신야의 유현덕을 섬기고 있었네." "그 소문은 나도 듣고 있었네." "그런데 시골에 남겨 두고 온 홀어머님을 조조가 허도로 데려가 옥에 가두고는 내게 글을 쓰게 하였네. 내 가지 않으면 목숨마저 위태로운 지경이니 자식된 도리로 가지 않을 수가 없게 되었네." "음-. 사정이 그렇게 되었군. 벼슬은 언제든지 할 수 있으니 우선 노모님부터 구해 드려야 하지 않겠나?" "그래서 길을 떠나며 작별 인사를 나누고 청을 하나 드리고자 하네." "어디 말씀해 보게." "다름이 아니라 오늘 주군께서 몸소 멀리까지 배웅을 해 주시며 몹시나 서운해 하시기에 내가 보다못해 자네를 천거했네. 그래서 송구스러운 가운데도 주군이 찾아오면 부디 이를 물리치지 말라고 청하러 왔네. 옛 정을 생각해서라도 그의 청을 뿌리치지 않고 그를 도와 준다면 나는 더없는 다행으로 여기겠네." 그러자 가만히 귀를 기울이며 서서의 말을 듣고 있던 공명은 불현듯 언성을 높였다. "자네는 나를 제향의 제물로 바칠 작정인가?" 공명은 불쾌한 듯 소매를 휘저으며 나가 버렸다. 서서는 섬뜩하니 가슴이 내려앉았다. 유비를 위해 달려왔지만 오히려 일을 그르친 것이 아닐까 하는 염려 때문이었다. 공명이 희생 제물이라고 말하자 서서도 생각나는 것이 있었다. 옛날 어떤 임금이 장자를 등용하려고 사자를 보냈더니 장자가 그 사자에게 말했다고 한다. "그대는 희생되는 소를 보지 않았느냐? 목에 금방울을 달고 맛있는 음식을 주며 기르지만 나중에는 끌고 가서 제사 때 제단에 오를 때는 피를 짜고 뼈를 부수지 않더냐?" 이는 곧 벼슬살이를 나가 녹(맛있는 음식)을 먹고 지내지만 결국은 그 목숨마저 바쳐야 함에 비유한 것이었다. 서서는 공명의 말에 서운함과 부끄러움을 금할 수 없었다. 물론 경외하는 친구를 소로 팔 생각은 추호도 없었던 서서였다. 공연한 말을 하여 잠시나마 그에게 언짢은 기분이 들게 한 것을 후회했다. '어느 날엔가 내 뜻을 헤아릴 날이 있을 것이다.' 서서는 갈 길이 바빠 그렇게 스스로를 달래며 더 이상 지체하지 않고 그 자리를 떠났다. 밖으로 나오니 황혼이 물든 하늘에 낙엽이 떨어지고 있고 벌써 겨울이 다가왔음을 알리듯 바람이 싸늘했다. 여러 날을 달려 서서는 허창에 이르렀다. 곧장 상부로 나가 허창에 당도했음을 알리자, 조조는 순욱, 정욱 두 사람으로 하여금 정중하게 영접하도록 했다. 다음 날 조조는 몸소 서서를 대면했다. "공이 서서 원직인가? 자당께선 무사하시니 공은 안심하라." 조조는 서서가 무엇보다 그 어미의 안위를 궁금해 할 것으로 여겨 그를 안심시켰다. "승상의 은혜 헤아릴 길이 없습니다." 서서는 어머니가 안전하시다는 말에 고마움을 표한 후 절을 하며 예를 표했다. "저의 어머님은 어디 계십니까? 한시바삐 먼길을 달려온 아들에게 가서 뵙고 싶습니다." 서서는 조조에게 청했다. 우선 어머니의 무사함을 두 눈으로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조조가 고개를 끄덕여 보이자 자애롭게 말했다. "공의 노모는 정욱으로 하여금 조석으로 불편 없이 지내시게 하였소. 오늘 공이 온다기에 저쪽 당에 모시도록 했으니 곧 뵙도록 하시오. 그리고 이제부터는 오래도록 곁에 모시고 아들된 도리를 다하시오. 나 또한 공 곁에서 유익한 가르침을 받고 싶소." "승상의 자비를 입어 이 서서는 실로 감격할 따름입니다." 서서가 다시 고마움을 표하자 조조가 넌지시 물었다. "공과 같이 고명한 선비가 어찌하여 몸을 굽혀 현덕과 같은 자를 섬겼소?" "저는 일찍이 사정이 있어 강호를 떠돌아다니다 우연히 신야에서 유현덕을 만나게 되어 두터운 은혜를 입게 되었습니다. 이제 노모가 승상의 돌보심을 받고 계시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왔으니 실로 부끄럽고 감사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공은 노모를 뵙도록 하시오." 조조가 서서에게 말했다. 서서는 절하며 물러났다. "저 집에 계십니다." 길을 안내하는 자가 별당에 들어서자 정결한 마당 한 구석에 있는 집을 가리켰다. 그 집을 보자 서서는 벌써 가슴이 메이는 듯했다. 서서는 당하에 엎드려 흐느껴 울며 문안을 드렸다. "어머님! 서가 왔습니다." 그러자 방문이 열리며 어머니가 놀란 얼굴로 되레 물었다. "아니, 네가 어찌하여 여길 왔느냐?" "예? 무슨 말씀이십니까? 근래 신야에서 유현덕을 섬기다가 어머님의 글을 받고 밤낮없이 달려온 길입니다." 서서가 의아스러운 얼굴로 대답했다. "글이라니 무슨 글 말이냐?" 서서는 출발 전에 신야에서 받은 서한을 어머니에게 보이자 어머니는 돌연 성난 얼굴로 상을 치며 울부짖듯 꾸짖었다. "변변치 못한 자식이로다! 그래 이 어미의 뱃속에서 나왔으면서 나이 서른이 되도록 아직 이 어미가 그런 글을 아들에게 쓸 사람인지 아닌지도 분간을 못한단 말이냐?" "아니! 그럼 이 필적은 어머님이 쓰신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까?" 서서가 놀라 소리쳤다. 어머니가 준엄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너는 어려서부터 유학을 배웠다. 커서는 세상을 유랑하기도 십수년, 세상의 간난, 사람들의 고생도 모두 살아 있는 학문이라 여겨 어미는 외로움도 마다 않고 학문과 덕을 쌓기만을 바랐다. 그런데 이따위 거짓 글을 받고 그 진위도 가려 보지 않은 채 주군을 버리고 오다니 이게 무슨 짓이냐?" 어머니의 꾸짖음은 추상 같았다. 서서는 그제야 조조의 간계에 빠졌음을 알았으나 고개를 숙인 채 묵묵히 어머니의 꾸짖음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네가 효에 눈이 밝은 줄은 알겠다만 충에는 소경이 아니냐? 또한 이미 글을 읽었으니 충과 효를 한꺼번에 다할 수 없다는 것도 알 줄 알았다만 그도 아니구나. 어찌하여 조조가 천자를 속이는 역적임을 모른다는 말이냐? 지금 유현덕은 한실의 맏아들이요, 영재가 빼어나실 뿐 아니라 인의를 행하니 백성들도 흠모하고 있다. 그런 주군을 섬김은 이 어미도 영예라고 여겼거늘 어찌하여 한 번 섬긴 주군을 버리고 말았느냐? 이제 거짓 글에 옳은 길을 버리고 더러운 누명을 썼으며 조상을 욕되게 했으니 내 무슨 낯으로 너를 보겠느냐!" 서서는 엎드린 채 감히 얼굴도 들지 못하고 있었다. 어머니는 한동안 몸을 떨며 흐느끼더니 문득 일어나 병풍 뒤로 모습을 감춰 버렸다. 서서는 부끄러운 마음으로 어머니의 훈계를 되새기며 자신의 가벼운 행동을 뉘우치고 눈물을 흘렸다. 서서가 한동안 기다려도 어머니가 나오지 않자 몸을 일으켜 병풍 쪽으로 가려는데 하인이 달려나왔다. "자당께서 대들보에 목을 매셨습니다." 서서가 놀라 달려갔으나 어머니는 이미 숨진 뒤였다. 서서는 차디찬 어머니의 유해를 안고 울부짖다가 혼절하여 한동안 일어나지 못했다. 뒷날 사람들이 서서의 어머니를 기려 지은 시 중에 이런 구절이 있었다. 어질구나 서서의 모친 천추만대 빛나리라. 절개를 지켜 깨끗하고 집 다스려 덕이 있네. 자식 가르침에 힘쓰고 자신의 고난 달게 받네. 높은 기상 산과 같고 장한 의기 하늘 같네. 조조는 서서의 어머니가 자결한 것을 알자 사람을 조문하게 하고 몸소 영전에 나와 제물을 올렸다. 그리고 며칠 뒤 겨울 바람이 몰아치는 허도 교외의 남쪽 양지 바른 곳에 훌륭한 묘지를 만들게 했다. 조조가 서서를 위로하여 장사를 지내 준 것이었다. 이때 조조는 다시 남쪽으로 군사를 낼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여러 모사를 불러 이 일을 의논하는데 순욱이 나서며 말렸다. "날씨가 추워 군사를 움직이기가 어렵습니다. 따뜻한 봄이 되기를 기다려 크게 군사를 내도록 하는 것이 좋을 듯 싶습니다. 그 동안 큰 연못을 만들어 수군을 조련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조조도 한겨울에 군사를 움직이는 데 어려움이 많다는 것을 짐작하고 있던 터였다. 조급한 마음을 달래며 순욱의 말을 좇는 대신 수군을 훈련하기 위해 장하의 물을 끌어들여 현무지란 큰 호수를 만들었다. 그 호수에서 수군을 조련하며 뒷날 장강을 건널 대비를 하며 봄이 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편 유비는 서서와 헤어지고 난 후 그가 일러 준 제갈량을 찾아가기 위해 준비를 하고 있었다. 제갈량에게 줄 예물이 다 준비되었을 때였다. 성문을 지키는 군사 한 명이 달려와 알렸다. "어떤 노인 한 분이 와서 주공을 찾고 계십니다." 유비가 그 군사에게 물었다. "행색이 어떻더냐?" "높직한 관을 쓰고 손에는 명아주 지팡이를 짚고 있었습니다. 눈썹이 희고, 얼굴이 복숭아 꽃같이 붉은데 언뜻 보기에도 범상한 분이 아니었습니다." 그 말에 유비는 얼른 머리에 떠오른 사람이 있었다. '혹시 그 사람 공명이 찾아온 것이 아닐까?' 유비는 의관을 갖추고 찾아온 사람을 만나기 위해 몸소 나가 맞으니, 그는 뜻밖에도 수경 선생 사마휘였다. "아아, 선생님이셨습니까?" 유비는 그가 제갈공명은 아니었지만 몹시 반가웠다. 서서가 가고 없는 지금 앞일에 대해 큰 가르침을 줄 만한 분을 만난 기쁨에 유비는 반갑게 사마휘를 당상으로 맞아들였다. "하직한 뒤로 군무에 얽매여 선안을 뵈옵지 못했습니다. 한 번 찾아뵈오려던 중 먼저 왕림하셨으니 늘 우러러 사모하는 마음 크게 위로됩니다." 사마휘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요즈음 이곳에 서원직이 와 있다기에 내쳐 한번 만나고자 왔소이다." 사마휘의 말에 유비는 힘없는 목소리로 그간의 일을 말했다. "조조가 서원직의 자당을 데려다 감금했었습니다. 이에 서원직은 자당의 글을 받잡고 급히 허창으로 갔습니다." 유비의 말에 사마휘는 안타깝다는 듯이 탄식해 마지않았다. "허허......, 간계에 넘어갔구나!" 유비가 사마휘의 탄식에 놀란 얼굴로 물었다. "간계에 넘어가다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원직의 어머니라면 나도 잘 알고 있소. 그 부인은 보기 드물게 현명한 분이오. 만약 위험에 처해 있다 할지라도 글을 보내 아들을 부를 분이 아니오. 그 글은 필시 거짓으로 누가 대신 필적을 흉내내어 쓴 글일 것이오. 그런데 만약 원직이 가지 않았더라면 그 노모는 무사했을 것을 원직이 갔기 때문에 그 노모는 살아 있지 않을 것이오." "그건 또 어찌 된 까닭이십니까?" 유비로서는 도무지 짐작할 수 없는 말이었다. 사마휘는 무거운 어조로 대답했다. "서원직의 어머니는 의기가 높은 분이니 그 아들을 보는 것을 부끄럽게 여길 것입니다. 어미 때문에 아들이 마음에도 없는 곳으로 오게 되었으니 필시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것이오." 사마휘가 보기라도 한 듯이 헤아렸다. 유비는 이내 말뜻을 알아채고 고개를 끄덕였다. 유비가 잠시 침통한 얼굴로 있다가 사마휘를 보며 천천히 말했다. "실은 원직이 떠날 때 남양의 제갈공명을 천거하고 갔습니다. 떠나는 마당이라 자세한 것을 물어 볼 틈도 없었습니다. 그분은 과연 어떤 분이십니까?" 그 말에 사마휘는 실소하더니 혼자말처럼 중얼거렸다. "원직이 떠나는 주제에 쓸데없는 말을 해서 남에게 폐를 끼치려 들다니... 변변치 못한 자가 아닌가?" "선생님께서 어인 일로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공명이나 또 우리 도우들에게 폐를 끼친다는 말이오. 공명이 없으면 우리 도우들은 모두 쓸쓸하게 여길 것이오." "도우라고 하셨는데 그분들은 누구누구이십니까?" "박릉의 최주평, 영주의 석광원, 여남의 맹공위, 그리고 서원직 그 밖에 열 손가락도 남을 정도외다." "다 각기 저명 인사이십니다만 일찍이 공명이라는 이름을 들은 적이 없습니다." 유비는 사마휘가 거명한 이름 중에 들어 본 적이 있는 이름도 있었다. 그러나 제갈공명은 일찍이 들어 본 적이 없는 이름이었다. "그 사람은 읾 내놓기를 싫어하는 사람이오. 이름 아끼기를 가난한 자가 구슬을 가진 것과 같이 여긴다고나 할까......" 사마휘는 말끝을 흐렸다. 유비는 지난번처럼 사마휘가 대답을 피할까 염려하며 급히 물었다. "도우분들 중에 공명의 학식은 어느 정도입니까?" "그의 학문은 높을 것도 없고 낮을 것도 없소이다. 모든 학문에 걸쳐 그는 대략을 터득하고 있소. 다만 법가와 병가만을 깊이 파고들고 있으며 그는 스스로를 춘추 전국 시대의 관중과 악의에 비견하고 있소이다." 유비가 문득 감탄하며 다시 물었다. "어찌하여 이곳 영천 땅에 명사와 현인이 이토록 많습니까?" "지난날 은규라는 이가 있어 천문에 두루 잘 통했소. 그가 이르기를 '뭇 별이 영천 지방 위에 모여 있으니 그 땅에 반드시 어질고 재주 많은 선비가 많이 나리라'고 한 적이 있소. 그뿐만 아니라 여기는 장강의 중류에 해당되며 촉, 오, 위의 3대륙의 경계와 그 중축에 해당되오. 이런 지형적인 위치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외다." "선생의 말씀을 듣고 보니 지금 제가 서 있는 곳이 어디쯤인가 분명해지는 것 같습니다." "그렇소이다. 그것을 분명히 아는 것은 다음 걸음을 내딛는 데 있어 무엇보다 유의해야 할 일이오. 공을 이 땅에 오도록 만든 것은 공 자신의 뜻도 아니오, 그렇다고 다른 사람의 힘에 의한 것도 아닐 것이오. 커다란 자연의 힘, 시대의 흐름을 따라 흘러온 것이오. 그러나 공이 머물고 있는 곳에는 하늘의 뜻인지 아니면 우연인지 알 수 없으나 지금 햇볕을 받아 꽃을 피우려는 봄기운이 왕성한 곳이외다." 사마휘의 말에 유비는 기쁨을 감출 수 없었다. 그이 말에는 유비가 가슴 속에 품고 있는 뜻을 일깨워 힘을 돋우는 암시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옆에서 유비와 사마휘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관우가 불쑥 끼여들었다. "듣기로 공명은 스스로 관중, 악의에 비견하고 있다고 합디다. 그 두 사람은 지난날 그 공이 천하를 뒤덮었다고 하온즉 스스로를 그 두 사람에 견줌은 실로 지나침이 아닙니까?" 관우의 물음에 사마휘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정색을 하며 말했다. "내가 보기에는 스스로 그 두 사람과 비교하는 것은 지나치기는커녕 오히려 모자람이 있소. 나는 차라리 또 다른 두 사람과 비교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 같소만......" 관우가 다시 물었다. "다른 두 사람이라면 누구를 말씀하시겠습니까?" "주나라 8백년을 일으킨 태공망, 혹은 한의 창업 4백년 기초를 닦은 장자방이오." 실로 깜짝 놀랄 만한 소리였다. 모두들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데 사마휘는 몸을 일으키더니 지팡이를 손에 쥐었다. 유비가 황급히 떠나려는 사마휘를 만류했다. "선생님, 천천히 쉬셨다가 가십시오." 유비가 고개를 숙이며 청했으나 사마휘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느린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하늘을 보며 큰 소리로 웃더니 혼자말처럼 중얼거렸다. "아아, 와룡 선생, 그 주군을 얻었다고는 하나 아깝도다. 그 때를 얻지 못하였도다!" 사마휘는 유비가 어리둥절해 있는 사이 큰 소리로 웃으며 표연히 사라지고 말았다. 수경 선생이 떠나가자 유비는 관우, 장비와 함께 시종들을 거느리고 제갈량에게 줄 예물을 가지고 따르게 하며 길을 떠났다. 융중으로 나가 멀리 맞은편 산기슭을 바라보고 가는데 농부 몇 사람이 호미로 김을 매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푸른 하늘 둥그런 덮개 같고 대지는 바둑판과 같구나. 사람들은 검은 돌 흰돌로 나누어 오가며 영욕을 다투네. 영화로움은 스스로 안일함에 머묾이요 욕된 자 번거롭구나. 남양에 숨어서 사는 이가 있어 높이 든 잠 오히려 모자라네. 유비가 그 노래를 귀를 기울여 듣고 있다가 농부에게 물었다. "그 노래는 누가 지은 것인가?" "와룡 선생께서 지은 것입니다." "그 와룡 선생의 댁은 어딘가?" 농부는 손을 뻗어 언덕을 가리켰다. "저기 보이는 산 남쪽에 높은 언덕이 하나 있는데 그 언덕을 와룡강이라 합니다. 거기서 조금 낮은 곳에 숲이 있습니다. 그 숲 속에 사립문이 있는 초가집이 바로 와룡 선생 댁입죠." 유비는 농부에게 고마움을 표하고 곧장 말을 몰았다. 3, 4리 정도를 달리자 길은 이미 산록으로 접어들고 있었다. 겨울 나뭇가지는 푸른 하늘을 훤히 드러냈고, 새들의 노랫소리가 맑게 퍼지고 있었다. 어디선가 작은 폭포 소리가 나는가 했더니 '솨아솨아'하며 솔바람 소리가 새어 나오는 한 그루 커다란 소나무가 보였다. 얼마 가지 않아 높고 긴 언덕이 나타났는데 그 경치가 과연 청아하고 맑았다. 후세 사람들이 그곳을 이렇게 노래했다. 양양성 서쪽 20리에 길다란 언덕이 냇가에 누웠네 높고 높은 언덕 구름을 이고 흐르는 물은 돌 속까지 스며드네 그 형세 바위에 용이 튼 듯하고 형상은 지친 봉이 송림에 잠긴 듯 싸리문 반쯤 닫혀 초려를 가렸는데 어진 선비 누워 일어날 줄 몰랐네. 대숲은 푸른 병풍을 두른 듯하고 울타리엔 사철 떨어진 꽃향기 풍기네 책상 위에 고서가 그득하고 찾는 이 중에 속된 자가 없더라 잔나비 철따라 과일 바치며 문 지키는 학은 경소리 듣네 주머니 속 거문고가 비단에 싸여 있고 벽에 걸린 칠성검에 솔그림자 어리네. 초려 안 와룡 선생 홀로 그윽하고 고우니 한가하면 손수 밭 갈고 씨 뿌렸네 봄 우레 소리에 꿈 깨기를 기다려 한 소리 크게 외쳐 천하를 정했네. 대로 엮은 울타리를 두른 사립문 곁에서 유비는 말에서 내렸다. 유비가 문을 두드리자 사립문 안에서는 한 아이가 나오더니 물었다. "어디서 온 뉘신지요?" "나는 한나라 좌장군 의성정후, 영은 예주의목 신야의 황숙, 유비, 자는 현덕이라고 한다." "그렇게 긴 이름은 외울 수가 없습니다." "허허, 내가 미처 몰랐군. 그냥 신야의 유비가 왔다고 일러라." "그런데 선생님은 오늘 아침 일찍 나가셔서 아직 돌아오시지 않으셨습니다." "어디로 가셨는가?" "자취가 일정하지 않으시니 가신 곳을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럼 언제쯤 돌아오시느냐?" "돌아오시는 때도 일정치가 않으십니다. 아마 3, 4일, 혹은 열흘 만에 돌아오시기도 합니다. 유비가 아이의 말에 낙담하여 난감한 표정을 짓고 있는데 장비가 불쑥 나섰다. "안 계시다는데 어떻게 합니까? 그만 돌아가야지요." 관우도 장비의 말을 좇아 한 마디 거들었다. "다음 날 사람이라도 보내서 미리 계신지 안 계신지를 알아보고 오도록 하시지요." 유비는 잠시라도 더 기다려 보고 싶은 심정이었으나 하는 수 없이 아이에게 말씀을 전하라 일러 놓고 언덕을 내려왔다. 수려하면서도 높지 않은 산에서는 깨끗하고 맑으면서도 깊지 않은 물이 흐르고 있었다. 무성한 소나무와 대나무가 서로 어우러져 푸른 숲에는 학과 원숭이가 평화롭게 놀고 있었다. 수려하고 맑은 그곳의 경치를 취한 듯 바라보며 언덕을 내려오고 있는데 문득 맞은편 언덕 아래에서 한 사람이 이쪽으로 올라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가까이 가 보니 이목이 수려하며 푸른 옷을 걸치고 머리에 두건을 썼으며 지팡이를 짚은 사람이 산길을 올라오고 있었다. 어딘지 모르게 깊은 계곡에 고고하게 자라고 있는 향기 높은 난과 같은 기품이 풍기는 사람이었다. '이분이야말로 제갈량 바로 그 사람이다!' 유비는 마음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고 급히 말에서 내려 대여섯 걸음을 걸어갔다. 마주 오던 그 사람도 유비가 말에서 내려 그에게로 다가오자 지팡이를 멈추었다. 유비가 그에게 절을 하고 조심스레 물었다. "선생님이 와룡 선생이 아니십니까?" 불쑥 유비가 묻자 그 사람은 당황해하며 되물었다. "장군은 뉘시오?" "신야의 유비 현덕이라 합니다." "예, 당신이?" "선생께서는 공명 선생이시지요?" "아닙니다. 나는 공명의 친구인 박릉 땅 최주평이라고 합니다." 유비는 그가 공명이 아님을 알자 적이 실망스러웠으나 이내 공손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공명의 친구라면 그 또한 높은 선비임에 틀림없으리라 여겼기 때문이었다. "존함은 오래 전부터 들었습니다만 이제 다행히 만나 뵙습니다. 원하건대 자리가 마땅치 않으나마 잠시 앉으시어 한 말씀 가르침을 받고자 합니다." 유비의 청에 최주평은 선선히 고개를 끄덕이며 숲 사이에 있는 돌 위에 자리를 정해 앉았다. 관우와 장비도 옆에 앉았다. 최주평이 유비에게 먼저 물었다. "장군은 무슨 일로 공명을 만나러 오셨소?" "천하는 지금 크게 어지러우며 사방은 풍운에 휩쓸리고 있습니다. 내가 공명을 만나려 함은 사방에 평안을 도모하고 나라를 바로잡을 계책을 듣기 위해서입니다." 그 말에 최주평이 껄껄 웃으며 말했다. "공은 어지러움을 바로잡으려 하심에 그 뜻을 두고 계십니다. 이는 어지신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나 자고로 다스림[치]과 어지러움[난]은 그 변화가 무상한 것입니다." "혹은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바라건대 어지러운 천하를 다스릴 도를 가르쳐 주십시오." "지난날 한 고조가 흰 뱀을 죽이고 의거를 일으켜 무도한 진을 정벌하여 어지러움을 다스림으로 바꾸었습니다. 이어 평, 애제의 2백여 년에 걸쳐 태평 세월이 지속되다가 왕망의 찬탈로 어지러움이 시작되었습니다. 다시 광무제가 왕업을 중흥하니 이는 다시 어지러움을 다스림으로 되돌린 것입니다. 그로부터 꼭 2백 년이 지난 지금 다시 천하가 어지러우니 바야흐로 다스림에서 어지러움으로 옮겨 가는 시기가 온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예로부터 치가 다하면 난이 일어나고 난이 일어난 후에는 다시 치로 돌아가는 순환 속에 역사가 이어져 왔습니다. 그러므로 이 어지러움은 졸지에 다스려질 난이 아닙니다. 모두가 하늘의 이치겠지요. 장군께서 제갈공명으로 하여금 하늘과 땅의 일을 살피게 하여 천하를 평안케 하고 만민을 구하려고 하시는 것은 부질없이 몸과 마음을 헛되이 소모하는 결과가 될까 두려울 뿐입니다. '하늘의 이치에 좇으면 편안하고, 하늘의 이치를 거스르면 스스로를 괴롭히며, 하늘의 운수는 이치로써 막을 수 없고 천명이 정한 바는 사람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다'는 옛말도 있지 않습니까?" 최주평은 하늘의 뜻인 다스림과 어지러움을 사람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음을 역설하고 있었다. 가만히 듣고 있던 유비가 그의 말을 받았다. "선생님의 말씀은 참으로 높은 말씀이십니다. 그러나 이 비는 한실의 혈통을 이어받은 몸으로 기우는 한실을 붙들어 세워야 함이 마땅한 도리라 하겠습니다. 어찌 하늘이 정한 이치와 운수에만 맡기고 마냥 바라보고만 있을 수 있겠습니까?" 유비가 모든 것을 하늘의 수와 명에 따라야 한다는 최주평의 말에 사람의 도와 의지를 내세우며 되물었다. "나는 산야에 머물고 있는 일개 유생에 지나지 않습니다. 천하를 논할 처지가 되지 못합니다. 마침 높고 밝은 질문을 받았기에 망령되이 말씀드린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최주평은 유비의 물음에 답하는 대신 그런 말로 얼버무렸다. 유비와 더 이상 얘기를 주고받는 것이 부질없음을 느꼈음인지 최주평은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유비는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공손한 어조로 물었다. "오늘은 뜻밖에 좋은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공명께서 어디로 가셨는지 혹시 모르시겠습니까?" "나도 지금 공명을 만나러 가는 길이었습니다. 어디로 갔는지 저 역시 알 수 없으니 이대로 돌아가야겠습니다." 유비가 다시 그에게 청했다. "선생을 모시고 함께 신야로 갔으면 합니다. 신야에서 높으신 가르침을 받고자 합니다." 그러나 최주평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산야의 일개 유생은 본디 한가롭게 떠도는 것만 좋아할 뿐 세상의 공명을 얻을 생각은 없습니다. 뒷날 다시 뵙기로 하겠습니다." 최주평은 그 말과 함께 길게 절을 하더니 멀어져 갔다. 유비는 관우, 장비와 함께 와룡강을 뒤로 하고 말에 올라 신야로 향했다. 공명을 만나지 못했을 때부터 몹시 심술이 나 있던 장비가 말을 몰며 투덜거렸다. "공명은 만나지도 못하고, 겨우 썩은 선비를 만나 쓰잘데없는 말만 듣게 되었습니다." 유비가 그런 장비를 달랬다. "초야에 묻혀 사는 선비로서 할 수 있는 말이다. 반드시 하찮게만 여길 일이 아니다." 그러자 관우가 유비에게 말을 가까이 대며 물었다. "지금 저 선비의 말을 주군은 옳은 말로 여기십니까?" 유비가 고개를 저으며 씽긋 웃더니 말했다. "그가 말하는 것은 그들 무리 중의 진리이지 천하에 통용되는 진리는 아닐 것이다. 천하에는 수억의 민중이 있으며 초야에 묻혀 있는 선비나 인격이 높은 선비는 그에 비해 손꼽을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사람들 중에서는 얼마든지 바라는 바와 뜻이 있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왜 최주평의 그런 지루한 이야기를 끝까지 다 듣고 계셨습니까?" "혹시 말 가운데 일언반구라도 세상을 구원하고 만민의 고뇌와 상통하는 말을 들을 수 있을까 해서였다." 유비가 신야로 돌아온 며칠 후, 사람을 공명의 집으로 보냈다. 얼마 후 갔던 사람이 돌아와 고했다. "와룡 선생이 돌아와 계십니다." 유비는 곧 떠날 준비를 하도록 일렀다. 떠날 준비를 하면서도 장비가 불평했다. "천한 시골 선비를 데리러 이렇게 몸소 다시 가시다니 백성들이 보아도 이상히 여기지 않겠습니까? 사람을 보내 공명을 성으로 불러들이면 그만이지." 유비가 장비를 큰 소리로 꾸짖었다. "너는 맹자께서 하신 말씀도 모르느냐? '어진이를 보려 하면서 도로써 맞지 않으면 이는 그 사람을 불러 놓고도 문을 닫는 것과 같다'고 하지 않았느냐? 공명은 당대의 대현인데 어찌 그를 찾아보지 않고 불러다 볼 수 있겠는가?" 유비의 호통에 장비가 입을 다물었다. 유비가 말을 타자 관우, 장비도 말에 올라 그 뒤를 따랐다. 때는 12월 중순이었다. 한겨울이라 날씨는 몹시 추워 삭풍은 살을 에는 듯했다. 회색 하늘에는 눈발이 분분히 휘날리더니 순식간에 길을 뒤덮었다. 솜덩이 같은 눈발은 세찬 바람과 함께 더욱 거세게 휘몰아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