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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대학원 진학을 허락하시며
새로운 비전을 주신 하나님
신학대학원의 과정
영훈고에서 기독활동이 활발히 시작되는 2001년에 들어서며 나는 처음 신학대학원 진학을 생각하였었다.
영훈학원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때에 결국 기독교학교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교목의 역할을 할 누군가가 필요할 것이고 그래서라도 미리 준비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당시의 믿음으로서는 확실한 하나님의 뜻인지 확신을 갖기가 어려워 두 분의 목사님과 한 분의 장로님께 조언을 구하기로 했다. 만일 세 분 중 한 분이라도 긍정적인 답변을 하지 않는다면 다음 기회나 아니면 하나님께서 원하시지 않는 것으로 생각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결국 세 분 중 한 분의 찬성하지 않는 견해로 신학대학원 진학을 접었다. 부정적 견해를 말씀하신 그 분의 이유는 교목으로서의 역할보다 교사로서의 역할이 복음을 전하는데 더 좋다라는 뜻이었다. 나는 하나님의 뜻이 다음 기회나 아니면 평신도 교사로서의 사역을 원하고 계심을 느끼고 그것에 순종하였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지금의 나를 만들어 놓으시며, 학교안과 밖, 학부모, 교사, 학생, 그리고 아버지학교 등을 통한 사역의 장에서 나를 사용하시기에 이르렀다. 그동안 성경공부와 제자훈련 등의 공급도 몇 년간 계속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중고등부 교사 8년과 청년부 지도간사로 2년, 그리고 영훈고에서 기독학생회를 섬기도록 인도하고 계셨다.
강수환 선생님과의 만남
2006년 여름 아산 호서대학교에서 나와 같은 기독교사로서의 길을 가고 있는 강수환 선생님을 만났다. 오랜만의 만남이었고, 기쁜 만남이었다.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강선생님은 문득 말씀하셨다.
“최선생님, 이제 신학하셔야잖아요? 아니 제가 보았을 때는 좀 늦지 않았나 싶은데요.”
나는 수 년간 많은 분들로부터 그런 말씀을 듣고 있었기에 일상적으로 대답했다.
“네, 하나님의 뜻이 있으면 그렇게 해야죠. 하지만 지금 평신도로서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목사보다는 교사로서 활동하는 것이 더 폭이 넓지 않나해서요.”
이쯤 되면 질문하셨던 분들이 으레 “그렇군요”하시며 화제를 다른 쪽으로 돌리곤 하였다. 그런데 강선생님은 달랐다. 진지하게 그러나 정확하게 당신의 생각을 설명하고 있었다.
“선생님 말씀이 맞습니다. 그러나 제가 말씀드리는 것은 목사가 되는 것이 일차적인 것이 아니라, 체계적인 공급이 선생님께 절실히 요구되지 않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제 여러 훈련과 사역 모두 선생님에게는 포화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새롭게 공부하시면서 앞으로의 비전을 꿈꾸시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나는 어느 순간부터인가 강선생님의 말씀에 침잠하고 있었다. 강선생님은 계속 말씀하셨다.
“영훈고는 하나님의 뜻하심이 분명히 있는 학교입니다. 기독교학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축복하시는 것을 보면요. 그러니까 지금의 학생들을 잘 양육하시고 그 학생들을 중심으로 청소년교회를 운영하시면 좋을 듯 싶습니다..”
귀에서 떠나지를 않아요
나는 내심 깜짝 놀랐다. 내가 그 시기에 가장 고민하고 있었던 것이 있었기 때문인데 그 해결책이 강선생님의 입을 통해 나왔다는 판단에서였다.
“선생님, 안 그래도 근 7년 가량을 청소년 사역을 해오면서 가장 가슴 아팠던 것이 있습니다. 기독학생회에서는 활동을 잘 하는데 이 녀석들에게 교회를 정해주니까 잘 다니지를 않는 거예요. 그래도 고등학교 시절에는 제가 체크하니까 어쩔 수 없이 다니기도 했지만, 대학에 진학하면서는 확인이 어려우니까요. 오랜만에 나타난 아이들의 눈빛이 세상에서 방황하는 것을 보고 안타까운 적이 참 많이 있었습니다.”
강수환 선생님과의 짧은 만남은 하나님께서 앞으로 내가 가야할 길에 대해 더욱 준비시키시고 뜻하신 것을 알려주시는 비전과 같은 것이었다. 기독교사대회를 마친 후에도 신학대학원을 진학하라는 음성이 계속 귓가를 울렸다. 나는 기도하며 하나하나 주신 마음을 정리하고 점검하기 시작했다.
하나님께서는 “체계적인 공급이 필요하니 공급 차원으로 신학을 하라는 것과, 청소년 사역을 위해 현장의 기독교사 뿐만이 아니라 목사로서의 길도 준비를 하라는 것과, 구체적으로 학교를 떠난 아이들을 포함해 교회를 나가지 않는 학생들을 위해 학교 안과 밖에 교회를 세우라”는 음성이었다.
지금 학교 밖에 선교센터가 있지만 센터 사역만으로는 한계가 있기에 결국 주일 예배를 드릴 수 있는 장치가 필요했다. 나는 새로운 마음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사뭇 들떠 있었다. 일단 배우는 즐거움과 앞으로의 향방, 그리고 하나님께서 나를 인도하신다는 기쁨이 사로잡고 있었다.
하나님의 비전 학교 앞 교회
흔들리는 청소년과 청년들을 품고 나아가게 하시는 하나님. 불혹(不惑)의 나이임에도 새롭게 재충전을 시키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했다. 나는 체계적으로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다. 그 무렵 기도의 동역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기도요청문을 돌렸다.
기도의 동역자 여러분!
신학년도에 신학대학원을 진학하려 합니다. 하나님께서 마음을 주시고 확신을 주신 과정은 지난 8월 기독교사대회에서였습니다. 함께 동역하는 한 기독교사를 오랜만에 만났고 그 분의 입술을 통해 강력한 메시지를 전해주셨습니다. 영훈을 두고 오랜동안 중보하시는 분입니다.
재학생들이 교회를 정착하지 못하는 경우를 봅니다. 고교시절에 저를 만나 신앙생활을 했던 아이들이 청년이 되면서 하나님을 떠나거나 교회를 떠나는 아이들을 봅니다. 근 7년간을 사역하며 가장 안타까운 순간이 바로 이 때입니다. 현재도 기독학생 가운데 4-5명의 친구가 교회를 나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기독교반은 나오는데 못나오는 아이들. 이 아이들을 보며 어디까지인가? 내가 해야 할 일은 어디까지인가? 고민하며 기도하는 중에 주신 하나님의 음성이었습니다. 학교 안과 밖에 교회를 개척하라
현재 학교 앞에 영훈선교센터가 있습니다. 센터가 하는 역할이 있습니다. 그리고 교회가 해야 할 역할이 있습니다. 이 두 가지가 같이 가야할 모습도 있습니다. 영혼 구원에 핵심을 둔 창조적인 행보가 교회와 센터를 통해 이루어지기를 기도합니다. 학교 앞에 교회를 세우고 영훈의 청소년들을 1차 성도로 놓고 기도하며 인도하는 것입니다. 물론 타교회를 잘 섬기는 아이들까지 끌어모으는 것은 아니구요. 신학을 하고 1년 후 전도사 시절을 진행하며 청소년교회의 마음을 갖습니다. 그저 기도하며 나아가리라 합니다.
후대를 키우고자 합니다. 학생 시절부터 목회자를 꿈꾸는 아이들을 기도로 물질로 합력하여 지원하며 하나님의 일꾼으로 세우는 일도 겸해야 하겠습니다.
기독 교사는 계속하는 것입니다. 초점은 영훈의 아이들과 교사입니다. 그래서 교사로서의 역할과 기독교반 담당 등은 모두 변함없이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일에 예배를 드리는 '청소년교회'의 비전입니다. 제가 구심점이 되는 것을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이라면 영훈의 청소년 그리고 교사 나아가 영훈을 중심으로 하는 학부모와 지역 주민을 대상으로 하는 교회를 기대합니다. 청소년 선교의 비전을 가지고 있는 어른들도 모두 함게 하게 하실 줄 믿습니다. 학교 안과 학교 밖에서의 사역이 결국 영훈학원에 집중시키는 큰 뜻이 있을 줄 믿습니다.
학교는 백석대학교 기독신학대학원으로 하려 합니다. 대학원의 위치는 방배동에 있고 수업은 월, 화, 목, 금 저녁 6시부터 10시 15분까지 수업이랍니다.
제 아내가 기도한 후 사흘만에 말했습니다. "여보 하나님의 뜻이 틀림없는 것 같아요!"
위의 내용을 두고 기도 부탁드립니다. 하나님의 뜻과 길과 그분을 위해 죽으라면 죽겠다는 서원의 기도를 준비시킵니다. 또 한 번 제 마음을 확인하고 싶으신가 봐요. 제 머리를 지배하는 하나님이 계셔서 행복합니다. 혹시 의견이나 생각, 그리고 조언이 있으시면 기도와 함께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샬롬!
시험과 합격
10월 중순에 백석대학교 신대원 시험이 예정되어 있었다. 시간이 없어서 특별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지만 기도하며 시험에 응시했다. 오전 9시부터 점심시간을 제외한 1시 30분까지 나는 오랜만에 수험생의 자리에 앉아 있었다.
구약, 신약, 논술, 면접에 이르기까지 시험은 많이 힘들었다. 그러나 첫 시험을 보려고 책상에 앉아 기도를 하는데 하나님께서는 감사의 눈물을 허락하셨다.
“내가 너를 사랑하노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아도 기도하며 최선을 다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일 것이다. 구약, 신약의 시험도 어려웠지만 면접에서 한 구약학 교수님의 말씀이 잊혀지지 않았다.
“우리 대학원은 성경을 무척 중요시 합니다. 그래서 성경 교사를 봐요. 여러분은 성경을 몇 번이나 통독했습니까? 적어도 자기 나이만큼의 횟수는 읽어야 합니다.”
나이만큼 읽어라. 이것은 나에게 큰 도전을 주기에 충분했다. 시험을 어렵게 치루었지만 보게 하신 그 자체만도 감사했다. 그리고 2주 후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백석대학교 신학대학원 목회학 전공 합격의 기쁨을 주시며 영광을 받고 계셨다.
등록금은 어쩌라구요
목사님이신 장모님과 목사인 둘째 처남, 목사가 한 집에 왜 이리 많으냐면서도 좋아한 아내의 말처럼 나의 처가쪽으로는 목사가 많다. 우리나라에 외국선교사가 들어올 때부터 믿음을 가진 집안이니 나의 딸 다솜이, 다빈이로 보아서는 이제 6대째 믿음의 집안이 된다. 더욱이 초등학교 3학년인 다빈이도 나중에 목사가 되겠다는 비전이 있으니 참 하나님의 기름부으심이 넘치는 가정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나는 목사가 우선이 아니라 공부를 하는 것이 개인적으로 무척 좋았다. 공부는 사람에게 희망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미래를 바라보게 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위한 공부, 그리고 청소년들을 위한 영적인 공급을 위해 나를 준비시키는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합격을 한 기쁨과 더불어 한 가지 해결해야 할 점이 드러났다. 등록금을 준비해야 하는 것. 3,500만원 전세를 살고 있는 나는 매월 하나님의 은혜를 통한 기적으로 살아나가고 있다. 지금 살고 있는 연희동 2층 양옥은 근 10년 전에 이사온 집인데 지금까지 전세값을 올려달라는 소리를 하지 않는다. 시세로 하자면 8,000만원 가량은 족히 넘을 것 같은 집인데 말이다. 8,000만원을 가지고 그에 맞는 집에 사는 것도 감사한지만, 3500만원을 가지고 8000만원 집에 사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저 생각할수록 감사할 따름이다.
파출부로 뛸까?
신대원 등록금도 하나님께서 해결해주시리라 믿었다. 우리의 형편을 무척 잘 아시는 분께서 진학하는 것을 뜻하신 일이라면 어떠한 식으로든 닥치는 문제를 해결해주시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닌가. 나와는 달리 염려하는 아내에게 나는 이렇게 말했다.
“걱정하지 마. 등록금 주실거야. 뭐 안주시면 안가면 그만이지. 억지로 갈 필요 있겠어. 가게 하신 거니까 우리가 돈 때문에 고민할 필요는 없는거라고. 고민은 하나님이 직접 하셔야지. 우린 그냥 기도하면서 열심히 현재의 사역에 충실하자구.”
조금도 요동하지 않는 나를 별종 취급하는 눈초리로 쳐다보더니 이내 미소를 띠는 아내.
“이래서 내가 당신 믿음이 부럽다니까요.”
그렇게 시간은 흘렀다. 이제 사일 앞으로 다가온 등록 마감일, 그러나 등록금이 준비된 것은 아니었다. 마침 영훈고 기독동문회 기도회가 예정되어 있어서 처음으로 기도요청을 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공부가 확실하기 때문에 걱정은 않지만 기도는 필요할 것 같습니다. 등록금 액수는 정확히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그저 하나님의 뜻을 저를 통해 이루어달라고 기도 부탁드립니다.”
기독동문들은 나를 가운데 놓고 간절히 기도했다. 기도회 후에 나는 신대원에 관한 내용을 글로 적어 기도의 동역자들에게 기도 요청을 드렸다. 더불어 등록금 마감일이 얼마 남지 않으니 기도를 부탁한다는 요청도 드렸다.
그리고 이틀이 지났다. 나는 아내와 두 딸과 시청앞 스케이트장에 가 있었다. 두 딸은 스케이트를 타고 나는 아내와 함께 휴게실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아내가 말했다.
“여보, 어떡해? 아직 준비 안 됐지, 등록금.”
“응, 하지만 걱정하지 마. 결국 준비 안 되면 안가는 거지 뭐! 안 가면 내 손핸가, 하나님 손해지.”
그러나 나는 내심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이 있었다. 물질적으로 충족하지 못함에도 타인을 위해 살아야 한다고 강조하는 나에게 멋있다고 말하는 아내. 파출부라도 뛰어서 등록금 준비할까 하는 아내. 잠시 커피의 따뜻한 김이 우리 사이에 피어올랐다.
등록금을 보내주시고
그 때였다. 핸드폰 벨이 울렸다.
“선생님, 선생님께서 신학대학원에서 공부하는데 어려움이 없도록 하나님께서 저에게 등록금을 보내라고 하십니다...”
나는 화들짝 놀라며 물었다.
“네? 무슨 말씀이세요?”
“네, 오늘 아침에 기도하는데 하나님께서 선생님 공부하시는데 염려하시면 안된다고요, 등록금을 보내라고 하셨습니다. 선생님, 지금 바로 계좌번호를 알려주십시오.”
순간 내 눈에서는 눈물이 주욱 흘러내렸다. 영문을 모르는 아내는 긴장한 표정으로 나를 주시하고 있었다. 그분은 나와 알고 지내는 다른 교회의 집사님이신데 하나님께서 이분을 사용하실 것이라는 생각은 전혀 하고 있지 못했다.
나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감사를 드렸다. 그리고 일단 전화를 끊었다. 계좌번호를 기억을 못하니 집에 돌아가 다시 통화를 하기로 한 것이다. 나는 아내에게 말했다.
“여보, 됐어. 등록금을 보내주신다네.”
“엉? 여보! 어떡해? 살 떨린다... 정말!”
아내와 나는 식어가는 커피를 손에 들고 입가에는 미소를, 눈에는 눈물을 가득 담고 있었다. 그날 밤 나는 전화로 감사의 기도를 드리며 그 분에게 계좌번호를 알려드렸다.
다음 날, 등록금보다 더 많은 금액이 입금되었음을 확인했다. 그러보니 내가 정확한 액수도 말씀드리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아니... 저기... 등록금보다 더 많습니다.”
“네, 새로 책도 사셔야잖아요. 하나님께서 책값까지 포함시키라고 하신 겁니다. 선생님, 편안히 열심히 공부하십시오. 저도 무척 기쁩니다.”
나는 감사의 마음으로 대학원 등록을 마쳤다. 그리고 그 집사님의 마음에 하나님께서 깊이 자리하시고 가정과 하시는 일을 모두 축복하시길 기도드렸다. 인도하신 하나님께 감사하여 그저 눈물만 쏟아질 뿐이었다.
하나님께 영광을
2007년 1월 첫주일부터 매주 주일 오후 2시에 영훈선교센터에서 아이들과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다. 교회에서의 오후 사역도 줄었기에 시간도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듯싶다. 하나님을 믿지만 교회에 나가지 않는 영훈고기독학생들을 중심으로 예배를 드리기 시작한 것이다. 4명에서 8명까지의 아이들이 참여를 했다. 이제 신학년도가 되면 아이들에게 교회를 소개할 것이고 그래도 방황하는 아이들은 나와 함께 예배를 드리며 나아갈 것이다.
청소년교회의 비전을 주시며 우리 아이들을 학교안과 밖, 교회 안과 밖에서 양육케 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의 뜻을 위해 엄청나게 많은 방법으로 나에게 집중하시고 투자하시는 하나님을 느낄 때마다 감사의 눈물이 쏟아져 내린다. 오늘도 눈물로 무릎으로 목숨걸고 기도하며 하나님께 부여하신 사명을 잘 감당하리라 결심하며 여기까지 인도하신 하나님께, 앞으로 인도하실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올려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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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로 물질로 마음으로 격려하여주시고 부족한 우리 영훈고와 부족한 저를 위해 마음 합해주심을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동역자 여러분들 가운데 항상 임재하시길 기도합니다.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