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정을 앞두고 닥친 한파에 밤새 눈이 내렸다. 해가 뜨면 하얀 눈은 소리 없이 녹아갈 것이다. 그러나 바람이 차다. 이 찬 바람에는 쉽게 눈이 녹지 않는다. 오히려 눈 덮인 길은 꽝꽝 얼음길이 될 수가 있다. 박웅열 장로는 아침 일찍 밖으로 나선다. 길에 쌓인 눈을 가늠해 본다. 비로 쓸기에는 눈이 너무 많다. 박웅열 장로는 농기구 보관 창고의 문을 연다. 그리고 트랙터에 시동을 건다.
트랙터 앞에 설치된 로우다가 길거리 눈을 남기지 않고 쓸고 간다. 큰길 눈치우기를 다 끝내고 이번에는 동네 고샅길이다. 트랙터가 갈 수 있는 길을 골고루 돌아다니며 눈을 치운다. 눈을 치운 길에 눈가루가 살포시 나르다가 금세 햇볕에 부서진다. 트랙터로 눈 치우는 작업이 끝나자 이번에는 비를 들고 나서는 박웅열 장로, 행여 어르신들이 넘어질까, 행여 아이들이 다칠까 사람이 다니는 길을 쓸고 간다. 어느새 박웅열 장로의 등에 땀이 흐른다. 그 땀 위에 예수님의 칭찬이 살포시 얹어진다. “얘야, 고맙구나.”
예수님 칭찬에 박웅열 장로가 웃는다. “뭘요? 이 정도 가지고.......”
눈이 오면 교회 마당은 물론 동네 길을 다 치우고 다니는 박웅열 장로, 그가 하는 일은 결코 작은 일이 아니다. 시간을 들이고, 땀을 흘려서 하는 일이다. 어디 그뿐인가? 지난번에는 눈을 치우다가 트랙터 로우다가 부러졌다. 눈 속에 앉아있던 커다란 돌이 로우다를 부러트린 것이다. 로우다를 교체하는 비용이 80만 원이나 들었다. 동네 눈 치우다가, 혹은 교회 마당 눈 치우다가 기계가 부러졌다고 누가 변상해 주지 않는다. 온전히 하나님을 사랑하고, 교회를 사랑하고, 동네 사람들을 사랑하다 벌어진 일에 대해 박웅열 장로가 혼자 감당해야 한다. 그래도 즐겁다.
눈을 치우고 나서 박웅열 장로는 교회를 한 바퀴 둘러본다. 보일러실도 열어 본다. 보일러가 잘 돌아가고 있다. 기술자를 불러서 청소를 끝낸 연통도 다시 한 번 만져 본다. 사실은 며칠 전 보일러가 잘 돌아가지 않아 살펴보았더니 연통 속에 새가 집을 짓고 있었다. 이참에 기술자를 불러 연통 청소는 물론 보일러의 낡은 부속을 교체하는 등 꼼꼼하게 수리했다. 박웅열 장로, 그를 바라보는 담임 목회자는 어떤 마음일까? 담임 목회자의 이야기를 들어 보자.
“우리 박웅열 장로님은 참 신실한 분이지요. 작은 일이나 큰일이나 말없이 봉사하시는 믿음의 사람입니다. 하나님 앞에서도 칭찬받고, 또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칭찬을 받는 분이지요. 우리 모두에게 늘 기쁨을 줍니다.”
믿음의 사람 박웅열 장로는 언제부터 하나님을 믿었던 것일까? 박웅열 장로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다보니 그의 어린 시절 마당에 그와 함께 서 있는 것 같다.
“어렸을 적 우리 집은 절대로 예수님을 믿을 수 있는 집이 아니었습니다. 우리 집 마당에는 돌부처가 있었고, 향나무와 제단도 있었고, 가을에는 떡을 해 놓고 빌고, 동티 잡는다고 하고, 또 유교에도 철저했고, 제사가 많던 집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하나님을 믿게 되었을까? 어떤 은혜가 그의 집안에 내려 그가 젊은 나이에 장로의 반열에 설 수 있었던 것일까? 그의 이야기는 계속 된다.
“약주를 좋아하시던 아버지가 많이 아프셨어요. 간경화를 앓고 계셨는데 병원에서는 고칠 수 없다고 했고, 예수 믿으면 고칠 수 있다고 하니까 할아버지는 아들을 살리기 위해 어머니가 아버지를 모시고 교회에 가는 것을 허락했지요. 그런데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할아버지는 교회에 가는 것을 더 금하시게 되었어요. 하지만 한 번 교회에 발을 들여놓은 어머니의 고집을 꺾지 못하셨어요. 아버지를 먼저 하나님 나라에 보낸 어머니의 믿음은 크고 놀라웠습니다. 군복무를 마치고 집에 돌아온 저를 위해 어머니 기도가 시작되었지요. 우리 아들 장로가 되게 해 달라고 말입니다. 저는 어머니의 기도로 장로가 되었습니다.” 형과 동생들은 모두 객지로 나가고, 어머니를 모시면서 농사를 짓던 박웅열 청년은 처음에는 교회에 가자는 어머니의 청을 못들은 척 했다고 한다. 군대에서 세례를 밭고 열심히 신앙생활 했던 것도 까맣게 잊어가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가 부탁을 했다고 한다.
“얘야. 이번에 교회에서 중고 승합차를 샀단다. 그런데 운전할 사람이 없구나. 네가 운전 좀 해 주면 안 되겠니?”
교회에는 관심이 없었지만 운전할 사람이 없다는 말에 선뜻 어머니의 청을 들어 준 스물여섯 살 박웅열 청년, 하나님은 그렇게 넌지시 그를 부르셨다.
교회에서 차량봉사를 하다 보니 교회에 빠질 수가 없었다는 박웅열 청년, 마음이 착하고 성실했던 그에게 하나님께서는 날마다 믿음이 더하여 주시는 은혜를 주셨다. 박웅열 장로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나도 모르게 믿음이 커가고 있었습니다. 나도 모르게 하나님께 가까이 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는 사이 교회에서 직분이 주어지고, 지방연합회에서도 활동을 하게 되었습니다. 감리교단에서는 만 40세가 되어야만 장로임직이 가능한데 하나님께서는 마치 제가 마흔이 되기를 기다리셨던 것처럼 40이 되자마자 장로로 세워 주시더군요. 장로가 된 후에 지방회 어르신 장로님들을 따라 다니면서 열심히 일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믿음이 좋고 일 잘하시는 장로님을 뵈면 ‘나는 언제쯤 저렇게 될까? 나도 빨리 저렇게 되고 싶다.’ 라는 소원을 가지고 열심히 섬겼습니다. 그러다보니 연회일까지 하게 되더군요. 지금은 감리교 남선교회 충청연회 연합회 총무를 맡고 있습니다. 교회에서 책임이 주어지기 전까지는 마을 이장을 비롯해서 여러 가지 분주한 일들이 참 많았습니다. 그러나 교회 일에 전념하면서 세상일은 놓게 되더군요.”
박웅열 장로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좀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물었다.
“선한 그리스도인일수록 세상에 섞여서 맛을 내고, 세상이 썩지 않도록 소금의 역할을 해야 하지 않을까요? 세상에 섞여서 세상을 환하게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요?”
기자의 질문이 좀 무거웠을까? 박웅열 장로는 한참 생각에 잠기더니 입을 연다.
“많은 사람들이 저에게 시의원 출마도 권하고, 농협조합장 출마도 권합니다. 시의원은 제가 감당하기 어려울 것 같고, 농협조합장은 한번 나서서 해보고 싶은 일입니다. 그러나 선거 과정에서 일어날 수도 있는 옳지 않은 일들을 감당할 자신이 없어서 망설이고 있습니다. 선거에 나선다면 옳지 않은 일은 쳐다보지도 않고 가야 하는데, 하나님께서 용기를 주신다면 제가 사는 동네에서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하나님 영광을 위해서라면 한번 나서야 하겠지요? 그러나 지금은 교회에서 맡겨준 사명을 감당하는 것이 더 즐겁습니다.”
인구가 갈수록 줄어들고, 노인들이 많은 농촌지역의 작은 교회를 섬기는 박웅열 장로, 그가 섬기고 있는 화천교회는 주일예배에 어른들이 80명 정도 출석한다. 어린이도 스무 명이 넘는다. 여름성경학교가 시작되면 멀리에서도 찾아와 40명이 훌쩍 넘는다. 중고등부 학생도 20명이나 된다. 청년부도 열 명이 넘는다. 학생들을 위해서 때로는 차 운행도 하고, 때로는 설교도 하고, 때로는 호주머니를 털어 간식을 사주기도 하는 박웅열 장로, 그의 삶은 빛이 가득하다. 즐겁다. 박웅열 장로의 아내는 어떤 사람일까? 그의 아내 이야기를 들어보자.
“아내 유 권사는 제 할아버지와 혼자되신 어머니를 모시고 살았어요. 갓 시집온 새댁이 얼마나 어려웠겠어요? 그러나 어렵다는 말 한 마디 안하고 잘 따라와 주었지요. 농사일도 참 많았어요. 아내는 손이 빠르고 부지런해서 남들보다 두 배는 더 일했지요. 그러다보니 몸이 망가지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농사를 줄이고, 일을 못하게 했지요. 사실 어마어마하게 많은 농사를 지었거든요. 벼농사 하나만도 바쁜데 비닐하우스가 40동이나 되고, 소도 50여 마리가 있었어요. 아내를 위해, 건강을 위해 과감하게 하우스 농사를 줄였어요. 하지만 천성적으로 부지런한 아내는 지금도 여전히 우리가 먹을 것은 물론 형제들에게 나누어줄 농산물을 손수 지어냅니다. 요양원에서 요양보호사로 일하면서도 말입니다. 요양원에 근무하는 것이 힘들 것 같아서 말리면 일이 참 즐겁다고 해요.”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아야 한다. 그래야 행복하다. 그 일이 남을 돕는 일이면 더 행복하다.
농촌에 살면서 도회지로 떠난 형제들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는 박웅열 장로, 이제 그는 교회의 버팀목이고, 그가 사는 마을의 버팀목이다. 그가 마지막으로 들려 준 이야기가 지금도 귓가를 맴돈다.
“하나님을 믿기 전 제 성격은 욱하는 데가 있어서 거칠고, 또 얼굴도 이렇게 웃는 상이 아니었어요. 그러나 하나님께서 제 성격도 부드럽게 고쳐 주셨고, 또 얼굴도 웃는 상으로 고쳐 주셨어요. 하나님은 지금도 저를 날마다 고쳐 주십니다. 세상에 나가서 복음을 전하라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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