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사학년 때였다. 바람 쌩쌩 불던 어느 겨울날, 아버지는 방패연을 만들며 내게 이야기했다.
내 나이 열넷에 돌아가신 니 할부지는 젊은 한시절 방물장사로 떠돌아댕겼지러. 저 울산 땅 마실마실 골짝골짝을 바늘․실․참빗․얼레빗에 연지․곤지 따위를 등짐 지고 허구헌 날 떠돌아댕기다 보이 늘 허리가 꼬부장했어. 남도 육자배기 한 가락은 구성지게 잘 뽑아제꼈고 술 또한 대주가라, 팔자에 매인 역마살을 임종 때꺼정 손씻지 못해, 어느 해 겨울인가, 오줌독이 얼어터질 만큼 추분 날 고주망태가 되어 눈밭에서 객사하고 말았잖는가베. 역마살 낀 집안은 원체 손 귀한 벱이라 슬하엔 내 하나를 남깄고, 니 할무이도 내가 장성하기전 전쟁통에 하도 굶어 영양실조로 별세했는기라. 지금도 아부지 모습이 눈에 삼삼하구만. 낡은 맥고모자에 무명적삼을 입고 그 시절 한창 유행하던 당코바지에 무명적삼을 입고 그 시절 한창 유행하던 당코바지에 짚신을 꿴 채 깐죽깐죽 뱁새걸음 걷던 키작은 그 장돌뱅이 말이데이. 부산서 물건 받아다가 그걸 다 팔 동안 달포 정도 집을 비았다 돌아오모, 이틀이나 사나흘 집에 머물곤 했지러. 겨울철이면 그렇게 집에서 쉴 동안 내게 큰 방패연을 만들어주곤 했지러. 분가루같이 곱게 빠순 사금파리를 아교풀에 풀어 그걸 멩주실에 믹이서 연줄 또한 칼날같이 만드셨니라. 그 멩주실에 베이서 귀가 날라갈뿐한 아아도 있었으이께. 그 연줄 감긴 자새와 연을 내게 주곤 등짐 지고 집을 나설 때, 섭섭해 울라카는 나를 보고 아부지는 노상 이런 말씀을 하셨는기라. 아부지가 보고 싶으모 이 연을 하늘에 훨훨 띄아라. 저 하늘 높이 연이 나는 거게 아부지가 기실 끼다, 하고 말이다. 나는 엄동 석 달만 아이고 봄․가실에도 연을 날리미, 연맨쿠로 멀리멀리 떠 댕기는 아부지를 그리버하며 컸어. 연이 새가 돼서 아주 멀리로 날아가모 내 마음도 연이 돼서 그렇게 넓은 하늘 천지로 떠돌아댕겼제. 내가 니 나이만했을 때 바람 쌩쌩한 어느 겨울이었어. 내가 날린 연과 마실 아아 연이 싸움을 붙었잖았는가베. 연줄이 서로 섞갈리자 나는 자새 실이 다 풀리도록 연을 멀리로 띄아보냈지러. 자새 실을 빨리 안 풀로 상대방 연줄이 내 연줄 한 군데만 파고들며 씨루이까 내 연줄이 금방 끊기거덩. 낯짝만하던 연이 손바닥만큼 작아지고, 마지막에는 장기알만큼 작아져 까마득히 멀리서 가물거릴 때꺼정 연줄을 좔좔 풀어주었제. 연 싸움 구경한다고 둘러선 마실 아아들이 하늘 저 멀리로 바둑돌만해진 연 두 개를 조마조마하게 치다보았어. 서로 엉킨 연줄을 풀 수가 읎었고 그렇다고 감아딜일 수도 읎으이께 어느 쪽이든 한 쪽 연줄이 끊기야 싸움이 끝을 보게 되었지러. 그런데 내 자새 연줄이 먼첨 동이 나뿌린기라. 인자 더 풍 연줄이 읎으이께 곱다시 내 연줄이먼첨 끊길 수밖에 읎는기라. 총알 떨어진 병정 한가지제. 나는 급한 김에 실 떨어진 빈 자새를 든 채 앞쪽으로 쫓아갔거덩. 그러나 쪼매밖에 몬 쫓아가 남으집 담베락에 마주치고 말았제. 내가 멈춰서자 탱탱하던 연줄이 갑재기 심이 쑥 빠지더라. 고만 내 연줄이 끊기고 만기라. 저 하늘 멀리로 콩알만한 내연이 너풀너풀 날아가더만. 아아들 함성이 터지고, 나는 부끄럽고 분해 쥐구녕에라도 숨고 싶었어. 나는 자새를 던지뿌고 가물가물 멀어지는 내연을 따라 들길로 쫓아가기 시작했제. 내 연이 어데꺼정 날아가더라도 꼭 찾아오고 말겠다. 이렇게 앙심 묵고 숨질차게 쫓아갔지러. 겨울바람이 차거분 줄도 모르고 들을 질러 멀리 보이는 산으로 쫓아갈 적에, 내 연은 내가 그적까지 올라가본 적 없는 큰 산 너머로 사라지고 말았제. 한 마장은 좋게 끊기나간 연줄만 찾으모 그 연줄 따라가서 내 연을 찾겠다, 하고 그 높은 산으로 허기지게 올라 안갔나. 아부지가 돌아오시모 새로 연과 연줄을 맹글어 달라 칼 수 있었지마는, 그때사 와 그렇게 잃가분 그 연을 꼭 찾고 싶었는지 몰라. 돌부리에 채어 넘어져도 아푼 줄 모르고 산을 열심히 오를 동안, 어느새 해가 꼬박 지고 산 아랫마실은 저녁밥 짓는 연기가 파랗게 피어오르더라. 녹초가 돼서 산꼭대기까지 올라가이까 솔바람 소리가 굉장하더라. 바람이 우째 심하게 부는지 나는 소나무를 꼭 붙잡고 있었지러. 내가 연맨쿠로 날아갈 것만 같애서 말이데이. 추분데도 온몸은 땀으로 흠뻑 젖었지러. 제우 정신을 차리고 산 저아래로 내리다보이까, 거게는 아주 별세계라. 어둠살이 내리는 속에 마실이 점점이 흩어졌고 꽁꽁 언 실개천이 하얗게 내리다보이고, 작은 묏등도 있고…… 아, 나는 그만 딴 시상에 정신이 팔리서 연 찾을 생각도 잊어뿌맀제. 마실 밖을 몬 나가본 나는 첨으로, 세상이란 이렇기 넓구나 하고 탄복했지러. 아부지가 타지에서 집으로 돌아와 다른 마실 이바구를 해줄 적엔, 그저 그렇겠구나 했는데 실제 내 눈으로 사방 천지를 내려다보이까 그만 집으로 돌아갈 맘이 안 나는기라. 그래서 인자 내가 연이 돼서 그 딴 세상으로 훨훨 내려갔제. 밤만 되모 무서버서 통시(변소)도 몬가는 내가 그때는 웬일인지 무섬증도 읎더라. 그로부터 나는 꼬박 닷새 동안 걸뱅이짓 하미 이 마실 저 마실 돌아댕겼어. 그렇게 정신읎이 딴 시상을 구경하다 어떤 착한 장돌뱅이를 만내서 제우 집으로 돌아왔는기라……
오랜 가뭄 끝에 먹장구름이 하늘을 덮었다. 장마가 시작될 모양이라고 마을 사람들은 물꼬를 깊이 트고 논둑을 다독거렸다. 허술한 담장도 손질하고 물이 잘 빠지도록 집 둘레 수채를 쳤다. 낮 동안은 구름이 무겁고 날씨가 쪘지만 해가 진 뒤에도 내릴 듯한 비는 쏟아지지 않았다. 내가 쌀독을 들여다보니 정부미가 한 움큼 정도 남아 있었다. 밥을 짓기에는 양이 부족했다. 그렇다고 밤 여덟시는 넘어야 장에서 돌아올 엄마를 기다리기엔 배가 고팠다. 엄마도 오늘 저녁쯤 양식이 떨어질 줄 모른 채 어제 아침에 집을 나섰을 터이다. 아니, 어쩜 알고 있을는지 몰랐다. “인자 쪼매 있으몬 개학될 긴데 일우니 월사금을 우짤꼬.” 엄마는 어제 아침에도 내 월사금 걱정을 하며 간고기 담은 무거운 플라스틱 함지를 이고 삽짝을 나섰다. 한 끼 굶는다고 어디 죽기야 하겠나. 엄마는 이런 생각을 했는지 몰랐다. 긴 여름 해가 지고, 순희는 배고프다고 자꾸 보채었다. 나도 한창 먹성 좋은 중학교ㅗ 이학년이라 주린 배를 참고 있을 수만 없었다. 뱃속에서 연방 개구리 울음 소리가 들렸고 군침이 입 안에 고였다. 나는 신작로 앞 장씨 가게에서 라면 두 봉지를 외상으로 가져왔다. 엄마 꾸중을 듣게 되더라도 어쩔 수 없었다.
찬으로 아침에 먹다 남은 신 김치를 놓고 순희와 내가 쪽마루에 앉아 삶은 라면을 먹었다. 마침 돌배산 위에 번개가 한차례 깨어지고 난 뒤였다. 삽짝께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눈을 주니 지팡이를 짚은 키 큰 남자가 꾸부정히 서서 읍내 쪽 신작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밀짚모자를 삐뚜름히 눌러썼고 반소매 회색 남방셔츠에 검정 바지를 입고 있었다. 마루에 삼십 촉 백열등이 걸려 있었으나 남자가 얼굴을 돌리고 있는 데다 불빛의 반사로 나는 그가 누구임을 알아보지 못했다. 낚시꾼일 테지, 하고 생각하다 곧 나는 아버지임을 알았다. 마당귀 목련꽃이 봉오리를 맺을 때니, 두 달 전에 집을 나간 아버지가 이제 돌아온 것이었다. 집을 떠날 때와 달이 아버지는 어디를 다쳤는지 지팡이를 짚고 있었다.
“아부지, 아부지 아입니껴?” 내 목소리가 떨렸다.
아버지는 몸을 지팡이에 의지하여 천천히 삽짝 안으로 들어섰다. 어느 쪽 다리도 절름거리지 않았으나 예전보다 더욱 힘없는 걸음걸이여서 당신은 마치 달이 구름을 가르고 다가오듯 한 느낌이었다.
“아이구, 참말로 아부지시네. 우짜다가 짝대기까지 짚고……”
순희가 맨발로 아버지께 달려갔다. 순희는 아버지 허리에 팔을 감고 울먹였다. 아버지는 t수숫대처럼 넋 놓고 멀뚱히 서 있었다.
“어데 많이 다쳤습니껴?” 아버지가 짚은 지팡이를 보며 내가 물었다.
“머, 쪼매. 그래도 마 괜찮다.”
아버지가 처음 입을 떼었다. 예의 낮고 둥근 아버지 특유의 목소리였다.
“마루로 올라가입시더.”
내가 아버지 한 팔을 끌 때, 다시 한차례 천둥이 맞부딪쳐 우레 소리를 내며 깨어졌다. 번개가 섬광으로 뻗고, 그 번갯빛에 돌베산 완만한 능선이 하얗게 드러났다. 우리 남매는 자지러지게 놀라 엉겁결에 아버지 허리에 매달렸다. 아버지 몸에서는 마구간의 퀴퀴한 쉰내와 마른 볏짚 냄새가 났다.
“큰비가 올 모양이데이.” 아버지가 누이 등을 쓸며 말했다.
“아부지는 어데 갔다가 인자 이래 집에 옵니껴?”
순희가 물었으나, 아버지는 대답이 없었다.
“밥 잡수셨어예?” 내가 물었다.
“읍내서 묵고 왔어. 엄마는 안죽 안 온 모양이구나.”
아버지는 지팡이를 마루기둥에 붙여 세우곤 마루 끝에 앉았다. 남방셔츠 주머니에서 구겨진 담뱃갑을 꺼내더니 한 대를 입에 물었다. “어제 아침에 나갔는데, 오늘 덕산장 보고 올 낌더. 인자 오실 때가 돼가는데……” 내가 말했다.
나는 쪽마루에 놓인 부채를 집어 아버지께 드렸다. 아버지는 천천히 부채를 부치며 울 너머 어두운 신작로에 멍한 눈길을 풀어놓았다. 힘없이 벌어진 입과 코에서 남빛 담배 연기가 색실처럼 풀어져 부채 부치는 바람에 날렸다. 순간 돌배산과 초등학교 쪽 주남저수지 방죽을 가로지르며 뇌성이 쳤다. 우레 소리는 연이어 번개를 튀기곤 딱총 소리를 내다 잦아들었다. 마치 이마를 쪼갤 듯 눈앞에 번갯불이 번쩍이자, 마루에 걸린 전등이 꺼졌다. 천지가 암흑 세상이 되고 말았다. 어둠에 익숙해질때까지 꼼짝없이 앉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래 무서븐대 어무이는 우째 올꼬.” 깜깜한 속에서 순희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초가 읎지러?” 아버지가 물었다. 순희와 내가 대답을 못 하자 아버지는, “순자 소식은 자주 있나?” 하고 누나를 두고 물었다.
“공장이 청계천에서 부천인가 어데로 옮겼다 카는 편지가 왔어예. 돈도 삼만 원 부쳐오고. 그기 하매 보름 전임더.” 내가 말했다.
누나는 올해 열아홉 살이었다. 누나는 먼저 서울로 올라가 자리잡은 방구리댁 딸 두남이 편지를 받고 작년 봄에 홀로 상경하여 처음에는 완구 만드는 작은 공장에서 일한다는 편지가 왔다. 작년 추석때 시골을 한 번 다녀가곤 몇 달 소식이 끊겼다. 봉제 공장으로 옮겼다는 편지가 온 뒤, 달마다 편지와 함께 집으로 돈을 부쳤다.
“고생이 많을 끼라. 잘 풀리야 될 낀데……”
아버지는 말끝을 죽이곤 한동안 입을 떼지 않았다. 나는 깜깜한 속에 오직 우리 남매만 처량히 남았고 아버지는 또 집을 나가 어디론가 떠나버린 착각에 빠졌다. 아부지, 하고 나는 입속말로 아버지를 불렀다. 그 소리는 공허하게 내 귀를 잠시 울렸을뿐 아버지 실체가 느껴지지 않았다. 아버지는 집을 비웠을 때도 집 뒤꼍 후미진 어디에 숨어 있듯 했고, 정작 집에 있을 때도 나는 늘 당신이 어디로 떠나고 없는 느낌이었다. 한마디로 아버지는 고질적인 떠돌이병자였다.
아버지를 처음 본 동무들은 대부분이, 니네 아버지는 참 유식하게 생겼다고 말했다. 외양만 두고 말하자면 아버지는 우리 학교 r장 선생이나 읍장보다 의젓하고 품위가 있었다. 집 앞 주남저수지에서 낚시를 하다 아버지를 만난 적 있는 우리 학교 영어 선생까지 내가 당신 아들임을 뒤늦게 알곤, 아버지가 어느 대학을 졸업했냐고 물은 적이 있었다. 내가 알기는 아버지가 중학교조차 제대로 졸업하지못했기에 나는 씩씩하게 대답할 수 없어 잘 모른다고 어물쩍 말했다.
아버지는 성큼한 키에 허리와 다리가 길고 살색이 허여멀쑥했다. 길쭘한 얼굴에 이마가 넓었고 곧고 긴 콧날이 우뚝하여, 선량해 뵈는 선비풍모를 갖췄다. 마흔 살을 넘고부터 앞과 귀밑머리가 세기 시작하더니 쉰이 못 된 나이에 머리칼이 온통 은발로 변했다. 아무렇게나 뒤로 넘긴 결 좋은 긴 머리칼이 바람에 날릴 때나 햇살에 반사될 때 고상한 멋까지 풍겨 타지에서 온 낯선 낚시꾼도 아버지를 농사꾼으로 보지 않았다. 아버지는 평소 말이 없지만 얘기를 할때도 목소리가 조용한 중에 은근했다. 걸음걸이도 결코 서두르는 법 없이 천천히 큰걸음을 떼어, 아버지가 뒷짐 지고 어깨를 앞으로 가벼이 숙여 저수지 방죽길로 산책할 때면, 학자가 어려운 논제의 실마리를 풀려는 사색의 삼매경에 빠진 그런 장면을 연상케했다.
그런 인상과 외양에 걸맞게 이름 대신 ‘도사’란 별칭이 붙어 이웃 사람들은 모두 아버지를 정 도사라고 불렀다. 아버지 친구요 주남저수지 관리장인 민씨는 아버지의 일반적인 그런 풍모와는 다르게 말했고, 그 말은 여러 점에서 설득력이 있었다.
작년 초여름 어느 날, 저녁 밥상을 받아놓고 내가 아버지를 찾아나서 주남저수지 수문 옆 공터에 있는 밥집 중 하나에 들렀을 때 민시와 젊은 예비군 중대장이 막걸리를 마시며 아버지를 두고 이런 말을 나누고 있었다.
“정 도사 말인가. 그 사람 눈을 보게. 갈색 동자가 짙게 들어앉아 우째 보모 이 우주의 모든 비밀이라도 풀 듯한 눈이야.”
“사실 그래요. 늘 무슨 생각에 잠겨 있어 보이니깐 말입니더.”
“듣고 보이까 그럴싸합니더. 무슨 숨가놓은 죄를 감춘 사람같이 눈동자가 불안해 뵙니더.”
“그러나 사실 그 사람은 인간으로 태어나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 보탬이 될 일을 할 수 읎고, 하고 싶어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잠자리 한 마리 함부로 쥑일 위인이 몬 돼. 처자슥 건사조차 제대로 몬 할 맘씨 여리고 심읎는 사람이야. 생명 있는 것들이 태어나고 죽는 이치대로, 그냥 그렇게 자연의 질서에 순응하며, 살아 있으니 사는 수밖에. 있듯 읎듯 말일세.”
“그럴까예? 그러나 틀림읎이 무신 사무친 과거가 있는 분일 낍니더. 한이 많은 사람 같심더.”
“글쎄, 그 점까지사 모르지만, 눈만 두고 말하자모 이 시상 일이 아닌 다른 시상의 일만 생각하는 그런 몽상가의 눈일세. 뜬구름이듯 부평초듯 시상을 민들레씨처럼 날리가미 사는 사람의 눈이 대체로 그렇지러.”
이튿날로 아버지는 또 집을 나간 채 한 달 남짓 지난 뒤에야 행려병자 모습으로 귀가했다.
민씨와 예비군 중대장의 그런 대화는 빈말이 아니었다. 아버지는 여러 점에서 혼이 약간 빠진 듯한 일면을 자주 보였고, 아버지와 오래 자리해본 사람은 그 점을 쉽게 눈치챌 수 있었다.
“참 쪼매 전에 머라고 말했지러?”
아버지는 우리 식구 앞에서도 이렇게 같은 말을 되물을 적이 많았다.
“아이구, 이 주책양반아. 이태꺼정 이바구한 건 어느 쪽 귀로 흘리들었소.”
딱하다는 투로 엄마가 이렇게 면박 주면, 무신 딴 생각을 쪼매 하느라 잊아뿌맀제 하고 말꼬리를 접으며, 예의 그 깊은 눈동자로 상대방을, 정확히 말해 눈을 마주보는 게 아니고 턱이나 목께쯤 눈길을 낮춰 바라보았다.
“밥이 될 일인가. 반찬거리 될 생각인가. 무신 늠으 생각할 끼 저토록 많은지. 당신 쪼매 전에 또 무신 생각 했더랬소?” 엄마가 다잡았다.
“머, 하찮은 생각이제.”
“하찮은 생각이라니예?”
“지난 가실에 말이데이. 저 진주 쪽 갈대밭에서 본 들오리떼가 문득 생각나서. 밤인데 달이 참 좋았더랬제. 보름달빛이 강변에 쫘악 퍼졌거덩. 들오리떼가 바람에 슬리는 갈대밭 우로 날아가는 모양이 우째 그래 보기 좋던지……” 마지 못한 듯 아버지가 입을 떼었다.
그럴 때, 아버지 눈은 더 당신을 나무랄 수 없게끔 천진난만한 순박함과 어스름녘 산 그리메에 지는 노을 같은 한이 담겨 있었다.
우리 집안은 일찍부터 한 마지기 논이나 밭뙈기 한 두렁도 가져본 적 없었으므로, 아버지는 낫이나 호미자루 한번 잡아본 적 없었다. 그렇다고 아버지는 일정한 직업을 가져본 적도 없었다. 일년을 따져 평균 아홉 달을 집을 떠나 어디론가 떠돌아다녔고, 집에 붙어 있을 나머지 달은 낚시로 소일했다. 이태 전 봄까지만도 우리는 읍내거리 장터마당 부근에 살았다. 그때 역시 엄마는 근동 장터를 떠돌며 어물장사를 했고, 아버지는 읍내에서 사 킬로정도 떨어진 지금 우리가 사는 주남저수지에 낚시를 다니며, 늘 집 떠날 궁리만 하고 지냈다. 새마을 도로가 확장되는 통에 우리가 세 든 읍내 장터집이 헐리게 되자, 아버지는 엄마를 졸라 주남저수지 옆 민씨 별채로 이사를 오게 되었다.
“주남저수지는 우리나라에서 알아주는 철새 도래지 아인가. 내가 새를 무척 좋아 안 하나.” 아버지가 말했다.
“당신이사 땅으로 걸어댕기는 철새인께 날아댕기는 철새가 좋겠지예. 그런데 새 구경하는 거도 좋지만 그 구경 댕기모 밥이 생기요 떡이 생기요?”
엄마는 말도 되잖은 소리란 듯 한숨을 내쉬며 돌아앉고 말았다.
“그거말고도, 관리인 민씨 말이 타지에서 오는 낚시꾼들 뒷바라지나 해주모 찬값 정도는 번다 안카나……”
엄마는 그쪽으로 이사하면 당신 장사 다니는 길이 먼 줄을 알면서, 어떻게 아버지가 집에 눌러 있을까 싶었던지 그 말에 선선히 동의했다 그러나 주남저수지 쪽으로 이사와서 보름을 채 못 넘겨 아버지는 슬그머니 집을 떠나고 말았다. 승용차가지 몰고 들이닥치는 부산과 마산 지방 호사 낚시꾼들이 떡밥은 물론 술병이며 안주 접시까지 심부름시키는 데 아버지는 더 참아낼 수 없었던 것이다. 더러운 세상, 나쁜 놈들이라며 전에는 입에 담지 않던 욕설을 숨김에 종종 뱉더니, 기어코 그 떠돌이 병에 발동이 거렸다. 늘 그게 궁금하지만, 아버지는 집을 떠나 떠돌 동안 숙식을 어떻게 해결하고 다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로부터 두 달 뒤, 여름이 끝날 무렵에서야 아버지는 돌아왔다. 그 행려 끝에 무슨 결심을 굳혔는지 돌배산 자락을 덮은 민씨네 대마무밭의 굵은 대 몇 그루를 쪄와 방패연을 만들기 시작했다.내가 어릴 때 아버지는 내게 더러 방패연을 만들어주기도 했지만, 근래에 한 번도 없던 짓거리였다. 대나무를 가늘게 쪼개어 햇빛에 말려선, 장두칼로 다듬고, 조선종이에 바람구멍을 뚫어, 거기에 다섯 개 댓개비를 붙여 방패연을 만드는 솜씨는 아마도 아버지가 지닌 유일한 기술 같아 보였다. 천장 가운데 태극무늬나 붉은 원을 오려 붙여 만든 연이 큰 놈은 두 번 접은 신문지만했고 작은 놈은 교과서만한 크기도 있었다.
“겨울도 아인데 그 많은 연을 어데다 팔라 캅니껴?” 내가 물었다. “머 꼭 돈이 목적이라서 맹그나. 쓸모읎어도 맹글고 싶으이께 맹글제. 참새가 날라카모 기러미만큼 와 하늘 높이 몬 날겠노. 먼데꺼정 갈 필요가 읎으이께 지 오를 만큼 오르고 말지러.” 아버지가 쓸데없이 비유까지 곁들여 말했다.
“옛적에 연 맹글어줬다는 돌아가신 할아부지 생각이 나서 맹글어예?”
“사람은 어데 갈 목적이 읎어도 어떤 때는 연맨쿠로 그냥 멀리로 떠나댕기고 싶은 꿈이 있는기라. 그런 꿈 읎이 일만 하는 사람은 꼭 개미 같으이께, 내가 보기세 사람 사는 목적이 저런가 싶을 때가 있지러. 그 사람들이 보모 내 같은 사람이 쓸모읎이 보일란지 몰라도……”
아버지가 어설픈 미소를 띠어 보였다.
“묵고 살기 바쁘모 그래 산천 구경하고 짚어도 몬떠나는 거 아입니껴” 하며 나는 엄마를 생각했다.
“그렇기사 하겠제. 그라고 보모 나는 아매 떠돌아댕기는 팔자를 타고났나 보제.” 아버지가 시무룩이 말했다.
아버지는 어떤 날은 며칠 동안 댓개비를 멀리 두고 지내기도 했지만, 신이 받칠 땐 하루에 두 개, 도는 세 개까지 연을 만들 때도 있었다.어느 일요일이었다. 아버지는 방패연에 이 미터쯤 실을 달아 열 개 남짓 연을 들고 저수지로 나갔다. 나도 아버지를 뒤따랐다. 엄동 한철을 빼고 주말이면 저수지에는 언제나 도회지로부터 원정 온 낚시꾼들이 수십 명 저수지 물가에 점점이 흩어져 있게 마련이었다. 수문 앞에는 술과 밥을 파는 여인숙 겸용 민박집이 있었고, 공터에는 승용차도 예닐곱 대 늘어서 있게 마련이었다. 아버지는 그 연을 공터에 늘어놓았다. 저수지 주변에 연을 띄울 아이들도 없는데 웬 방패연이냔 듯 지나다니는 낚시꾼이 걸음을 멈추었다.
“그거 뭐요?” 낚시꾼들은 뻔히 알면서 싱겁게 물었다.
아버지가 잠자코 있으면, 그것 우리 상대로 파는 거요? 하고 되물었다. 그제야 아버지는 마지못해 판다고 대답을 흘렸다.
“에끼, 이 사람아, 겨울철도 아닌데 무슨 연을 날려. 더욱 도회지 아파트촌에 연 날릴 떼가 어데 있다고.” 낚시꾼이 핀잔을 놓았다.
“이건 날리는 연이 아니라 민속품으로 집에 걸어두는 연임더. 예로부터 연을 집에 걸어두모 비상하는 기상이 있어 집안에 길조가 있다는 말도 몬 들었소? 그림맨쿠로 보기도 좋고요.” 아버지는 은근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도 그럴 만하군.” 하며 연을 사가는 낚시꾼이 더러 있었다.
아버지는 큰 연은 삼백 원, 작은 연은 이백 원에 팔았다. 낚시꾼들은 그 연을 승용차 뒷자리 선반에 얹어 가기도 했고 등에 멘 낚시 가방에 달고 떠나기도 했다. 그날, 여섯 개 연이 팔렸다. 남은 연은 내가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연 맹글긴 내가 맹글꾸마 팔기는 니가 팔아라. 학교 안 가는 공일날에 말이다. 나는 몬 나앉았겠더라.” 방죽길을 걸으며 아버지가 허탈한 목소리로 말했다.
연 장사가 괜찮은 장사거리가 될 리 없었다. 다음 일요일에 순희와 나는 스무 개 연을 들고 저수지 공터로 나갔지만 판 연은 겨우 네 개였다. 미끼로 지렁이나 떡밥을 파는 장사보다 오히려 못했고, 또 낚시꾼들에게 아무 도움도 주지 못하는 연 팔이가 왠지 부끄러웠다. 그때도 아버지는 집에 머문지 두 달을 못 채워, 들판의 나락을 거둘어들이고 북으로부터 도요새․들오리․물떼새가 한창 몰려 들어 주남저수지가 그 새떼 울음으로 분답시끌해질 무렵,철새처럼 또 집을 떠났다. 아버지는 그해도 저문, 세모가 임박해서야 예의 초라한 행색으로 돌아왔다. 돌아와서 또 연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런 아버지를 보고 엄마는 한숨을 내쉬며, 저건 증말 무신 늠으 미친 짓인지 모르겠다며 아버지를 원망했으나, 아버지가 연을 만드는 일을 방해하진 않았다. 아버지가 한푼 돈도 벌어들이지 않았지만 엄마는 늘 그 정도 잔소리로 타박을 그쳤다.
뇌성이 치고 전기까지 나간 것으로보아 아무래도 큰비가 쏟아질 것 같아, 나는 엄마 귀가가 적이 걱정되었다. 어둠 속에서 순희의 나직한 한숨이 들렸다.
“이래 깜깜한데 어무이가 우예 올꼬.” 순희의 혼잣말이 떨렸다.
“아무래도 내가 마중 나가봐야 되겠다.”
나는 마루에서 내려섰다. 어둠 속을 더듬어 뒤꼍으로 가선 자전거를 끌고 앞마당으로 나왔다.
“내하고 같이 갈까?” 아버지가 물었다.
“편찮은데 그냥 쉬시이소.”
나는 자전거를 끌고 삽짝을 나섰다. 곧 소나기가 정수리를 파며 쏟아질 것 같았다. 지면이 고르지 못한 샛길을 빠져나가자, 읍내로 통하는 포장 안된 신작로가 나섰다. 길 옆 미루나무가 벌받는 학생처럼 늘어서서 어둠 속에 판화처럼 찍혀 있었다. 희미하게 트인 신작로에는 비 쏟아지기 전 팽팽한 긴장만 감돌았다. 불을 켜지 않아도 익숙한 길이라 나는 자전가 페달을 힘주어 밟았다. 조금이라도 빨리 엄마를 만나 아버지가 돌아왔음을 알리고 싶었다. 습기 머금은 눅진한 맞바람이 얼굴을 스쳤다. 내가 타고 가는 자전거는 올 봄, 내가 중학교 이학년에 진급하자 누나가 사준 선물이었다. 나는 지금도 그때 감격을 잊지 못한다.
-밤일을 끝내고 돌아와 라면 끓일 물을 연탄불에 얹어놓고, 이 편지를 쓴다. 베니어판으로 칸막이 막아놓은 창문 한 짝 없는 다락방에서 열네 시간을 미싱과 씨름하다 돌아오니 몸이 햇솜같이 풀어지는구나. 새벽부터 밤 아홉시까지 뽀얀 실밥먼지와 미싱 소리 틈새에서 쉴 틈 없이 일을 해도 한 달에 육만 원이 내 손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래도 누나는 일류 미싱사가 되겠다는 꿈이 있기에 오늘도 내일을 믿으며 참고 일한다. 아버지가 돈벌어 우리도 남 보란 듯 살자는 꿈은 버린 지 오래고, 내게 희망이 하나 남았다면 일우야, 네가 훌륭한 사람이 되는 일이다. 가난의 때를 벗고 우리 집안이 펴이는 길은 이제 네 성공 하나에 달렸다. 일우 네가 일학년 전체에서 수석을 했다니! 나는 네 편지를 받고 눈이 붓도록 울었다. 그래서 네게 무슨 선물을 사줄까 하고 생각하다 문득 자전거가 떠올랐다. 읍내 중학교까지 십릿길, 걸어 통학하자면 아무래도 한 시간 가까이 걸리겠지. 중고품이나마 자전거를 타고 가면 이십 분이면 족할 텐데. 내가 자전거를 사준다면 절약한 사십 분으로 공부를 더 할 수 있고, 엄마 장사하는 데 물건도 실어 날라줄 수 있을 것 같구나. 내 처지로 보나 또 우리 집안 형편으론 과분하지만 너에게 자전거를 사주기로 마음먹었단다. 보내는 돈으로 읍내 자전거방에 가서 쓸 만한 중고품 한 대를 사기 바란다.……
좌흔 마을까지 나오자 길가에 늘어선 상점들도 전기가 나가 촛불이나 석유 등잔불을 켜놓고 있었다. 나는 마을회관 앞에서 갈라지는 읍내 쪽 포장 된 신작로로 내처 자전거를 몰았다. 그 길은 마산과 부산으로 연결된 국도였다. 어두운 신작로에는 소를 몰고 돌아오는 농부 한 사람 외 다른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 거기에서 다시 한참을 달려갔을 때야 나는 미루나무 사이 희끄무레한 길로 머리에 큰 함지를 인 키 작은 아낙네 자태를 볼 수 있었다. 엄마였다. 엄마는 함지 속에 든 간고기를 다 팔았어도 그것을 머리에 오고 올 적이 잦았다. 장거리에서 쌀과 보리쌀 몇 됫박, 찬거리를 사서 이고 왔던 것이다. 읍내에서 주남저수지까지는 십릿길인데 엄마는 버스비 칠십 원을 아끼려 어두운 길을 혼자 타박타박 걸어오고 있었다.
“어무이, 아부지가 돌아왔어예.”
나는 엄마 앞에 자전거를 세웠다.
“그래예?”
“짝대기 짚고 쪼매 전에예.”
“병은 안 든 것 같고?”
“늘 그러지 머예. 심 하나 읎이 쓰러질 듯 말임더.”
나는 엄마 머리에 얹힌 함지를 받아 자전거 짐받이에 실었다. 아니나다를까, 함지에는 팔다 남은 간전갱이 몇 마리와 한 말 남짓한 쌀부대가 들어있었다.
뇌성이 다시 한차례 하늘 복판에서 쪼개졌다. 엄마는 흠칫 어깨를 떨었고, 나는 몸이 오그라드는 듯한 놀람으로 무심결에 자전거 핸들을 눌러 잡았다.
“짝대기를? 그라몬 어데 다쳤단 말인가?”
“그렇지는 않은 것 같고……”
“늘 배창자가 아푸다더니 속병이 곪아터진 게로구나. 객지로 돌아댕기며 굶기도 오지기 굶었을 끼고.”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엄마는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참, 양석 떨어졌을 낀데 너그들 저녁밥은 우쨌노?”
“장씨 집에서 라면 두 봉지 꿔다 묵었지예.”
“아부지는?”
“읍내서 묵고 왔다 캅니더.”
자전거 짐받이에 얹힌 함지를 고무줄로 묶자, 나는 천천히 자전거를 몰았다. 함지 쪽에서 쿰쿰한 비린내가 코끝에 따라왔다. 그 냄새는 이미 후각에 익은 엄마 냄새이기도 했다.
“엄마, 자전거에 타예. 그라몬 퍼뜩 갈 수 있을낀데.”
다른 때 같으면 사양하던 엄마가 오늘따라 아무말 없이 안장 앞쪽 파이프에 머릿수건을 깔로 올라 앉았다. 내색은 않았지만 엄마 역시 아버지를 빨리 만나고 싶은 모양이었다. 힘주어 페달을 밟자 엄마 온몸에서 풍겨나는 비린내가 정답게 내 쪽으로 옮아왔다.
“쯧쯧, 그래도 숨질 붙었으몬 더러 처자식은 보고 싶은지 집구석이라고 찾아드니……원쑤야. 그런 원쑤가 어딨노. 그런 남정네가 이 시상에 멪이나 될꼬. 그래 굶으며 맥 놓고 떠돌아댕기도 안죽 객사를 안 하는고 모리겠데이.” 엄마는 한숨 끝에 아버지를 두고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뙤약볕 아래 장터마다 싸다니느라 까맣게 그을린 엄마 얼굴을 떠올리자, 나는 공연히 코허리가 찡하게 쓰렸다. 엄마는 키가 작고 몸매가 깡마른데다 살결이 검어, 볼 때마다 안쓰럽고 측은한 마음이 늘 내 마음 한 귀퉁이에 그늘을 만들었다. 그럴 적마다 아버지에 대한 원망 또한 반사적으로 내 감정을 자극했다. 아버지에 대한 그 원망 섞인 감정은 고체의 단단한 증오라기보다 가을 바다 썰물이 l되어 당신을 내 옆에서 멀리로 밀어내는 작용을 했다. 아버지에 대한 그런 마음은 엄마의 경우도 비슷하리라 여겨졌다. 다만 순환의 법칙을 좇아 한때의 미움도 시간이 흐르면 연민으로 녹아, 끝내 밀물이 되어 엄마 여윈 마음을 다시 채워주리란 점만이 다를 뿐이었다.
우리가 읍내에서 민씨 아저씨 집으로 이사해온 초여름, 아버지가 집을 떠나 한 달째 소식이 없을 즈음이었다. 마루에 앉아 엄마와 민씨 부인이 아버지를 두고 나누던 말을 나는 방에서 새겨들었다.
“전생에 무신 늠으 액이 끼었는지, 서방복 읎다케도 이런 팔짜는 드물 낌더. 첫 서방은 어장 배를 탔는데 시집간 지 한 달이 채 몬 돼 물귀신이 되고 말아뿠지예. 그라고 삼 년 뒤에 장사하다 만난 남자가 애들 애빈데, 이 사람은 여지껏 단돈 십 원짜리 한 닢 집에 듶다논 적이 읎심더. 무신 걸뱅이 혼귀가 붙었는지 늘 그래 밖으로만 싸돌아댕기는 거아이겠습니껴. 샛계집 둘 위인이 몬 되는 줄이사 알지마는, 참말로 그 걸뱅이 혼귀는 시상으 명약도 다 소용읎는 병인기라예.”
엄마가 아버지를 처음 만나기는 마산에서 부산가는 경전남부선 완행 기찻간이라 했다. 해질 무렵 통근차라 찻간은 출입구까지 승객들로 들어차 발디딜틈이 없었던 모양이었다. 엄마가 마산 어시장에서 젖거리 멸치를 네 상자 받아 그걸 머리에 이고 비좁은 승강구를 막 올라섰을 때였다. 통학생들이 승강구 입구에까지 빼곡히 늘어서서 엄마가 멸치상자를 미처 내려놓을 틈새를 못 찾고 있을 때, 새댁, 그거 이리 주조 하며 멸치 상자를 덥석 받은이가 아버지였다. 팔소매를 걷은 풀색 작업복에 벙거지를 눌러쓴 아버지는 그때도 정처없이 떠도는 중이었다. 아버지는 멸치 상자를 내려주는 도움으로 임무를 다했고, 엄마는 그냥 고맙다고만 했다.
“우짜다 그쪽으로 눈이 가서 흘끗 보이까 그 남정네가 맥 놓고 바깥 경치를 바라보고 있습디더. 그쪽이나 이녁이나 그냥 그뿐이었지예. 차가 읍내에 도착해서 나는 멸치상자 이고 내렸는데, 이튿날 진영장에서 말입니더……”
엄마는 아버지를 다시 만났다. 오후 두시가 넘어 전을 잠시 옆 장사꾼에게 맡기고 길가 포장 없이 벌인 좌판 막국수를 허겁지겁 먹고 있는데, 옆자리 가마니에 털썩 주저앉은 사람이 아버지였다. 아버지가 엄마를 좇아 기차에서 내리지 않았고, 엄마 또한 아버지를 찾아 그 막국수 좌판을 찾지 않았는데, 우연의 일치였다.
“뒷날에 들어 안 이바구지만, 그때는 저 경북 땅 문경 쪽에서 반년간 탄광일을 해서 춤지에 돈푼깨나 들어 있었답디더. 그라이께 또 마음에 바람이 찬 기지예. 그 양반이사 차비마 쥐모 앉아서 메칠을 배겨내지 몬하니까예. 돈 떨어져 읎으몬 굶고 정 굶어 머든지 묵어야겠다고 맘묵으면 날품도 팔고 하며 시상 천지를 훨훨 떠돌아댕기는 기 취미 아이겠습니껴. 새맨쿠로 말입니더. 새사 어데 취미로 날아댕깁니껴. 지 묵고 새끼 믹일라꼬 벌게이(벌레) 잡으로 죽을 똥 날아댕기지예. 그라이께 그 남자는 떠돌아댕기는 기 취미기도 하지마는 그기 바로 살아가는 일이라예.”
“그라모 아아 아부지가 그때 진영장에는 무신 일로 내맀는공?” 민씨 부인이 물었다.
“무신 볼일이 있었겠습니껴. 장 구경이라 할라고 우째 진영 장바닥에 흘러들어온 기겠지예. 말걸리 한 사발을 시키놓고 멍청히 앉아 좌판 뒤족 토담 너머를 넋 놓고 바라보는 꼬라지가 우째 처량해 뵈던지. 담 너머 흐드러지게 핀 살구꽃이 머 그래 새삼스럽다꼬 왜각리처럼 모가지를 질게 빼고 말임더. 그래서 내가, 읍내에 누구를 찾아왔소 하고 말을 붙였지예.”
“그라고 보이 일우 엄마가 그때 마음이 쪼매는 동했나 보내예. 먼첨 말을 걸었으이께.” 민씨 부인이 까르르 웃었다.
“장사하는 여편네가 입 꾸매고 앉아 우째 장사해예. 되는 말이든동 안 되는 말이든동 자꾸 지분대야 괴기를 팔 것 아인교.”
“그래도 그렇제, 일우 아부지가 괴기 살 사람은 아이지 않았잖습니껴.”
“하여간에 그 사람이 그제서야 내 쪽을 보더니, 새댁이구먼예 하며 알은체합디더. 머리를 설레설레 흔들며 멀쭉히 웃는 얼굴이 그래도 세상 물정에 닳지 않은 순박해 뵈는 티가 있어서……” 엄마는 민시 부인 묻는 말을 피해 아버지 첫인사을 좋게 말했다.
그로부터 엄마는 아버지와 짝이 된 모양이었다. 아버지는 그때까지 장가를 가지 않았고 엄마는 시집을 갔으나 자식 딸리지 않은 청상이었다. 이튿날, 엄마가 낙동강변 마을 수산리 장터로 길을 떠날 때, 아버지가 함지를 대신 들고 엄마와 동행했다. 사진 한 장 남아 있지 않은 것으로 봐 예식도 올리지 않고 살림을 시작한 듯한데, 이듬해 누나가 태어났다.
집으로 들어가는 골목 어귀 신작로에서 순희가 엄마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둠 속 미루나무 밑이라 순희를 미처 보지 못했으나, 순희가 엄마와 나를 먼저 알아보았다.
“아부지가 동전 세 개를 주미 초하고 활명수 한빙 사오라 캐서, 내가 갔다 왔어예. 가슴이 답답하다 카더마는 지금 마루에 누버 있어예.” 골목길로 들어가며 순희가 엄마한테 말했다.
아버지는 방으로 들어가지 않고 목침을 베고 쪽마루에 모로 누워 있었다. 몸을 새우처럼 움크리고 있었다. 그 꼴이 마치 엄마의 지청구를 피할 요량이거나 동정을 받겠다는 불쌍한 거짓 모색 같아 나는 아버지가 미웠다. 머리맡 기둥 옆에는 초 한 자루가 뽀윰하니 타고 있었다.
“그래, 방구석에 기어들어갈 심도 읎는 양반이 또 어데까지 싸질러댕기다가……” 하다 엄마는 말을 끊고, “어데가 그래 아파요?” 하고 아버지에게 물었다.
“멀 잘몬 묵었는지 사흘 전부터 명치가 콱 맥히더니마는 계속 하혈이 심해서 통 묵지를 몬하누만. 인자 내 명도 다했는가 봐.”
아버지는 나른하게 몸을 일으키더니, 앉은걸음새로 비적비적 방안으로 들어갔다. 아버지와 엄마 대화는 그것으로 끝났다. 갑자기 개구리 울음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후두두, 마치 키로 콩을 가불 듯 굵은 빗방울이 떨어졌다. 이어 세찬 소낙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마당에 금세 보얀 물보라가 일고, 마루 끝에 켜놓은 촛불이 바람에 깐죽거리며 죽었다 살아났다 했다. 비바람에 촛불이 더 견디지 못하고 꺼졌다. 한참 뒤, 담장 밖 도랑물이 콸콸 내려가는 소리가 들렸다. 순희와 나는 마루 끝에 다리를 드리우고 앉아 쏟아지는 비 구경을 하고 있었다. 습기 머금은 시원한 냉기가 기분 좋게 얼굴에 닿았다.
“너그들도 인자 마 자거라. 아침 일찍 일어나서 맑은 정신으로 공부해야 효과가 있지러.” 부엌에서 목물을 하고 나온 엄마가 우리를 보고 말했다.
아버지가 집에 계시지 않을 때는 엄마와 순희가 큰방에서 함께 자고 나 혼자 골방을 썼다. 오늘은 아버지가 돌아왔기에 순희와 내가 건넌방을 써야 했다. 삼베 홑이불과 베개를 가지고 순희가 건넌방으로 넘어왔다. 싸늘한 맨방바닥에 등을 붙이고 누었으나 나는 쉬 잠을 이루지 못했다. 잠이 오지 않기는 순희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귓전을 치는 줄기찬 빗줄기를 기분 좋게 새겨듣고 있었다.
“오빠야, 우리 아부지는 참말로 이상한 사람이데이 그자. 와 집에 안 붙어 있고 그래 돌아담 댕기는공. 돈 벌어오는 거도 아이면서 말이다.” 깜깜한 속에 순희가 조그만 목소리로 말했다.
“이상한 거는 이 시상에 참 많지러. 이 넓은 세상에 이 많은 사람 중에 니하고 내가 우째 성제간으로 태어났는공? 그런 것도 다 이상한 이치지러. 또 저런 얼비(어리석은) 아부지와 한평생 같이 살명서 죽을동살동 열심히 돈벌이하로 댕기는 어무이 마음도 이상하고.”
“어무이가 어데 아부지 믿고 사나, 우리 크는 거 보고 살지러.”
순희는 언젠가 엄마가 했던 말을 그대로 옮겼다.
“그렇기사 하지마는, 그래도 엄마가 어데 아부지하고 쌈하는 거 봤나?”
“어무이가 따까(몰아)세아도 아부지가 말대답을 안 하이까 싸움이 안 되는 기제.”
“아이다. 그래도 어무이는 마음속으로 아부지를 좋아하는기라. 나는 머우이 마음은 안데이. 어무이가 우리보담 아부지를 더 좋아하는 거를 말이다. 니는 안죽 모르지마는 부부란 거는 그런 기다. 아무리 쌈을 해도 칼로 물 베기란 말을 니도 들었제?” 내가 젠 척 말했다.
“내 짝 경자 아부지는 참 좋은 아부지라. 과수원도 크게 하고, 읍내 갔다 오모 과자랑 책이랑 선물을 꼭 사오고, 옛날이바구도 잘 해주지러. 그런데 우리 아부지는 우리도 어무이도 벨볼일 읎는 모양이라. 멫 달 만에 집에 와도 우리가 하나도 안 바가분지 웃지도 않으이까. 돈이 읎이이께로 머 사오지 사몬하지마는 그저 남 대하드끼 그래 안 대하나.”
“어무이 보기 미안하고, 아무것도 몬 사오이 우리보기 부끄러버 그렇겠제.”
“어른도 부끄럼 타나?”
“아부지가 바로 그런 사람인기라.” 나는 순희 쪽으로 돌아누웠다. “그라모 니는 아부지가 이 세상에서 머를 젤로 좋아하는 거 같으노?”
순희는 잠시를 생각에 잠기더니, 오빠는 하고 되물었다.
나도 그걸 생각해보모, 아부지는 하고 싶은 일도, 좋아하는 일도, 그 어떤 희망도 벨로 읎는기라. 지난달에 성구새이한테 내가 물었지러. 우리 아부지 같은 사람은 무신 직업에 젤로 어울릴꼬, 하고 말이다.“
성구형은 마산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는, 새마을 지도자 종식씨의 맏아들이었다.
“그라이까 머라카노?”
“너거 아부지가 공부를 많이 했으모 예술가가 될 사람이다 카더라.”
“예술가라이?”
“음악․미술․문학 같은 거 하는 사람 말이다.”
“공부 많케 한 예술가들은 다 저래 걸배이맨쿠로 돈도 읎이 맥놓고 떠돌아댕기는 기가?”
“그렇지는 않겠지러. 아부지는 명예도 돈도 욕심이 없으이께. 또 지위 높아 으스대고, 큰 집에서 잘 묵고, 옷 잘 채리입는 그런 데 신경 안 쓰이까 하는 소리겠제. 벨로 관심도 읎고. 선생님 말처럼 사람은 큰 뜻을 품고, 그걸 이룰라꼬 물불 안 가리고 매진해야 되는데, 아부지는 천연덕스레 그쪽과 담을 싼 사람이거덩.”
“와 그럴꼬. 증말 경아 말맨쿠로 아부지는 머리가 쪼매 이상한 사람 아일까?”
“미친 사람이사 아니제.”
“수수께끼 같은 아부지가 맞다. 우리가 풀 수 없는 수수께끼 말이데이.” 하더니 순희는 졸리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아부지가 돌아오이께 인자 눈부야고 보고 접다. 서울서 고생하는 누부야만 생각하모 늘 목이 안 메나. 이분 추석에도 내리올란강……”
작년 추석 때, 누나는 집에서 이틀 밤을 자고 서울로 올라갔다. 큰 가방에 가득 넣어온 선물을 풀어놓고 누나나 잡을 나설 때,나는 마당귀에 선 석류나무 가지 하나를 꺾어 누나엑 주었다. 익어터져 상큼한 분홍 알을 촘촘히 내보인 석류가 많이 달린 가지였다.
“집 생각이 날 때 이 석류나 보며 마음을 달래야제”
누나는 함빡 웃으며 석류 가지를 들고 신작로 길을 나섰다. 순희와 나는 읍내 역까지 누나를 배웅했다. 벼를 거두어들인 뒤라 황량한 들에는 따가운 햇살만 맑게 쏟아졌고, 종달새가 어깨춤을 추며 놀고 있었다.
빗발이 좀 가늘어졌다. 어느 사이 순희가 낮게 코를 골았다. 큰 방에서 엄마 말소리가 여리게 들려왔다.
“묵질 몬해 빈속이라 카더마는 당신 그래도 안죽 그 심이사 쪼매 남았구려.”
엄마 목소리가 부드러웠으나, 아버지는 아무 말이 없었다.
“참, 오늘 덕산장에서 천상 당신 닮은 늙은이를 만냈구마.” 엄마가 말했다.
“내 닮은 늙은이라이?”
“나이가 환갑은 다 됐습디더. 쪼맨헌 빽을 들고 어물전을 어슬렁거리다 내하고 눈이 마주쳤지예. 그라더이 그 영감이 내 쪽으로 옵디더. 옷매무시가 꾀죄죄하고 고무신이 흙고물이라, 아매도 길 나선지 오래된 행색 같습디더. 그런데 그 영감이 내 앞에 쪼구리고 앉더마는 손때 탄 맥고모자를 들썩해 보이느니 기 아입니껴. 내가 알지도 몬하는데 말입니더. 그라더이 그 영감이 춤지에서 꼬깃꼬깃 접은 종이를 내놉디더. 여기 적힌 사람을 본 적 있느냐민서. 나이는 서른다섯 살인데 왼손 등에 불에 덴 흉터 있는 남자 이름이 박 머라 카더라. 그런 사람 찾는다꼬예. 사연을 들어보이까. 고향이 황해도 송화로 일사후퇴 때 마누래와 아들 하나 데불고 피란 내리왔다지 멉니껴. 그런데 그만 천안 근방에서 아들을 잃아뿌렸다 안 캅니껴. 그로부터 영감 내외가 스물아홉 해가 지낸 지금까지 그 아들을 찾아댕긴 다이, 그 정성이 어데 보통입니껴. 그 동안 고아원, 미군 부대, 어데 안 알아본 데가 읎답디더. 묵고 살만하게 되고부터 아들 찾을라꼬 신문에도 여러 분 광고를 내고예. 그런데 작년에 마누래가 죽고 나자, 장사하던 냉면집도 이남서 낳은 아들한테 물리주고, 인자는 열두 달을 전국 방방곡곡으로 아들 찾아 해맨다 안 캅니껴. 그 사정을 들어보이 얼매나 안됐던지. 나도 눈물이 나올라 캐서……마누래사 살았을 적에도 일 년이모 네댓 달은 장사도 마누래한테 맽기고 이곳 저곳 수소문하고 댕겼다 캅디더. 이 이바구를 들으이까 문득 당신 생각이 나서. 증말 당신도 머 그런 샛자슥 찾아댕기는 거 아인교? 참말 속시원케 말해보소.”
엄마가 그 대답을 듣고 싶어 묻는 목소리는 아니었다. 엄마가, 쿡쿡 속웃음을 웃었기 때문이었다.
“허허, 임자가 내하고 한두 해 살아봤나. 내라는 사람을 임자가 모른다 카모 시상 천지에 누가 알꼬.” 아버지의 마지못한 듯한 대답이었다.
“참말 당신은 죽어서도 땅에 묻히서 몬 있을 김더. 연맨쿠로 어데로 훨훨 떠댕기야 직성이 풀릴 사람인께로.”
“글씨러, 내 속에 무신 그럼 바람잽이 귀기가 끼었는지…… 내 마음을 나도 잘 모르겠구마.” 아버지의 나직한 한숨 소리가 들렸다.
아버지가 다시 집을 떠나기는 그해 추석이었다. 누나가 집으로 내려왔다 이틀을 쉬고 상경했을 때, 읍내 역까지 배웅을 나간다고 따라 나선 아버지는 끝내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아버지가 누나를 따라 서울로 올라간 것은 아니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속달 전보가 집에 날아 들기는 그해 막바지 첫 강추위가 시작되어, 기온이 영하 십팔 도까지 떨어진 무렵이었다. 아버지는 무엇을 보러, 무엇을 하러, 아미면 무엇을 찾아 그곳까지 흘러들어갔는지, 저 전라도 땅끝 진도에서 떠돌이 생활을 영원히 마감했던 것이다.
그로써 아버지는 예술가도 되지 못했고, 끝내는 아무것도 아닌 상태로, 우리 가족을 제외하곤 어느 누구 마음에 기억할 만한 그 무엇조차 남기지 못한 채, 이름없이 사라졌다. 마침 나는 방학이 시작되어 아버지 시신을 찾으러 나선 엄마와 동행했다.
아버지는 진도군 보건소 영안실에 안치되어 있었다. 보건소 의사 말로는 아버지 병명이 위암이라 했다. 엄마가 동의하자 아버지 장례는 그곳 화장터에서 소각되었다. 우리 모자는 아버지의 뼈 몇 조각을 보자기에 싸서 섬을 떠났다.
발동선이 다도해를 빠져 목포가 가까울 즈음, 뱃전에 기대어 선 엄마는 무슨 생각에선지 보자기에 싸온 아버지 뼈를 바다에 흩뿌렸다.
“당신, 인자 처자고 보고 싶어도 집으로 돌아올 수 읎으이께 이 넓고 넓은 바다로 마음놓고 떠돌아 댕기소. 떠돌아댕기며 괴기 구경 바다풀 구경이나 실컨 하고 사소.”
엄마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고, 머리카락이 몰아치는 바닷바람에 흩날렸다. 엄마는 넓은 바다를 두리번거리며, 마치 죽은 아버지를 파도 높은 물이랑에서 찾듯 한동안 젖은 눈을 풀어놓았다. 엄마가 흑, 울음을 삼키더니 쥐고 있던 뼈를 턴 보자기에 얼굴을 묻었다. 엄마는 어깨를 들먹이며 사무치게 흐느꼈다. 나는 엄마 어금니 사이에서 스며나오는 쇳조각같이 여문 한 음절을 들을 수 있었다.
“아이고, 내사 인자 누구를 믿고 우예 살꼬……”(108.7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