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Josephina Lee 이은화 개인전 (Art Spaceㅁ기획공모)
"Wellcomm-Emotional Esperanto" (웰컴-감정의 에스페란토)
2004년 10월 22일 ▶ 11월 4일
Art Spaceㅁ(mi:eum) [약도보기]
우)110-034 서울시 종로구 창성동 122-9 Tel: 02-722-8897
(Private View: 10.22(금) 5:00 pm)
컴퓨터와 테크놀러지는 과학, 철학, 인문학뿐만 아니라 미술 분야에서도 끊임없이 다루어져 왔고 앞으로도 계속 논의될 영원한 주제일 것이다. 특히 인터넷의 발달과 핸드폰 사용의 일상화로 기존 언어들은 짤막하고 함축적인 기호나 부호로 쓰여진 새로운 감정의 언어들로 대체되고 있다. 이모티콘이라 불리는 이러한 신생 문자언어는 시간과 공간과 언어를 초월하는 새로운 소통 수단으로 자리매김하고 있고 그 사용은 세계적으로 점점 더 확산되어 가고 있다. 그것은 세계를 하나로 이어주고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감정의 국제어 혹은 만국공통어인 에스페란토인 것이다. 이 전시를 통하여 일상적으로 쓰여지고 있는 온라인 상의 수 많은 이모티콘들이 미술관이라는 뜻밖의 장소에서 또 다른 미술 형태로 관객들과 만나게 된다. 온라인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이들에겐 온라인 문화와의 낯선 만남의 장이 되고 온라인에 익숙한 사용자들에겐 그들이 만들고 사용하고 있는 일상적인 언어가 또 하나의 미술의 형식이 될 수 있음을 확인시켜 주는 전시이자 온라인 문화와 오프라인 문화의 새로운 그러나 낯선 만남의 장이 될 것이다. 전시 타이틀인 Wellcomm은 well communication의 합성어로 보다 나은, 잘된, 좋은 소통의 방법을 말하며 발음이 같은 welcome의 환영의 의미로 해석해 전시로의 초대를 의미하기도 한다.
[전시 기획 의도]
90년대부터 급속히 발달한 인터넷은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들의 생활 패턴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첨단 기계화 문명의 세계 속에서 특히 인터넷 강국이라는 한국 사회 속에서의 컴퓨터와 인터넷 문화는 이미 없어서는 안될 우리들의 생활의 일부가 되어버렸다. 특히 초등학생들에게 조차도 필수품이라는 핸드폰의 급속한 확산은 그 폐해에 대한 많은 논란과 비판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소통의 매체로 당당히 자리매김하고 사용자들은 점점 더 늘고 있다. 대화의 차단, 개인주의화에 대한 기성 세대들의 우려와는 달리 넷 사용자들은 새로운 언어로 새로운 방식으로 새로운 소통의 장을 만들고 있다. 이메일이나 핸드폰 문자 메시지를 보낼 때 함께 곁들여 자신의 감정을 더 명확히 전달하기 위한 수단으로 무심코 만들어 왔던 수많은 출처 없는 이모티콘들은 언어와 국가와 시간을 초월한 감정의 에스페란토일 것이다. 이 전시를 통해 진정한 소통의 예술이 무엇이며 대중 속에서 대중과 함께 하는 가장 친근한 예술이 무엇인가 누가 관객이고 누가 예술가인가 그리고 그들이 일상적으로 만들고 사용해 왔던 많은 문자그림들이 오프라인에서 예술로 인정될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져 보고자 한다.
Wellcomm-Emotional Esperanto (감정의 에스페란토)
Josephina Lee(이은화)
언제부턴가 인터넷은 우리 삶에 끼어 들대로 끼어들어 이젠 우리 삶의 일부가 되어버린 것 같다. 일상적으로 주고받는 이메일이나 핸드폰 문자 메시지 속에서 나는 수많은 우리들의 표정과 감정의 기호들을 발견하고 점점 매니아가 되어갔다. 나는 이모티콘 (Emotion과 Icon의 합성어)이라 불리는 이러한 감정의 기호들을 현대의 상형문자라 명명하고자 한다. 언어가 존재하기 이전 고대 이집트나 중국인들이 종종 그들의 간단한 감정이나 최소한의 의사 표현을 위해 사용했던 상형문자들과 현대 첨단 과학의 시대에 쓰여지고 있는 이모티콘들은 너무도 닮아 있다. 과거에 말을 하지 않고도 혹은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부족들이라도 이 간단한 그림이나 기호만으로 충분히 의사소통이 될 수 있었듯 서로 다른 언어체계 속에 살고 있는 21세기에 사는 우리들도 이 간단한 그림문자 하나로 의사소통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러한 언어의 장벽을 뛰어 넘는 이모티콘들을 다시 감정의 국제어 혹은 감정의 에스페란토라 부르고자 한다. 내 작업 속의 수많은 이모티콘들은 인터넷에서 정확한 출처 없이 떠돌며 사용되고 있는 것들과 내가 직접 만든 감정의 기호들이다. 내 작업 속의 이 기호들은 현대 언어처럼 보이지 않고 오히려 돌 위에 새겨졌던 고대의 상형문자처럼 보인다. 어쩌면 이것은 현대의 새로운 언어인 이모티콘들도 머지 않은 미래에는 또 다시 출현할 더욱 새로운 문자 체계에 의해 잊혀지고 더 이상 사용되지 않을 사어(死語)가 될 것이라는 나의 예견인 셈이다. 각각의 작은 그림들은 제 각각의 표정을 지닌 사람들의 얼굴이고 자신들의 감정을 나름대로 표현하고 있다. 이 이미지들은 꼭 옆으로 보아야만 비로소 얼굴임을 눈치챌 수 있는데 이런 이모티콘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에겐 어쩜 이것들은 하나의 부호나 기호들로 이루어진 미니멀한 추상회화로 읽혀질 수도 있을 것이다. 이것은 그림으로써의 텍스트이고 텍스트로써의 그림인 것이다.
내 작업에 있어 컴퓨터 자판은 일종의 붓의 역할을 한다. 나는 그림을 그리지 않는다. 단지 컴퓨터 자판을 두드려 글을 쓰듯 그림을 쓴다. 이렇게 쓰여진 글들이 그림이 되고 그 그림들은 다시 글로 읽혀진다. 좀 더 읽히기 쉽고 친근한 좀 더 사람들의 감정을 구체적으로 나타낼 수 있는 그림 쓰기를 위해 나는 컴퓨터 자판의 기본 문자들만으로 친구들과 지인들의 초상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이 작업들은 이전의 부호와 기호만으로 표현된 미니멀하고 함축적이었던 그림보다 좀 더 친절하고 구체적이다. 한계가 명확한 몇 개 되지 않는 컴퓨터 자판의 문자들로 복잡하고 미묘한 표정을 지닌 사람들의 얼굴을 표현하고자 했다. 누군가의 얼굴 특히 표정은 원하든 원하지 않든 그들만의 독특한 성격을 드러낸다. 누군가의 표정을 보는 순간 우리는 즉각적으로 그 사람이 지금 어떤 감정의 상태인지 그의 기분이나 느낌이 어떤지를 읽어내곤 한다. 표정은 때론 말로는 표현하지 못하는 어떤 느낌이나 감정까지도 표현한다. 표정은 그만큼 솔직한 것이다. 내 작업은 또한 관계와 소통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다. 각자 다른 나라에서 다른 언어 체계 속에서 살아가는 이들이 내 작업 속에선 사이 좋게 나란히 배치되어 마치 동일 시간 동일 장소에서 대화하는 듯 하다. 그들의 성격이나 캐릭터를 나타내는 다양한 색상의 네모난 라이트 박스 속에서 전선으로 연결된 그들의 모습은 마치 모니터 화면을 통해 화상 채팅을 하고 있는 모습을 연상시킨다. 시간과 장소와 공간이라는 현실의 물리적 차이와 갭은 인터넷이라는 가상의 세계에선 모든 것이 극복되고 가능하게 된다. 하지만 그들의 가상의 대화와 관계는 온라인 채팅의 속성을 반영하듯 언제든지 원하면 지속되고 원하지 않으면 중단될 수 있는 편의성과 위태로움을 동시에 수반하고 있다.
내 작업 속에서 그들은 때로는 외로운 독백을 하고 때로는 연인 사이가 되어 등장한다. 실제의 캐릭터와 가상의 캐릭터가 등장해 서로 다투기도 하고 사랑을 속삭이기도 하고 그저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그저 평범하고 일상적인 우리들의 초상인 것이다. 습관적으로 혹은 일상적으로 이메일이나 문자 메시지를 통해 서로의 안부를 묻기도 하고 감정상태를 확인하기도 하는 그저 일상적인 바로 우리들의 모습인 것이다.
또한 이 작업들은 대중미술과 고급미술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다. 일반 대중들이 이메일을 쓰면서 문자 메시지를 보내면서 함께 곁들여 자신의 감정을 더 명확히 전달하기 위한 수단으로 무심코 만들어 왔던 수많은 출처 없는 이 그림 문자들이야말로 진정한 소통의 예술이며 대중 속에서 대중과 함께 하는 가장 친근한 예술일 것이다. 무엇보다도 온라인 세계에서 만들어지는 예술의 가장 두드러진 장점이자 가치는 아마도 참여와 나눔의 미학일 것이다. 소위 고급미술이라고 불리는 예술세계가 그 동안 얼마나 난해함=고상함=고급이란 이상한 공식으로 대중을 기만하고 무시했던가? 물론 현대 미술사에서 대중적 예술을 주장했던 많은 작가들이 있었음을 우리는 안다. 하지만 그들 역시 소재나 매체에 있어서 대중적 취향을 이용하기만 했지 그들 스스로가 대중의 자리에서 진정한 대중 미술을 창조하고 대중들과 소통할 수 있었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사이버 세계의 예술가들은 어떠한 독점권도 행세하지 않는다. 그저 그들이 만든 소박한 예술을 함께 나누고 소통하고자 할 뿐이다. 그들의 매체는 시간, 장소, 언어를 초월하는 소통의 부호이고 감정의 에스페란토인 것이다. 단지 대중들이 만들고 너무도 대중적이란 이유만으로 아무도 그것을 예술이라 불러주진 않았지만 나는 기발한 아이디어로 수 없이 많은 감정의 문자들을 지금도 그 어디선가 창조해 내고 있을 이름 없는 예술가들을 대중 예술가라 부르고 싶다. 그들에 의해 삭막할 수 있는 사이버 세계 언어가 웃음과 위트와 유머로 얼마나 풍성해 질 수 있었는지를 어쩌면 그 창조자들 조차도 인식하지 못하고 있을 것이다. 나는 수 많은 대중 예술가들의 작품을 모으는 컬렉터이자 그들의 작품을 오프라인에서 보여주는 재 창조자의 역할을 하고자 한다. 더 이상 관객도 예술가도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요셉보이스가 언젠가 말했듯 우리모두가 예술가인 것이다.
예술로 접속된 이모티콘의 세계
김영호(중앙대교수, 미술사가)
런던의 윔블던 스쿨 오브 아트(Wimbledon School of Art)와 소더비 인스티튜트 오브 아트(Sotheby's Institute of Art)에서 학업을 마치고 귀국한 이은화가 그간에 연구하고 창작한 작품들을 가지고 첫 번째 개인전을 마련하였다. 신설 갤러리 ‘아트 스페이스 미음’이 신진작가 발굴을 위한 공모 형식으로 기획된 이번 전시회는 이은화에게는 유학생활을 결산하는 귀국 보고전이 되는 셈이다. 특히 작가가 전시회의 주제로 설정한 <Wellcomm-Emotional Esperanto (웰컴-감정의 에스페란토)>는 자신의 석사학위 논문인 “감정의 에스페란토-현대상형문자로서의 컴퓨터 아스키아트에 관한 연구”의 결과와 일치되고 있다는 점에서 이론적 배경과 제작상의 세련미가 돋보이고 있다. 또한 출품된 시리즈 중에는 작가가 소더비 인스티튜트에서 경험한 미술과 시장의 연관성을 패러디화한 작업도 선보이고 있어 주목된다.
이은화가 이번 개인전에 내놓은 작업들은 모두 다섯 개의 시리즈로 구성되어 있다. <Emoticon(이모티콘)>, <Portrait(초상화)>, <Dialogue(대화)>, <Relationship(관계)>, 그리고 <Masterpiece(명화)> 등이 그것이다. 또한 전시장 바닥에는 <Smily Cube(스마일리 큐브)>라는 제목의 입방체 다섯 개를 설치하고 전시장 벽면에는 거대한 걸개그림 <Beatles(비틀즈)>를 걸어 놓았다. 이들 시리즈는 내용적으로는 저마다 약간의 차이를 보이고 있지만, 기법적인 측면에서는 일상에서 흔히 사용되는 휴대폰 문자나 컴퓨터 키보드 문자를 이용해 제작된 작업들이라는 공통분모를 지니고 있다. “나는 그림을 그리지 않는다”는 작가의 선언적 문구에서 보듯이 그는 컴퓨터 자판을 두드려 이미지를 만들어 내는 이른바 타이핑 작업을 통해 작품을 제작한다. 이들 작업은 과거의 회화나 조각의 범주를 넘어선 것들이라는 점에서 최근 부상하고 있는 ‘미디어아트’와 맥을 같이하고 있다.
정보전달 매체를 표현의 수단으로 이용하는 미디어아트의 영역 속에서도 굳이 그의 작업에 차별성을 규정해 본다면 이모티콘이라 불리우는 새로운 문자기호를 작품제작의 근간으로 사용한다는데 있다. 신세대 네티즌 사이에서 유행하는 이모티콘(Emoticon)은 감정(Emotion)과 아이콘(Icon)의 합성어로서 감정을 표현하는 그림문자를 뜻하는데 컴퓨터를 이용한 이메일이나 핸드폰의 문자메시지를 보낼 때 일상적으로 사용된다. 예를 들어 나열해 보면 -_-, ^_^, >_<, ^^!, ㅠ.ㅠ 등과 같은 이모티콘은 국내에서 자주 접하는 것들이고,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것들은 :-), :-(, :-O, :-&, 8-), ;-) 등이 있다.
디지털 기기의 네모난 창에서 만나는 이모티콘은 문자와 더불어 유저(User)의 기분이나 감정을 전달하는 친숙한 기호이다. 그것은 모니터나 휴대폰에 나타났다 사라지는 기호이며 수억의 대중들 사이에서 통용되면서 어형변화를 일으키는 운명을 지니고 있다. 다시 말해 이모티콘은 문자언어로는 표현되지 못하는 미묘한 감정 상태나 기분을 전달하는 감정의 메신저이자 사용자들 사이에서 정해진 약속에 따라 모습을 바꿔가는 가변적 코드인 것이다. 이모티콘은 또한 거대한 인터넷 망을 오가는 정보의 흐름 속에서 정확한 출생지 없이 태어나 공유되다가 다시 소멸하는 일시성의 운명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이은화의 <이모티콘 연작>은 이러한 이모티콘의 특성에 근거하고 있으나 임의로 선택하고 새로운 이미지를 창조해 내는 과정에서 작가의 의도가 개입되면서 그것들은 다른 차원으로 변화되어진다. 모니터 화면 위에 빛으로 나타났다 사라지는 일시적인 감정전달의 기호에서 벗어나 바위나 흙에 새겨진 상형문자처럼 영원성을 확보하게 되면서 의미의 전치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는 가상의 디지털 공간에서 빠져나와 아날로그 언어로 전이되는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개념상의 전치 효과이며, 전시장이라는 축성된 공간에 걸린 하나의 예술작품으로 놓이게 되면서 야기되는 재탄생을 의미한다. 이은화의 작업으로 초대된 이모티콘이 단순한 감정 전달의 기호라는 차원을 넘어서 문화적 소통의 기호로서 다루어질 가능성을 지니게 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모티콘 의미와 기법을 확대시키는 과정에서 이은화는 또 다른 연작들을 만들어 내었는데 앞서 살펴 보았듯이 작가는 이러한 자신의 인물연작에 <Portrait(초상화)>, <Dialogue(대화)>, <Relation (관계)>, <Masterpiece(명화)>, <Smily Cube (스마일리 큐브)> 등의 제목을 붙이고 있다. 이들 인물 작업들은 컴퓨터나 휴대전화의 자판에 제시된 문자와 기호들을 제한적으로 이용한다는 점에서 한계를 지니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제한성은 역설적으로 누구든 동일한 이미지를 생산해 낼 수 있다는 점과 그것이 시공간을 초월해 소통될 수 있다는 이모티콘 아트의 특성으로 제시될 수 있고, 관객들과 친밀한 관계를 이어주는 효과를 발생시키기도 한다. 그러나 이모티콘 작업이 모니터에서 빠져나와 하나의 작품이 되기 위해서 거쳐야 될 기법은 매우 다양하고 전문성이 요구되는 것 또한 사실이다.
우선 살펴볼 <Portrait Series(초상화 연작)>은 컴퓨터 자판의 기본 문자와 기호를 이용해 자신의 주변 인물들을 묘사한 것이다. 이 시리즈는 초상화와의 연계성 속에서 단순한 이모티콘의 특성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파생하는 표현상의 가능성에 대해서 생각할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제한된 자판의 기호를 이용해 캐리커처를 그린다는 것은 의외로 상상력과 표현능력이 요구되는 작업이다. 이은화의 초상 작업은 인물을 그린다는 점에서는 전통적인 초상화의 범주에 속해있지만 컴퓨터 자판의 기호와 부호로 조합된 초상 이미지라는 점에서는 대상 재현적 사실주의와의 경계를 분명히 하고 있다. 또한 단순한 몇 개의 컴퓨터 자판 기호만으로 특정한 인물의 신체적 특성과 표정을 캐치하고 묘사하고 있는 그의 초상화가 단순한 타이핑의 결과물이 아닌 작가의 조형적 능력의 소산이라는 것을 이모티콘 그림을 그려본 이라면 누구나 쉽게 납득할 수 있을 것이다.
이은화의 이모티콘 그림의 다른 유형인 <Dialogue Series(대화 연작)>은 익명의 인물을 커플로 제작해 라이트 박스로 프레임을 만들고 설치해 놓은 것이다. 라이트 박스의 빛을 배경으로 자리한 커플들은 마주보며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고 있다. 작가의 노트에 따르면 <초상화 연작>이 개개인의 모습이나 감정을 표현한 것이라면 <대화 연작>은 디지털 소통의 시대에 익숙한 이 시대의 평범한 커플들의 초상화이다. 화면에 등장한 가상의 커플들은 서로 사랑을 나누기도 하고, 다투기도 하고, 이별을 고하기도 하면서 만화의 한 컷처럼 묘사되어 있다. 작가는 이 진부하고 평범한 연애상황을 디지털 시대의 인물들이 만들어 내는 지루한 소통방식으로 인식함으로서 일상의 대화에 새로운 해석의 가능성을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작업은 직설적이며 단순하지만 유쾌한 면을 동시에 갖는 그런 네티즌들의 시각을 드러내고 있다.
한편 <Relation Series (관계 연작)>은 가장 흥미로운 방식의 컴퓨터 레이어 작업으로서 사진 이미지를 이루는 망점을 글자들로 대치해 놓은 것이라 할 수 있다. 글자들은 작품에 등장하는 세 인물의 일상적 대화를 내용으로 하고 있다. 작가는 자신의 작업에 대해 “서로에게 하고 싶은 말, 하지 못하는 말, 할 수 없는 말, 해서는 안 될 말들을 속삭이듯 비명 지르듯 내뱉고 있으나 결국 오해만 남기고 소통은 전혀 되지 못하는 현대인들의 모습을 표현하고자 했다.”고 적고 있다. 하지만 내용과는 별개로 필자에게 관심이 되는 것은 두장의 레이어로 인쇄된 문자 이미지 판을 겹쳐 설치해 놓은 기법이 주는 시지각적 효과에 있다. 이른바 문자로 인쇄된 텍스트가 집합적으로 모여 인물 이미지를 이루도록 조작해 놓은 디지털 기법은 언어구조와 의미 그리고 형상이 일치를 이루는 조형방식을 형성하고 있는데 이러한 조형어법은 디지털 시대의 이미지와 그 정체를 가장 효과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다음으로 소개할 <Masterpiece Series(명화 연작)>은 르네상스에서 현대에 이르는 거장의 작품들을 디지털 문자코드로 재현해 놓은 것이다. 작가는 이를 위해 백 라이팅 필름 (Back Lighting Film)에 디지털 프린트를 실행하고 라이트 패널에 넣었는데 마치 광고판을 연상케 한다. 문자는 $자를 이용해 $$$$$$ 등의 식으로 조합하고 이 구조를 이용해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는 고가의 작품들이 일상속에서 향유되고 소비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 살펴볼 것을 제안하고 있다. 라이트 패널에 새겨진 반 고흐와 리히텐슈타인의 명화들은 우리에게 익히 알려진 명작의 이미지와 더불어 디지털 기호의 최소단위인 비트로 환원된 이미지의 실체를 동시에 드러내고 있다. 이러한 시각 체험은 디지털 정보시대를 살아가는 동시대의 감각을 통해 미술사를 바라보는 작가의 의도를 잘 나타낸다. 아울러 미술과 미술시장을 둘러싼 문화 소비의 경비에 대한 물음을 재치있게 표현하고 있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살펴볼 <Smily Cube(스마일리 큐브)>는 다양한 색상의 반투명 아크릴로 만들어진 다섯 개의 입방체 설치작품으로 각 입방체의 면마다 다양한 표정의 인물들이 양각으로 새겨져 있고 내부에 설치된 조명으로 인해 다양한 색의 빛을 발산하고 있다. 이 작업은 갤러리 벽면에 설치된 가로 3m 세로 1.8m의 대형 걸개그림 <Beatles(비틀즈)>와 더불어 그의 작업의 다양성을 보여주는 사례로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은화의 작업은 컴퓨터와 휴대전화가 일상을 지배하는 현대의 상황을 가장 밀접하게 드러내는 매체라는 점에서 동시대 미술을 대표하는 하나의 경향으로서 의미를 지닌다. 따지고 보면 컴퓨터를 이용한 정보통신 기술이 대중적 차원으로 확대 보급되기 시작한 것은 불과 10년 남짓 밖에 되지 않는다. 한국통신에 의해 인터넷 상용서비스가 시작된 1994년 6월이고 보면 우리나라의 인터넷 역사는 한 세대도 채 지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인터넷을 이용하는 네티즌들의 수(백분률)는 세계최강이라는 사실은 특이한 것이 아닐 수 없으며 예술가들이 이러한 환경의 변화에 반응하는 것은 필연으로 보인다. 이러한 상황에 맞추어 국내의 컴퓨터와 인터넷을 이용한 작업들은 꾸준히 실험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은화의 이모티콘 작업은 이러한 국내의 디지털 정보통신 사회를 환경적 배경으로 삼아 진행되고 있는 살아있는 미술이자 연구되어야 할 미술 유형의 하나로 생각된다. 이번 개인전을 통해 선보이는 다양한 작업들은 새로운 소통의 매체로 자리 잡고 있는 온라인상의 디지털 문자를 오프라인 상의 예술적 차원으로 끌어들임으로서 정보화 시대를 반영하는 새로운 장르의 출현을 암시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그의 작업은 소통, 감정, 기호, 언어체계, 대화, 대중, 온라인, 오프라인 가벼움 즐거움 단순함 등의 미학적 성찰의 대상이 될 가능태로 남아 있다. 이러한 성찰의 가능성 속에서 이번 개인전에 선보인 작업들은 작가의 새로운 감각과 재치를 드러내고 있으며 새로운 장르로 정착되어 나갈 것으로 기대된다. (2004.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