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암 남사고(南師古, 1509∼1571)는 경상도 영양(英陽) 사람으로 종묘를 받드는 사직참봉을 지냈으며, 말년에는 천문학(天文學) 교수로 있었다.
그는 일찌기 어린시절에 신인(神人)을 만나 비결(秘訣)을 받았으며 역학(易學), 풍수(風水), 천문(天文), 지리(地理), 참위(讖緯), 감여(堪輿), 상법(相法), 복서(卜筮) 등 모든 학문에 두루 달통하여 앞 일을 정확하게 예언하였다고 한다.
《한국인물대사전》에는 그가 학자, 도사(道士)로 기록되어 있다. 대부분의 도인들이 학자 또는 문인(文人) 등으로 약력이 기록되는 것과 달리 ‘도사’로 기록되어 있는 게 재미있다.
그의 이인적(異人的) 능력 발휘는 여러 문헌들 속에 많이 남아 있으며, 당시대의 사대부들 사이에서도 널리 알려져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조선 중기 문장가로 유명하였던 상촌 신흠(1566∼1628)은 그의 저서《상촌잡록(象村雜錄)》에서 남사고의 예언 능력에 대해 이렇게 기술하고 있다.
‘명종(明宗, 1545∼1567) 말년에 (남사고는) 서울에 와 놀면서 판서 권극례와 서로 친했다. 남사고가 말하기를 “오래지 않아 조정에 당파가 생겨날 것이다.” 하였는데 을해년(1575)부터 관리들의 사이가 벌어지기 시작하여 지금까지 50여 년이 지났으나 그치지 않고 있다. 또한 “왜구의 변란이 있을 것인데, 만약 용의 해에 일어나면 구할 수가 있으나, 뱀의 해에 일어나면 구할 수 없을 것이다.” 하였다. 그런데 왜구가 용의 해인 임진년(1592)에 쳐들어 왔고, 무사히 끝이 났다. 그 밖에도 “사직동에 왕기(王氣)가 있으니 그곳에서 태평군주가 나올 것이다.” 하였는데, 선조께서 사직동 잠저로부터 들어와서 대통을 이어 왕이 되셨다. 그런가 하면 김윤신과 함께 동교 밖을 지나다가 태릉 근처를 가리키며 말하기를 “내년에는 태산으로 봉해지리라.” 하였다. 김윤신이 괴상히 여겨 다시 물으니, 남사고는 말하기를 “내년이면 마땅히 알 것이다.”고만 하였다. 태산은 곧 태릉을 가리키는 말로, 문정왕후께서 그 다음 해에 붕어하시자 태릉에 장사지냈다. 우리나라에 이같은 사람이 있으니, 기이하다. 이와 같이 하는 예언마다 꼭꼭 들어맞아서 세상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하는 일이 많았지만, 일일이 다 열거할 수 없다.’
이처럼 신흠은 붕당의 발생, 임진왜란의 발발, 선조의 등극, 문정왕후의 죽음 등등 남사고의 예언을 구체적으로 증거하였다. 그러면서 남사고가 하는 예언마다 반드시 적중한 것은 바로 ‘전해지지 않는 비결(秘訣)을 얻었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이수광의《지봉유설(芝峯遺說)》에서도 남사고가 신인(神人)을 만나 진귀한 비결을 얻어 비밀스런 술수에 능통하게 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남사고가 일찍이 말하기를 “원주 동남쪽에 왕기(王氣)가 있다.” 하였는데 사람들이 믿지 않았다. 그런데 임진년 여름에 광해군이 왕세자로 된 다음에야 그 말이 증명되었다. 하루는 남사고가 영동을 지나다가 홀연히 하늘을 쳐다보더니 깜짝 놀라 말에서 떨어졌다. “오늘 조선을 잔해할 놈이 태어났다.” 하였는데, 뒤에 보니 일본의 풍신수길(1536∼1598)이 그날 출생하였다.’
‘대풍(大風)’ ‘국풍(國風)’으로 불리던 남사고는 풍신수길이 침략에 앞서 조선을 답사하러 오자, 도술(道術)로서 골려주었다고 한다.
조선을 침략하기 위해 풍신수길이 그린 조선지도에 점을 찍어 못쓰게 하는가 하면, 보리밥을 벌로 변화시켜서 풍신수길의 얼굴을 쏘게 하여 혼내주었다는 것이다.
남사고는 또 남명 조식(1501∼1572)의 죽음을 예언하였는가 하면, 자신의 죽음도 예언하였다. 남사고가 관상감(觀象監) 천문(天文) 교수로 있을 때, 태사성(太史星)이 흐려지므로 관상감정 이번신은 자신이 그 징조에 해당된다고 하였으나, 남사고는 웃으면서 “제가 그 징조에 해당할 것입니다.” 하고는 급히 고향으로 귀향하더니, 도중에 병으로 죽었다. 임종할 때 자손들이 울면서 말했다.
“다른 사람을 위해서는 장지를 마련하신 일이 많은데, 어찌하여 자신을 위한 일은 아니하셨습니까?”
“내가 천상(天上)을 보니 우리 집안은 대대로 바른 일만 하면 되겠거늘, 어찌 망령되이 작은 술수를 믿어 천명(天命)을 거역하겠는가?”
남사고가 죽자 당시의 문장가인 손곡 이달(1539∼?)이 이렇게 시(詩)를 지었다.
鸞馭飄然若木津 은하수 나루에 표현히 난새를 몰며
君平簾下更何人 군평이 발 내렸던 일 또 누가 하리요.
床東弟子收遺稿 남은 유고는 제자들이 거둬 가고
玉洞桃花萬世春 신선 살던 곳엔 복사꽃만 뒤덮여 온 세상이 봄일세.
고향이 같은 울진인 황여일(1556∼1623) 또한 백성을 위하고 시대를 꿰뚫어보며 국가의 안위를 걱정하던 남사고의 혜안을 그리워하며 시를 남겼다.
吾年十四至十八 내 나이 열 넷에서 열 여덟까지
慣見仙鄕長者風 선향에서 늘 장자의 풍도를 보았다네.
月窟天根探獨樂 하늘가 굴속에서 홀로 탐구함을 즐거워하며
龜圖馬易玩尤工 하도낙서에 더욱 공교해짐을 즐겼다네.
皇喪謂至明朝後 명묘조 문정왕후 승하를 예언한 후에
壬亂知生乙卯中 을묘년에 벌써 임란이 터질 줄 알았다네.
近者妖星與白氣 요즈음 요사스런 별이 흰 기운을 띠었으니
九原安得起吾公 어찌하면 구천에서 우리 남공 일으킬 수 있을까?
위 시에는 남사고가 세상 사람들과 떨어져 홀로 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데, 다음 시에서도 마찬가지다.
尋君南嶽下 그대를 찾아 남산 아래에 이르렀거니
地僻斷人蹤 홀로 외진 곳 사람 자취 없네.
庭靜來山鳥 고요한 뜨락으로 산새가 내리고
窓虛引竹風 텅 빈 창안으론 댓바람이 들어오네.
煙嵐栖戶外 아지랑이 문 밖에 서리고
蒼翠入尊中 푸른 산기운 술독에 오르네.
余亦忘機者 나 또한 세상 시름 잊은 사람이거니
頻過笑語同 자주 와서 담소를 함께 하리.
남사고는 생전에 북창 정렴, 수암 박지화, 고옥 정작 등 화담학파 인물들과 친밀하게 지냈는데, 위 시는 북창 정렴의 동생인 정작이 쓴 시이다.
만전당 기자헌(1562∼1624) 또한 어렸을 때부터 수암 박지화(1562∼1624)에게 남사고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고 증언하고 있다. 남사고가 천문(天文)에 능하여 예언마다 적중하였으며, 울진 사람들이 남사고를 존경하여 신명(神明)처럼 여긴다는 것이다.
《조선왕조실록》에도 남사고는 ‘천문지리에 달통한 이인(異人)’ ‘기(氣)로서 점을 친 사람’ ‘제왕(帝王)의 산지를 알아보는 풍수가’ 등으로 기록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남사고의 저서중 하나인 《격암유록(格庵遺錄)》은 장래를 예언한 예언서로 파자법(破字法), 역리법(易理法), 이두식(吏讀式) 등 다양한 방법으로 은두장미(隱頭藏眉)하여 머리와 꼬리를 감추고, 아무나 함부로 해석할 수 없도록 하였으며, 그 뜻을 파악하지 못하도록 하였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격암유록》을 단행본으로 출판한 출판사만 해도 40군데가 넘으며, 그 내용을 부분적으로 인용 언급한 저작물까지 합치면 무려 100여 군데에 가깝다.
그중에서도 《격암유록》 예찬론자인 백석(白石) 박경진(朴憬眞) 선생이 재미있는 해석을 하였다. 《격암유록》은 남사고가 쓴 것이 아니고 받은 것인데, 그 글을 쓴 사람은 ‘여성’이라는 것이다. 문체가 여성의 문체라는 것이다. 여성이 아니고는 그렇게 세밀하고 정교하게 글을 쓸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글을 쓴 여성은 남을 위해 쓴 게 아니고 ‘자기를 위해서’ 썼다는 것이다. 다음 생에 태어나서 자기가 쓴 책을 다시 보겠다는 뜻으로 쓴 것이 바로 《격암유록》이라는 것이다.
아무튼 증산도, 통일교, 단학선원, 파룬궁, 기독교, 수선재, 석문호흡, 마음수련원 등등 여러 수련 단체에서 《격암유록》에 깊은 관심을 표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오직 심신수련의 대표적 단체인 국선도에서만 무관심하게 있었다.
그런 중 필자는 2005년 《격암유록》을 읽다가 국선도의 ‘선 ’ 자가 《격암유록》에 들어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국선도의 ‘선’ 자는 자전에도 나오지 않는 글자이다. 우리나라 자전에도, 중국에서 출판된 자전에도, 전자 옥편에도, 컴퓨터 사전에도 그 글자가 없다. 그러므로 국선도에서는 ‘사람 인(亻)’ 자와 ‘하늘 천(天)’ 자를 편집 짜깁기해서 ‘선 ’ 자를 만들어 쓰고 있다. 뜻은 ‘하늘사람 선’ ‘통할 선’ ‘깨달을 불’로 쓰이고 있다.
이렇듯 자전에도 없는 글자인 ‘선 ’ 자를 국선도에서는 일상적인 용어로 쓰고 있는데, 국선도 도종사님은 그에 대해 이렇게 언급하고 있다.
“우리 국선도의 ‘선 ’ 자가 사람 인(人)변에 하늘 천(天)입니다. 하늘을 흠모하며, 하늘 뜻을 받들어서, 하늘의 뜻을 펴는, 하늘사람이 되자는 뜻이 담겨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국선도에서만 쓰고 있는 이 ‘선 ’ 자가 《격암유록》에 5군데 이상 나오고 있는 것이다.
아무튼 그토록 많은 출판사들이 《격암유록》을 출판하였으나, 이제까지 완전히 해독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한다. 심지어는 신인(神人)으로부터 직접 전수받은 남사고 자신도 그 내용을 완전히 해독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아무도 깨닫지 못할 글을 무엇 때문에 기록하게 하였으며, 전수하게 하였을까?
《성서》〈다니엘서〉에 보면, 다니엘 자신이 기록하고도 몰라서 하나님께 묻자,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네가 알 바가 아니다. 이 말을 간수하고, 이 글을 봉하여 말세까지 두어라.”
고로 말세가 되면 알 자가 나온다는 말이다. 말세가 되면 주해해서 많은 사람을 진리의 길로 인도할 사람이 나타난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어찌하여 한 사람만 알게 하고, 여러 사람들을 모르게 하였을까? 가짜가 앞서 설치면 진인(眞人)이 나와도 사람들이 몰라보고 방황한다. 그러므로 가짜를 방지하기 위해 은두장미하고 혼돈하게 만들어 놓았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사고나 그의 비기(秘記)들이 끊임없이 세인들의 입에 오르내리며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그 속에 인류의 미래상이 보이고, 구원의 손길을 주려는 선인(仙人)들의 지혜가 살아 숨 쉬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