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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 김정애 씨와. 경북 김천 출신의 아내는 자장보다 짬뽕을 좋아한다고 한다. | |
만화 《식객》에는 자장 3대 이야기가 소개된다. 화교 자본의 진출을 억제하는 정책 때문에 중국 음식점 외에는 생계 수단이 거의 없었던 화교의 고단한 역사가 고스란히 묻어나는 이 이야기의 소스는 인천 차이나타운의 ‘태화원’에서 나왔다. 화교 할아버지, 아버지의 뒤를 이어 40년째 자장면을 만들고 있는 태화원의 손덕준 대표를 만났다. ‘호랑이 요리사’라는 소문대로 눈매가 매서웠다. 그는 여의도의 중식당 ‘열빈’ 주방장을 거쳐 남산 ‘다리원’, 프라자호텔 중식당 ‘도원’ 등 서울의 유명 중식당에서 내공을 다진 실력자다. 손덕준 형제는 인천 차이나타운을 꽉 잡고 있다. 태화원 외에도 차이나타운 내에 있는 자금성, 중화루를 그의 형제가 운영한다. 8남매 중 다섯 형제가 이곳에 몸담고 있다. 나머지 세 형제는 대만에서 산다. 태화원 주방장 손덕위 씨는 그의 한 살 아래 동생. 음식 소스를 공유하기 때문에 세 곳의 맛이 거의 같지만 태화관보다 4년 먼저 생긴 자금성에 손님이 가장 많다고 한다. 30년 넘는 역사의 중화루는 다른 사람이 운영하던 것을 막내 동생이 인수했다. 태화원 대표 메뉴는 역시 자장면. 이곳의 자장면은 ‘자장’과 ‘인천향토자장’ 두 가지가 있는데, ‘인천향토자장’은 직접 담근 춘장을 섞어 만든다. 손 대표는 시판 중인 사자표 춘장과 직접 담근 3년 묵은 춘장을 나란히 내왔다. 중국 음식점에서는 대부분 사자표 춘장을 쓴다고 한다. 사자표에서는 달달하면서 익숙한 향이 났는데, 태화관에서 직접 담근 춘장에서는 발효된 장 냄새가 강하게 풍겼다. 동행한 사진기자는 “블라인드 테이스팅을 하면 된장으로 착각할 것 같다”고 말했다. 검은색에 가까운 보통의 춘장과 달리 짙은 갈색을 띤 이 장은 짭조름하면서 뒷맛에 발효장 특유의 구수한 여운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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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화관에서 직접 담근 춘장은 진갈색을 띠고, 된장 향과 비슷한 발효장 특유의 향이 풍긴다. |
세대가 바뀌면서 선호하는 자장면 맛도 달라졌다. 1960년대 이전에 자장면을 맛본 어르신들은 인천향토자장을 선호하지만 젊은이들은 이 자장면 특유의 향에 거부감을 가지는 경우가 많다. 허영만 화백은 만화 《식객》에서 춘장의 향에 대해 “우리의 된장과 같은, 촌스럽지만 깊은 향이 살아있다”고 표현했다. 손 대표는 태화원이 고향이다. 1956년 지금의 태화원이 자리한 곳에서 태어나 자랐다. 100년 가까이 된 낡은 집 16채가 오밀조밀 모여 있던 것을 10년 전 매입해 지금의 2층짜리 태화원을 지었다. 그의 할아버지, 아버지 모두 인천 차이나타운 인근에서 중국음식 요리사를 했다. 아버지는 자장면 원조로 알려져 있는 공화춘 주방장을 지냈다.
요리 스승인 아버지 돌아가신 후 아버지 친구 밑에서 배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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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덕위 주방장 |
그가 중국요리에 발을 디딘 건 열다섯 살 때. 스물세 살에 요리 스승인 아버지를 여의면서 8남매의 장남인 그가 실질적인 가장이 됐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요리 스승은 ‘열빈’ 요리사였던 아버지 친구로 바뀌었다. 그는 “좋은 요리사가 되려면 좋은 스승을 만나야 한다”면서 “나에게 최고의 스승은 아버지, 그 다음은 아버지 친구”라고 말했다. 그가 ‘열빈’ 주방장이 된 건 24세 때. 남들보다 일찍 주방장이 될 수 있었던 비결을 묻자 그는 “살아남기 위해서요”라며 말을 이었다. “일찌감치 가장 아닌 가장이 되고 보니 먹고 사는 일이 절박했어요. 잡념 없이 중국요리에만 몰두한 게 결정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우리 시절에는 할 수 있는 게 이 일밖에 없었어요. 화교들은 아무리 공부해도 일반 직장에 취업이 잘 안 됐죠. 제 천성이 부지런한 편이에요. 남이 쉴 때 쉬지 않고 늘 무언가를 했죠. 세월의 흐름을 반영한 요리를 만들어 내기 위해 노력한 것도 남들과 좀 달랐던 것 같습니다.” 그에게 중식 요리사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진로였다. 어릴 적부터 다른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고 한다. “이 일 말고 하고 싶은 다른 일은 없느냐”고 묻자 “글쎄요. 생각해 본 적 없어요”라고 답한다. 환경 때문에 선택한 외길 인생. 그는 “젊은 사람은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해야 해요”라며 본인이 가보지 못한 세계에 대한 열망을 간접적으로 드러냈다. 그래서 그는 세 자녀에게 아버지의 대를 이으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큰딸은 이화여대 의상디자인학과를 나왔고, 둘째 딸 역시 연세대 대학원에서 디자인을 전공 중이다. 막내인 아들은 경희대 식품조리학과에 재학 중이다. 아들에게 가업을 잇게 할 거냐고 묻자, 그는 “지금 시점에서 말하기 쉽지 않다. 본인의 의사를 따를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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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향토자장(위), 일반자장(아래) |
서울의 유명 중식당을 전전하던 그는 월급쟁이 생활에 한계를 느끼고 인천 연수동에 중식당을 차렸다. 고급 중식 레스토랑에서 다진 손맛은 어딜가도 알아줬다. 손님이 끊이질 않았지만 1992년 한중(韓中) 수교 후 인천에 차이나타운이 활성화되면서 이곳으로 돌아왔다. 화교를 위해 일하겠다는 사명감에서였다. 그의 명함에는 ‘인천중화가 자영연합회회장(仁川中華街 紫榮聯合會會長)’이라고 찍혀 있다. “고향으로 돌아온 거죠. 아버지처럼. 제 본적은 산동성 연태시, 국적은 중화민국 대만, 고향은 인천 차이나타운이에요. 복잡하죠? 저도 어느 나라 사람인지 잘 모르겠어요.” 차이나타운에 오면서 그는 화교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긴 자장면 고유의 맛을 부활시키기로 했다. 서울 중식당에 있을 때는 시판되는 춘장만 사용했는데, 이곳에 와서 그는 자신이 직접 담근 춘장을 섞어 원조 자장면을 되살렸다. 손 대표는 하루에 한 끼는 꼭 자장면을 먹는다. 맛을 변함없이 지키기 위해서다. 사진 촬영을 위해 자장면 먹는 포즈를 부탁하자 “점심에도 먹었는데”라며 웃더니 쓱쓱 비벼서 후루룩후루룩 금세 해치웠다. 그가 먹는 걸 보고 있으니 입 안에 군침이 돌았다. 그는 기자가 본 사람 중 자장면을 가장 맛있게 먹는 사람이었다. 사진 : 이규열
▣ 자장 소스 맛있게 만드는 법 (만화 《식객》에서 발췌)
자장면은 맛도 맛이지만 향으로 먹는 음식. 향을 살리기 위해선 프라이팬 다루는 기술과 불 조절이 생명이다. 1 프라이팬에 기름을 듬뿍 두르고 200℃ 이상의 고온에서 단시간에 춘장을 튀긴다(1분 정도). 2 불 온도를 조절하면서 춘장을 골고루 익힌다(4~10분). 이때 춘장의 수분은 날아가고 향은 살아난다. 눌어붙지 않게 쉴 새 없이 저어야 춘장의 원료인 콩의 비린내와 잡내를 없앨 수 있다. 3 달군 프라이팬에 돼지고기를 먼저 볶는다. 어느 정도 익었을 때 술을 부으면 불길이 치솟으면서 돼지고기 잡내가 사라진다. 4 3에 양파 등 야채를 넣고 프라이팬을 뒤적여 가며 볶는다. 5 튀겨 놓은 춘장을 합치고 닭 뼈를 우려낸 육수와 감자 전분을 풀어 넣어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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